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사이비 교주가 되었다-146화 (145/221)

제146화 - 하지만, 이건 이상하다. 샤를의 운명 조작 주문으로 보았을 때, 트리메스 교수가 얽히는 실은 없었다.

그의 개입을 전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라면 왜 지금에서야 개입한 것이지? 처음부터 흑막 노릇을 하지 않고 개입했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을 텐데.

샤를은 그의 등장으로 여러 가지를 깨달았다. 운명 조작 주문은 완벽하지 않다. 일반적인 운명을 가진 존재들은 예측할 수 있고 조작할 수 있지만, 헤르메스 같은 특별한 존재는 예측도 불가능하고 조작할 수도 없다.

샤를은 필사적으로 적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려고 하면서 생각했다.

공포에 잡아먹히면 계몽이 자신의 의지를 깎아내릴 것이고, 그럼 광인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 게임을 하는 느낌으로 생각하자. 게임 속에서 헤르메스 트리메기스토스의 능력치는 얼마나 될까?

일단 세자리수는 넘을 것 같네? 이거 괴물이잖아?

그렇게 생각하다가 문득 샤를은 3자리 숫자의 스탯을 가진 존재는 현실에 있게 되면 공간이 찢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약간의 혼란 끝에 눈앞의 트리메스 교수는 진짜 진신(眞身)의 힘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기껏해야 화신(化神)이고, 껍데기 수준이다.

왜 심층의 이계의 신들이 현실에 간섭하지 못하는가? 전부 차원 간 압력차 때문이다. 고스탯을 가진 존재들은 물리 세계에 존재할 수 없으니 자신들의 부하들에게 신성의 씨앗을 줘서 해결하려고 했던 것이 아닌가?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트리메스 교수가 등장했다는 건 자신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쓰여 있나 보지? 괴테의 만년필에서 서로 공멸하게 되어 있다고 말이야?”

“그렇게 시나리오를 짰기 때문이죠. 이렇게 된 것을 보면, 괴테의 만년필이 맛이 갔던가, 아니면 당신이 뭔가 ‘속임수’를 쓰고 있는 것 같군요.”

정확히 말하면, 이번에 석판을 다 소화해내고 깨달은 주문 창조 능력이다.

예전에도 사용했었는데, 괴테의 만년필은 알고 있는 정보만 적용해서 시나리오를 완결을 낸다. 시나리오가 진행되는 도중 괴테의 만년필에 입력되지 않은 정보가 나타나게 된다면 이야기가 뒤틀어지게 된다.

거기다 이번에 얻은 능력은 괴테의 만년필을 카운터치는 주문이기도 했으니.

‘같은 유물에 몇 번이나 얻어맞게 될 줄은 몰랐는데.’

벌써 세 대째다. 바이스 산 산장에서 한 번, 섀터 섬의 정신 병원에서 한 번, 그리고 메트로폴에서 한 번.

샤를은 눈을 번뜩였다. 이번에 트리메스 교수에게서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 만년필을 받아낼 생각이었다. 더 맞을 순 없지. 그건 원래 내 거야.

“이런……. 어쩐지 곤란하군요.”

눈을 가늘게 뜬 트리메스 교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나같이 적대적인 모습. 만신창이일 거라 생각했던 샤를은 멀쩡한 모습으로 남아있고, 그자의 부하들이 둘러싸고 있다.

정말로 예상 외다. 두 번이나 공간의 균열을 열고 싶진 않았는데…….

“하아, 어쩔 수 없군.”

그의 주변에서 검은색 공간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흑막 노릇을 하고 있는 걸 보면, 본신의 힘은 그리 강하지 않다. 샤를은 그렇게 판단했었다.

그리고 대충 들어맞긴 했다. 트리메스 교수는 그렇게 강하진 않았으니까.

하지만 트리메스 교수는 ‘무엇’인가에 연결되어 있엇다.

“주, 주변의 공간이.”

“검은색으로 변하고 있어.”

“아아아아.”

또 한 번 주변에서 공허가 열리기 시작했다. 현실의 일부를 파괴하고 나온다.

이건 꿈도, 이계도 아니었다. 무언가 다른 것.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그 어둠에서 섬뜩함과 공허감을 느꼈다.

가장 심각한 것은 유스티나로, 그녀는 예전부터 공허에 친숙하던 존재였다.

전엔 눈을 감거나 돌리기만 해도 그 파괴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실시간으로 붕괴되고 있다.

“두려워하지마. 저건 공허다.”

“공허요?”

“물리 세계의 토대에 존재하는 또 다른 위상의 공간 같은 거지. 엄밀히 말하자면 메트로의 또 다른 위상과 비슷하다고 할까.”

샤를이 침착하게 말하자 패닉에 빠질법한 사람들은 곧 정신을 되찾았다.

원래 공포는 무지에서 오는 것이었다. 샤를의 조곤조곤한 설명은 그들을 현실로 끌어내렸다.

“너무 간단하게 설명하시는군요. 샤를 헥센. 공허가 다른 위상이라니요. 계몽주의자들 사이에선 공허야말로 진짜 세계고, 물리 세계는 단지 그 위에 지어진 집 같은 거라고들 말하지 않습니까?”

“그게 진실이라면 말이지.”

샤를은 그런 설정 놀음 대신 공허 안에서 얼핏 엿보이는 놈의 신체를 바라보았다.

‘헤르메스는 인간 형태의 신이야. 신이 되고 나서도 인간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지.’

하지만 공허의 저 안에는 얼핏 다른 것이 존재하고 있었다.

마치 수많은 용의 머리들이 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수없이 많은 머리를 갖고 있었다는 전설상의 생물, 히드라처럼.

아니, 아니지. 저 비늘색. 오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진짜 히드라잖아?”

“공허 속에서 기르는 제 두 번째 모습이랍니다. 좀, 그로테스크하게 생기긴 했죠.”

신급 존재는 자신의 화신을 여럿 두기도 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히드라였나.

헤르메스 본인이 최고의 마도사이기도 했으니 전설상의 생물을 길들여서 화신으로 만드는 것도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공허 속에서 히드라가 꿈틀대면서 용의 머리를 내밀었다.

“자, 모조리 씹어먹어 주겠습니다! 엔딩을 망치는 자는 용서하지 않겠습니다!”

히드라의 머리들이 공허속에서 튀어나왔다.

제일 먼저 움직인 것은 플로나였다. 샤를에게 향하는 히드라의 머리를 대검으로 내리쳤다.

그러나 히드라는 뒤로 훅 빠졌다. 그 와중에 유스티나와 모리에게도 히드라의 머리들이 날아갔다.

“우와아아앗!”

“자, 누나 한테 안겨!”

유스티나는 모리를 짐짝처럼 잡아당기더니 그대로 몸을 훌쩍 날리면서 민첩하게 히드라의 머리를 피해냈다.

“너희는 이 길로 도망쳐!”

샤를은 그렇게 외치고는 정신을 집중해 성배조각품으로부터 영성을 끌어왔다.

저렇게 거대한 생물에 대적하기 위해선 거대한 생물을 소환해내는 것이 옳다.

심상 세계에서 크라켄을 소환하려던 샤를은 백기사가 소리치는 것을 들었다.

‘뭐지?’

백기사는 필사적으로 그렇게 외쳤다. 자신을 꺼내달라고 말이다.

샤를은 목적을 바꿔서 나비들을 이용해 백기사를 소환해냈다.

그러나, 소환된 백기사는 어딘가 달랐다. 여태 사용하던 검이 아니라 창을 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응?”

“백기사의 몸이 변했군?”

이것도 세 번째 석판을 각성한 결과인가? 샤를은 잠깐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트리메스 교수가 공허 사이에서 낄낄거리는 걸 들었다.

괴테의 만년필 효과의 덕인지, 말하는 것을 즐거워하고 있었다.

“저자가 누군가 했더니, 오래전 용을 처치했다고 알려진 전설의 용살자가 아닌가? 퀸테우스 호라티우스.”

“용살자?”

샤를은 그 칭호에 태곳적 존재 하나를 떠올렸다. 전설상이라고 칭해지는 렘 시대 때의 존재로, 용을 처치했다는 위명을 얻었다고 하였다.

백기사의 이력에 대해선 전혀 아는 바가 없었기에, 헤르메스가 하는 말은 처음 듣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런 존재가 어째서 석판의 수호자가 되어 있는 지까지의 과정또한.

‘애초에 용 같은 게 현실에 나타날 리 알았냐고!’

히드라, 와이번, 드레이크 이런 종류의 신비 생물들을 죄다 용종으로 구분하긴 했다.

백기사는 마치 몇 배나 강해진 듯한 모습으로 창을 들어 날았다. 히드라의 머리를 베자, 그 창날에서 어마어마한 불길이 뿜어져 나와 베어버린 부분을 모조리 지져버렸다.

“이거, 위험한데. 눈에 안 보이는 적은 어떨까.”

트리메스 교수는 주문서를 꺼내들고 주문을 외워댔다.

샤를이 몇몇 주문을 날려서 트리메스 교수를 막아보려 노력했지만 별 소용이 없는 듯했다.

그의 목소리는 여러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겹쳐 들렸고, 순식간에 주문을 다 외운 트리메스 교수가 사용한 주문이 무엇인지 드러났다.

바로 투명화 주문이었다. 공허 속에서 얼핏 드러났던 히드라들이 죄다 투명해진 것이었다.

샤를은 핀치에 몰렸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강한 백기사라도 보이지 않는 적을 상대로 싸운다고?

그러나 그의 예상을 깨고 백기사는 놀라운 신위를 발휘 했다.

보이지 않는 적이 다가오자, 단 번에 또 다시 머리를 베어냈던 것이다.

압도적인 위용이었다. 오히려 달려들어서 상대방을 조각냈다.

수많은 머리들은 엄청난 속도로 베어지고 그대로 불꽃으로 지져 곧바로 머리가 재생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굉장하군.”

“씁.”

샤를이 감탄하고 트리메스 교수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 엄청난 신화속 전투에서 보고 있는 구경꾼들은 모두 방관자였다.

그만큼 엄청난 전투였다. 그틈을 타, 샤를은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옆에서 플로나가 주변을 둘러보면서 호위하고 있었으나 안색이 별로 조지 않았다.

무장혈사제의 대검 때문에 손잡이에서 꾸준히 플로나의 피가 빨려서 검에 들어가고 있었다.

타임 리미트인 셈. 플로나의 보호가 끝나기 전에 샤를은 트리메스 교수에게 다가갔다.

그 사이 거대하고 투명한 히드라의 머리가 샤를을 노렸으나, 망토를 펄럭이며 나타난 백기사에게 차단되었다.

“댁을 죽여도 죽지는 않겠지?”

“당연한 것을.”

트리메스 교수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는 지금 껍데기일 뿐이다. 진짜 신체를 죽이지 않는 이상, 물리 세계의 육신이 죽어도 부활하겠지.

샤를은 그의 상의 한쪽에 꽂혀 있던 괴테의 만년필을 그대로 빼앗았다.

“내 물건, 내가 가져가겠어.”

“지배의 권능을 써뒀더군. 내가 준 능력은 잘 쓰고 있나?”

“왜? 가져가게?”

제롬이 갑작스럽게 반역을 저지르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지만, 헤르메스가 준 능력을 빼앗아가서 놈과 연결점이 없어진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

“아니지. 그럴 생각은 없다. 지배의 권능은 자네가 내게서 정당한 대가를 받고 가져간 능력이니까 말이지. 우린 지배의 권능을 통해 소통할 수 있을 거라네.”

“내가 왜 그래야하지?”

“아까도 말했듯, 자넨 나의 대적자니까. 이번에는 이 정도로 끝내기로 하지.”

백기사는 드디어 히드라의 모든 머리를 베고 기어코 히드라의 보이지 않는 심장에 구멍을 꿰뚫어버린 참이었다.

트리메스 교수는 스르륵 미끄러지듯이 공허속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말했다.

“내가 원하는 건 손에 넣었으니까 말이야.”

그 말에 샤를이 눈을 돌렸다. 어느새, 쓰러트렸던 인형의 시체가 없어진 상태였다.

알료샤의 시체를 들고 도망친 것. 공허 속으로 추적할 수는 없다. 그곳은 인간 같은 필멸자가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으니까.

트리메스 교수가 사라지자마자 플로나가 비틀거렸다.

“플로나.”

“괘, 괜찮아요 샤를님.”

샤를은 대검을 플로나의 손에서 빼내고 그녀를 자신의 어깨에 기대게 했다.

과다출혈로 얼굴이 창백해보였다.

“저 말이에요. 샤를님께 도움이 되었나요?”

“물론이지.”

“다행이야.”

그 말을 끝으로 혼절한 플로나가 스르륵 무너졌다. 샤를은 그대로 플로나를 부축했다.

“이 정도로 끝나서 다행이군.”

말 그대로, 트리메스 교수가 조금만 더 준비해왔더라면, 어떨지 두려워졌다.

트리메스 교수는 예상치 못한 모습에 당황한 것 같았으나, 앞으론 이 정도의 위협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