제185화 - 누군가를 상대하러 가면서도 이렇게 아무런 준비 없이, 계획 없이 움직이는 것은 처음이었다.
지금 돌아다니는 것조차 마치 어딘가로 나들이라도 나온 것 같다.
거리 공연을 벌이고 있는 악사들이 보인다. 거다란 콘트라베이스. 그 옆에는 바이올린과 기타가 있다.
세 악사가 음악을 연주하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옆에 놓인 통에는 동전이 차곡차곡 쌓인다.
‘여기서 대체 뭘 해야하는 거지?’
음악 소리는 듣기 좋다만……. 샤를은 멍하니 노래를 듣고 있었다.
“젊은이, 듣기 좋지 않나?”
“그러네요.”
고개를 돌리니 그냥 우연하게 조우한 노인 한 명이 보인다. 그는 흰 옷을 걸치고 있었는데 상당히 안색이 나빠보였다.
“몸이 안 좋으신 게 아닙니까?”
“쿨럭. 괜찮다네. 어차피 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이거든. 내일 죽어도 이상하지 않지.”
보통이라면 그와 대화를 마치고 갈까 했으나, 샤를은 변덕이 생겨서 그냥 남아서 그와 얘기하기로 했다. 거리의 악사들은 감미로운 연주를 했다.
흰 옷의 노인은 그 장면을 보면서 희미하게 웃었다.
“옛날 생각이 나.”
그의 손은 마치 허공에 있는 가상의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하는 것처럼 저절로 움직이고 있었다.
“음악가셨습니까?”
“그렇다네. 젊은 시절 대성당 앞에서 이렇게 연주를 했었지. 근데, 요즘은 기억이 잘 안나. 너무 오래 되어서 말이야.”
쿨럭. 쿨럭. 노인은 숨이 넘어갈 것처럼 기침했다. 샤를은 그의 한쪽 팔을 부축하고 말했다.
“옆에 가서 좀 앉아 계시지요.”
“그래도, 여기가 제일 듣기가 좋은 곳이라네. 저 사람들의 음악을 듣다보면 옛날 기억이 나올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 그때, 우리도 세 명이었었지.”
“음. 선생님. 과거의 기억을 선명히 보고 싶으시다는 거군요?”
“그렇다네.”
“그럼, 절 따라서 오시죠. 도와드릴게요.”
샤를은 그 노인을 부축해서 옆으로 데려가서 조용한 벤치 앞에 앉혔다.
“최면술이라고 아세요?”
“최면술?”
“잠시 암시 상태로 만들어서, 과거의 기억을 보게 해드리는 것이지요. 저와 함께 가서 봅시다. 선생님의 연주를요.”
샤를은 그 앞에 앉아서 노인의 앞에 손을 내밀었다.
“옛날, 그 시절을 떠올려보세요. 대성당 앞에 앉아 있던 그 모습을요.”
“대성당 앞에…….”
샤를은 기억을 더듬는 노인의 눈 앞에서 손가락을 튕겼다.
이제, 그으 암시는 강하다 못해서 과거의 장면까지 재현해낼 수 있었다.
샤를은 노인의 과거의 기억 속으로 들어갔다. 그는 대성당 앞에 있었다. 젊었을 적, 아프지도 않았을 때.
활짝 웃으면서 세 사람이 연주하고 있었다. 거리의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관객이다.
그들의 음악은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어떤 마음을 자극했다. 따뜻한 햇살 아래, 목조 저택으로 들어오는 선선한 공기. 숲내음.
아름다운 음악…….
순간에 불과하더라도 삶이 예술일 수가 있다.
그래서 때로는 그 순간으로도 평생을 살아갈 수가 있다.
기억에서 깨어난 노인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고맙네 젊은이……. 고마워.”
그는 더는 고통을 느끼지 않았다.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으나, 입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고 있었다.
병원에서 온 사람들이 그 시신을 옮기기 전까지. 샤를은 그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그는 가기 전까지도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샤를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노인은 떠나기 전에 샤를에게 사진 한 장을 건넸다.
가족 사진이 아니었다. 세 악사가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세 남자가 어깨 동무를 하고 광장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거리의 사람들이 스쳐지나가는 것이 보이는 엉성한 사진이었다.
나머지 악사들은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지 노인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으나 왜인지 알 것 같기도 했다.
“사진…….”
샤를은 돌려줄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유실물을 들었다.
몸을 쫙 펴고 스트레칭을 했다. 지팡이와 사진. 그것들을 들고 슬금슬금 움직였다. 이제 어디로 가야할까.
점심은 강이 보이는 카페테리아로 향했다. 이곳에서 먹는 샌드위치는 다른 곳보다 훨씬 좋다.
테이블 위에 사진을 꺼내서 자세히 살펴봤다. 지금 도저히 뭘 해야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혹시나 사진에 뭔가 단서 같은 게 있을 지도 모른다. 스쳐지나가는 사람이 트리메스와 관계가 있는 사람일 수도 있고.
가볍게 커피를 마시고 있던 샤를의 옆에서 젊은 종업원이 문득 샤를의 사진을 보았다.
“어? 저, 죄송한데요.”
“무슨 일이시죠?”
“보려던 건 아니고 그냥 지나가다가 살짝 본 건데. 이 사진에 저희 아버지가 있어서요.”
“네?”
“여기요.”
그 여성은 세 악사의 옆에 있는 분수에 앉아 있는 남자를 가리켰다.
“젊었을 적의 아버지가 있어서 신기해서요.”
마침 샤를이 가는 곳에 있는 종업원의 아버지가 이 사진에 찍혀 있는 것이 우연일까?
그럴 것 같지가 않다. 샤를은 그녀에게 물었다.
“그런 가요? 아는 분의 유실물이어서 제가 보관중이었거든요. 이상한 우연이 있군요.”
“그러게요 진짜 신기하네요.”
여종업원은 신기하다는 듯 사진을 바라보면서 말을 이었다.
“그러고보니 아버지랑도 이야기한 지 너무 오래 됐네요. 뭐 하고 계실려는지 몰라.”
“어디 멀리 계시나 봐요?”
“그건 아니고, 메트로폴 교도소에서 일하고 계세요. 그곳의 소장이거든요.”
“메트로폴 어사일럼이요?”
“어라? 아시네요.”
“경찰하고 좀 관련이 있어서요. 교도소 쪽이 엮일 수 밖에 없죠.”
“아! 그럼 혹시 부탁하나 드려도 될까요?”
“부탁?”
“초면에 이렇게 부탁드려도 될는지 좀 모르겠는데, 아무튼 아버지는 연락을 너무 안하세요. 진짜 가끔하시거든요. 혹시 이 편지를 아버지에게 전달해주실 수 있나요? 그쪽 관계자라면서요.”
“가족들의 편지는 못 보내나요?”
“답장을 한 번도 안 하니 그렇지요. 제가 분통이 터져서 직접 찾아갈까 했다니까요. 뭐, 여기 일이 바쁘니 또 그것도 어려워서 그만 뒀지만. 사례금도 드릴게요!”
“……그렇게하죠.”
“와! 정말요!”
샤를은 그날 점심 값을 사례금으로 받는 것으로 대신하기로 하고는, 남쪽 부두로 향했다.
“진짜 이상한 날이네.”
공원에서 누군가의 고민을 들어준 다음,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병자의 기억을 되살려주었더니, 갑자기 남쪽 부두로 가서 교도소로 가게 되었다.
신기한 것은, 부두로 도착하자마자 메트로폴 어사일럼의 배가 딱 출발 직전이었다는 점이었다.
배표를 끊자마자 한치도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올라타서 출발할 수 있었다.
남쪽 부두에서 100m 정도 밖에 떨어지지 않은 작은 섬에 도착하자마자 샤를은 이상한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흐음.”
평범한 섬 같지만 뭔가 이상한 기류가 느껴진다. 입구에 들어가자마자 기록관리인이 물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편지를 전해주려고요.”
“가족분이세요?”
“그런 듯하네요.”
“네? 아, 그렇군요. 어서 들어가시죠.”
기록관리인에게 가볍게 암시를 걸어서 통과했다.
“좀 으슬으슬하군.”
섬에 도착하자마자 해무가 끼기 시작했다.
대체 왜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인지 알 수 없었던 샤를은 편지를 들고 교도소의 소장이 있다는 곳으로 가기로 했다.
교도소장의 가족이라고 했더니 옆에서 교도관 하나가 붙어서 이런저런 친절하게 얘기를 해주었다.
그리고 소장실로 들어갔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 소장님은 잠깐 나가셨나보네요. 좀 기다리시면 오실 겁니다. 기다리고 계시겠습니까?”
“그렇게하죠.”
평범한 집무실처럼 보이는 곳이다. 샤를은 하품을 하면서 소장을 기다렸다.
잠시 뒤에 문이 열렸다.
“음?”
카이저 수염을 기른 중후한 중년인 하나가 나타났다.
“누구시오?”
“따님께 편지를 받아서 전달하려고 왔습니다.”
“뭐? 편지?”
샤를이 편지를 꺼내서 그에게 주자 그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인상을 썼다.
“매주 편지를 보내면서 대체 뭐지?”
“답장을 안 한다고 제게 전달해달라고 했거든요.”
“허 참. 아니, 그보다 당신 어떻게 여기까지 들어왔소? 여긴 교도소 안인데.”
“가족이라고 하니까 들여 보내주던데요.”
“으드득. 이놈들을 그냥.”
소장은 한 숨을 쉬었다.
“아무튼, 편지는 고맙소. 사람을 보내서 이렇게 직접 전달할 정도면 딸아이가 어떤 기분인지 알 것 같군. 교도소는 오늘 저녁 배편으로 떠나시오.”
“그렇게하지요. 어차피 이곳에는 머물 곳도 없는 것 같으니까요.”
“그래봐야 겨우 100m말이요. 허.”
샤를은 아무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야드 파운드를……안 쓰네?’
아주 훌륭하고 교양있으며 지적인 인물이로군.
그런 감상을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찰나였다.
“소장님! 소장님! 소장니이임!”
누군가 헐레 벌떡 들어왔다. 조금 전에 샤를을 안내했던 그 교도관이었다.
“D동, D, D, D동!”
“뭐? D동이 왜?”
“빠, 빨리 와보십쇼.”
소장실에 있는 샤를을 살짝 본 교도관이 혼란해보이는 와중에도 정신을 잡고 말하자 소장이 얼른 다시 재킷을 입고 밖으로 나갔다.
샤를은 그대로 버려둔 셈 치는 모습을 보니 어지간히 바쁜 모양인데.
그러다 그는 호기심이 들었다.
“대체 무슨 일일까?”
이것도 어쩌면 그 카오스적인 행보에 영향이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
샤를은 지나가는 길에 D동이라는 곳에 들러 보기로 했다. 생각해보니 오는 길에 봤었기 때문.
뭐, 걸리면 길을 잃었다고 둘러대면 되니 별 건 없었다만.
웅성웅성.
저 멀리서 교도관들이 한데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봐, 봤어?”
“그 정신의학자라는 사람……피떡이 되어 있던데?”
“진짜로 미친 놈이더군.”
“아니, 근데 그 노인 말이야. 대체 무슨 힘이 있어서 사람을 그렇게 만들었지?”
“그러게 말이야. 완전 해골이나 마찬가지더만.”
“아니아니, 애초에 가능해? 묶여 있었잖아.”
“구속을 푼 다음 지가 다시 묶은 게 아닐까?”
떠드는 교도관들 사이에서 살짝 고개를 들어서 바라보자 안쪽이 조금 보였다.
사방의 벽에 피칠갑이 되어 있었고 중앙에는 한 사람이 묶여 있었다.
무슨 중환자인 것 마냥 구속복을 입혀둔 것이 보인다.
하지만 노인은 구속복이 헐렁해질만큼 깡마른 사람이었다. 흉흉하게 보이는 눈으로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 이새끼! 무슨 짓을 저지른 거냐!”
교도소장이 구속복의 한 쪽을 멱살 잡듯이 잡았다.
쓰러진 정신의학자라는 사람은 피투성이의 중년 남자였다. 교도관들이 그를 들것에 실어서 나르고 있었다.
“난 아무 것도 안 했어.”
“거짓말 하지마라! 이 감옥 안에는 너랑 저 사람 밖에 없었지! 누가 쇠창살 밖에서 들어온다는 거냐?”
“내가 한 게 아니야. 내 친구들이 한 거지.”
그 말에 교도관들이 다시 웅성거렸다.
“아무래도 저 노인네, 정신 병원에 보내야하는 거 아닌가?”
“그 정신 병원에 보내기 위해서 지금 의사를 보낸 거잖아. 근데 저렇게 되었으니…….”
“살아는 있대?”
“살아있기는 한가보더군.”
그걸 보면서 샤를은 머리를 긁적였다. 이거 껴야하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