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3화 - “거기 있는 종이 좀 줘!”
충격과 공포에 사로잡혔던 라이스 교수는 하룻밤 정도 자고 일어나자 쌩쌩해졌다.
계몽 수치는 높아졌다지만 비밀장서고의 일원들은 그런 일이 일상다반사이므로 비전의 대책이 있다고 했다.
저번에 바퀴벌레를 냠냠한 트라우마 때문에 샤를의 협력을 받아서 석판을 번역할 것을 일일이 검수하는 중이었다. 특히 제목만 본다.
“하코의 서. 이건, 마도서야. 안 돼. 그리고……봉인된 그림자 기록? 이것도 위험해 보이는군.”
라이스 교수가 가지고 있는 이름 없는 해독본을 사용해서 샤를도 신대문자를 어느 정도 해석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첫 번째 챕터나 제목만 보고 곧바로 번역할 것과 아닌 것을 구분했다.
“이건 좀 애매한데.”
“그럼 중간에 분류.”
협력해서 석판을 번역하자 꽤 진도가 나갔다. 니무스 석판들은 숫자가 상당했으니 여태 지지부진했다.
개중, 번역해서는 안 되는 것은 내버려 두고 애매한 것만 샤를이 먼저 손을 대어 번역하기로 했었다.
애매한 것 중에, 샤를은 눈이 가는 것을 집어서 번역했다.
“시문두하의 비사(祕史)라…….”
제목을 보아하니 오스구나아아텔과 연관된 내용이 확실해 보인다. 하지만 번역하기 앞서 망설여지는 것이 있었다.
첫 번째 문단을 읽는 순간 불길함이 깊게 와닿은 것이었다. 운명이 요동치고 있다.
‘하지만 이 내용은 꼭 읽어볼 필요가 있어.’
시문두하라는 신이 석판과 매우 깊은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한 뒤로 그에 대한 호기심은 늘어났다. 그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석판이 눈앞에 있다.
불길함이 감지된다고 여기서 그만둘 수는 없었다.
[시문두하는 알 수 없는 다른 세계에서 이 세계로 왔다. 그는 오스구나아아텔의 권능에 심취해 그녀의 심복이 되었다. 시공간을 휘어버리게 만들 수 있는 압도적인 권능을 휘두르는 모습에 매료되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시문두하는 오스구나아아텔에 대한 갈망이 커져갔다. 그것은 애증이었다. 그녀를 사랑했지만 반대로 그녀에게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다.]
[그것은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커졌다. 결국, 시문두하는 오스구나아아텔에게 구애했다. 하지만 그는 거부되었다.]
[원인은 누구도 알지 못했다. 다만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오스구나아아텔이 누구와도 결혼하지 않고, 나라와 함께하겠다고 천명했다는 것이다. 결국, 시문두하는 자신을 거부한 오스구나아아텔에게 심각한 분노를 느끼고 그녀를 배신하기로 한다.]
[집착과 탐욕, 아집과 분노가 결합된 순간 그것은 결정된 일이었다.]
[시문두하는 오스구나아아텔의 신물을 훔쳐 달아났고, 오스구나아아텔을 죽였다. 그 과정에 오스구나아아텔을 따르며, 자신을 반대하는 모든 존재를 순장시켜버렸다.]
[시문두하는 대륙을 자신의 손에 넣었고 제국의 모든 존재에게 자신을 위한 인신공양을 올리길 원했다. 그리하여 피와 피로 이루어진 관습이 등장했으니. 그것이 수천년 넘게 이뤄진 것이다.]
[그러나 시문두하는 어느 순간 역사에서 사라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추측하길, 시공간을 다루는 그 권능의 힘을 통제하지 못하고 그 힘에 취해 죽음을 맞이했다고.]
“흐음.”
나머지 석판은 떨어져나가 있었다. 샤를은 좀 고민하고 있던 차에, 주변의 대지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지진인가?”
“지진! 지진이에요!”
바깥에서 거대한 사이렌 소리가 들리면서 갑자기 석판 관리인 메리 셸리가 나타나서 소리쳤다.
“모두 탁자 밑으로 들어가요!”
샤를뿐만 아니라 옆에서 번역하던 다른 사람들까지도 전부 숨었다. 조금 뒤에 지진이 멈추면서 조용해졌다.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메트로폴에선 십 년에 한 번 일어날까말까한 지진이, 남대륙에선 자주 일어나는 일이란다.
“악! 분류해뒀던 서류가!?”
라이스가 비명을 지르면서 석판 목록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분류해뒀던 것이 무색하게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샤를도 마찬가지로 한숨을 쉬었다. 저걸 또다시 분류해야 한다니.
“일단 밖으로 나오세요! 여진이 있을지 모르니까.”
그 말이 옳다. 샤를도 라이스도 또 보조해주고 있던 드레이크와 플로나도 전부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밖에 나오니 완전히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도로는 쫙쫙 갈려져 있고 마차와 자동차들은 그 갈라진 틈 사이로 한쪽 바퀴가 빠져서 난리가 난 상태였다.
“하.”
샤를은 혀를 찼다. 이거 박물관에 있는 석판들도 위험할지도 모르겠다. 샤를과 같은 생각을 했는지 드레이크가 물었다.
“이거 박물관에 보관된 물건들은 괜찮을지 모르겠군.”
“안심하세요. 박물관에 보관된 물건들은 모두 지진 설계에도 끄덕없이 버틸 수 있게 되어 있거든요.”
메리가 대답하자 다들 한시름 놓은 것 같았다. 그때, 플로나가 샤를의 팔을 잡아당기면서 반대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있었다.
“샤를님. 저게 뭘까요?”
“응?”
하늘에 뭔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새인가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새가 아니었다. 그러기엔 너무 컸다.
“저게……뭐지?”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자, 그리고 그곳에 무언이 날고 있는지 곧 알게 되었다.
“저, 저건 익룡이 아닌가?”
“네? 익룡이요?”
-이런 쓰발.
샤를은 속으로 욕지거리를 했다.
-왜?
-진짜 익룡이잖아.
수만년 전에나 볼 수 있었던 생물이 공중에 떠 있는 것을 본 사람들은 대부분 어떻게 생각할까?
“오오! 대체!? 익룡은 멸종했다는 것이 아니었나!?”
라이스는 감탄하면서 기쁨에 차올랐고.
“저거 공격하진 않겠지?”
드레이크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쪽으로 오는 데요?”
마지막에 한 말은 바로 메리 셸리가 한 말이었다.
“농담이지?”
“점점 더 커져요.”
실제로, 그 익룡은 터무니없이 커지기 시작했다. 가까워지는 거다.
“건물 안으로 대피!!”
“들어가 들어가!”
기겁을 하면서 도망치자 익룡이 날아올라서 도로에 있던 사람을 하나 낚아채서 하늘로 날아올랐다.
“씨발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드레이크가 괴성을 질렀다. 샤를도 동감이었다.
“이거, 단순한 문제가 아닌 것 같아.”
샤를은 저게 왜 나타났는지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 샤를이 석판을 더 해석하면 해석할수록, 불길한 기운이 점점 커진 바.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었지만 석판의 신대문자를 읽으면 읽을수록 기이한 일이 일어나는 구조인 것 같다.
“안 되겠군. 저 익룡이 날아온 곳으로 가봐야겠어.”
“자네가 가면 분류는 누가하고!?”
“라이스 교수가 대충 제목은 외웠을 거라네.”
드레이크가 묻자 샤를이 답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플로나에게 말했다.
“플로나. 이 사람들을 지켜줄 수 있겠어?”
“샤를님은요?”
“난 괜찮아. 혼자서 탐사를 해봐야할 것 같아. 저 사람들은 네가 없으면 위험해.”
영성자라고 해도, 플로나만큼 강력하지는 않다.
“그리고 라이스가 또 바퀴벌레를 먹기 시작하면 너밖에 저지할 사람이 없다.”
“그건……. 알겠어요. 제가 보고 있을게요.”
플로나는 그 말을 듣고 곧바로 이해했다. 라이스 교수가 토해낸 바퀴벌레를 플로나도 본 적이 있다. 트라우마가 생길 정도니 그녀가 잘 막아주겠지.
샤를은 그 길로 마차를 잡아타지 않고 직접 움직이기로 했다. 티마이오스의 정다면체를 사용해서 해수 두꺼비의 신체 능력을 전달받자, 플로나 만큼이나 빨리 움직일 수 있었다.
도시를 질주하는 히어로처럼 벽면을 박차고 파쿠르를 해서 옥상까지 올라갔다.
익룡은 원주민 여성 하나를 입에 물고 어디론가 날아가고 있었다. 그 익룡이 날아왔던 방향과 정확히 일치하자 샤를은 거침없이 그쪽으로 달렸다.
곧 샤를은 그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곳은 동쪽에 있는 차풀테펙 공원이었다.
번역이 다 끝나면 플로나가 산책하자고 했던 곳이었다.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습지를 개조하고 깔끔한 조경을 만든다. 인공적인 구조물들을 놓아서 만든 큰 공원.
근데 이곳은 샤를이 아는 곳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마경이 되어 있었다.
“뭐야 이거.”
마치 원시림을 방불케하는 엄청난 숲이 펼쳐져 있었다. 처음 보는 나무에 처음보는 식물들이 퍼져 있었고 이곳에 사람의 흔적은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샤를이 안으로 들어서자 이상할 정도로 호흡이 어렵다는 것을 느꼈다.
‘주변의 공기가 완전히 달라. 산소 농도가 높은 거야.’
거기다 온도가 이상할 정도로 높고 습기가 정신이 나갈 정도였다. 마치 정글에 온 것 같은 느낌.
한 발자국만 들어왔을 뿐인데 완전히 다른 공간에 도착한 것 같다.
사람의 호흡은 생각 이상으로 기계와 같다. 공기중의 산소 농도는 21%. 그중 14%만 소모되고 그로 인해 평균 체온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런데 산소 농도가 높으면 이 호흡이 매우 달라진다.
산소 농도가 여기서 1%만 올라가더라도 사람의 체온이 급격히 오르고 호흡 곤란이 일어나게 된다. 심하면 산소중독을 일으킬지도 모르고.
샤를은 살짝 호흡이 버거운 것을 느꼈지만 체온이 치솟는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어쨌든 안으로 들어가자 점점 더 기괴한 것들이 나타났다. 차풀테펙 공원에 사는 짐승들과는 확연이 다른 모습.
“뭐야? 검치호?”
샤를은 거대한 송곳니를 가진 호랑이를 보자마자 권총을 꺼내들었다. 이 짐승은 샤를을 보고 덤벼들었다.
하지만 그래봐야 짐승일 뿐이었다. 침착하게 조준해서 놈의 이마에 정확한 사격으로 권총을 박아주자 놈이 쓰러지면서 침묵했다.
“이건 위험할 것 같군.”
이 안으로 더 들어간다면 무슨 짐승이 나타날지 모른다. 익룡에게 물려간 희생자는 안타깝지만 구할 수 없게 되었다.
샤를은 일단 몸을 돌려서 원시림 밖으로 나갔다.
“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거지?”
석판을 조금 더 분석해봐야겠다. 샤를이 나가는 동안 혼란을 어느 정도 방지한 경찰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그들은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에게 외쳤다.
“외출을 금지하시고 당장 집으로 들어가세요! 곧 군부대가 출동합니다!”
“경찰 아저씨! 우리 누나가 그 거대한 새 같은 것에 잡혀갔어요! 도와주세요!”
“미안하구나. 하지만 우리도 어쩔 수가 없다.”
이 시대 경찰들은 대부분 곤봉이 무장의 끝이었다. 제대로 된 무장경찰이 등장하려면 30년은 더 있어야 한다.
그것도 대전쟁 시기에나 상대방 스파이의 사보타주를 막기 위해 나타나게 되는 거니까.
그러니 그들도 거대한 생물의 습격을 받는 것에는 무력한 편이었다.
다행히도 이 도시, 체르노이의 근처에는 군부대가 있었다. 곧 그들이 출동해서 막아주게 되겠지.
샤를이 최대한 빨리 박물관에 도착하자 플로나와 잠깐 인사를 나눴다. 그가 없는 동안 박물관은 무사한 모양이었다.
샤를은 다시 번역하던 장소로 갔는데, 라이스가 또다시 충혈된 눈동자로 무언가 번역하고 있었다.
“저거 괜찮은 거야?”
“드레이크 박사님이 그랬는데, 마도서도 아니고 위험한 것도 아니래요. 과거의 기록이라나.”
“라이스?”
“오! 샤를! 이리 와서 읽어보게. 어쩌면 지금 일어난 이상한 상황을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라이스 교수가 번역하고 있는 것은 특이하게 생긴 석판이었다. 다른 석판과는 달리 마치 암모나이트 조개 껍데기 같이 생겼는데 그 동그란 나선에 글자를 새겨놨다.
라이스 교수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는 방식으로 문자를 번역하고 있었다.
그러다, 샤를은 문득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신대문자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어도 문자가 번역이 되는 것이었다.
그곳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경고.]
[이 석판을 읽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