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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사이비 교주가 되었다-177화 (176/221)

제177화 - ‘정리 좀 해볼까.’

먼저, 샤를은 자신이 읽은 기록물들을 분석했다.

카르펜 가문은 평범한 가문이 아니라 영성자 가문이었다. 오랫동안 영성자의 전통이 이어져 내려온 가문이었으며 비술과 마법에 통달했다.

그들은 자식들에게 대대로 자신들의 업을 전수했다.

그 업이란, 바로 풍차를 수호하는 것이었다. 직접적으로 적혀 있지는 않지만 간접적인 정황으로 보아 확실했다.

고대의 악을 봉인한 일족은 그다지 이상할 것 없는 일이었다. 이 세계에는 끔찍한 것들이 엄청나게 많았으므로.

그런 악한 존재를 봉인한 일족은 이상할 것이 없었다. 풍차는 바로 그것을 봉인해둔 장소.

여기서 풍차는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악한 존재를 막아내는 토템 역할을 했을 확률이 높다.

길쭉하고 거대한 것이 무언가를 막거나 봉인한다……라는 개념은 신비학적인 관점에서는 이상할 것이 없는 상징이었다.

지구에서도 비슷한 개념은 많다. 조선 시대 마을 입구에 있는 장승이나, 북아메리카의 토템, 남태평양 뉴아일랜드의 토템 등등.

첨탑, 등대, 풍차같이 길쭉하고 상징이 될 법한 건물은 무언가를 봉인하거나 악한 것들을 막아내는 데는 확실한 토템의 역할을 한다.

그리고 샤를이 또 주목한 것도 있다.

일기장에 적힌 특이한 구절에서 풍차에 봉인된 존재를 유추할 수 있었다. 그것을 「질서를 조롱하는 광대」라고 표현했다.

샤를은 이 구절을 어디선가 봤다고 생각했고 심상 세계에서 그것이 적힌 책을 찾아낼 수 있었다.

『시간 전쟁에 대한 기록서.』

시문두하의 궁전에 있던 그 기록물에서 시간 전쟁에 관한 것들을 알 수 있었는데 그곳에는 승리한 신들의 이름과 패배한 신들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었다.

그리고 패배한 신들의 이름 중에 그것이 있었다. 패배자들의 목록에 그 이명과 진명이 적혀 있었다.

「질서를 조롱하는 광대, 거지황제」.

예상이 맞았다면 시간 전쟁에서 싸웠을 만큼 강력했던, 거지황제라고 불리는 우스꽝스러운 이름의 신이 풍차 지하에 봉인되어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어째서 시간 전쟁에서 패배했던 존재가 그런 곳에 봉인되어있는지는 전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지금 그 봉인이 느슨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 노마 카르펜은 그걸 확인하기 위해 갔다가 봉변을 당했다는 거다.

‘그리고 또 그 풍차는 그 자체로 봉인구이자 침입자를 막는 역할이겠지.’

풍차 아래에는 ‘기계식 미궁’이 설계되어 있다고 했다. 기계식이라……. 어째서 그런 것인지는 적혀 있지 않다.

‘하지만 이상한 점. 미궁을 설치하면서까지 풍차 내부에 그것을 봉인하고 싶었는데, 이 근방에서 실종 사건이 자주 일어난다라…….’

아무래도 거지황제라는 이름의 존재는 봉인 바깥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 같다.

“……저기 교수님?”

샤를은 어느새 늦은 저녁이 되어 있는 것을 확인했다.

“레나 카르펜.”

“네, 네?”

“이쪽으로 와서 얘기를 들어야 할 것 같은데. 정리한 것을 이야기해주게.”

“아, 네.”

샤를은 레나 카르펜의 앞에 앉아서 얘기를 꺼냈다.

카르펜 가문에 내려오는 업. 그리고 그것을 전달하는데 망설였던 이유. 레나 카르펜이 추측한 것이 정답이라는 것도 말했다.

“그렇군요.”

레나 카르펜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알고 있었구나?”

“네. 어렴풋이는.”

일기장을 읽다가 여러 가지 모르는 단어들이 나왔을 텐데도 앞뒤 문맥을 살피면서 계속 파다 보면 결국 답을 찾게 되어 있는 법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지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네?”

“기록을 아무리 살펴봐도 노마 카르펜이 왜 혼수상태에 빠졌는지는 적혀 있지 않아. 그곳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싶은 것 아닌가?”

“네.”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몰라.”

“당연히 갈 거예요.”

샤를은 결의에 찬 레나 카르펜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로 각오를 했으면 응당 답을 해줘야 하는 법이었다.

다행히도 레나 카르펜은 그 가문의 유전적 영향인지 영성자의 자질이 있었다.

“그럼 가벼운 훈련 정도가 필요하겠군.”

“훈련이요?”

“주문에 익숙해지는 훈련.”

속성으로 가르친다고 해도 1인분을 할 수는 없겠지만 유물의 도움을 받는다면 아직 모른다.

짐덩이 하나를 들고 풍차 내부로 들어가야 하는 만큼 샤를은 만반의 준비를 다 할 생각이었다.

*

샤를이 본격적으로 그 풍차를 탐방하려고 간 것은 일주일 뒤였다. 혼자라면 언제든 가도 상관없지만 의뢰주라는 짐을 들고 가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속성으로 가르칠 필요가 있었다.

샤를은 수업을 끝마친 뒤에 원래 계획대로 동쪽 교외로 향했다.

마부인 머르보니가 자동차를 천천히 운전하면서 말했다.

“와, 여긴 처음 와보네요.”

“그래?”

“네, 주인님. 이쪽 교외는 별로 대단한 게 없거든요.”

동쪽 국가들에서 이민해온 사람들이 모여 사는 거리가 조금 있고, 더 동쪽으로 가면 밭이다. 지금은 호밀을 키우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밭 근처에는 사용되지 않는 풍차가 있었다. 요즘은 기계식 제분소가 너무 발달해서 풍차 같은 것은 사용하지 않는다.

여기가 카르펜 가문의 땅이겠지.

이 거리에 이상할 정도로 우뚝 서 있는 풍차는 보기만 해도 이상함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풍차를 경계 삼아서 그 안쪽은 도시, 그 밖은 밭이라 그런지 현실과 현실이 아닌 어떤 곳의 경계 너머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딱 저기까지가 메트로폴의 끝이라는 느낌.

샤를은 이 풍차의 근처에 도착해서 차에서 내렸다. 머르보니는 집으로 되돌려 보냈다. 풍차는 언덕 위쪽에 있었다.

언덕 위로 올라가자, 그곳에서 대기하고 있던 레나 카르펜과 또 한 명의 남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안녕?”

“안녕하세요 교수님.”

“그리고 그쪽은?”

샤를이 되묻자 그가 답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브라이튼 박사입니다. 재단에서 파견 나왔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씨익 웃는다. 명함을 건네주는 박사를 보면서 샤를은 그를 살폈다.

카이저 수염에 고집이 센 것 같은 얼굴의 백발이 성성한 노인. 노안 때문에 안경을 쓰고 있지만 그런 것치고는 몸이 청년의 것처럼 건장하다.

백의 아래에 근육질일 것이라는 것이 확실해 보인다.

“저는 악마학 전문가입니다. 이번 사건이 악마의 소행이라는 재단 내부의 결론 때문에 제가 파견되었습니다만.”

“글쎄요. 아직 자세한 건 모릅니다.”

샤를의 생각으로는 아닐 것 같다만 확실한 건 아니었다.

아무튼, 재단 측에서 사람을 보내올 거라고 미리 연락을 해뒀으니 브라이튼 박사와 함께 가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박사는 내부의 유물을 확인하고 그것이 봉인물일 경우 회수를 원하고 있겠지.’

하지만 레나 카르펜의 목적과 봉인 재단의 목적은 상충된다.

그건 정확한 것을 파악하고 난 이후에 둘의 목적에서 협의점을 찾는 수밖에 없겠지.

여기서 제일 긴장한 것은 레나 카르펜일 것이었다.

그녀는 한 손에 쥐고 있는 권총을 꼭 붙들고 있었다. 그걸 보고 브라이튼 박사가 말했다.

“오, 무기를 잘 들고 오셨군요.”

“아, 네. 네?”

“악마를 쓰러트릴 때 가장 쓸만한 무기는 바로 총과 대포죠. 마늘이나 십자가 따위는 아무런 효과가 없으니 말입니다.”

“그, 그런가요.”

그런 의도로 쥐여준 건 아니었는데? 사실 호신용으로 붙여준 것이지만 별로 기대는 하지 않고 있다.

셋이 언덕 위쪽의 풍차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 풍차가 생각보다 크다는 걸 알았다. 낡고 아무도 관리하지 않는 풍차로 보인다.

이 풍차는 중세식으로 제작된 것 같았다. 1층의 문을 열자마자 퀴퀴한 냄새가 몰려온다.

샤를은 풍차 안으로 한 발자국 디뎠다. 그리고 그 순간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꼈다.

‘무슨 귀기(鬼氣)가 이렇게…….’

이곳은 사악한 기운이 응축된 것 같았다.

‘여기가 무슨 전쟁터였나? 아니면 연쇄살인마의 도축장이었던가?’

샤를은 도저히 풍차에서 이런 기운이 느껴진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옆에서 악마학 전문가 브라이튼이 말했다.

“악마가 살법한 공간이군요.”

“그럴 지도요.”

그래도 정체를 알아내려면 안으로 들어가야지. 낡은 풍차 안으로 들어서자 바람 소리만 들린다.

삐걱삐걱하는 바닥의 나무 재질.

안으로 들어갈수록 샤를은 이곳이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주변에는 신비학에서 사용되는 봉인의 식들이 널려 있었다.

고헤르메스 어로 봉인에 관련된 주문 구절, 영험한 생물의 뼈로 만든 탈리스만 같은 것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었다.

‘그리고…… 안이 밖에서 본 것보다 넓다.’

모 파란 상자처럼, 밖에서 본 것보다 안이 더 넓었다. 마치 이곳만 마경인 것 같다.

“기록에 의하면 지하로 내려가는 길이 있을 겁니다.”

풍차 주변을 뒤지자 먼지가 그나마 덜한 장소를 찾았다. 바닥에 냄새가 나는 카펫을 덜어내자 아래로 향하는 입구가 있었다.

입구의 문을 당기자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온다.

“두려우신 분?”

“저는 별로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브라이튼 박사는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재단에서 파견된 인원답다.

“레나 너는?”

“저도 괜찮아요.”

레나 카르펜은 외유내강의 사람이었다. 노마 카르펜의 일기에서도 레나가 겉으로는 약해 보여도 겁이 전혀 없다는 말이 있었다.

“기록에 의하면 이 밑에 있는 존재는 공포와 어떻게든 연관이 되어 있을 겁니다.”

샤를이 주의한 부분은 그것이다. 공포를 느낀 후에, 레나 카르펜의 부모가 동시에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

직접적인 형태가 드러나서 죽이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공포를 느낀 존재를 감지한 뒤에는 간접적인 방법으로 상대방을 죽이는 것일지도.

아래로 내려갈수록 이상한 것들이 늘어났다. 봉인구들 대신에 기괴한 것들이 보인다.

“음. 이걸 보시죠.”

브라이튼 박사가 계단에 걸린 상징을 가리켰다. 샤를이 쳐다보자 그가 말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오망성이었습니다만 이 계단 옆에 있는 심볼이 칠망성으로 변했습니다.”

동물의 뼈로 만든 오망성이 계단 벽면에 잔뜩 걸려 있었으나, 어느 샌가 칠망성으로 바뀌었다.

“칠망성은 악마의 상징이죠. 이제부터 악마의 영향력이 미치는 공간이라는 뜻입니다.”

“흐음.”

“이 풍차를 지키던 사람이 칠망성을 그려 넣었을 리가 없으니 당연하게도 이 밑에 있는 존재의 소행일 겁니다. 조심하십시오. 어떤 방식으로 공격해올지 모르니까요.”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으로 가자, 곧이어 특이한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뭐, 뭐야?”

브라이튼 박사가 눈을 깜박거렸다. 그것도 그럴 것이 주둥이가 튀어나온 거대한 짐승의 해골이 통로를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해골 때문에 전진할 수 없다. 브라이튼 박사가 머리를 긁적거렸다.

“음. 이런 건 계획에 없었는데.”

샤를도 이걸 부숴버려야 하나 싶다가 고개를 돌렸다.

“뭔가 짐작 가는 게 없니 레나양?”

“아, 음. 이거 아마 기계 장치 같아요.”

레나는 조금 고민하다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할아버지는 이런 기계식 장치를 만드는 걸 좋아하셨거든요. 아마도 이 옆에 스위치를 숨겨 두셨을 텐데.”

레나가 벽면을 더듬다가 곧 뼈로 장식된 레버를 당기자 두개골의 턱이 벌려지면서 입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튀어나왔다.

“갑시다.”

안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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