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사이비 교주가 되었다-141화 (140/221)

제141화 - 향초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긴 향대에 꽂힌 향이 천천히 피어오른다.

“카드 게임을 합시다.”

트리메스 교수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카드 덱을 섞었다. 흔히 볼 수 있는 트럼프 카드였다.

그의 앞에 앉은 상대는, 거울이었다. 정확히는 거울을 보면서 트리메스 교수는 카드 게임을 하자고 말했다.

스스로를 나르키소스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 방금 그렇게 생각했었죠? 스스로를 나르키소스라고 생각하는 것일까하고. 그러면 못써요. 나는 당신이 아닙니다.”

실제로, 거울 속의 존재는 트리메스 교수가 건네준 트럼프 카드를 받을 수 있었다.

“당신은, 지금 당장은 기억이 안 나겠지만 예전에 내 대적자였습니다.”

“그랬던가?”

“당신의 이름이 기억납니까?”

“어렴풋이 기억나는 군. 문글로즈다.”

렘 노인의 제자, 문글로즈는 거울 너머에서 카드를 받아서 자신의 패를 확인했다.

“그런데, 왜 카드 게임을 하고 있는 거지?”

“이거 섭섭하군요. 무한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신이 가진 통찰을 다 잃은 것 같군요. 자, 다이아 9가 나왔습니다. 더 받으실 건가요?”

“죽기엔 아깝군.”

“제 앞에 내려 놓은 패를 합치면 트리플인데요?”

“그래도 가자.”

문글로즈는 그렇게 말하면서 카드 게임을 했다. 물론 가진 칩을 잃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는 이미 예전에 가진 통찰력을 거의 전부 잃은 채였고 상대방은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니.

“저런. 이제 더 못봐주겠군요.”

“그래, 이제 생각났네. 당신의 정체말이야. 거죽이 달라져서 전혀 눈치채지 못했었다.”

“아, 그 발언은 금지입니다.”

“됐고, 날 이유를 말하는 게 어떤가? 난 분명히 그 공간에 있었는데 말이지.”

이계에서 꿈을 넘어서 잠깐 현신하느라 통찰력이 떨어졌다고 변명하듯 말한 문글로즈의 말에 트리메스 교수가 대답했다.

“어떻게 된 모양인지, 제 사냥감이 당신과 연결되어 있는 모양이군요.”

“연결? 잘 모르겠는데.”

문글로즈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내심 짐작가는 것이 있었다. 누군가 석판 조각을 모으기 시작하면 작동하게할 그의 안배가 비로소 작동하게 된 것이리라 추측했다.

‘이놈이 똥줄이 탄 이유를 알겠군.’

그렇지 않았다면 왜 하필 이계에서 문글로즈를 거울상 속에 소환할 리가 없었다.

“그래서 당신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할까 합니다. 인형 소녀와 젊은 신사의 이야기이지요.”

문글로즈는 삐딱하게 앉았다. 그의 눈길은 트리메스 교수의 왼쪽 가슴에 달린 포켓 주머니에 꽂혀 있는 만년필에 가있었다.

“이 인형 소녀는 한 광기의 천재에게서 제작되었답니다. 광기의 천재는 매일 같이 폐인이 된 몸으로 겨우겨우 인형 소녀를 조립했지요. 신도 감동한 모양인지 명품 인형을 만들도록 도와주었던 듯 합니다.”

“…….”

“광기의 천재는 인형 소녀를 이용해서 그의 경쟁자인 젊은 신사를 죽이기로 결심했답니다. 이 젊은 신사는 예전에 광기의 천재를 불구로 만든 장본인이었기 때문이지요.”

“…….”

하지만 향초가 타들어가기 전까지 거울에 소환된, 문글로즈는 트리메스 교수의 비극적인 ‘인형 소녀’ 이야기를 들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인형과 젊은 신사는 서로의 가슴에 칼을 박아넣고 비극적인 삶을 끝마쳤답니다. 짝짝짝.”

“재미가 없군.”

“문학적 소양이 없던 지라, 이 정도의 이야기 밖에는 못만들겠군요. 그 솔로라는 사람은 대체 얼마나 소설을 잘 쓰는 걸까요. 부럽기만 하군요.”

“흐아암. 이야기는 다 들어줬으니 난 돌아가보도록하지. 간만에 현실 세계는 재밌었다.”

문글로즈가 귀를 긁적이다가 드디어 향초가 끝나자 뒤도 보지 않고 거울 속에서 사라졌다.

뭐, 상관 없었다. 트리메스 교수는 괴테의 만년필이 충분히 잘 작동하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

오늘도 변덕스러운 메트로폴의 날씨. 아침부터 차가운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프레데릭 웹스는 한쪽 지붕 아래에서 신대륙산 시가를 입에 물고 있었다.

“후. 정보 공유인가. 까다롭게 하는 군, 그 부잣집 후계자는.”

끼어들지 못하게 하니 어떻게 추적이 이뤄지고 있는가는 확인해봐야겠다는 주주님의 말에 거부하긴 어렵다.

더군다나 그것이 추적대의 지지부진한 진전으로 인한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우리가 무능한 게 아니야. 이자가 신기루 같은 거지.’

재단에서 유물이 탈취되는 사건은 여러번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비하기 위해 몇 가지의 방법을 강구해뒀다.

그런데 이자는 제 발로 재단 내부까지 걸어와서 그곳에서 특정 유물을 빼냈다는 것이 문제였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지? 경호원, 보안 장치, 보안을 위한 유물, 여차하면 래빗 부대도 투입할 수 있었어.’

그런데 아무도 트리메스 교수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래서 재단 내부의 인물들은 트리메스 교수의 위험 등급을 S등급으로 격상했다. 이 정도면 최종 등급 바로 아랫 단계다.

리처드 웹스 재무 이사는 지금 상태가 안 좋아져서 자택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웹스 상단에 있는 그의 영향력 때문에 실각되지는 않겠지만 위신에 손상은 가게 되겠지.

그날 있었던 일을 조사하기 위해 프레데릭 웹스는 리처드 웹스와 대면했었다.

사적으로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지만 그들의 눈빛은 남을 대하듯 매우 날카로웠고, 철저하게 계산적이었다.

“그날 있었던 일에 대해 설명해주시기 바랍니다.”

“전에 진술했던 그대로야. 내가 기억하고 있는 건 전부 말했다네.”

“트리메스 교수를 오랜 지인으로 생각했단 그 말인가요?”

“맞아.”

프레데릭은 서류를 넘기면서 말했다.

“여기 적혀 있군요. 제도 대학 동창생이라고요.”

“동창생은 맞아. 하지만 그와는 그다지 친하게 지내지 않았다네. 이상한 사람이었거든.”

“이상하다뇨?”

“뭔가, 머리를 한쪽에 얻어맞은 것 같은 표정을 짓고 다녔어. 정신이 온전치 못한 건가 싶었지만, 그런 것 치고는 잘도 대학을 다니더군. 별 배경도 없는 것 같아서 인맥을 만들지도 않았지.”

“흐음.”

그럼 재단에 들어오기 전부터 트리메스 교수는 리처드 웹스를 세뇌한 것이 분명해보인다. 그래서 리처드 웹스의 행적을 쭉 둘러봤는데, 대체 어디서 당한 건지도 알 수 없었다.

“좋습니다. 청취는 이 정도면 되겠군요.”

“아들아.”

“재단 상무 이사 겸 경호대장 프레데릭 웹스입니다만?”

“……조심해라. 이번 일은 정말로 위험한 일 일지도 모른다. 내가 가진 모든 유물이 소용이 없었어. 한동안 난 그자의 꼭두각시 신세였지.”

드물게 충고하는 리처드 웹스는 무언가 직감하는 듯 했지만 프레데릭은 그의 말을 무시했다. 언제 아버지 노릇을 했다고.

“충고는 감사히 받죠. 그리고 마인드 컨트롤 등의 능력에 대항하기 위한 장비는 이미 다 갖춰져 있습니다.”

그 뒤로 빠져나온 프레데릭은 자신의 수완을 총동원해서 트리메스 교수의 흔적을 찾았다.

인시그니아의 수사기관의 협력까지 얻어낸 프레데릭은 트리메스 교수의 모든 기록을 발견해낼 수 있었다.

사람은 어딜가나 흔적을 남긴다. 제도 대학 졸업후 그곳에서 교수 생활을 했다. 얼마전 키에프 제국으로 출국 후 흔적이 없다.

“입국 심사가 없군. 하지만 분명히 메트로폴로 들어왔다.”

하지만 분명히 흔적이 있을 터. 압도적인 정보의 총량으로 프레데릭은 트리메스 교수의 흔적을 조여가고 있었다.

이제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된다.

*

며칠 전, 습격날.

“좆됐다. 좆됐다!”

보그다노프는 위기를 바로 알아채는 경향이 있었다. 누구보다 강자의 눈치를 많이 봐야 하는 입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지.

연소 도르래 상자의 내용물이 다 타버린 뒤에, 느긋하게 멀리서 망원경으로 저택을 감상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갑자기 창문이 깨지고 날아가는 그 인형이 보였다.

“이런 씨팔 튀어야겠다!

욕설을 퍼부은 보그다노프는 애꿎은 인형을 탓했다.

“썩을 인형년! 그렇게 이긴다고 자신만만하더니.”

거리 제한이 조금만 더 멀었다면 아예 이런 곳 따위는 오지 않았을 텐데.

보그다노프를 그 즉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리다가 겨우 문데이크 거리에 도착해서야 숨을 돌렸다.

그때 누군가 골목의 거리에 나타났다.

“이런 이런. 실패인가요?”

그 목소리를 듣자 보그다노프는 화가나서 선한 인상으로 보이는 남자의 멱살을 잡았다.

“젠장! 트리메스 교수인지 뭔지, 네놈! 이 유물로 적을 제압할 수 있을 거라면서!”

“사용 중에는 적의 모든 마법을 무효화 시킨다고 했었죠. 흐음. 아쉽게도 전투 도중에 무효화 되었던 것 같군요. 앞으로는 더 오래 탈만한 것을 집어넣으세요. 그 인형의 손가락이라던가 말이죠.”

“그, 그걸 말이라고!”

영성을 단련하고 있는 보그다노프는 근력이 그 전보다는 배는 늘었다고 자부했다. 그런데, 트리메스 교수는 보그다노프의 손을 아주 가볍게 잡아서 떨쳐냈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 앞에 보그다노프의 태도가 조금 공손해졌다.

“그, 근데 저 좀 도와주십쇼. 분명히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겁니다. 애지중지하는 그 인형에게 책임을 물을 리가 없으니 분명히 제게 올 것 같은데.”

“으음. 이걸 어쩌나.”

보그다노프는 트리메스라는 교수의 말에 고개를 숙였다.

데이저스트 비드통이라는, 조각구원회의 사냥개 놈에게 협박받아 강제로 조각구원회에 입교하게 되었다.

부하들에게 애꿎은 화풀이만 하던 나날이었지만, 영성을 다루는 법을 가르쳐 준다길래 좋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데이저스트나, 요나스라는 교주놈이나 오직 그를 소모품으로 취급하고 있는 것이 느껴져서 분통을 내뱉으면서 언제든지 배신할까 하던 차에, 트리메스 교수라는 남자가 나타났던 것이었다.

그는 기묘할 정도로 그에게 신뢰를 주면서 늘 그를 도왔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하나 방법이 있긴 합니다.”

“뭐, 뭐죠?”

“인형에게 이걸 건네 주세요.”

“이, 이게 뭡니까?”

그건 특이하게 생긴 보석 같은 것이었다. 마치 보석을 중심으로 혈류가 퍼져나간 것 같이 생긴 홈이 중앙에 있다.

“조각구원회의 손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 맞습니까?”

“예. 예. 당연히 그렇습죠.”

“이 보석을 인형에게 건네주면, 그 인형이 조각구원회에서 당신을 해방시켜 줄 겁니다.”

“저, 정말입니까?”

“물론이지요. 절 못 믿는 겁니까?”

“그럴리가요. 믿습니다 트리메스님!”

충분히 의심스러울 수도 있음에도, 보그다노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서인지 눈 앞의 남자는 신뢰가 간다.

“인형의 허리춤에 매달아 놓겠습니다.”

“그러도록 하세요.”

*

가장 위협적인 적이란 뭘까? 바로 성장하는 적이다. 처음 경험했던 건 고전 게임 속에서였다. 전쟁제작이라는 게임에서, 누군가 제작한 유즈맵이 있었다.

거기엔 가끔 플레이어를 죽이면 레벨업하는 몬스터들이 있다. 한 번 레벨이 따라잡히기 시작하면 플레이어만큼이나 성장해서 나중에는 추월한 뒤, 리스폰 되자마자 끔살 당하기도 한다.

보통 이런 몬스터는 리스폰 장소인 마을에 오지는 않는다. 그래서 그 적을 피해서 다른 적을 사냥한 뒤에 다시 시도하게 된다.

보통은 말이지.

하지만 이 적은 마을까지 쳐들어오는 성장형 괴물이다. 언제 어디서든 위험해지지. 보통 그런 게임이 있다면 망겜지지 치고 나가겠지만.

“이건 현실이란 말이지.”

그럼 모든 능력을 총동원해서 없애야한다. 알료샤라는 인형의 정체까지 알았으므로, 샤를은 긴밀히 대응했다.

알료샤의 근거지는 어디일까? 보통 빈민가를 떠올리기 마련이었지만, 샤를은 그 인형이 다른 곳에 둥지를 틀었을 거라 확신했다.

‘좀 의심가는 곳이 있긴 해.’

요나스 샤프트도 메트로폴 시민이었던 만큼, 그에게도 생업이 있었다. 메트로폴 변두리에서 수제목공예품 등을 판매하는 가구점이었다.

하지만 조각구원회 궤멸 이후 그 가구점은 지금 소유만 요나스 샤프트인 채로 아무도 관리하지 않았을 것이다.

샤를이 점술로 알료샤를 체크 했을 때, 그 위치가 바로 이 가구점의 내부인 것 같기도 했다.

샤를은 완전 무장을 끝마친 뒤에 밖으로 나섰다. 플로나는 자신도 싸울 수 있다고 했었지만, 언제 다시 습격당할지 모르니 한 장소에 모여 있는 것이 좋다.

더욱이 샤를은 그간 유물이 늘어나 강해져 있는 상태.

근접전을 벌이는 상대를 위한 특제 무기도 준비되어 있었다.

메트로폴 변두리에 있는 케르텐 거리는 중심가에 비하면 확실히 도시라는 느낌이 덜 들었다.

고층 건물은 없고 낙후된 건물도 많고 아직도 자동차 대신 말들이 끄는 마차가 많이 보인다.

도시가 워낙 커서 도시 중심부와 바깥의 차이가 이 정도나 된다.

‘저기군.’

허름한 건물 하나가 보인다. 예전에는 목공예품 등의 물건을 파는 곳이었지만, 지금은 전혀 관리가 되지 않은 폐가다.

우중충하게 흐린 날씨와 대비되어서 우울증을 일으킨다. 샤를은 권총을 꺼내서 안으로 진입했다. 흐린 날씨 때문에 낮인데도 밤처럼 어두웠다.

인프라비전을 눈에 적용하고 안으로 들어섰다. 허공에는 언제든 샤를을 호위할 수 있게끔 석검과 파기나레코르를 띄워놨다.

-으스스한데 쭈인.

-그러게. 확실히 뭔가 있는 건 확실해.

고요한 내부로 들어선다. 방 주변을 탐색하다가 샤를은 어느 한쪽에만 먼지가 적다는 걸 깨달았다.

가까이 다가가 문을 열자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왔다.

-음침한 놈들은 꼭 아래로 계단을 만든다니깐.

-지하실이 좋은가 봐.

시시껄렁한 소리를 내뱉고 있는데 아래로 내려갈수록 피냄새가 짙게 풍겨왔다.

조금 더 긴장하면서 아래로 내려가자 죽어있는 사람이 보였다.

“뭐지?”

옷차림새로 보아선 분명히 조각구원회의 신도였다. 하지만 후드를 재끼고 나니 안쪽에는 빡빡머리에 문신을 해뒀다.

-마피아군.

-쭈인 저기 시체가 더 있다?

안으로 들어서자, 즐비한 시체들이 보였다. 하나 같이 마피아 조직원이며, 동시에 조각구원회의 신도들이기도 했다. 비드통이 협박해서 신도로 넣은 자들이다.

“그럼 여기가 두 번째 근거지로 사용된 것은 확실한 것 같군.”

-쭈인. 여기여기. 쩔어!

파기나레코르의 말을 따라 안으로 들어서자 기계 부품이 가득한 장소가 나왔다. 요나스 샤프트는 자신의 힘으로도 샤를을 쓰러트릴 수 없자 혼신의 힘을 다해 인형을 창조하기 시작했다.

‘인형의 내부장치에 쓰인 기계들인가.’

이 기술력이면 전차나 전함도 만들겠다. 혀를 찬 샤를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곧 더 안쪽을 볼 수 있었다.

“!?”

그리고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요나스 샤프트가 의자에 앉아서 눈을 부릅뜬 채 죽어있었고 기계로 대체되었던 그의 심장은 완전히 통째로 뽑혀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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