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사이비 교주가 되었다-180화 (179/221)

제180화 - “그, 그럴 수가. 분명히 저 광대는 자기 자신도 규칙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했었는데. 그래서 할아버지의 영혼을 걸고 듀얼을 하라고…….”

레나 카르펜이 뒷걸음질을 쳐서 테이블에서 벗어났다. 자신은 분명 할아버지의 영혼, 그리고 자신의 목숨을 걸고 내기를 했었다.

“그거 다 거짓말이야.”

“네에!?”

“할아버지의 영혼을 걸고 듀얼? 애초에 질 생각이 없었으니까 한 거겠지.”

“어흐흑, 흑 흑, 이, 이 개자식!”

광대는 뒤로 물러서면서 피 묻은 자신의 손목을 다른 손으로 부여잡았다.

“네가 데미지를 입는 조건을 알았다. 룰 위반을 하면, 필시 물리적인 피해도 동시에 입는 거겠지? 여태까지 몇 번의 룰 위반을 했냐.”

“무, 무슨, 난 그런 적이 없어.”

“노마 카르펜과의 내기에서도 룰 위반을 했지?”

샤를은 가위검을 날려서 광대의 한쪽 발을 잘라냈다.

“끄아아아악.”

피투성이 광대가 쓰러져서 엉금엉금 뒤로 기었다.

“나와 브라이튼 교수에게 공포를 느껴야지만 자신과 대적할 수 있다고 선언한 것도 거짓말이지?”

재차 가위검이 휘둘러지자 다른 쪽 팔도 날아간다.

“끄아아아아아악.”

“보자, 애초에 이 봉인이 풀어지고 있다는 것도 거짓말이지? 사실 봉인은 단단한 거고.”

또 가위검이 날아갔으나 이번에는 허공을 갈랐다.

“흐음. 봉인이 풀어지고 있던 건 진짜였구나.”

“크르르. 이 개자식. 네놈이 그렇게 나온다면 나도 생각이 있어. 내 진짜 신의 위용을 보여주겠다!”

광대가 분노를 터뜨리면서 자신의 몸집을 거대하게 키웠다. 하늘로 치솟는 거인처럼 늘어나는 광대의 모습을 보면서 샤를이 내뱉었다.

“X 싸는 소리하고 있네. 네가 무슨 신이야? 시간 전쟁에서 패배해서 악마로 영락한 주제에.”

“뭐, 뭣? 그걸 어떻게 알고 있지?”

그 광대는 커지다가 다시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거대해지던 영압도 다시 줄어버리고 만다.

“너. 악마로 영락하고 난 이후에, 카르펜 가문의 사람들에게 붙잡혔지? 그리고 이 풍차에 봉인되었을 거고 말이야.”

“…….”

“거지황제? 이제 황제는 빼고 거지만 해라. 내가 널 다시 저 봉인구에 봉인해주지.”

샤를은 오래된 제분기를 손으로 가리키면서 말했다.

광대는 이를 갈면서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없는 양손을 들면서 외쳤다.

“응! 그 전에 도망치면 그만이야!”

“응~! 도망 못 치게 이미 붙잡았어.”

혹시 몰라서 브라이튼 박사에게 미리 받아두었던 유리병을 들고 광대를 그 안에 집어넣었다.

어느새 광대의 크기는 유리병에 들어갈 정도로 작아져 있었던 것.

동시에 브라이튼 박사의 환술도 풀려서 그는 어리둥절한 채로 깨어났다.

“으음?”

“박사님? 깨어나셨나요?”

“레나양. 이건 대체 어떻게 된 거지요?”

“이 광대놈이 주범이지요 뭐.”

샤를은 자신의 유리병을 들었다. 그걸 본 브라이튼 박사가 화색을 띠었다.

“와우! 화려한 장식?! 이 녀석 희귀한 놈이군요.”

샤를은 살짝 뒤로 물러났다.

‘뭐야 이 아저씨. 마치 초희귀종 장수풍뎅이를 본 콜렉터 아저씨마냥.’

눈이 뒤집힌 브라이튼 박사를 보면서 샤를은 큼큼하고 일단 목을 다듬었다.

“일단 이 녀석을 어떻게 할지 봅시다.”

“좋아요. 제분기를 살펴봐야겠군요.”

악마학 전문가 브라이튼 박사는 제분기를 살펴보았다.

“음. 영험한 존재를 봉인한 물건치고는 그다지 영적 능력은 없는 모양이군요.”

“봉인 자체가 약해져 있던 것은 확실한 모양입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노후 된 것이거나 아니면 또 다른 요인이 봉인을 느슨하게 했던 것에 관여했던 가 둘 중 하나겠지요.”

샤를의 말은 정확히 그 요점을 꿰고 있었기에 브라이튼 박사도 동의했다.

“이 제분기는 약해진 데다가 옆에서 나무가 자라 있습니다.”

제분기의 틈 사이로 광대 모자 나무가 자라 있어서 봉인이 확실히 약해진 것 같다.

“카르펜 가문의 사람들이 이 봉인을 오랫동안 관리해왔을 텐데 이렇게 된 거면…….”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레나 카르펜이 다가와서 묻자 브라이튼 박사가 턱을 괴고 말했다.

“음. 레나양. 일단 이 제분기는 더는 봉인구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니 새 봉인구를 만들어야겠죠.”

“그럼……아! 맞다! 저희 할아버지는요?”

유리병 안에 갇힌 광대가 킬킬거리면서 말했다.

“너희 할아버지의 영혼은 내가 가지고 있다! 날 풀어주지 않으면 영혼석을 부숴버리겠다.”

“너, 그것도 구라지? 네가 쪼그러든 만큼 영혼석도 쪼그라들 리가 없잖아.”

샤를이 유리병을 흔들자 광대가 괴성을 지르면서 이리저리 머리를 박았다.

주변을 둘러보자 노마 카르펜의 영혼석이 바닥에 떨어진 게 보였다.

“아주 입만 벌리면 구라가 자동으로 나와.”

샤를은 영혼석을 들어서 레나 카르펜의 저택으로 가서 노마 카르펜에게 다시 이 영혼석을 불어 넣어주기로 했다.

영혼이 잠시 이탈한 것을 원래대로 되돌리는 것은 샤를 같은 마도사에게도 보통 어려운 일이었지만.

‘거기다 사자 소생의 서도 3권 전부 다 있으니까.’

저번에 시문두하의 궁전에서 3권까지 손에 넣어서 이제 완벽하게 가지고 있다. 그 마도서에는 이탈된 영혼을 원래대로 되돌리는 비법도 적혀있다.

“가, 감사합니다. 교수님.”

“그래. 걱정하지 말고. 이제 이 봉인을 어떻게 처리할지만 생각하자.”

오래된 제분기를 보면서 레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브라이튼 박사님이 원하는 건 뭐죠?”

“이 악마를 저희 본사에 있는 신형 봉인구에 봉인하는 것이죠. 이렇게 영락하더라도 살아있으니까요.”

“그 말에는 저도 동의합니다. 이 악마, 지금은 이렇게 갇혀 있지만 언제 다시 튀어나와서 강력해질지 모릅니다.”

공포를 먹이로 삼아 강해지는 녀석은, 일반인을 상대로 거의 무적이고 그들의 공포를 빨아먹으면서 더 강력해지면 지금처럼 손쉽게 잡아넣을 수는 없을 것이었다.

“그러니 완전하고도 무결한 봉인이 필요합니다.”

“그럼 카르펜 가문의 업은…….”

“이대로 끝나는 것이지요. 자세한 것은 깨어난 노마 카르펜씨와 이야기를 해봐야겠지만요.”

“그렇군요.”

그 말에, 레나 카르펜은 어딘가 안도한 듯 보였다.

“하지만 그 마지막까지는 제게 의무가 있으니까요. 여러분과 함께 하겠습니다.”

“좋습니다. 레나양. 그렇게하죠.”

브라이튼 박사는 푸근하게 웃었다.

미궁에서 빠져나오는 길은 이전보다 훨씬 쉬웠다. 더는 방해할 존재도 없었으니까.

미궁 밖으로 나온 뒤에, 풍차를 나서자 주변은 이미 석양이 지고 있었다. 브라이튼 박사가 샤를에게 말했다.

“샤를씨. 그럼 이제 그 유리병은 제가 받아가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하시죠.”

“이야, 귀여운 악마가 두 개나…….”

샤를은 질린 눈빛으로 브라이튼 박사를 바라보았다. 뭐, 어쨌든 악마학 전문가라니 알아서 잘 하겠지.

“우리는 노마 카르펜의 영혼을 되돌리러 가지요.”

“아, 저도 노마 카르펜 씨와는 만나야 하니까 가도 되겠습니까?”

“재단에는 안 들려도 됩니까?”

“이 유리병도 꽤 강한 봉인구니까요 제단에 가기 전까지는 괜찮을 겁니다.”

어쨌든 카르펜 가문의 저택에 도착한 셋은 곧이어 노마 카르펜을 원래대로 되돌리는 의식을 치렀다.

샤를은 사자소생의 서 3권에 적힌 ‘유체이탈한 영혼을 원래대로 되돌리는 법’을 참고해서 혼수상태인 노마 카르펜을 깨웠다.

침대에 누워있던 병약해 보이는 노인이 침음성을 내면서 일어났다.

“으음.”

“할아버지!?”

“깨어나셨군요.”

“여기가 어디요? 당신들은 누구지?”

레나는 그동안의 일을 설명했다. 그러자 노마 카르펜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눈을 감았다가 떴다.

“정말 감사하다는 말밖에 드릴 수가 없군요.”

“도움이 돼서 다행입니다. 레나 양이 많은 수고를 해줬습니다.”

“고맙구나. 레나야.”

노마 카르펜은 자신이 해내지 못한 일을, 누군가의 도움을 얻어서까지 해낸 자신의 손녀딸을 자랑스럽게 쳐다보았다.

“그놈은 어디 갔소?”

“저쪽에 봉인되어 있습니다.”

반대쪽 선반에 천으로 감 쌓인 유리병이 있었다. 외부와 접촉을 차단해서 아예 강해지지 못하도록 해둔 것이었다.

“놈과 이야기를 하게 해주시오.”

샤를이 고개를 돌려 브라이튼 박사를 바라보았다.

“뭐, 그렇게 할까요?”

“고맙소.”

가져온 유리병에는 봉인된 광대가 턱을 괴고 앉아 있었다.

“질서를 조롱하는 광대여, 이게 네가 원하는 결말인가?”

“쯧. 닥쳐. 심기가 상했으니까.”

“그대가 했던 죗값만큼 끝없는 봉인 속에서 고통받도록 해라.”

“영감. 이게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어쨌든, 이 사건은 이대로 마무리 된 것 같다. 샤를은 노마 카르펜과 브라이튼 박사가 어떻게 이 봉인된 존재를 조율할지 멀리서 지켜보았다.

이제 샤를의 문제는 아니었으니까. 그러던 도중 고개를 돌려서 광대에게 물었다.

“야.”

“…….”

“맞고 말할래? 그냥 말할래?”

유리병을 움켜쥐고 언제든 흔들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니 광대가 움츠러들면서 말했다.

“뭐, 왜?”

“저기 브라이튼 박사가 잡은 광대는 뭐야?”

“저것도 나다. 분신 같은 거지만.”

심기가 불편한 광대는 억지로 대답하는 듯 했다.

“그럼 하나 궁금한 거. 너 대체 어떻게 풀려나왔냐?”

“응?”

“그 광대 나무는 마치 제분기를 화분 삼아서 자라 있었어. 뿌리가 제분기에서 나왔다는 말이야. 보통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분명히 카르펜 가문의 사람들이 관리를 해왔을 테지. 근데 넌 어떻게 나온 거냐?”

노마 카르펜이 당한 이유를 모르겠다는 듯 샤를이 묻자 광대가 말했다.

“그거야 당연히, ‘조력자’가 있었으니 아니었겠어?”

“누군데?”

“내가 그걸 왜 말해줘야……으헉! 으허허헉!”

유리병을 돌리는 고문을 당하고나자 광대가 겨우 입을 열었다.

“트리메스라는 이름의 교수였냐? 여자라던가?”

“그건 아니야. 이름이 이반이었나. 남자였다. 특이한 이름이었지. 이반 이바노비치 이바노프였어. 그 남자는 날 도와주겠다면서 어느날 봉인구에 이상한 씨앗을 심었지. 그 씨앗의 힘을 얻자마자 곧바로 내 봉인의 힘이 약해지는 것을 느꼈었다.”

샤를은 고개를 갸웃했다. 정말로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이름만 들어보면 키예프 제국인 같긴한데 왜 이 머나먼 땅에와서 하필이면 메트로폴에 있는 거지?

모든 사건 뒤에 트리메스가 있다는 건 어쩌면 지나친 집착일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심문은 끝났습니까?”

“아, 끝났습니다. 조심하십시오.”

“물론이지요. 저는 악마학 전문가 브라이튼입니다.”

유리병을 건넨 뒤에 샤를은 레나의 감사 인사를 받았다.

“정말 고맙습니다. 교수님. 교수님이 아니었더라면 이 일은 해결하지 못했을 거예요.”

“나보단 다른 사람에게 감사하도록 해라. 날 찾아서 의뢰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거든.”

진짜로, 리카 웹스가 아니었더라면 샤를은 이 의뢰를 받지 않았을 수도 있었으니까.

일을 해결하고 난 뒤에 샤를은 일단 저택에 가서 좀 쉴 생각이었다. 이번 사건을 해결하느라 여러모로 피곤했었으니까.

집에 도착했을 때 저택을 날아다니는 하늘치를 보고 정신이 혼미해지지만 않았더라면 말이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