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사이비 교주가 되었다-182화 (181/221)

제182화 - 네 번째 석판은 염동력을 투사한다.

“이게 네 번째 석판의 능력이군.”

문제가 생겨 난 이후로 샤를은 마치 초인처럼 움직일 수 있었고 생각을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현실에 물리력을 투사할 수 있었다.

손을 돌리면 엄청난 와류가 형성되어서 공간을 찢어버릴 수도 있다.

정신 차리고 일어섰다. 옆에 죽어있는 시체. 문득 샤를은 그것에 동질감을 느꼈다.

죽어있는 것으로 생각하면, 샤를도 옆에 있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나?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러자 가볍게 넘겨왔던 많은 것들이 떠올랐다.

함께하던 사람들, 조력자, 부하, 형제, 사랑하는 사람…….

“생각보다 난 괜찮게 살고 있었구나?”

샤를은 행복한 사람이다.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미래를 위해 차근차근 걸어 나가고 있다.

김연수일 때는 어떻게 살았지? 직장이라는 지독한 굴레에 사로잡혀 있었다.

매일매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자본주의의 망자.

한 직장에서 오래 있지 못하고 다른 직장을 잡고, 또 다른 직장을 잡고 그렇게 무지성으로 살다가 나이를 먹어가지.

이 게임도 그 도피의 일부였었다. 직장과 직장 사이로 넘어가는 텀에, 깊게 파고든…….

“…….”

긴 전투는 정신에 작열감을 남겼다. 타오르는 불꽃 끝에 도착한 것은 식어버린 현실.

제대로 도망치지 못한 자는 어중간한 낙원에 남는다.

시간이 흘러간다. 온갖 것들에 대한 생각이 마인드맵처럼 퍼져 나간다. 이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여태까지 있었던 모든 일을 반추하기에 이르렀다.

사색하다가, 어느 날 빛나는 자가 누구인지 깨달았다. 이전 파수꾼.

“광명자였어.”

이전의 파수꾼은 광명자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째서인지 알 수 없었으나, 분명 그랬다.

단지 워낙 처음 보는 모습이어서 당황했을 뿐이었다.

“어째서인지, 이게 단순한 가상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

광명자도 이 시험을 치렀다…….

“뭔가 놓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단순히 그것뿐일까? 샤를은 이 문글로즈라는 사람을 너무 단순하고 1차원적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느꼈다.

헤르메스를 막기 위해 샤를을 도와주는 사람. 그리고 헤르메스에게 패배해서 강제로 은퇴 당한 전 예언가 정도로 말이다.

‘어느샌가 그렇게 되었지.’

원래 샤를은 남을 잘 의심하고 위험을 피하는 성격이었으나, 그는 문글로즈가 내민 시험이라는 미끼에 덥석 물린 물고기처럼 잡혔다.

첫 번째 시험 이후로도 제대로 된 정보는 얻을 수 없었고, 늘어난 것은 불면증과 두통, 악몽뿐이었다.

청나라 문인 조익(趙翼)이 말했다. 선자불래(善者不來), 내자불선(來者不善).

좋은 뜻을 가진 사람은 쉽게 찾아오지 않고, 제 발로 찾아온 사람은 좋은 뜻을 갖고 온 것이 아니다.

“문글로즈는 왜 내게 석판을 넘겨주려는 것인가?”

애초에 사색할 시간은 끝도 없이 많았으므로 샤를은 어느 순간 간과하고 있던 모든 것들을 떠올렸다.

흐름에 휩쓸려 가는 것처럼 의심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그가 한 말은 모두 대의를 위한 것처럼 얘기하고 있지만, 여태까지 간과하고 있던 것은 그가 정말 선한 자인가 하는 것.”

아니, 선하다는 말에 그냥 넘어가면 안 된다. 대체 누구를 위한 선이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의심과는 별개로 문글로즈는 자신이 하는 말을 지킬 확률이 높다.

“다섯 번째 석판도 곧 소화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런 감이 온다. 다 끝나고 나서야 생각하는 것이지만, 문글로즈가 이 긴 시간 속에 처박아둔 것은 석판을 소화할 시간을 강제로 준 것이다.

시간의 흐름이 가속되고, 다음날도 샤를은 깨어났다.

다섯 번째 석판을 소환했다고 느꼈을 찰나에, 시야가 여러 개로 보이는 것 같은 감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이마에 눈이 하나 새로 달렸다.

이 눈은 세로로 찢어져 있으며 볼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었다.

“흐음.”

일반인의 뇌로는 이해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뇌를 쿡쿡 찌른다.

“이런 감각인가.”

대뇌 기저핵에는 중격핵이라는 부위가 있다.

뇌의 측면에 있는 3cm 부분으로. 뇌의 보상 시스템이자 쾌락과 중독의 중추이며 의욕을 조절하기도 한다.

혹은…….

신을 믿기 위해 진화해온 부분이거나.

제3의 눈을 얻으면서 샤를은 자신의 신체를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게 되었다.

의지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불수근조차 움직일 수 있었다. 세포 하나하나, 뇌의 기능 하나하나가 지배할 수 있는 조작에 포함된다.

“또 하나.”

제일 중요한 것.

“상대방의 권능을 강탈할 수 있겠어.”

원래부터, 샤를에게는 헤르메스에게서 권능을 강탈할 계획이 있었다. 지배의 권능은 그에게 중요한 능력이었으나 그 능력이 헤르메스에게서 비롯된 것이었다.

하지만 제3의 눈을 개안한 이후로 신에게 한 걸음 가까워졌다.

그리고 그들이 사용하는 힘을 ‘흉내’ 낼 수도 있었으며 또한 그 능력을 감출 수도 있었다.

데미 갓.(demi god)

반인반신의 반열에 오르게 된 것이었다. 그것도 의도적으로 조절이 가능한.

“필요한 순간에 제3의 눈을 활성화하면 되겠군.”

제3의 눈으로 장벽을 바라보자 그것이 선명하고 기괴하게 보였다. 장벽 아래에 있는 그 빛의 경계는 오묘하고 찬란한 형태로 보인다.

“내일 새로운 파수꾼이 오겠군.”

미래를 읽었다. 길고도 긴 시간이었다. 샤를은 자신이 이 세계에 얼마나 체류하고 있었는지 ‘운명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와, 100년이나 있었네? 그 긴 시간의 흐름을 미치지 않고 견뎌내다니.”

어느 순간부터 체감되는 시간의 흐름이 정상적이지는 않았다고는 하나, 미치지 않고 여기까지 견딘 것을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겼다.

눈을 뜨니 다음날이었다. 그리고 누군가 문을 똑똑 두들겼다.

“저기요 실례합니다.”

샤를은 문을 열어주었다. 그곳에는 생전 처음 보는 존재가 있었다.

얼굴은 돌고래인데 팔다리가 달렸으며 온몸에서 난 촉수들이 손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 같다.

그는 샤를을 보더니 흠칫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그의 몸 여기저기에 그려져 있는 신대문자와, 이마에 있는 세 번째 눈을 보고 나서 놀라지 않을 수는 없을 터.

정확히 샤를이 광명자를 보고 놀란 것과 같은 반응이군. 샤를은 기묘한 데쟈뷰를 느꼈다.

“저, 저기 여긴 어디죠?”

“경계의 앞 오두막이지. 당신이 앞으로 긴 시간 파수꾼으로 있어야 할 곳이기도 하고.”

“네, 네?”

“잘 들어. 이전 전임자가 설명해주지 않아서 나도 헤맸는데 말이야. 앞으로는 모든 걸 의심하는 것이 좋을 거다.”

“의, 의심이요?”

“의심하면서, 장벽을 지켜라. 다음 파수꾼이 올 때까지 넌 파수꾼이 돌 테니까.”

샤를은 경계 앞에 섰다. 어느 순간 팔다리에 기묘한 문자가 떠올랐다.

발로 걷어차 버리자 공간이 기괴하게 일그러지면서 빛이 열렸다.

뒤에서 샤를을 기괴하다는 듯 지켜보는 외계인을 내버려 두고 이전의 파수꾼이 그랬던 것처럼 경계를 박차고 튀어나왔다.

눈을 뜨니, 구름 위에 있었다. 이곳은 세상의 경계라는 그 장소가 분명해 보였다.

“흐아암. 깼는감?”

“이건 곰이야. 사람을 찢어.”

샤를이 양손 한데 모은 다음 앞부분만 살짝 벌려서 입이 닫히는 것처럼 박수치자 공간이 일그러지면서 파공음이 울렸다.

“엇, 어, 이보게 잠시 기다리…….”

문글로즈가 순식간에 피떡이 되었다. 무언가에 씹어 먹힌 것처럼 살점 조각이 이리저리 튀면서 조각난 문글로즈.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또다시 문글로즈가 멀쩡한 모습으로 옆에 있었다.

“이봐, 진정하고 내 말을 좀 듣제? 영 사람 참 성미하고는. 100년 동안 혼자 있었더니 정신이 망가진겨?”

“아니지. 정신이 망가진 게 아니라 잊었던 의심을 떠올린 것이라고 할까. 한번 말해보시죠.”

샤를은 광기로 미쳐버려서 문글로즈를 공격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눈은 극도로 무심해 보였고 냉정하게 계산하고 있었다.

“…….”

“내가 이렇게 될 줄 알았겠죠?”

“……그 말이 맞디야.”

“뭐, 몸에 글자 몇 개 좀 생기고 이마에 눈이 하나 더 달린 정도로 내가 완전히 미쳐버리지는 않습니다만. 궁금한 것. 당신이 만들고 싶은 게 대체 뭔지 말이죠.”

“…….”

샤를은 목을 이리저리 꺾으면서 자신의 물건들이 잘 있는지 체크했다. 별로 이상은 없다.

“맨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날 도와주기 위해서 시험을 준비한 것이 분명하다고. 근데 생각해보니까 당신이 날 돕는다는 이유는 굉장히 피상적이더군요.”

“그건……?”

“앞으로 누군가 석판을 모을 것이니까 그 석판을 몰아주겠다고? 장난해? 그걸로 당신의 목적이 성취되니까 그런 일을 하는 거겠지.”

순수한 선의를 믿던 시절은 100년 전이였다.

“헤르메스에게 패배한 뒤에, 이곳에 와서 경계를 지키고 있었다? 설명부터 하시죠.”

“……그게 말이제. 나는 원체 도박을 좋아했던 것이여. 이계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이족 도박사들과 도박을 하곤 했제 그러다가 이 공간으로…….”

“당신의 그 옛날얘기는 별로 관심 없습니다. 한 가지만 말해주시죠.”

“뭔가?”

“헤르메스에게 진 뒤에, 그의 부하가 되었는지, 아니면 아직도 그와 적대하고 있는지 말이지.”

문글로즈는 샤를을 보면서 낄낄거렸다.

“사람을 너무 의심하는 게 아닌가? 막말로, 자네가 시험을 치르는 동안 내가 자네를 죽이지 않을 이유는 뭐고?”

“모든 석판을 소화하고 나머지 6번째 석판까지 내가 가져가야 할 이유가 있었으니까. 오스구나아아텔도 당신에게 협조한 것일 테고.”

선명하게 보이는 그의 목적.

“당신도 결국 예언자였고, 옛날 자신의 지위를 되찾고 싶었을 테지.”

샤를은 가위 검을 꺼내 들면서 냉정하게 말했다.

“……당신이 내 뒤통수를 치려는 게 아닌가 하는, 그런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는 거야.”

그 수법은 6번째 석판까지 소화한 내 몸을 강탈하거나 혹은 그에 준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문글로즈는 적의를 드러낸 샤를의 앞에서 시시덕거렸다.

“오, 그래서, 날 죽이겠다는 거제?”

“물론이지.”

“그걸 세 번째 시험으로 해둘까? 영광의 시험 말이여.”

“진짜 미쳤어?”

“……미쳤다는 뜻의 정의가 뭐시당가?”

문글로즈는 팔을 벌리면서 자신의 가슴을 가리켰다.

“자, 준비됐으면 마! 찔러라! 그래도 나 정도면 신격이라고 할 만하제. 그런 존재를 죽인다면 영광의 시험을 통과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요. 이번에는 저항하지도, 능력을 쓰지도 않겠느니라.”

검을 쥔 자는 오히려 그런 문글로즈의 태도에 당황하게 되는 것이었다.

“…….”

“무엇을 믿어야 할지 모르겠으면, 자기 자신을 믿는 것도 나쁘지 않제.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이여.”

“쯧.”

“또 이렇게 생각하겠지. 아, 이 검을 찌르는 게 사실 계략이 아닐까? 문글로즈는 사실 자살하려는 것이 아닌가?”

“적당히 해!”

샤를은 검을 내질러 문글로즈의 가슴에 꽂아 넣었다.

“이러면 됐냐?”

“훌륭……하군…….”

본래라면 볼 수 없었을 터나, 제3의 눈이 개방된 지금은 시체가 된 문글로즈의 영혼이 뽑혀져 나오더니, 그대로 가위검으로 옮겨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

―휴 드디어 해방된 것이여!

샤를은 텔레파시로 전환해서 그에게 말을 걸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자네의 추측이 맞는다는 이야기제잉.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