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2화 -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인기척은 남아 있지 않았다. 싸늘한 바람만이 이 지하실을 맴돌았을 뿐이었다.
샤를은 눈을 부릅뜬 요나스 샤프트의 시체에 다가갔다.
‘확실히 죽었군.’
맥을 재어 볼 필요도 없이 가슴에 구멍이 뻥 뚫려 있는 상태.
요나스 샤프트는 이번이 두 번째 죽음이었다. 첫 번째는 유리관에서 신성의 씨앗을 흡수하는 도중 난입한 샤를이 깽판을 쳐둬서 익사.
그 뒤 조각 기계의 은총을 받아 되살아난 뒤에는 기계로 대체한 자신의 심장을 달고 있었다.
‘지하의 메트로에서 요나스를 만났을 때는 깜짝 놀랐었는데.’
더군다나 개틀링건을 난사하면서 따라붙는 귀신 같은 모습을 보면 터미네이터 뺨치는 수준의 괴물이었다.
그때, 샤를은 기지를 발휘해 요나스를 메트로로 밀어버렸고 열차에 치인 요나스는 완전히 박살이 났었지. 그 뒤로 소식이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죽어 있는 모습을 보니, 오히려 당황스럽다.
요나스를 만져보았을 때, 시체에 온기가 남아 있었다. 죽은 것은 얼마 되어 보이지 않는다.
점술을 통해 과거를 보는 것은 미래를 보기보다 더 쉽다. 특히, 죽은 지 얼마 안 되어 온기가 남아 있는 시체는 더더욱.
그의 피 중 일부에 손가락을 대고 이것을 촉매로 사용해 점술을 펼쳤다.
그러자 시간을 거슬러 그가 죽었던 장면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다.
그 장면은 이전에 점술로 알료샤를 바라보았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같은 공간, 같은 장면에 알료샤를 볼 수 있었다.
그 인형은 맨 처음과 같았다. 표정은 전혀 변하지 않았고 무표정하다.
그 앞에는 아직 그 시점에선 살아있는 요나스 샤프트를 볼 수 있었다.
그는 열차에 치인 뒤에 마피아들의 거리인 선데이크 거리를 접수한 뒤 칩거했었다.
그의 안색은 매우 창백해서 시체처럼 보였지만, 표정만큼은 희열 그 자체였다.
“내가 만든 조각품은 틀리지 않았어.”
이 작은 공방에서 만든 인형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성과를 거뒀다.
“첫 번째 습격은 실패였지만, 그래도 앞으로의 가능성이 있다. 역시 아직 그분의 가호가 남아 있는 것이 분명해.”
정말로 조각 기계의 가호가 남아서 그가 알료샤라는 전투 인형을 창조할 수 있었는지는 미지수였으나, 그는 그렇게 믿고 있는 듯했다.
“하하하하하하하! 역시, 나보다 강해! 알료샤.”
“기계는 사람의 조각한다.”
“그래, 그래! 넌 내가 만든 걸작품 그 이상이야.”
그리고 알료샤는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마치 허공에 존재하는 무언가를 바라보는 것 같다.
“인형은 훔쳐보는 자의 꿈을 절단한다.”
그림자가 뭉쳐서 어느새 가위검으로 변하더니, 보이지 않는 허공을 ‘절단’했다.
여기까지, 샤를이 미리 알료샤의 신체를 단서로 점술을 친 것이다.
‘그렇군. 알료샤의 신체 일부를 단서로 점술을 치면 훔쳐보는 자를 막아낼 수 있으나, 다른 사람을 통해 간접적으로 점술을 치면 알아낼 수 없는 거야.’
한 가지 알았다. 그 장소에 같이 있었던 요나스 샤프트의 피를 사용해 점술을 쳤을 경우, 그 장면을 볼 수 있는 것.
“오, 알료샤. 누군가 훔쳐보고 있었던 거냐?”
“그의 꿈을 절단했다.”
“잘했다. 점술 방어까지 완벽하게 적용되고 있는 모습이군. 다음 업그레이드 때 그 점은 기억해둬야겠어.”
이 장면까지만 보면, 갑작스럽게 일이 일어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성과 이상의 능력을 낸 자신의 창작품에 만족해하는 한 청년이 있을 뿐인데.
그때, 갑작스럽게 일이 벌어졌다. 알료샤의 눈이 붉은 번뜩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삐걱거리는 듯한 관절의 움직임을 몸소 표현하더니 자신이 들고 있던 가위검을 요나스에게 돌린다.
“……알료샤?”
“기계는 사람의, 조각, 한다.”
“그게 무슨 소리냐!? 난 네 아버지야! 창조주라고!”
푹. 알료샤의 가위검이 요나스의 가슴에 박혀 들었다.
“이럴 리가 없는데……. 분명히 설계는 완벽했는데.”
그게 그의 마지막 유언이었다.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쓰러진 요나스의 가슴을 그대로 가위검으로 잘라낸다.
거죽을 걷어내고 티타늄 재질의 강철 늑골도 분리한다.
마치 자신이 만든 기계를 분리하듯이 조심스럽게 움직인 알료샤는 아직도 뛰고 있는 요나스의 심장을 꺼냈다. 피가 엉겨 붙어 있었지만, 강철 심장은 아직도 영원히 타오르는 불꽃처럼 요동치고 있었다.
그리고 알료샤는 이 장소를 벗어난다.
샤를은 이 장면을 다시 재구성해서 읽었다. 알료샤가 요나스를 죽이는 장면이 너무 부자연스럽고 뜬금 없었던 것이다.
요나스의 말대로, 그는 알료샤의 창조자였다. 그를 죽일 이유가 없었다.
보통 조각구원회에서 이런 전투 인형을 제작하는 자는 특별한 문제를 일으키지 못하도록 제대로 된 알고리즘을 인형에 주입한다.
‘죽일 이유도 없었고, 죽일 수 있는 방법도 없었어. 그런데 알료샤는 요나스를 죽였다. 왜지?’
그렇다면 무언가 변인(變因)이 있을 것이다. 이 점술로 본 장면 속에서 그 변인을 찾아낼 수 있을까? 어렵지 않다.
‘요나스를 죽일 때, 알료샤의 눈이 붉은색으로 변했어.’
머릿속에서 눈이 붉게 변하면서 주인을 배신하게 만드는 유물이나 신비학 재료 혹은 주문을 찾아내 검색했다.
무지막지한 주입식 기억 노가다로 만들어낸 기억속 도감에서 샤를은 곧 그 원인이 될 만한 것 몇 가지를 찾아냈다.
그리고 더 압축해서 검사한다. 그러면서도 관찰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자세히보니, 알료샤의 허리춤에는 작은 돌멩이 같은 것이 매달려 있었다.
‘아스칸드의 적석(赤石)!!’
이계 중층에는 슬라반드라는 마도사 왕국의 도시가 있다. 그곳의 마도사들은 아스칸드의 적석이라는 것을 숭배하고 또 중요시여겼다.
이 아스칸드의 적석이라는 신비학 재료는 그 자체로 강한 욕망을 끌어내는 물건이었다.
아직 유물이나 마도구로 가공되지 않은 날 것의 적석이라도 충분히 그 힘을 갖고 있었다.
누구가 인형의 욕망을 부추겨서 주인을 배반하게끔 만든 것이 틀림 없었다.
‘또야, 여기 있으면 이상한 것들이 있어.’
아스칸드의 적석은 이계를 드나들 수 있는 극소수의 인물만 얻을 수 있는 물건이었다.
오라클 경매장에서도 희귀한 신비학 재료였다.
그런데 이것이 알료샤의 허리춤에 매달려 있다?
‘큰일났군. 말려든 거야.’
어째서 알료샤에게 그 적석이 있는지는 도무지 알 수 없었으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누군가 지금 조율하고 있다.
이 느낌, 오랜만에 느껴지는 이상할 정도의 위화감.
‘괴테의 만년필이 발동 중인 거야.’
지금 샤를은 시나리오 안에 들어와 있다. 시나리오를 조율하는 자는 어딘가에 있고.
‘무력하게 휘말릴 수는 없어.’
예전에는, 괴테의 만년필에 휘둘렸다. 하지만 지금은 샤를이 스스로 돌파구를 만들어야했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다. 이야기의 전체 스토리를 알 수 없었다는 점이었다.
지금 보이는 것은 바로 앞의 미래 뿐이었다.
‘알료샤가 기계 심장을 가져간 이유? 당연히 자신이 사용하기 위해서지.’
기계 심장에는 부서진 신성의 씨앗이 들어있었다. 부서져서 완전히 개화하지 못하더라도 신성의 씨앗은 심층 이계의 신들이 내어준 것.
그것 때문에 요나스 샤프트가 부활한 것이고, 그것 때문에 요나스 샤프트가 아직까지도 조각 기계와 간접적으로 이어져 있었었다.
그 기계 심장을 알료샤에게 넣는다면 어떻게 될까? 지금보다 배는 강해져버릴 것이다.
‘어쩌면 부서진 신성의 씨앗도 복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지금 해야 할 일은 알료샤를 쫓는 거야.’
점술은 심상 세계 안에서 펼쳤으므로 시간상 뒤처지지 않았다. 아직 시체가 따뜻하니 멀리 가지는 못했을 것이 분명했다.
*
프레데릭 웹스는 기어코 트리메스 교수의 은신처를 찾아냈다. 압도적인 자본력과 추적을 도와주는 유물들의 힘을 총동원한 결과였다.
재단은 이례적으로 벌어진 이 사건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고 클라이언트의 유물을 도둑질한 대상을 자체적으로 추포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할 계획이었다.
재단에는 몇 가지의 집행 부대가 있다. 그중에 무력 진압에 특화된 부대가 있었다.
래빗 팀.
라쿤 팀이 집행 부대 중에서도 요인 경호, 지역 방어에 특화되어 있는 부대라면 래빗 팀은 공격, 소거 및 말살에 그 초점을 두고 있었다.
“메트로폴 동남부 쇼거스 거리에 트리메스 박사의 신병을 확인했다고 합니다.”
“좋아. 래빗 팀 출동. 봉인물 사용 권한을 2등급까지 허락한다.”
“대상이 S등급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부관의 말에 프레데릭은 한 숨을 쉬었다.
“높으신들은 1등급 봉인물을 사용하는 것을 꺼려. 도둑 하나 잡겠다고 메트로폴 전체를 혼란에 빠트릴 것이냐고 말이지.”
“단순한 도둑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무려 1등급 봉인물을 탈취한 자가 아닙니까?”
“그러게 말이야.”
어쨌든 프레데릭은 멀리서도 메트로폴 전체를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듯 볼 수 있는 유물 ‘천리경’을 들고 목표로한 트리메스 교수의 은신처를 계속 내려다보았다.
쇼거스 거리의 작은 카페테리아에서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는 트리메스 교수가 보인다.
그리고 곧 래빗 팀이 출동한다. 얼굴에 토끼 가면을 쓴 채 중장비로 무장한 기동타격대다.
흉악할 정도로 단련된 래빗팀은 봉인물의 일종인 토끼 가면까지 착용하고 있다.
라쿤 가면과 비슷한 효과를 지니고 있지만 이 가면은 조금 더 공세에 특화되어 있다.
신체를 강화하고 독가스 및 정신적 공격에서의 보호.
거기다 그들은 대량의 화기를 보유하고 있다. 연사가 가능한 소총과 투척이 가능한 수류탄, 샷건, 방패 등등.
“돌입!”
“돌입!”
복창하며 뛰어드는 래빗 팀이 트리메스 교수를 포위하고 총을 발사했다.
항복의 권고도, 제압할 생각도 없다. 반드시 죽이기 위해 투입된 집행 부대.
탄환은 족족 트리메스 교수에게 발사되었다. 트리메스 교수의 주변에 있던 행인들은 죄다 비명을 지르면서 도망쳤다.
트리메스 교수는 벌집이 되어서 온 몸에 구멍이 뚫렸다. 그가 마시던 커피는 어지럽게 바닥에 떨어졌고 그의 몸에서 흐르는 피와 섞여버렸다.
“제압 완료!”
“생명 반응이 아직 있다. 체크해!”
그렇게 조심스럽게 접근하던 래빗팀. 그런데 갑작스럽게 집행부대원들의 몸이 부풀어오르기 시작했다.
“음!?”
천리경으로 그 모습을 보던 프레데릭은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뭐야!?”
트리메스 교수와 일정 거리 이상 가까워진 래빗 팀원들이 저절로 부풀어오르더니 폭탄처럼 폭발했다.
“목표 타겟! 알 수 없는 이능력 사용중!”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발동하는 것 같다. 거리 유지, 원거리 공격.”
신중히 뒤로 물러서던 래빗 팀원 중 하나가 갑자기 소리쳣다.
“고, 공허! 공허가 보여!”
“무슨 헛소리……. 음?!”
다른 래빗 팀원들도 중얼거렸다.
“왜, 세상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보이지?”
“나, 나도 그렇게 보이는데.”
“2급 봉인물 ‘아르카리우스의 태양’을 사용한다.”
“좋아. 시작한다.”
몇몇 래빗 팀원이 봉인물급 유물 브로치를 꺼냈다. 그 브로치에서 불꽃처럼 타오르는 태양이 생성되었다. 이 태양은 곧 다양한 형태의 모습으로 변화하면서 적을 집어삼키게 된다.
하지만. 래빗 팀원 중 하나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소름 돋는 공포를 느꼈다.
“태양이, 공허에 잡아먹혔다.”
래빗 팀원의 브로치는 물론이고 태양까지도 허공에서 쑥하고 사라져버렸다. 래빗 팀원도, 그들을 바라보고 있던 관측자들도 화들짝 놀랐다.
“뭐하는 거야!?”
“공허가, 모든 것을 삼킬 것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프레데릭 웹스는 천리경을 내려놓고 귀에다 손을 가져다대면서 원격으로 그들에게 정신파를 보내는 유물을 사용했다.
“임무 중지! 임무 중지! 타겟을 내버려 두고 즉시 돌아올 것!”
“고, 공허 속에 무언가 있어! 괴, 괴물 같은 것이 그 사이에 있다고!”
“그, 그게 태양을 삼킨 거야!”
팀원 하나가 갑자기 그렇게 말하더니, 중력을 완전히 벗어난 것처럼 둥실 떠올랐다. 그리고 무언가가 낚아챈 것처럼 어디론가 끌려갔다.
“흐아아아아아아악!”
콰드득. 콰드득.
그들이 무엇을 보는지 모르겠으나, 확실한 것은 프레데릭이 보는 시점에서 그들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짓이겨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었다.
“퇴각! 퇴각!”
“흐아아아아아아악!”
다수의 래빗 팀원들이 퇴각했지만, 나머지 래빗 팀원들이 추격당했다. 그리고 그들은 무언가에게 잡아먹히고 있었다.
“신이시여.”
프레데릭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끔찍한 장면에 광명자의 성호를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