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4화 - 그 글자를 읽자마자 샤를은 눈을 위로 돌렸다.
누군가가 금기로 설정해둔 것은, 당연히 금기로 설정할 만큼 위험할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샤를은 궁금증을 꾹 참고 라이스 교수와 같은 방식으로 해석했다.
[시문두하의 재림.]
[긴 시간 끝에,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라졌던 시문두하가 나타나리라. 불꽃이 하늘을 덮고 수많은 인간의 목숨이 꽃처럼 사라져갈 때 그 피를 먹고 시문두하는 현실에 강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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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역사 속에서 사라졌던 이유는 바로 이날을 위함이라.■■■■
■■■다섯 번의 지진이 일어나고 다섯 번의 공간이 과거로 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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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진정한 신이 되어 영원한 신으로 강림하리라.]
이 번역은 띄엄띄엄 읽어야지 읽을 수 있었다. 나머지 흑색으로 칠해진 부분은 거꾸로 읽어야지 제대로 알아볼 수 있게 되어 있다.
“이 번역은, 뭔가 이상하군. 중간중간 문단이 해석되질 않아.”
“…….”
“아무튼, 이 석판의 기록에 의하면 앞으로 지진이 다섯 번 일어날 거라고 하는군.”
샤를은 여태 자신이 그 익룡을 발견한 뒤에 무슨 일을 겪었는지 라이스 교수와 주변에 있는 모두에게 이야기했다.
“그러면 과거로 바뀐다는 뜻이, 공간이 뒤바뀐다는 뜻일까요?”
플로나가 묻자 샤를이 답했다.
“내 생각엔 그래. 차풀테펙 공원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 대신 그곳에 원시의 숲이 나타났지.”
“이거 큰일이군. 이대로 가다간 나머지 예언도 확실하게 이뤄지는 것이 아닌가?”
“이걸 막을 방법은 없는 건가?”
드레이크와 라이스가 이 석판에 적힌 내용에 의문을 제기할 때, 샤를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어야 그 힌트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읏.”
샤를은 치밀어오르는 충동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는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석판을 읽기 시작했다.
[경고.]
[이 석판을 읽어서는 안 된다. 석판을 읽게 될수록 그 미래가 고정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희들은 석판을 계속 읽게 되겠지. 그러니 너희를 위해 충고하겠다.]
불길한 기운이 쏟아져나오면서 운명의 변동점이 요동치는 것이 체감된다.
[시문두하는 시공간을 비트는 권능을 가진 운명의 셉터를 들고 있었다. 오스구나아아텔에게서 빼앗은 것이다.]
‘머리가 아파.’
읽어나가면 읽어나갈수록 주변의 시공간이 떨리고 있었다. 마치 운명 조작을 사용했을 때처럼, 수많은 실들이 움직이고 있다. 그걸 느낄 수 있다.
[거기에 강력한 통찰력을 갖고 있었으니. 그는 스노히 제국에 곧 종말이 당도할 것이라 믿었고 그는 몇 가지 방법을 찾아냈다. 자신의 영적인 것들을 모은 장소를, 시공간의 틈 사이로 밀어 넣고 그 공간을 미래와 바꾸기로 했다.]
“공간을 바꿔?”
[이해가 가지 않겠지. 나도 그랬으니까. 그러니 잘 들어라. 내 도움만이 오직 너희를 구원할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로 뒤바뀔 공간은 차풀테펙 공원이다. 이 안에는 주술사가 살고 있다. 주술사의 목걸이에는 시문두하가 가진 힘을 약화시키는 주문이 깃들어있다. 그것을 찾아라.]
샤를은 자신의 기억을 더듬었다. 드넓은 원시림. 태곳적의 생물들이 돌아다니는 차풀테펙 공원…….
[두 번째로 뒤바뀔 공간은 치치노아사쿱탈 사원이다. 이 사원은 태곳적에 오스구나아아텔을 모시던 사원으로 그녀의 유해가 깃들어 있을 거다. 신의 유해를 찾아라. 뼈라면 더욱 더 좋겠지.]
‘오스구나아아텔의 유해!?’
샤를은 정신을 번쩍 차렸다. 이 석판, 읽으면 읽을수록 알 수 없는 비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세 번째로 뒤바뀔 곳은 남쪽에 있는 탄치밀코 왕성터다. 이 왕성에는 시문두하의 거인 문지기들이 왕성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그들을 따돌리거나 쓰러트린 뒤에 왕성의 보물고로 가라. 거기에 시문두하가 태어날 때 사용하던 비단천이 보관되어 있다. 성해포라고도 하지. 이걸 불태워라.]
[네 번째는 체합타클 박물관이다. 이 박물관은 옛적에는 서적을 보관하던 도서관이었다. 이 도서관에서 시문두하의 일기를 찾아내어 찢어버려라. 기록이 없으면 더는 신이 되지 못한다.]
[다섯 번째는…….]
“샤를님!”
플로나가 샤를의 한쪽 팔을 붙잡고 그를 잡아당겼다. 샤를은 자신이 어느새 석판에 딱 달라붙어서 글자를 읽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석판에 적힌 신대문자는, 나선을 그리며 줄어드는 경향이 있었다. 당연하게도 가면 갈수록 글자는 더더욱 작아졌고, 샤를은 다섯 번째 석판에 대한 정보를 읽기 위해 석판에 몸을 딱 붙이고 마치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고 했다.
마치 그 석판에 빨려 들어갈 것처럼.
“자네, 괜찮은 건가?”
“이 석판은, 위험해. 더 읽으면 안 돼.”
“알겠네. 봉인해두지.”
샤를은 잠깐 사람들을 떼놓고 자신의 얼굴에 손을 가져다가 오른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손바닥을 쫙 펴서 얼굴을 쓸어내린다. 땀이 흥건한 상태였다.
‘내 정신 수치로도 버티질 못했어.’
읽어서는 안 되는 금기를 읽고 말았다. 하지만 그 안에 적혀 있는 정보는, 전부 다 시문두하를 막기 위해 적어둔 정보였다.
‘대체 누구지? 이 석판에 신대문자를 남긴 사람.’
이 석판에는 누가 집필했는지 전혀 적혀 있지 않았다. 고대 렘 시대에 누군가가 집필했겠지.
‘하지만 뭔가 마음에 걸려.’
시문두하를 막기 위한 정보가 너무 구체적으로 서술되어 있었다. 마치 이렇게 한다면 반드시 막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 석판, 잠깐 내버려두겠나?”
“아니, 자네 이걸 또 읽으려고?”
“아니, 아니야. 잠깐 시도해볼 것이 있어서 말이야.”
“일단 그러겠는데, 플로나양. 혹시나 또 샤를이 이상해지면 제지해주게나.”
“물론, 당연하죠.”
드레이크와 라이스는 약간 우려를 표했지만, 샤를이 이 석판을 더 살펴본다는 것에 찬성했다.
그들 중에서는 이런 일에 제일 능통한 것이 바로 샤를이었기 때문.
“이제부터 점술을 사용할 거야. 혹시라도 내가 이상해진다면…….”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샤를님을 깨울게요.”
“고마워.”
샤를은 아예 바깥에서 점술을 펼치기로 했다. 초를 꺼내들고 불을 붙인 다음 눈꺼풀을 닫았다.
이런 물건에 점술을 거는 것은 매우 꺼림칙하지만, 사용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조용히 구문을 외운다.
‘이 석판을 기록한 자에 대한 정보.’
장면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과거로, 과거로. 계속해서 이전 시간 대를 검색한다.
그러다가 너무도 끝도 없는 과거로 향하는 도중, 점술이 탁하고 막혀 버렸다. 샤를은 눈을 뜨고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안 되네.’
시간상의 한계였다. 점술 능력이 아무리 강력하더라도 수천 년 전의 과거까지 탐색해낼 수는 없었다. 그래도 하나 알아낸 정보는 있었다. 이 석판의 기록자가 수천 년 전의 존재라는 것이라는 것.
“잘 안 되셨나 봐요?”
“그래. 오히려 그게 다행일지도 모르지. 일단 우리는 우리대로 따로 움직여야겠다.”
샤를은 자신이 본 석판의 기록을 이야기하려다가 곧 입을 닫았다. 이 기록은 그 혼자만 기억해두고 있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석판의 금기를 읽으면서 어쨌든 석판을 쓴 존재가 시문두하와 대적하는 존재였으니, 샤를은 석판의 충고에 따라 일단 움직여볼 생각이었다.
‘혹시 문제가 있더라도, 그때가서 석판의 충고에 따라 움직이지 않아도 되니.’
샤를은 좀 고민하다가 플로나를 이곳에 계속 배치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남은 석판을 번역중인 드레이크와 라이스가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난 그 원시림을 다시 수색해보기로 할게.”
“또 가신다구요?”
“이번에는 준비를 좀 단단히 하고 움직일 생각이야.”
“혹시나 위험하면 말씀해주세요.”
“그럴게.”
플로나는 아직 칼튼의 혈청 하나를 갖고 있다. 이걸 이용하면 언제든 지원을 올 수 있다.
플로나와 헤어진 샤를은 그대로 길을 걸었다. 기록에 의하면 최소 네 번 이상은 지진이 더 일어나게 될 것이다.
혹시 뭐하면 드레이크와 라이스를 먼저 이 도시에서 피신시키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닌 것 같다.
아직 남은 석판이 있지만 그 석판을 읽다가 또 위험해질 수도 있고.
‘썩을. 무슨 석판을 해석만 해도 위험해지냐.’
아무튼 개 같은 세상이었다.
곧이어 원시림 근처까지 도착한 샤를은 그 근처에 배치된 군대를 발견할 수 있었다.
‘28 왕립보병연대인가.’
예전에는 레드코트라고 불렸었지만, 몇 년 전 식민지의 전쟁터에서 참패를 맛본 뒤 지금 이들의 제식 군복은 대부분 카키색으로 변해 있었다.
대량의 소총을 보유하고 있는 이 연대는 원시림 입구에 철책을 만들고 일반인이 접근하지 못하게 막고 있다.
“어이, 거기. 이 앞으론 출입 금지다.”
한 병사가 샤를을 보고 그렇게 외치다가, 다시 눈동자가 몽롱해졌다.
-최면빔 얍얍!
-사용하는 건 난데?
샤를은 하늘을 빙글빙글 돌면서 병사들 주변을 도는 파기나레코르를 바라봤다.
-쭈인님. 이 녀석들 아기로 만들어버릴 수 없어? 응애 맘마조 하게.
-멀쩡한 사람을 아기로 만들 수는 없어. 등불 주문은 만능이 아니야.
-아쉽네.
-난 아직도 네 녀석의 정신세계를 이해할 수가 없다. 왜 멀쩡한 인간을 아기로 만들려고?
-그야, 재밌을 테니까?
숙련된 최면술사라면 상대방을 유아퇴행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겠지만.
파기나레코르와 시답잖은 소리를 하면서 철책을 넘어 원시림으로 들어섰다. 이곳에 들어오자마자 숨이 벅차기 시작했다.
아직 견딜 만했기에, 안으로 들어서는 것은 쉬웠다.
‘석판에선 이 안에 주술사가 있다고 했었나?’
원시림 내부는 매우 조용하고 고요했다. 조금 탐색하고 있자 근처에서 비명이 들린다. 샤를은 곧바로 달렸다.
“이런, 늦었나.”
-너덜너덜.
검치호에게 뜯긴 병사 하나가 끔찍한 모습으로 죽어 있었다. 이 병사는 소총을 발사하는 것까지 성공했다만, 검치호를 죽이지 못한 모양이었다.
‘머리를 정확히 겨누지 않으면 잡기 어렵지.’
샤를의 권총에는 마탄이 들어가서 상당한 위력을 낼 수 있어서 상관없지만 일반적인 소총탄으로는 검치호를 잡기 까다로울 거다.
죽은 병사를 뒤로하고 앞으로 걸어간다. 이 숲은 밖에서 볼 때와는 전혀 다르게 매우 컸다. 마치 공간이 늘어난 것처럼.
숲을 걷는데, 어디선가 누린내가 난다. 바람을 타고 흘러들어오는 냄새에 고개를 돌리니 그곳에 검치호 무리를 발견했다.
샤를은 눈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숫자를 가늠했다.
‘병사가 더 있었어도 소용없었겠군. 수가 너무 많아.’
한 녀석의 송곳니에는 피와 살점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저 녀석이 범인인 것 같다.
크르르르르르르
맹수의 울음소리. 샤를은 권총에 마탄이 여섯 발 장전된 것을 확인했다. 탄환 수가 좀 모자란데.
-도와줄까 쭈인?
-잠깐…….
가위검을 꺼내서 상대할까 하려던 차에, 샤를은 어디선가 인기척을 느꼈다.
화살 한 대가 날아와서 검치호의 이마를 꿰뚫었다. 사람을 잡아먹은 그놈이었다.
픽하고 검치호가 쓰러지자, 다른 무리가 마치 초식동물이라도 된 것처럼 주변으로 흩어져버렸다.
-어라? 이렇게 간단하게 끝나?
-그러게.
화살이 무섭다고 검치호가 도망쳤을까? 아니다. 화살을 쏜 사람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도망친 것이었다.
부스스슥.
그때 수풀을 헤치고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기괴한 깃털 장식의 모자. 그리고 반쯤 헐 거 벗은 한 여성이 활을 들고 걸어 나오고 있었다.
구릿빛 피부에 얼굴에는 이상한 도료를 발라 칠했다.
그리고 그녀는 전혀 알아듣기 어려운 말을 샤를에게 건넸다.
‘사용하는 건 고대어인가? 일단 고 헤르메스 어는 아니야.’
사냥꾼으로 보이는 그 여자는 샤를이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자 손짓을 하면서 그를 불렀다.
그리고 수풀 안쪽으로 사라진다.
-쭈인? 따라갈 거야?
-일단 그래야 할 것 같네.
정보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