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2화 - “니무스 석판은 기원전 3천 년 전에 쓰였다네. 스노히 제국보다 더 오래 된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고 하지만, 신대문자라는 글자를 해독하지 못해서 누구도 읽지 못하고 있었지.”
“근데 해독본을 찰스가 손에 넣었다는 거고?”
“맞아. 지금 번역 중이라네.”
저번에 건네주었던 해독본으로 신대문자를 읽을 수 있는 해독본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 언어로는 이중 번역이 된 셈이다.
“언어 변환이 두 차례 이어지기 때문에, 지금 단 번에 해석하긴 어렵다네. 같은 문자라도 두 개의 뜻을 가진 다의어가 섞여 있기 때문이지.”
“무슨 말인지 알겠네.”
번역이 잘못 되면 여러 가지로 문제라, 일단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거다.
“근데 해독본 말이야. 나도 가져가서 보고 싶은 데 말이지.”
“신대문자를? 번역에 참가할 생각인가?”
“그래, 번역도 해볼 겸, 신대문자 자체에도 관심이 있고 말이야.”
“그렇게하지.”
드레이크와 대화를 마치고 난 다음 샤를은 라이스 교수와 협력해서 신대문자 해독본을 파악하기에 이르렀다.
‘생각보다 어려운 구조로 되어 있군.’
라틴어를 배울 때보다 어렵다. 더 많은 규칙과 예외 규칙들 때문에 배우느라 시간이 걸린다.
신대문자를 익히면서 동시에 번역을 해가는 작업을 사흘째 반복했을 때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났다.
그 석판에는 고대의 기록들이 담겨 있었다.
시대적인 생활상, 지리적 위치를 문자로 서술하거나 혹은 그 시대에 존재한 괴물들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자네가 찾던 게 여기 있네.”
[여신의 서]
충혈된 눈동자로 폐인처럼 번역만 하던 라이스 교수는 결국 옛 기록을 찾아내 번역을 끝마친 것.
“여기, 여신 오스구나아아텔의 일대기가 적힌 내용이 있어. 실로 흥미롭더군. 자세한 건 읽어보게나.”
나머지 석판도 번역하러 떠난 라이스 교수를 뒤로 하고 샤를은 자신이 찾던 기록을 드디어 읽어볼 수 있게 되었다.
[오스구나아아텔은 생명과 물의 여신이다. 최초에, 남대륙은 황폐하고 생명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황무지였다. 그녀는 북쪽의 높은 땅에서 내려와 더위와 굶주림에 허덕이는 자들을 먹이고 보살폈다. 황무지에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고, 오아시스에 물을 채워넣었다.]
번역의 다음 페이지로 넘겼다.
[곧이어 신으로 봉하게 되니, 피라미드의 중심에서 대관식을 치르고 신이자 여왕이 되었다. 오스구나아아텔은 고대의 인간들을 통합한 첫 번째 왕이자 여신이었다.]
신정일치의 사회라.
[오스구나아아텔은 자신의 나라와 결혼했다고 천명하며 평생 자손을 낳지 않았다. 약 1128세. 오스구나아아텔이 죽은 나이였다. 그녀의 사후 왕국의 주요 인물들은 같이 순장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옛 고대 국가 오스나이의 멸망이었다.]
“뭐?”
자손이 없다고? 그리고 죽어?
[간접적인 원인은 대량의 순장 때문이었으나, 오스나이의 멸망을 직접적으로 일으킨 것은 고대 스노히 제국의 첫 번째 황제이자 신으로 불리는 시문두하였다.]
[시문두하는 오스구나아아텔이 가진 신물을 훔쳐 달아난 배신자였다. 시문두하가 가진 신물의 힘으로, 신이 된 그는 오스구나아아텔의 모든 흔적을 지우고 자신이 유일신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거짓이다. 애초에, 그는 신 조차 아니었으니.]
이 뒤의 문장은 없었다. 석판이 세월의 흐름에 밀려 부서져서 나머지 부분을 알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문제가 생겼는데.”
샤를은 턱을 괴고 추측을 시작했다. 렘 노인의 제자들은 하나같이 자손을 봤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의 정신에 깃든 석판을 혈족 계승으로 물려줘야했기 때문이었다. 후손들이 그 석판을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것은 자동적으로 계승된다.
그런데 오스구나아아텔은 그렇지 않았다고 했다.
‘렘 노인의 제자들이 서로 얼마나 믿고 있었을 지는 알 수 없어. 맨 처음, 서로 석판 조각을 수호하기로 결심했는 데, 나중에 가서 마음이 바뀌었을 수도 있지.’
천 년이라는 세월은 그만큼이나 긴 세월이었다. 신념이 변질될 정도의.
“신념은 변질되고 신뢰는 부서질 수 있지만, 신앙은 영원히 남는다.”
문득 어디선가 들었던 구절이 떠올랐다. 신이 된 오스구나아아텔이 죽었을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신의 신앙을 영원히 지키려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실패했다면?
‘시문두하는 오스구나아아텔과 어느 방법으로든 연결되어 있었어. 배신이라는 표현이 있는 걸 보면 혹은 오스구나아아텔의 세력에 속해있었던 것이겠지. 신물을 훔쳐냈다고 할 정도였으니, 그 신물이 무엇인지 알아낼 수 있고 그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을 거야.’
순장을 당하고 싶지 않아서 오스구나아아텔을 배반한 걸까? 그럴 수도 있다. 죽음은 모든 행동을 이끌어낼 수 있는 아주 확실한 동기였다.
‘죽고 싶지 않았던 시문두하는 오스구나아아텔의 신물을 훔쳐 달아나서 스노히 제국을 세웠다라. 말은 되는 군.’
석판의 서술에는 시문두하는 결코 신이 되지 못했다고 했다.
‘그 신물이라는 것. 혹시 석판 조각일까?’
어떤 방법을 사용했는 지 몰라도, 정신에 깃들어 있던 석판을 현실로 꺼내는 방법이 있긴 했다. 그의 아버지의 껍데기를 썼던 비스타 헥센테르프는 실제로 석판을 현실로 꺼내오기도 했었다.
오스구나아아텔의 내면에 있는 석판을 현실로 꺼낸다?
‘근데 그게 가능해? 오스구나아아텔은 렘 노인의 제자였어. 그리고 석판의 힘을 현실로 꺼내 쓸 수 있는 존재기도 했지.’
그렇게 강력한 존재에게 무슨 일이라도 벌어졌던 걸까?
샤를은 나머지 석판을 번역 중인 라이스 교수에게 가서 다른 기록도 확인해보려고 했다.
드레이크는 라이스를 보조해주긴 했지만 주력으로 번역하는 사람은 라이스였다.
석판이 있던 곳에, 라이스 교수는 아예 숙식까지 이곳에서 하면서 먹고 싸는 시간을 제외하면 대부분 번역 작업하는 데 미쳐 있었다.
“찰스. 다른 기록을 찾고 있는…….”
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라이스 교수가 뭔가 먹고 있었다.
우드득. 우드득.
오른손으로는 석판을 바라보면서 글을 쓰고 왼손으로는 손을 뻗어서 쟁반 위에 있는……바퀴벌레를 먹고 있었다.
우드득. 우드득.
라이스의 우적거리는 입술 사이에 바퀴벌레의 다리가 끼어 있었다.
순간 샤를은 자신의 계몽 수치가 돌아버렸나 싶었다. 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 돌아버린 건 라이스 교수 쪽이었다.
“찰스 라이스!”
“응? 불렀나?”
“자네 지금 뭘 먹고 있는 거지?”
“간식이잖나. 남대륙에서 만든 전통 과자라는 이 굴납자문이라는 거, 참 맛있군. 밀가루로 튀긴 경단이라는데…….”
“자네가 먹고 있는 게 뭔지 보게!”
샤를의 눈에서 불꽃 같은 영성이 흩뿌려지고 목소리에 노호같은 영혼이 깃들자 그 호통에 찰스가 화들짝 놀랐다.
“뭐? 뭐야? 우, 바, 바퀴벌레?”
그는 즉시 토악질을 하듯 구역질을 하면서 먹은 벌레를 뱉어냈다.
걸쭉한 단백질이 되어 있던 것들이 그의 위장에서 튀어나왔다.
샤를은 이상한 것을 눈치챘다. 라이스는 토하면서 자신의 왼손을 털어댔는데, 기이할 정도로 오른손은 딱 붙어서 번역을 진행하고 있었다.
마치 오른손의 물건만은 별개의 것이라는 듯이, 라이스 교수가 보고 있지 않는 데도 속기사가 필기하듯 엄청난 글자를 적어내고 있었다.
샤를은 당장 달려 들어서 라이스 교수의 만년펜을 잡았다.
“번역을 멈춰!”
“뭐, 버, 번역이라니!? 히, 히익!?”
한참 토악질하던 그는 자신의 오른손이 전혀 통제되지 않는 것을 깨닫고 놀라서 괴성을 내질렀다.
샤를은 라이스의 오른손을 양손으로 잡아당기는데도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을 느꼈다. 무언가가 이 오른손에 씌여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절단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는 해수 두꺼비의 힘을 빌렸다. 그제야 라이스 교수의 손이 멈춘다.
샤를은 만년필을 꺼내서 그대로 양손으로 들고 쪼개버리는 방법으로 이 광기들린 행위를 끝내버렸다.
“대, 대체. 방금은 뭐지?”
“자네는 뭔가에 씌인 거야.”
“나, 난 아미티지 선생님께서 주신 보호의 묵주를 차고 있었는 데…….”
아미티지가 만든 묵주를 뛰어넘는 신비가 깃들게 되면 그런 것은 별 의미가 없어진다.
신비는 더 큰 신비에 의해서 다시 쓰여질 수 있었으니까.
라이스는 얼른 수건을 꺼내서 자신의 손을 닦고 퀭한 눈동자로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바닥이 개판이 벌어져 있다. 샤를은 지금 번역되고 있는 석판의 제목을 읽었다.
[ㄱ■ㅡ■하■나JA드& ―■ㅗㅓ■]
순식간에 현기증이 들자 샤를은 고개를 돌렸다. 제목을 읽고 있는데도 정신이 어지러울 정도로 계몽 수치가 늘어난 것이 느껴진다. 급격한 계몽수치 증가로 인해, 샤를은 심상 세계로 빠르게 들어가서 중화제를 사용했다.
코로 계몽을 잔뜩 꿈조각으로 변환한 이후에 현실로 되돌아오자 글자가 제대로 보인다.
[그하나자드의 서]
[경배하라. 그분이 계신다. 경배하라. 그분이 계신다. 경배하라, 그분이 계신다.]
[3만 광년 밖에 기믈란 성계에서 숭배자들이 일어섰다. 지하드를 말한 것이었다. 그 행성에 쳐들어가, 이단자들을 모두 몰살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그분께서 태어난 성계로 가는 것은 성스러운 성지를 방문하는 것과 다름 없다. 그분을 내친 스승을 죽이고 그분의 사형제도 죽이자. 그리고 오롯이 그분만이 남게 될 것이다.]
[선행자 시문두하가 이미 먼저 출발했다. 그가 길을 열 것이다.]
[포탈을 여는 주문을 적는다. 아스, 라, 기니, 드레곯, 아짐, 비케헬, 그닌, 귄, 시디 에, 디이]
“썩을 기록이군. 석판을 종이책으로 번역하면서 이 종이책이 마도서로 변해버렸어.”
전부 쓰지 못하게 막아서 미완의 마도서로 남았지만, 어쨌든 이건 마도서다.
이 주문은 차원문을 여는 주문이다. 특히 이족을 부르는 주문이다.
포탈을 여는 주문을 완벽히 외우면 다른 성계로 가는 차원문이 열리게 될 거다. 방향은 아마도 그쪽에서 이쪽으로 오는 일방통행이겠지.
하지만 이 마도서에서 기록된 내용 중에 샤를의 흥미를 끄는 내용이 있었다. 선행자 시문두하라는 기록이 있다.
기록에 의하면 시문두하는 일단 이 가믈란 행성계의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무슨 종족인지는 차치하더라도, 외계에서 온 위협이라.
이 정도면 오스구나아아텔이 당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왜 시문두하는 오스구나아아텔을 공격했지?’
그하나자드의 서에는 무언가를 숭배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분을 내친 스승과 사형제…….
“음?!”
어쩌면 이 마도서에 적힌 그분이라는 것이……. 여태 행방을 알 수 없었던 배신자 사이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분명히 그는 이계로 도망쳤었지.
‘이계를 통해서 움직이면 물리 세계의 거리라는 건 의미가 없는 수준이니까. 3만 광년 너머의 외계 행성에 사이먼이 정착했더라도 이상할 것은 없지.’
하지만 이건 아직 추측의 영역이었고 확신을 위해서는 기록이 더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