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사이비 교주가 되었다-169화 (168/221)

제169화 - “으아아아아아아아악!”

샤를은 지독한 고통에 몸부림쳤다. 목을 타고 들어오는 총알의 촉감. 흑색 화약에서 흘러나오는 짠맛과 암모니아의 지린내.

그리고 개미가 기어가는 것 같은 간지러운 감각이 목에 고루 느껴짐과 동시에 뇌를 간지럽혔다.

뇌간이 회전하는 총알에 박혀서 뒤틀리고 동시에 실시간으로 지능을 잃어가는 감각, 생명의 기능이 끊어지며 영혼이 소멸되는 그 느낌은 ……그 고통은 도저히 형언할 수 없는 경지에 있었다.

그것은 지옥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샤를은 목을 잡고, 스스로를 조르고 싶은 지독한 고통에 휩싸였다. 사흘 내내 손톱에 칼침을 박아넣으며 숨을 쉬지 못하게 고문한다고 해도 이런 고통을 겪지는 못할 것이었다.

지독한 고문의 고통에서 침대보를 잡아 뜯으면서 한참이나 난리를 피운 끝에 샤를은 죽음의 경계를 넘어섰다.

“이제 좀 괜찮으세요?”

“프, 플로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샤를은 주변에 여러 사람이 있는 것을 깨달았다. 이 저택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고통에 찬 비명을 그렇게 내지르는데 모를 리가 없었다.

플로나는 물론이고 집사 제이크나, 다른 하녀와 하인들 모두 겁에 질린 표정으로, 혹은 어쩔지 모르는 표정으로 있었다.

“지, 지금 의, 의사가 오고 있습니다. 곧 도착할 겁니다.”

“아니, 아니. 그럴 필요 없어. 제이크.”

샤를은 표정을 굳히고 말했다. 지금 이 고통은 존재하지 않을 미래에서 온 것. 그러니 검사 같은 것을 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을 터였다.

“돌려보내.”

“하, 하지만 주인님.”

“돌려보내.”

제이크는 마지막으로 플로나를 보면서 어떻게 도와달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플로나는 고개를 저었다.

“샤를님께서는 생각이 있으신 거예요.”

“아, 알겠습니다. 그럼.”

“다들 나가보는 게 좋겠다. 플로나 너도. 혼자 있게 해줘.”

플로나는 잠깐 남아서 샤를을 바라보면서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샤를이 애써 지은 웃는 얼굴을 보고 밖으로 나갔다.

‘그렇다고 해도 방문 앞에서 귀를 대고 대기하고 있겠지.’

보지 않아도 플로나가 어떻게 할지는 알 것 같다.

샤를은 일단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생각했다. 어떻게 된 일일까?

이 고통과 고문은, 도저히 인식할 수 없을 만큼 괴로운 것이었다. 분명히 저번에는 안 그랬었는데?

‘단지 운명의 셉터의 세이브&로드를 하는 주체가 시문두하가 아니라 나로 바뀌었을 뿐인데, 어째서 이런 고통을 겪는 것이지?’

시문두하는 세이브&로드로 과거로 되돌아가더라도 이런 식의 심각한 고통은 겪지 않았을 것이었다.

지독한 감각의 교란 끝에, 샤를은 자신이 뒤틀어버린 상황이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생각했다.

‘신이 소환되는 도중, 시간을 거슬러와서 그랬다거나, 혹은 내가 이 운명의 셉터에 제대로 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할 정도로 격이 낮거나.’

아마도 후자일 것이 분명했다. 시문두하는 운명의 셉터를 비교적 자유롭게, 페널티가 없이 다뤘으나 샤를은 그렇지 못했다. 존재와 격의 차이…….

아무튼, 이 고통은 다신 겪고 싶지 않다. 운명의 셉터에 내장된 세이브&로드 기능을 나중에 혹시 쓰게 되더라도 제발 최소한으로 이뤄지길 빌었다.

이건 아무리 초인 같은 신체를 지닌 자라도 도저히 겪고 싶지 않은 일이었으니까.

‘생각하자. 생각해.’

세면대 앞으로 가서 차가운 물로 얼굴을 닦았다.

샤를은 지독한 고통 속에서 깨어난 이후에 자신의 특성 ‘냉정’이 이렇게나 도움 되는 것일 줄은 몰랐다.

죽음의 고통을 겪고 난 이후에도 샤를은 냉정하게 사고할 수 있었다.

‘뭔가 이상했어.’

샤를이 영매를 찾아내고 그녀에게서 정보를 캐어낼 때까지만 해도, 이 찜찜한 감각은 전혀 느껴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샨티를 찾으러 가기로 한 이후로, 무언가 계속해서 일이 틀어지기 시작했다.

경찰서에 있어야 할 루미너스가 갑자기 나타나더니, 샤를을 적대하기 시작했다.

암흑성도회에서 갑자기 소집을 하지 않나, 루덴펠트 백작이라는 간부가 샨티를 납치하지 않나.

‘이것도 계략이라면 계략이겠지. 그렇군!’

샤를의 머리에 번뜩하고 번개 치듯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지금 이건 ‘수 싸움’이다.

“트리메스 교수가, 간섭하기 시작한 거야.”

그는 아직 공허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 공간은 들어가기는 쉬워도 탈출하기는 굉장히 어려운 공간이니까.

하지만 헤르메스의 화신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현실에 영향을 끼칠 수 있었을 터.

‘하지만, 왜? 지금에 와서야 내 일을 간섭하기 시작한 것이지?’

그전에도 이런저런 일이 있었다. 남대륙에 가서 오스구나아아텔에게서 석판 조각을 가져온다거나.

이전에 예측한 바로, 트리메스 교수가 샤를을 살려준 건 뒤통수를 치고 석판을 회수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한 바 있었다.

아직 샤를은 모든 석판을 모으지 못했을 것이므로 트리메스 교수의 타겟이 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건 안일한 착각이었나. 아냐, 그렇다고 해도 왜 하필 지금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는 설명하기 어려워.’

그러다가 샤를의 통찰력은 운명 주문을 변형한 주문, ‘편의주의식 전개’ 주문을 떠올렸다.

‘내가 편의주의식 전개 주문을 사용하고 나서, 트리메스 교수가 그걸 감지한 건가?’

그리고 그걸 일종의 선전포고로 받아들인 트리메스 교수가 계략을 꾸미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미쳤다.

‘내 마음대로 행동하면서 원하는 것을 손에 넣으려 한다면 이런 식으로 개입하겠다는 거군.’

그럼 샤를에게도 생각이 있었다.

“플로나!”

“네, 샤를님.”

“오늘 아침에 배달이 온 게 있을 거다. 그걸 가져와라.”

“넵.”

잠시 뒤, 플로나가 가져온 물건은 괴테의 뼈였다. 정강이로 추정되는 부분이었다. 이 정도 크기만 있다면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원래라면 미룰 생각이었으나, 그럴 필요가 있나. 심상 세계에 들어가서 샤를은 괴테의 만년필을 재가공할 생각이었다.

*

보슈 백작 부인은 오늘도 평범한 아침을 시작했다. 그녀는 하품을 한 번 하고는 시녀들의 도움을 받아서 옷을 갈아입었다.

조금 있다가 있을 상류층들이 모이는 모임에 어떤 드레스를 입고 참석할까 고민하던 그녀는 거울을 보면서 단장하다가, 거울이 일렁이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즉시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는 시녀들에게 말했다.

“너희들, 전부 나가 있어. 조금 있다가 다시 부를 테니까.”

“네, 주인님.”

시녀들을 내보내자마자 보슈 백작 부인은 거울을 쳐다보았다.

잠시 뒤, 일렁이던 거울은 곧 보슈 백작의 옛 연인의 얼굴을 드리웠다.

“오랜만이네?”

-그러게. 20년 만인가?

시간이 지나도 전혀 변하지 않는 연인의 얼굴을 보면서 보슈 백작 부인은 아직도 자신의 내면에 그를 사랑하는 열정이 꺼지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애써 무시하고 보슈 백작 부인이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야?”

-아직 맹세를 지키겠다는 그 마음은 변하지 않았지?

“물론이지. 그 맹세는 영원히 내 안에 간직하고 있을 거야.”

-당신이 해줘야 할 일이 있어.

“무슨 일?”

-어떤 꼬마를 찾아서, 루덴펠트 백작에게 가르쳐주는 거야.

이어지는 트리메스 교수의 설명은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루덴펠트 백작은 사교계에서 여러 번 만난 사이였다. 그녀에게 몇 번 치근덕대기도 한 적이 있었지만 무심하게 일관하니 곧 떨어져 나갔었다.

“어떤 꼬마라니?”

-이름은 샨티. 빈민가에 사는 집시지. 당신이 기르고 있는 번견, 그 개는 알고 있을 거야.

“알겠어. 그냥 그 아이에 대해서 말해주기만 하면 되는 거야?”

-물론이지. 근데…….

“응?”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야. 기분 탓이겠지.

거울 속에 있는 트리메스는 무언가 찜찜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일단 그렇게 말하곤 곧 트리메스는 거울 속에서 사라졌다.

“얘들아 들어오렴. 나갈 채비를 해야겠다. 그리고 벡토 기자 알지? 그 녀석에게 이쪽으로 오라고 연락을 넣어.”

“네, 주인님.”

*

샤를은 눈을 뜨면서 점술을 끝마쳤다. 그의 앞에 놓인 보티브 촛대가 일렁거렸다.

후, 불어서 초를 끄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일이 있었군. 내 예상이 맞았어.”

심상 세계에서 강력한 영성을 투자해서 이번 사건의 근원의 일각을 꿰뚫었다.

본래라면 트리메스 교수가 친 점술 방벽으로 인해 막혀야 할 것이 뚫린 이유는 강화된 만년필의 힘 덕분이었다.

샤를은 괴테의 뼈를 이용해서 만년필을 변형하면서 자신에게 도움이 될만한 능력 하나를 남기고는 나머지를 다 지워버렸다.

지금 괴테의 만년필에는 딱 한 가지의 능력과 한 가지의 부작용이 있다.

[괴테의 만년필]

[분류 : 유물]

[개요 : 100년 전의 전설적인 극작가 괴테가 남긴 만년필. 그의 위대한 시상과 염원이 담겨 있다. 샤를 헥센에 의해 2차적으로 개조되었다.]

[능력 :

사용자의 몸에 지니고 있으며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부터 주변의 모든 직,간접적인 정보를 수집한다.

부작용 :

@사용자는 7일에 한 번 극장에 가서 새로운 연극을 봐야만 한다. 연극을 보지 않으면 죽는다.]

덕지덕지 붙어 있던 능력을 죄다 삭제하고 정보 수집의 능력만 붙여두었다. 거기다 부작용도 수정해서 그다지 어렵지는 않지만, 정해진 부작용을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형식으로 바꾸었다.

‘이러면 내 정신을 오염시키지도 않고, 쓸데없는 나머지 능력이나 부작용도 사라지지.’

운명을 조작하는 능력은 사라지겠지만, 어차피 무존자가 가진 권능이 운명 조작 계통이니 그다지 아쉬울 것은 없었다.

지금 만년필의 개조는 이른바 선택과 집중을 한 결과다.

강화된 정보 수집 능력으로 인해 샤를은 지금보다 더 많은 정보를 얻으면서 싸울 수 있게 될 터.

방금 샤를이 관측했던 점술은 지금으로부터 이틀 전이였다.

‘그러니까, 내가 편의주의식 전개 주문을 사용하자마자 곧바로 트리메스 교수가 간섭한 것이군.’

체크포인트는 그 다음날 아침에 지정되어 있으니, 보슈 백작 부인은 샤를보다 한 발자국 앞서서 일을 진행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러니 샨티를 나보다 더 빨리 찾아낼 수밖에 없지.’

하지만 희망이 없는 건 아니다. 샤를에게는 그동안 모아온 넓은 인재 풀이 있다. 할 일을 배당해서 목적을 나누면 된다.

‘해결해야 할 문제는 두 가지.’

첫 번째는 갑작스럽게 들이닥치는 루미너스였다. 새삼스럽게 느껴지지만, 샤를이 모르고 있었다뿐이지 이 여자는 여태까지 샤를을 조지려고 벼르고 있다가 지금 운 나쁘게 타이밍을 고른 것.

그래서 아마도 루미너스는 샤를이 어디에 있건 찾아올 확률이 높았다. 어떤 방식으로 추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샤를이 도통 가지 않는 선데이크 거리까지 찾아왔으니 저택에 있더라도 그녀를 피할 수는 없을지도.

그리고 두 번째는 루덴펠트 백작이 샨티를 납치하는 것이었다. 아마 지금쯤, 벡토는 백작 부인과 루덴펠트 백작과 통성명도 끝마치고 서로 협력해서 빈민가를 수색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샨티가 있는 장소를 이미 알아내고 안내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아냐, 시간상으로 그건 조금 이르다. 아직 찾지 못했을 거다.

“후. 빡센데.”

세이브 앤 로드를 무한하게 사용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지만. 역시 무상의 행복은 없는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