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0화 - 엔시우스 혼블로워. 소속이 없는 야생의 영성자들이 모인 즈카펠 클럽의 수장.
모든 것의 수집가, 유물 관리사, 저주를 피하는 자.
그가 일하는 건물은 박물관에서 한 블록 떨어진 장소에 있는 고미술관 근처에 있었다.
미술관 옆에 있는 골동품 가게였는데, 일반인은 접근할 수 없게끔 결계가 쳐져 있었고 골동품 가게 안은 특유의 책 냄새인지 골동품 냄새인지 모를 퀴퀴한 냄새로 가득했다.
위부터 아래까지 온갖 곳에 골동품들이 장식되어 있었다.
원숭이의 두개골, 공룡 뼈를 전시해뒀거나 알 수 없는 글자로 된 부적들, 주문서, 마도서, 특이하게 생긴 롬 제국 유물이나 암흑기에나 썼을 법한 판금 갑옷 등등.
전문적인 오컬트 용품으로 가득했다.
일반인은 출입금지니, 손님은 샤를 한 명뿐이었다.
“어서 오게나.”
고대에 만들어진 기계를 조작하던 엔시우스는 고글형 안경을 내려두고 샤를을 바라보았다.
“여기까지 왔으면, 내 지인의 추천을 받았다는 건데, 누구의 말을 듣고 오셨소? 사실 그 ‘누구’에 따라 대우가 달라지곤 하지. 뭐, 인맥이라는 게 그런 거 아니겠소?”
추천이 아니면 들어올 수 없는 가게라는 뜻이었다. 엔시우스는 즈카펠 클럽의 인맥을 통해서 추천인들을 받았고 그들을 통해서 가게를 운영한다.
샤를은 사실 그와 구면이었다. 일방적으로 본 것뿐이지만.
만능의 재단사 카터 존스와 거래를 끊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그때 샤를이 카터 존스와 엮이면서 행운의 동전 사건이 벌어졌지.
“파테스트로피에게서 얘기를 듣고 왔습니다.”
“오? 그 아가씨가? 이거이거, 안으로 들어와서 편하게 앉게나.”
소개를 받아서 갔다고 하면 반겨줄 거라고 미리 얘기를 들어둬서 놀랄 것은 없었다.
“음. 목적이 뭔가?”
“유물 하나의 행방을 추적하고 싶습니다만.”
“유물?”
엔시우스의 눈동자에 호기심이 보였다. 샤를이 유물에 대해 설명했다.
“제3식 연소 도르래 상자라.”
엔시우스가 손을 번쩍 들자 허공에서 거대한 두루마리가 날아왔다.
“내 유물, ‘이센발드의 두루마리’는 한 지역의 특정한 것에 대해 모두 다 기록을 하는 유물이라네. 최소 천 년 전의 바이킹 주술사가 만든 유물이지. 이걸로 자네가 말한 것을 추적할 수 있다네.”
두루마리가 빙글빙글 돌면서 자동으로 이름을 검색하자, 그 행방을 찾을 수 있었다.
“비용은 뭘로 지불하겠소?”
“달란트로 하죠.”
“아니, 난 당신의 정보가 궁금한데.”
“정보?”
“그렇소. 당신이 누구고, 왜 이 유물을 찾는지 가르쳐준다면, 그것으로 대가를 셈한 것 치겠소.”
“위험한 호기심이군요.”
“정당한 호기심이기도 하지.”
위험하다는 것은, 샤를이 갑자기 돌아서서 엔시우스를 공격할 수도 있다고 위협한 것이었고, 정당하다는 건 엔시우스의 논리였다.
“잘 생각해보시게. 내가 만약 그 유물의 흐름을 자네에게 알려줬다가, 유물의 주인이 분노해서 날 찾아온다면 어떻겠나? 또, 자네가 누군지 몰라서 이 일의 여파가 얼마나 퍼지게 될지 예측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겠나? 내 골동품 상점은 폭삭 망하고 난 거리에 주저앉게 되겠지.”
사실 거리에 나앉는 것보다 목이 먼저 날아가겠지만.
엔시우스의 눈빛을 본 샤를이 입을 열었다.
“우선, 한 가지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유물의 주인이 당신에게 해를 입힐리는 없습니다. 그걸 알았을 때, 그는 이미 죽어있을테니까.”
“…….”
“또, 내 정체를 들으면 오히려 당신에게 문제가 생길 겁니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아는 게 힘이다라는 말도 있지.”
그건 이야기를 듣고도 그 여파를 감수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샤를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나는 무명 교단의 교주로 있는 샤를 헥센입니다.”
“음. 메트로폴에서 요즘 나타난다는 사교말이군. 교단끼리 격전을 벌인다는.”
“우린 사교와는 좀 거리가 멉니다. 멀쩡한 종교 단체죠. 아무튼.”
샤를은 잠깐 숨을 고르고 말했다.
“내 저택에 조각구원회의 암살자가 들이닥쳤습니다. 내 저택은 엄청난 수준의 보안 설계가 되어있습니다. 이 골동품 가게보다 더 잘 되어 있죠.”
자기네 가게보다 보안 수준이 더 높다고 하니 엔시우스의 이마에 미묘하게 힘줄이 돋았으나 다시 느긋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근데 그 모든 수단이 금지당했습니다. 제3식 연소 도르래 상자 때문이죠.”
“흐음. 그런가. 여기 적혀 있군. 상자 안에 사용자의 신체 일부를 넣는다. 머리카락이나 손톱도 상관 없다. 그리고 상자를 계속 돌리면 사용자는 모든 마법에 면역 상태가 된다.”
엔시우스가 말하자 샤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 유물의 흔적을 찾아내서 적을 추적할 생각인 것입니다.”
“그 말을 보면 습격자가 무사히 도망친 모양이로군.”
“유감스럽게도 그렇습니다.”
“흐음. 교단 간의 싸움인가.”
여러모로 귀찮은 일이었다. 엔시우스는 자세한 얘기를 듣고나서 판단을 내렸다.
‘별로 신경쓸 필요가 없겠군.’
이 교단 놈들은 메트로폴의 주도권을 얻고자 서로 미친 듯이 싸우고 다른 영성자들에게는 별 관심이 없는 경향이 있었다.
일단 그들의 ‘신’을 믿어야만 하는 전제가 있었으니까.
엔시우스는 두루마리를 열어서 나머지 모든 정보도 파악했다.
“흠. 어디 보자, 흔적이 여기있군. 그 유물이 맨 처음 메트로폴에 들어온 건, 30년전 5월 30일로 보이는군. 그 뒤로 소유자가 꽤 여러번 바뀌었네. 아, 내가 산 적도 있군.”
엔시우스는 자신이 산 것도 기억이 잘 안나는 노인이었다. 하긴, 그것도 그럴게 그가 수집하는 종류의 모든 유물, 수집품, 골동품들은 일 년에 수만 점이 넘는 엄청난 숫자였다.
“내 손에서 넘어가서 어떤 야생의 영성자의 손에 들어간 뒤, 음? 뭐야, 더러운 늙은이의 손에 들어갔었잖아.”
“더러운 늙은이?”
“아, 아미티지라고, 대학교의 먹물냄새나는 도서관에 틀어박혀서 제 잘난줄 아는 늙은이 한 놈이 있지.”
“…….”
아미티지의 이름만 보고도 험담을 할 정도니 둘이 사이가 극도로 나쁜 모양이었다.
“아, 여기있네. 최종적으로는 보그다노프라는 사람에게 들어갔군. 기록에 의하면, 음? 마피아라는 데?”
“그에게 그 유물을 넘겨준 자는 누구죠?”
“음 어디보자……. 어?”
갑자기 엔시우스의 안색이 사색이 되었다.
“뭐, 뭐지?”
“무슨 일입니까?”
“그, 글자가 지워져 있네!”
엔시우스는 기겁을 하면서 뒤로 물러났다.
“예, 예전에도 이런 적이 한 번 있었지. 그때 그 사람이 쫓는 것은 이계의 심층에 사는 고대 생물이나 초월자들의 이름이었어. 어쩌면 신급의 존재일 수도 있고.”
그는 부르르 떨면서 샤를을 바라보았다.
“자, 자네 대체 누굴 쫓는 건가?”
“알겠습니다. 그 정도면 충분하군요.”
“자네, 명심하게! 자네가 쫓는 것이 누구인지 몰라도, 되도록 피하는 것이 좋을 걸세. 그런 존재들과 엮여서 좋은 결말을 맞이한 사람은 없어.”
샤를은 엔시우스의 우려에 대답하지 않고 가게를 나갔다. 그건 주제 넘은 충고였다.
‘이름이 지워진 존재라.’
그러고보니, 그런 것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프레데릭 웹스가 그랬었지.
『트리메스 교수는 마도사이며, 자기 자신을 관찰한 기록을 지워버리는 유물이나 주문을 보유하고 있을 확률이 큽니다.』
이 정보로 추측해봤을 때, 범인은 트리메스 교수인 것이 맞는 것 같다.
갑작스럽게 메트로폴에 나타난 특별한 존재일 확률도 있지만 그럴 확률이 너무나도 낮다.
루미너스 조차 그런 능력을 갖고 있지는 않다.
그렇다면, 그가 단순 도둑이 아니라는 건가. 갑자기 샤를은 오한이 느껴졌다.
‘뭔가 이상해.’
괴테의 만년필……. 끔찍하게 많은 능력과 동시에 부작용을 지니고 있던 유물. 그 유물은 구체적이고 정확한 이야기를 할수록 그 이야기가 현실화된다.
만약 트리메스 교수가 괴테의 만년필을 들고 이번 일을 기획했다고 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뭐야, 왜 여태까지 그런 위기감을 못 느꼈지?’
샤를은 소름이 돋았다. 평소의 샤를의 성격상, 괴테의 만년필이 탈취되었다면 곧바로 달려가서 그것을 찾아냈을 것이었다.
그것이, 봉인 재단 측의 간곡한 요청에 의해 반려되자, 샤를은 그냥 단하게 목적을 접었다.
트리메스 교수가 무언가 새로운 이야기를 짠 것이 분명해보였다. 그 누구도 모르는…….
“대체 당신은 누구지 트리메스 교수?”
게임을 플레이하면서도 그런 존재는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러고보니, 슬슬 돌아가봐야겠군. 트리메스 교수처럼 오리지널 캐릭터야 얼마든지 나올 수 있는 거고.”
그리고 트리메스 교수가 누구든, 샤를과 별로 연관이 없는 사람이다.
응?
그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뭔가 이상하다, 갑자기 또 딴 생각을 했다.
왜 트리메스 교수가 별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거지?
무언가의 간섭이라는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한 샤를은 심상 세계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왜인지 모르게 정신이 또렷해지는 것을 느꼈다.
샤를은 노트를 꺼내서 글자를 적었다.
1. 트리메스 교수는 매우 위협적이고 두려운 존재일 것이다. 추적의 귀재인 봉인 재단에서 아직까지도 제대로 추적해내지 못하고 있다.
@프레데릭 웹스는 그 존재가 기록을 삭제하는 능력이 있을 거라고 했다.
@엔시우스 혼블로워는 그가 최소 이계 심층의 고대 생물이나 신급의 존재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어쩌면 둘다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2. 트리메스 교수는 괴테의 만년필을 탈취한 뒤 그것의 능력을 사용해 시나리오를 짰다. 그 시나리오가 무엇인지는 모르나 나와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3. 트리메스 교수는 조각구원회에 알게 모르게 도움을 준 것이 분명하다. 보그다노프가 가진 유물이나, 요나스 샤프트의 힘을 사용해도 만들기 어려운 강력한 전투 인형을 보면 그렇다.
4. 트리메스 교수가 위협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마음이 놓이고 논리적인 답변같이 느껴진다. 하지만 심상 세계에서 생각하면 그런 간섭에서 자유롭다.
@2번과 연관되는 이야기다.
5. 조각구원회를 사용해서 그는 나를 공격했다고 가정해보자. 스스로 직접나서서 공격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왜 다 무너져가는 조각구원회를 부추겼을까?
그러다가 샤를은 5번 질문에서 더 나아갔다.
6. 트리메스 교수는 조각구원회를 부추겨서 나를 습격하고 주의를 돌릴 생각이다. 이유가 뭘까.
@어쩌면, 나와 요나스 샤프트의 공멸을 원할지도 모른다. 그 사이에서 어부지리를 취하는 것이다.
@어쩌면, 자신이 벌이는 다른 일에 내가 끼어들어서 간섭하려는 것을 막을 지도 모른다.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른다.
샤를은 수첩을 닫았다. 여태까지 샤를은 이 사건이 단순히 조각구원회가 습격한 일이라고 단순화하고 있었다.
그러나 트리메스 교수라는 의외의 인물이 끼어들자 모든 것이 바뀌었다.
‘이건 내 생각보다 더 위험한 일일지도 모르겠어.’
뒤에 누군가 있다는 것을 알아낸 뒤, 샤를은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했다.
당장 조각구원회와 싸우는 것은, 트리메스 교수의 의도대로 되는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조각구원회를 무시할 수는 없다. 그들은 사력을 다해 무명 교단을 공격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트리메스 교수의 흔적을 쫓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단서가 거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하지?
“몸이 두 개 였으면 좋겠는데.”
하나는 포기해야만 한다. 그러다가 샤를은 문득 떠올렸다.
“어라, 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했지?”
둘 다 할 수 있는 계획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