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0화 - 틱. 틱. 틱. 틱.
은제 회중시계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 샤를은 눈을 감고 인내하고 있었다. 이곳은 선데이크 거리에서 제일 멀리 떨어진 동남쪽 끝자락의 포스트 테이너 거리였다.
온종일 해야 할 계획 대해서는 이미 세워뒀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상대는 앞서나가고 있다고 해서 너무 급하게 움직이면 안 된다.
철컥.
옥상 문이 벌컥 열리고 두 사람이 올라왔다.
“오랜만이네.”
“고용주? 왜 이런 곳으로 부른 거지?”
“일단 와서 앉아.”
경사진 지붕까지 샤를이 손짓하자 골레릭과 유스티나는 사뿐하게 다가와서 지붕 위에 앉았다.
샤를이 검지를 들면서 말했다.
“하나 물어볼 게 있어. 임무를 수행할 때 아는 지인이 임무 대상에 있다면 어떻지?”
“죽여야지.”
“음. 난 좀 고민해보고?”
전자는 골레릭이었고 후자는 유스티나였다.
“음. 뭐, 좋아. 이번 임무의 대상은 저번 직장에서 너희들의 상관이었던 루미너스야.”
“……루미너스가 여기 있다고?”
“음?”
유스티나는 꽤나 긴장한 모양새였지만 골레릭은 덤덤한 표정이었다.
골레릭은 MI7을 떠나서 독자적인 활동한 지 오래된 데다가 유스티나 말고는 별로 친한 친구도 없었으니 문제없었지만 유스티나는 그 사건을 겪고 나서 샤를에게 회유되기 전까지는 MI7의 영향력에 강하게 지배당하고 있었다.
“그래, 루미너스. 그 여자가 곧 이곳에 오게 될 거야. 날 잡으러 말이지.”
“고용주, 뭔가 미친 짓 했어?”
“아니! 안 했어! 단지 그 여자가 대체 뭘 먹었는지 모르겠는데 의심병에 걸려서 정신 나간 것처럼 날 쫓아오는 것뿐이야.”
저번 루프에 루미너스가 한 트롤짓을 생각하면 찢어 죽여도 시원찮지만, 그런 하찮은 –감정적 소비-에 시간을 낭비하기엔 오늘 샤를의 값어치는 매우 높다.
진실을 알게 된다면 루미너스에게 적대 당하진 않겠지만 오해를 해소할 시간 같은 것은 없다.
“임무 목표는?”
골레릭이 무덤덤하게 묻자 샤를이 답했다.
“루미너스가 날 쫓아오지 못하게 저지하는 것. 죽여도 되고, 죽이지 못하더라도 발을 묶는 거야. 어때?”
“좋아.”
“그건 어렵지 않겠네.”
핵심 목표가 타겟 암살이 아니라 저지라는 것을 듣자마자 유스티나도 감정적인 선을 넘지 않은 모양인지 순순히 승낙했다.
이번 임무는 특수한 임무기에, 임무의 위험수당을 두둑하게 주었다. 잠시의 기다림.
「그리고 루미너스가 나타났다.」
“온다.”
샤를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가, 그렇게 외쳤다.
저 멀리서, 루미너스가 나타났다. 샤를의 예상대로, 선데이크 거리에 있지 않더라도 다른 추적 수단이 있어서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이다.
“음?”
루미너스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죽었을 거라고 생각한 MI7의 요원이 둘이나 있었다.
“뭐지?”
“잘 놀고 있으라고.”
샤를은 손을 흔들면서 그 즉시 나무 거인의 힘을 빌려 이상한 통로를 열고 그곳으로 뛰어 들어갔다.
“자, 잠깐?!”
샤를을 막으려는 루미너스의 앞에, 유스티나가 쿠크리를 두 자루 들고 섰다.
“오랜만이네요.”
“……이제 이상한 말투는 쓰지 않게 되었구나! 유스티나.”
루미너스는 희미하게 웃으면서 입꼬리를 올렸다.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는데 입만 살짝 올라간 이 모습은, 루미너스가 정말로 화가 났을 때 나타나는 모습이었다.
유스티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단검을 높이 들어 올렸다.
골레릭이 멀리서 총을 쏴대는 것을 시작으로 전투가 열렸다.
*
미끼가 성공한 듯 보이자 샤를은 선데이크 거리의 어딘가에서 통로 밖으로 빠져 나왔다.
나무와 흙으로 되어 있는 통로는 샤를이 나오자마자 곧바로 사라지면서 메워졌다.
-다들 어딨지?
-선데이크 거리 동쪽부터 도는 중입니다.
-저는 서쪽이요.
-중앙에서 기자 같은 사람을 본 사람이 있대요. 지금 찾고 있어요.
샤를은 자신의 제자들을 선데이크 거리 전체에 풀어서 샨티를 수색하고 있었다.
오늘, 샨티가 끌려가서 암천사를 소환할 매개체가 된다는 걸 떠올렸을 때, 이 문제야말로 제일 중요한 일이었다.
‘문제의 근원을 해결하기만 하면 충분해…….’
샤를은 거리의 중앙 쪽으로 향했다.
‘보슈 백작 부인과 벡토를 찾아야 해.’
그들은 이미 하루 전부터 선데이크 거리를 수색하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하루 동안이나 걸렸다는 건, 그들이 무능하다는 뜻이 아니라 샨티가 잘 숨어있다는 뜻이었다.
‘그 아이는 원래 어디 있었지?’
샤를은 눈을 감고 움직였다. 만년필을 상의에 있는 주머니에 꽂아서 상시 발동되게 만들어뒀다.
「샤를은 신비한 소녀, 샨티를 찾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그 아이가 가진 물건은 없었으나 그는 뛰어난 직감으로 그 아이가 있었던 곳을 떠올리려 했다.」
선데이크 거리에 사람은 없고 황량했다. 대신 만년필의 효과로 인해 떠오른 수많은 더미 정보들이 미친 듯이 떠올랐다.
벽면에 붙어 있는 총격에서도 정보가 떠오른다.
「플랭크는 이곳에서 다른 마피아들인 호랑이단과 교전한 뒤 세 발의 총을 맞고 쓰러졌다. 이 탄흔은 플랭크의 측두부에 맞은 탄이 도탄 되면서 흔적을 남아낸 부분이다.」
‘썩을.’
쓸데없는 정보가 너무 많이 흘러들어온다. 이런 자잘한 정보는 죄다 걸러낸 샤를은 곧이어 골목길 근처의 작은 발자국에서 의미 있는 정보를 얻어냈다.
「샨티는 이 골목길을 통해서 움직였다. 그녀가 움직이는 때는 보통 사람들이 별로 없는 새벽과 낮 시간대였다.」
밤에는 당연히 마피아나 온갖 범죄조직의 인간들이 득실거릴 테니 당연한 일이었다.
-동쪽에서 루덴펠트 백작의 추종자와 만났습니다. 지금 교전에 들어가겠습니다.
플로나가 보낸 메시지를 듣고 샤를은 턱을 긁었다. 지원은 갈 수 없다.
「그 좁은 골목을 걷다가 문득, 샤를은 자신을 보고 있는 시선을 느꼈다. 그것은 꼬마 샨티가 숨어있는 골목이었다.」
“어?”
샤를이 고개를 돌리자 낡고 녹슨 철조망 뒤의 쓰레기장 근처에 누군가 화들짝 놀라서 숨는 것이 보였다.
“안녕? 내 이름은 샤를이야!”
「두려움을 느끼는 샨티는 그가 이전에 만났던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했으나 그녀를 추적하는 나쁜 사람들과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난 널 구하러 왔어. 그 나쁜 사람들이 널 납치해가지 못하게 말이야.”
「의구심이 들었지만, 샤를의 잘생긴 외모는 샨티의 의심과 도주 욕망을 어느 정도 누그러뜨리는 것에 일조했다. 그녀가 도망치자 쫓아오던 마귀 같은 인상의 아줌마와 못생기고 수염 덥수룩한 기자 아저씨보단 나아 보였다.」
기가 막히네. 얼굴 때문에?
“그들은 강제로 널 잡아들이려고 했었지? 난 그걸 알고 널 도와주려고 왔어.”
“진짜요?”
샨티가 고개만 빼꼼 내밀어서 샤를을 쳐다보자 샤를은 최대한 친절한 미소를 지으려고 애를 쓰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람들은 널 잡아가서 나쁜 짓을 할 셈이야. 난 널 보호할 거고.”
“근데 아저씨도 그 기자 아저씨랑 같이 있었잖아요.”
“그때, 그 아저씨가 나쁜 짓을 할 줄은 몰랐지.”
그때, 저 멀리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만년필이 새로 들어온 정보를 미친 듯이 적기 시작했다.
「리암 벡토는 무명 교단의 추적자들에게서 도망친 뒤 그 골목으로 들어섰다. 그의 뒤에는 머리에 무존자의 창-열기 계통의 주문을 얻어맞은 보슈 백작 부인이 함께하고 있었다.」
“저쪽입니다!”
“어!? 저기 있다!”
녹슨 철조망 반대편의 입구에서 벡토와 보슈 백작 부인이 있는 것이 보였다.
샤를은 손가락을 들어서 주문을 변형했다.
무존자의 창-관통. 영창조차 하지 않고 즉발로 발동된 주문이 철조망을 뚫고 보슈 백작 부인에게 날아갔다.
“끼야아아악!”
“아앗!?”
보슈 백작 부인의 펜던트가 강하게 빛을 발하자 그들의 앞에 주문을 형성하고 방어막을 만들었다.
‘유물?’
그 방어막은 관통에 특화된 무존자의 창 주문도 거뜬히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 시전자도 당황하는 것을 보면 자동 발동형인 것 같다.
“뭐야!? 샤를 헥센!? 탐정이 왜 여길……?”
벡토가 당황하는 것과 달리 보슈 백작 부인은 불길이 그치자마자 그에게 닦달했다.
“지금 상대가 누군지 중요해? 어서 저 자를 죽여!”
“우, 움직이지마!”
벡토는 권총을 들어서 샤를과 샨티 둘 사이의 어딘가를 향해 겨눴다. 스스로도 쏘고 싶은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그걸로 뭘 하려고?”
“모, 몰라. 아무튼!”
샤를은 한숨을 쉬었다. 벡토는 보슈 백작 부인에게 아무런 말도 듣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예상대로 만년필이 정보를 꺼냈다.
「리암 벡토는 자신이 오늘 대체 무슨 일을 겪는 것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엘레노아 보슈는 계속해서 그를 이상하고 기이한 사건 한가운데로 몰아넣고 있었다.」
“샨티. 이쪽으로 와!”
“야! 야! 꼬마야! 저 아저씨에게 가면 안 돼!”
샨티는 샤를과 벡토를 번갈아 보더니, 당연하게도 샤를을 선택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둘 다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면 잘 생긴 사람을 택하는 것이 더 믿음이 갔으니까.」
「한 편 그것을 보고 있던 엘레노아 보슈는 품에서 전격 투사 주문이 걸린 일회용 지팡이형 마도구를 꺼냈다. 그녀가 가질 수 없다면 둘 다 죽여버리겠다는 생각이었다.」
보슈 백작 부인이 재빠르게 지팡이를 꺼내 들었지만, 샤를은 이미 샨티를 한쪽에 안고 건물 벽면을 타고 따라 올라가는 중이었다.
타오르는 전격이 샤를을 향해 발사되었으나, 알료샤의 가위검이 나타나서 주문을 그대로 받아냈다.
검신의 주변으로 한바탕 전류가 흐르긴 했지만 형태가 흐트러지거나 위력이 낮아지지는 않았다.
그 사이, 샤를은 이미 옥상까지 점프해 도망친 상태였다.
“아아아아악!!”
화가 난 보슈 백작 부인은 지팡이를 그대로 바닥에 내던졌다.
그녀는 자신이 임무를 수행하지 못했다고 자책했다. 부들부들 거리는 손으로 품에서 손거울을 꺼냈다.
손거울이 일그러지더니, 누군가의 인형이 나타났다.
“아, 아! 미안해요. 난 실패했어.”
-자책하지 마. 상대가 어디선가 다른 ‘시간선’에서 날아온 것 같다.
“네?”
-조작된 운명의 끝을 이미 보고 온 것 같단 말이지. 아무래도 그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유물은 얼마 없어. 남대륙에 있을 운명의 셉터 정도밖에 생각나지 않는데 말이지.
손거울 너머의 트리메스 교수는 남대륙에서, 그것도 다른 시간 너머에 있을 운명의 셉터가 어째서 샤를의 손에 들어간 것인지 고민을 했지만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전 이제 어떻게 해야 하죠?”
-다음 계획으로 이행하지. 루덴펠트 백작과 합류한 다음, 암흑성도회로 가서 신성의 씨앗을 쪼개는 그 의식에 참여해라.
“네.”
벡토는 옆에 있는 이 여자가 손거울을 보고 중얼거리는 걸 보면서 섬뜩함을 느꼈다.
하지만 그녀가 우수에 찬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볼 때, 어렸을 적에 구원받았던 과거를 떠올리게 되고 말았다.
“벡토. 끝까지 날 따라와주겠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도와드릴게요. 대모님.”
“고맙단다.”
벡토는 한숨을 쉬고 권총의 탄약을 확인했다. 대체 무슨 일에 끼인 것인지 짐작도 가지 않았지만 어릴 적 그와 에드먼드를 구했던 사람을 배신하고 싶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