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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사이비 교주가 되었다-174화 (173/221)

제174화 - 어쩌면 루미너스를 완전히 아군으로 만들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그러기에는 너무 많은 난관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더글라스를 찾는 건 나도 돕고 싶군. 하지만 만약 그가 살아있다고 가정했을 때, 그가 현재 있는 장소는 이계의 위대한 도시 소르 이븐이다.”

그리고 그곳은 이계의 심층이다. 아무렇게나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소르 이븐?”

“이계 심층 깊은 있는 곳 중 하나. 수몰왕의 도시지.”

“…….”

루미너스는 골똘히 생각하는 듯 하더니 말했다.

“그럼, 더글라스를 구할 방법은 없는 건가?”

“있긴하지만, 가는 방법이 너무 어렵다. 그래도 괜찮다면 들려줄까?”

“그래.”

수몰왕의 도시로 가는 방법…….

샤를도 이론상으로만 알고 있는 것이었다. 이 게임의 엔딩을 보기 위해 달려들었던 플레이어는 무수히 많았고, 자율성이 엄청난 이 게임에서 미친 짓을 하는 플레이어도 많았는데 그중 한 명은 인어에 꽂혔다.

인어에 꽂힌 그 플레이어는 소르 이븐으로 가기 위해 온갖 개짓거리를 다했었고 물론 해피 엔딩은 보지 못했지만, 그것에 대한 가이드를 잔뜩 써서 올려뒀다.

샤를은 그 기억을 떠올리면서 말했다.

“첫째는 인어로 종족 변화를 하는 방법. 인어로 변하면 소르 이븐으로 갈 수 있는 자격이 그냥 생긴다.”

“──?”

당연하게도 기각인 것처럼 보인다.

“둘째, 소르 이븐으로 밀항하기. 이건 조건이 빡세. 소르 이븐의 위대한 종족과 연줄이 있어야 하니까.”

소르 이븐의 거주권을 가지고 있는 거대 수생 생물과의 연줄이 필요하다. 그들이 소르 이븐으로 이동하는 도중에 끼어서 가는 것이니.

“셋째, 아스룸의 눈물이라는 보석이 필요하다. 아마 물리 세계 어딘가에 있을 거다. 이 보석은 너무도 아름답고 귀중해서 그 주인은 주문을 걸어뒀지. 바로 자신 이외의 존재가 그 보석을 만지면 자동으로 소르 이븐으로 귀환할 수 있도록 말이야. 즉, 소르 이븐으로 들어갈 수 있는 대신, 자동으로 그 보석의 주인에게 끌려가게 된다.”

그 경우,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다. 주인의 성향에 따라 처분이 갈린다.

그 플레이어는 운이 좋게도 미물에게 온정적인 심해의 생물을 만나서 소르 이븐을 관광할 수 있게 되었다만, 이 세계에서는 주인이 바뀌었을 수도 있으니 장담하기 어렵다.

“어느 방식이건 어렵다는 얘기군.”

“그래. 만약 가더라도 그곳에서 더글라스가 어떤 상황에 부닥쳐있을지는 부차적인 문제고.”

어떤 심해 생물은 육지 생물들을 붙잡아서 노예로 만드는 경우가 있다. 혹은, 소르 이븐이라는 도시에서 여러 문제가 생겼을 수 있지.

사실, 샤를은 한 가지. 생각해두고 있는 것이 있었다. 티마이오스의 정다면체에 봉인된 심해 두꺼비는 아마도 소르 이븐의 출입증을 갖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딱히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당장 더글라스를 구하러 갈 당위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

‘루미너스와의 적대 해제……라는 것 정도로는 더글라스를 구해야 할 당위성이 모자라.’

어차피 샤를에게 적은 상당히 많았으므로. 하나가 더 추가된다고 해서 그다지 이상할 건 없다.

“만약 더글라스를 구해주는 것에 동의한다면, 당신이 벌이는 모든 일에 협조할 생각이 있다.”

그럼 또 말이 달라지는데. 하지만 지금 당장은 해야 할 일이 있다. 여기선 약속을 하는 것만으로도 괜찮겠지.

“흠. 시간이 필요하다. 나중에 알아보고 더글라스를 구할 방법이 생기면 말해주지.”

“할 생각이 든다면 연락하도록 해.”

“알겠어.”

루미너스가 떠나고 나자 샤를은 턱을 괴었다.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이라.

“일단 프레데릭 웹스와 만나야겠지.”

트리메스 교수에 대적할만한 조직은 봉인 재단 뿐이다.

*

봉인 재단은 실질적으로 웹스 가문이 보유하고 있는 사조직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웹스라는 성을 가지지 않은 재단의 중역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구성원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 자들은 전부 웹스다.

프레데릭 웹스와 만나는 건 간만이다. 저번 트리메스 교수의 만년필 탈취 사건 이후의 일이다.

“오랜만이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조금 바빴습니다. 모 조직 놈들이 성가시게 굴어서 말입니다.”

샤를은 그간 일어난 일을 두루뭉술하게 설명하고 카페테리아의 테이블에 앉았다.

프레데릭 웹스는 대뜸 말을 꺼냈다.

“오늘 만난 이유는 뭔가요?”

성질이 급한 건 아니었지만 지극히 사무적이고 효율적인 면모를 추구한다. 그건 가족들에게도 마찬가지인 것.

샤를은 손가락을 들었다. 그러자 어느새 거기에 나비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기억을 전달하기 위한 환상입니다. 이걸 먼저 받아보시고 얘기하는 게 낫겠군요.”

“좋습니다.”

프데레릭은 자신의 품에서 기묘하게 생긴 토템 하나를 꺼내서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는 샤를에게 손을 뻗었다.

아마도 환상에 당하지 않게 하는 종류의 유물 같은데.

“──!”

나비를 받은 프레데릭은 곧이어 심각하게 굳은 표정이 되었다.

“보셨다시피.”

“트리메스 교수. 그자가 공허에서 빠져나온 것입니까?”

“성별이 바뀌었긴 하지만 말이죠.”

프레데릭 웹스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트리메스 교수는 재단에서 위험 등급이 제일 높은 존재로 되어 있습니다. 저번에 재단의 집행부대를 아무렇지도 않게 처리한 이후 추정등급 S+로 격상되었죠.”

높으신 분들은 트리메스 교수에게 최종 단계의 등급인 EX등급을 주지 않으려고 아득바득 우겨서 S+로 설정해뒀다고 한다.

“EX등급을 받은 존재가 있다면 최우선 말살 대상입니다. 그리고 그 존재가 일으킬 파급에 재단의 손해가 만만치 않으니 S+라고 하더군요. 바보 같으니…….”

“제 의견도 동일합니다. 그는 매우 위험한 존재입니다. 그 트리메스 교수에 대해서, 논의를 하고 싶군요.”

“…….”

“먼저 정보부터 가르쳐드리죠.”

샤를은 일단 트리메스 교수의 정체와 그가 무엇의 화신인지에 대해서 설명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프레데릭 웹스는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런 존재가 메트로폴로 빠져 나왔다는 겁니까?”

“애석하게도 말이죠.”

“…….”

프레데릭은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

“어떻게든 그자의 위험 등급을 올려야겠군요.”

“부탁드리죠. 저도 안팎으로 이런저런 영향력을 행사할 테니까요.”

샤를은 요하네스 헥센에게서 물려받은 봉인 재단의 지분 일부가 있었다. 많은 양은 아니지만 그래도 영향력을 행사할 정도는 된다.

“지금 들은 정보가 사실이라면 이 문제에 대해서는 재단도 움직일 겁니다. 교단끼리의 싸움에는 중립을 취하겠다고 말씀드렸지만, 트리메스 교수는 별개의 사건이니까요.”

그렇다. 샤를이 프레데릭을 찾아온 이유기도 했다. 지금으로선 트리메스 교수를 견제하려면 담당일진 봉인 재단의 도움이 필요했다.

‘트리메스 교수가 아무리 강하고 위험하더라도, 봉인 재단의 재력 앞에선 위험하지.’

봉인 재단은 설립 초부터 그런 위험한 생물, 유물, 요인 등을 제거하고 봉인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관이었다.

이걸로, 트리메스 교수의 행동적 자율권을 어느 정도 빼앗았다.

‘만약 그가 다른 수가 있었다면 또 모르겠지만.’

“아, 그건 그렇고. 혹시 의뢰받으십니까?”

“음? 의뢰요?”

“탐정에게 하는 의뢰입니다.”

그러고 보니, 아직 세인트 생시르 거리의 후미진 곳에 있는 탐정사무소 문을 닫지는 않았었다.

따로 사람을 보내서 관리하게 했지만, 받은 의뢰는 하나도 수행하지 않고 있었지.

“무슨 의뢰입니까?”

*

트리메스 교수. 아니 이제는 트리메스라고 불러야 할 존재는 자신의 몸을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이런. 엘레노아의 몸으로 밖으로 빠져나오니 문제가 생겼군…….”

그 덕에 추근거리는 인간들이 생겨서 하나같이 담가버리고 말았다. 괜히 추적이 생길 여지가 남는군.

그, 아니 이제 그녀는 메트로폴의 티소 본느 거리를 걷고 있었다. 이곳에는 메트로폴 박물관이 있다.

박물관으로 들어간 트리메스는 박물관의 창고로 걸어갔다. 누구의 제지도 받지 않고 손쉽게 창고의 문을 연 그는 어떤 물건 앞에 섰다.

그 오래된 석판에는 신대문자가 적혀 있었다.

“지금쯤 부활했어야 정상일 텐데.”

석판에 손을 댄 트리메스는 강한 염을 불어넣어서 정신파를 형성했다.

그러나 석판 반대편에서 들리는 소리는 전혀 없었다.

“역시. 뭔가 문제가 생겼군. 시문두하가 부활하지 못했어.”

그의 거대한 계획에 속해 있던 말 하나가 사라졌다. 원래의 예언 대로라면 부활했어야 할 존재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원인은 하나뿐이다.

“샤를 헥센의 간섭이 있었나.”

체스로 치면 그 말은 룩이었다. 다른 말보다는 훨씬 좋은 말이었건만.

아깝다는 생각을 하면서 트리메스 교수는 곧 봉인 재단의 추적이 있으리라 예측했다.

이건 예언도 뭣도 아니다. 샤를 헥센이 트리메스의 부활을 눈앞에서 목격했으니 그의 영향력이 닿아 있는 봉인 재단에서 움직일 것은 분명했다.

“내가 안배해둔 많은 것들이 샤를 헥센에 의해서 파괴되고 있다. 기묘할 정도의 행운인가? 아니면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하면서 운명을 조작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인가. 뭐 어느 쪽이든 상관없겠지.”

트리메스 교수는 창고 한쪽에 전시된 메트로폴 전체가 그려진 지도를 바라보면서 팔짱을 꼈다.

“자 그럼, 어디로 가서 숨어야 할지 생각해볼까.”

메트로폴 전역이 샤를 헥센의 영향에 놓여 있진 않다. 서부와 중부 일대의 얼마 정도.

하지만 다른 교단이 지금 상당히 주춤해져 있는 동안, 그의 ‘실험’을 벌일만한 조용한 곳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었다.

마침 동남쪽에 있는 한적한 부두를 떠올렸다.

“강한 패가 없어졌으니 새로운 패를 공개할 때가 되었군.”

*

그 이후로 제롬에게서 암흑성도회에 관한 짤막한 정보를 들었다.

예상대로 암흑성도회의 주도권을 붙잡은 것은 그누사 계파였다.

루덴펠트 백작이 죽었어도 그누사 계파는 확실하게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했다. 다른 간부들을 전부 제거하는 것.

그누사 계파를 제외하면 남은 것은 살아남은 제롬 뿐.

아슐라 계파는 저번 메트로폴의 광명교 대성당 폭파 사건 이후로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는데 거기에 이번 사건으로 간부들까지 쓸려나가서 거의 폭망 그 자체였다.

제롬의 계파인 샴발라는 이번 사건에서 상당수의 간부를 잃어버렸지만 아직 그가 살아남았고 그 밑의 부하들은 상당히 많이 있다고 했다.

“그러니 아마도 암흑성도회는 둘로 쪼개질 것 같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겠지.”

당연히 그누사 계파가 클럽 하우스의 회랑 밖으로 유인당한 간부들을 학살한 사건.

보통은 그누사 계파의 계획에 따라 그 사건은 완전히 묻혀버렸겠지만 살아남은 유일한 간부인 제롬이 그 사건을 암흑성도회 내부에 공표함으로써 교단 내부에서는 분란이 생겼다.

그 이후로는 서로를 죽이지 못해 안달하는 관계가 되었다고 했다.

“그럼 샴발라 계파의 수장은 네가 된 건가?”

“그렇습니다. 그들은 제가 확실하게 장악하고 있습니다.”

“이거 원.”

단순히 스파이로 박아넣으려고 했던 제롬이 그 조직의 수장이 되다니. 이건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결과였다.

“알겠다. 일단은 그누사 계파에 대한 적의를 높이는 방법으로 운영하면서 아슐라 계파의 잔당들을 흡수해라. 때가 되면 그누사 계파의 나머지를 제거할 기회를 주지.”

“주인님의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잘 되었다. 샴발라나 소수의 아슐라 계파의 교단 구성원들은 그누사에 대한 적의를 높이고 있을 터.

적의 존재는 내부를 결속하는 것에 도움이 된다.

나머지 잔당들도 암흑성도회의 끄나풀들을 이용해서 처리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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