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사이비 교주가 되었다-162화 (161/221)

제162화 - 문글로즈는 마치 속세를 벗어난 도인 같았다. 텁수룩한 수염에 삐죽삐죽 튀어나온 산발.

그가 입고 있는 널널한 폼의 옷이 더 그런 이미지를 강하게 만들었다. 환영 속의 이미지와는 딴판이다.

하지만 그에게서 느껴지는 엄청난 기운이, 확실히 문글로즈라는 것을 알게 했다.

“저는…….”

“아아, 대충 알 것 같긴 허다 이말이여. 분명 어딘가에 만들어놓은 환영에 낚여서 찾아왔것지?”

“그렇습니다. 샤를 헥센입니다. 석판의 환영을 보고 왔습니다.”

“히야, 기걸 보는 사람이 있네. 나는 꼼짝없이 내 서적을 보고 오는 줄 알았는디 말이여.”

서적? 문글로즈는 살아 움직이는 분신 같은 환영을 석판 조각 말고도 여러 곳에 봉인해두고 석판 조각을 모으는 사람이 보기를 원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건 실제로 성공했고.

“내 이름은 뭐, 안 들어도 알것제? 자, 손님이 와부렸으니 보통은 집에서 맞이해야 하는디, 잠깐 기다려부라. 곧 손맛이 올것인제.”

손맛? 샤를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긴 어찌된 영문인지 구름 위였다. 그리고 무슨 태공망이라도 된 것마냥 이 도인 같은 문글로즈는 구름 아래로 낚시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잠시 기다리자 곧 그의 말대로 낚시대가 부들부들 거렸다.

“그라체!”

힘 조절하며 낚시를 끝마친 문글로즈는 사람 몸통만 한 거대한 하늘치를 낚아 올렸다. 비늘이 너무 길어서 날개 같은 녀석이었다.

“오늘은 하늘치 매운탕이여, 키야, 끓여 먹으면 기가 맥히제.”

“…….”

“자자, 따라오기라.”

문글로즈는 등의 망태에 펄떡거리는 하늘치를 집어넣고 자신의 집으로 안내했다. 진짜, 구름 위에 집이 지어져 있었다. 하얀색 돌 같긴 한데 정확히 뭔지 알 수 없었다.

“여긴 정확히 어딥니까? 이런 이계는 못 본 것 같은데.”

“자, 여긴 공간의 틈새인 것이여. 뭐 꿈과 이계의 틈 사이, 혹은 꿈과 현실의 틈 사이 일수도 있제. 보통 ‘존재하지도 않는 공간’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뎌.”

“그렇군요.”

대체 문글로즈는 왜 이런 곳에서 홀로 지냈던 걸까? 그것도 5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이나 말이다.

“저, 환영이…….”

“자자, 일단 매운탕부터 묵고 혀. 내는 배가 고프면 입이 안 열리는 타입이랑께.”

문글로즈는 하늘치를 손질하고 알 수 없는 재료들과 향신료를 듬뿍 넣고 고춧가루를 첨가했다.

“자, 이것이 매운탕이여. 내가 친구한테 배운 건디. 어찌 맛있나 함 보게.”

“이, 일단 잘 먹겠습니다.”

밥을 먹지 않으면 입을 열 생각이 없는 것 같아 보이니 샤를은 억지로라도 좀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글로즈도, 오스굿만큼이나 강력한 신격을 갖고 있는 것 같은데 너무 소탈한 느낌이다. 마치 뒷집 아저씨 같은 느낌? 렘 노인의 제자들이 전부 죽은 것을 생각하면 사실상 최강자에 가깝지 않을지 싶다.

“어라? 맛있는데요?”

“어라라니? 내 매운탕은 그런 의문사가 붙어서는 안 되는겨.”

그렇게 의외로 맛있는 한 그릇을 비운 뒤에, 샤를은 입을 열었다.

“환영을 보고 왔습니다. 환영은 당신이 도박을 하고 있을 거라고 했는데, 낚시를 하고 있었군요.”

“낄낄. 매운탕을 먹고 낚시의 참맛에 눈을 뜨게 된 것이여. 이제 도박은 손 놨제.”

매운탕이라니? 대체 어디서 배운 걸까 싶다.

“석판을 받아가라고 말하기도 했고요.”

“아, 그렇제. 석판은 물론 줄 것이여. 하지만 그 전에 조건이 있제.”

역시 그럴 것 같았다. 오스굿이 시문두하의 암살을 의뢰하면서 석판을 줬던 것처럼, 문글로즈도 간단하게 석판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자, 내 환영이 미리 이것저것 설명을 했을테제?”

“예.”

“하지만 그중에는 몇 가지 빼먹은 것이 있을 것이여. 물어볼 것이 있는디, 통합자는 석판을 얼마나 모았는감?”

“이제 다섯 개입니다.”

“엥!? 다섯 개? 사이먼의 것도 빼앗은 건감?”

“아뇨. 사이먼의 것은 다른 존재가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제. 아마도 내 예상대로라면 그건 헤르메스에게 있을 것이여.”

“헤르메스를……아시는군요.”

“당연하제. 그놈 때문에 내가 여기 있는 것인디 말이여. 아무튼, 다섯 개가 있다고?”

샤를은 이걸 설명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저는 처음부터 석판을 한 개 가지고 있었습니다. 정확히는, 석판이 있었으므로 물리 세계로 올 수 있었던 거죠.”

“흐음. 말이 안 되는 건 아닌지라. 스승님의 석판이 박살 날 때, 우리가 모든 조각을 다 들고 있었던 것은 아니여. 사이먼이 큼지막한 덩이를 가져갔음에도 불구하고, 남은 파편들은 이계 어딘가로 날아갔단 말이여.”

“……그럼 제가 가지고 있는 석판 조각은 그중에 하나일 거란 말입니까?”

“아마도 말이제.”

한 가지 의문이 풀리는 것 같다. 그럼 렘 노인의 석판이 조각조각 나는 것 때문에, 결국 샤를이 이 세계로 오게 된 것이 아닌가?

“근데 대체 석판은 정체가 뭡니까? 누가 만들었고, 또 왜 만들었으며, 그 석판으로 렘 노인과 당신들은 대체 뭘 하려고 했던 거죠?”

텁수룩하게 난 수염을 쓰다듬던 문글로즈가 말했다.

“그걸 들을 자격이 아직 통합자에게는 없는 것인지라. 먼저 내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인디야.”

“시험?”

“그리야. 이 시험들을 통과하면, 내가 가진 석판 조각도 주고 또 이야기도 들려줄 것이라. 자네 석판을 얼마나 소화했는감?”

“……세 조각입니다.”

“아직 멀었군. 물론 석판 조각 하나만 쓸 수 있더라도 신과도 같은 힘을 낼 수 있겠지만, 그건 여명기 이전에나 가능한 일일 것이여. ‘비밀 봉인 조약’ 이후로 석판 조각과 같은 압도적인 힘은 현실에서 봉인 당했제.”

“그렇군요.”

그렇게 말하면서 문글로즈가 조약에 관해 설명했다.

비밀 봉인 조약은 신적인 존재들이 맺었던 계약 중에 하나였다. 이계 심층이 열리면 차원간 압력차가 발생한 적이 몇 번 있었는데 그것도 전부 이 조약 때문이다. 렘 시대나 고 헤르메스, 헤르메스 시대에는 그런 제약이 없었다.

그래서 과거에는 온갖 사이한 존재들이 ‘리미터’가 해제 된 채로 인간 세계와 공존하고 있는 상태였었다.

지금처럼 물리 세계와 비밀 세계로 나뉘어서 활동하지도 않았고, 귀신도 물리 세계에 간섭하고, 물리 세계의 존재들도 귀신이나 유령 같은 것들과 어울리곤 했다고 했었다.

그러나 조약 이후로, ‘리미터’가 걸려서 물리 세계와 비밀 세계는 분리되었다. 강력한 존재들도 이계에서 현실로 빠져나오지 못했고, 연결되어 있던 이계와 현실 사이에는 꿈이라는 장벽이 가로 막아서 더는 함부러 오갈 수 없게 되었다.

“역시 석판 조각이 현실에서 힘을 낼 수 없는 이유가 있었군요.”

렘 노인의 제자들과 샤를의 차이는 여기서 나오는 것 같다. 그간의 의심해오던 의문이 하나 더 확실해졌다.

“그렇디야. 자네는 갈 길이 멀제. 내가 자네 관상을 보니 딱 반골의 상이여. 그냥 하라고 하면 안할 것 같은 느낌이 팍팍 드는겨”

“…….”

틀린 말은 아니긴 하다.

“그러니 자네에게 선택지를 주겄어. 시험은 세 개가 있디야. 첫 번째, 자네의 영성을 다듬고 석판을 잘 소화할 수 있도록 강해지는 시험. 두 번째, 내게서 이런저런 정보를 들을 수 있게 되는 시험, 그리고 세 번째는 석판을 받을 수 있는 시험이제.”

“셋 중의 하나를 고르라는 겁니까?”

“시험 세 개를 단번에 치르는 건 지금 수준에선 불가능한지라. 신중히 고르는 게 좋을 거여.”

샤를은 턱을 괴고 생각했다. 첫 번째 시험을 치르면 그간 소화해내지 못한 네 번째, 다섯 번째 석판을 빠르게 소화할 수 있게 된다.

두 번째 시험을 치르면 ‘석판’이란 무엇인가와 렘 노인들과 그 제자들이 석판으로 대체 무엇을 하려고 했으며, 또 왜 사이먼이 배신했는가에 대한 정보를…….

세 번째 시험을 치르면 남은 석판 조각을 얻게 된다. 순서를 샤를의 마음대로 고를 수 있다라.

“구체적으로 무슨 시험이죠?”

“자네에게 필요한 것의 시험이제. 순서대로 헌신의 시험, 희생의 시험, 영광의 시험.”

문글로즈가 시험 문제를 내는 선생처럼 능글능글하게 웃었다. 이자에게서 악의는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또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다.

“이 시험, 다시 또 할 수 있는 건가요?”

“암. 다시 또 할 수 있제. 얼마든지 나눠서 시험을 치를 수도 있는 지라. 자네의 세상으로 되돌아갔다가 다시 와도 되는 겨.”

“예? 그게 가능합니까?”

“저짝 어딘가에 자네가 만든 차원문이 있을 거여. 그 의식으로 만든 차원문은 꽤 오래갈 거라네. 자네들의 시간으로는, 한 달에서 두 달 정도.”

“길군요.”

바로 선택할 필요가 없었으나, 이 시험에는 시간제한이 있다. 포탈이 사라질 때까지다. 어차피 시험 세 개를 동시에 치를 수 없다고 하니 미리 한 개는 통과해두는 게 좋겠지.

“희생의 시험으로 하죠.”

맨 처음에는 헌신의 시험을 치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강해지고 나면 나머지 시험도 쉽게 치를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역시 제일 중요한 것은 정보였다.

문글로즈는 헤르메스에 대해서도 알고 있으니 이 정보를 알아두면 매우 유용할 것이다.

“희생의 시험을 치르도록 하죠.”

“잘 생각했디야. 통합자, 자네는 이제부터 내가 만든 가상의 공간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야. 그 세계는 ‘가짜’지만 ‘진짜’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제.”

“……가상 현실이라는 겁니까?”

“잘 이해했구만 기래. 그 전에, 자네의 유물은 사용할 수 없다네. 가상 현실에서 자네는 아무것도 없이 시작하는 거라구. 물론, 영성도 사용할 수 없어.”

“알겠습니다…….”

가진 능력의 대부분이 봉인된 상태에서 시험을 치른다는 건가.

“가상 현실은 자네가 만들어낸 기억과 환상이 뒤섞여 있을 것이여. 알고 있는 얼굴을 만나도 이상한 것은 없을 걸세. 자네의 기억으로 만든 가짜거든.”

“알겠습니다.”

“마음을 비우고 무언가 이상한 기운이 몸으로 흘러들어와도 저항하지 말아야혀. 눈을 감고 셋을 거꾸로 세는 기다.”

샤를은 차분하게 눈을 감고 수를 세었다. 거꾸로 센다. 셋. 둘. 하나.

눈을 뜨자 샤를은 새하얀 공간 안에 있었다. 그리고 그는 어떤 ‘다리’ 위에 올라가 있었다.

아래로 내려다보니, 저 멀리서 거대한 열차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선로는 두 방향이었고, 사람들이 묶여있다. 한쪽에는 다섯 명. 다른 쪽에는 한 명.

“트롤리 딜레마인가.”

그 유명한 딜레마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악질이네.”

지금 샤를은 어떤 주문도 사용할 수 없는 상태였고 아무런 유물도 갖고 있지 않았다.

직선으로 가면 저 열차는 철로에 묶여있는 5명을 치게 된다. 그리고 왼쪽으로 선로를 꺾으면 묶여있는 한 사람이 죽게 된다.

“하. 이게 무슨 시험이야.”

샤를은 조소했다. 왼쪽 철로에 묶여있는 한 사람은, 플로나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른쪽 철로에 묶여있는 사람들의 얼굴은 각자 이렇다.

에브렌 린덴, 요나스 샤프트, 데미 송버드, 요하네스 헥센, 부라토스다.

각자, 자식을 위해 고아원에서 애들을 제물로 바치는 미치광이 살인마 / 사람 뇌에 볼트를 쑤셔 넣고 조종해대는 정신 나간 인형장인 / 헬파이어 클럽 이용해서 돌연변이 만들고 실험, 추노하는 노인 / 자기 자식까지 실험체로 사용한 초대 가주 비스타에게 빙의 당한 인간 / 사람을 어인으로 바꿔버리는 어부형제단 교주다.

“뭐야?”

누가 봐도 직선으로 그냥 가게 내버려두는 게 낫잖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