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9화 - 유스티나는 멍하게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모든 것이 바쁘게 움직이는데 그녀는 방 안에 있었다.
제롬 모슌 선생은 유스티나의 두개골에 박힌 탄환을 제거하고나서 예후가 중요하다고 했다. 워낙 뇌랑 가까웠던 부위라고.
기억이 사라지거나 이상한 감각을 느끼게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탄환이 사라지자 구멍이 뚫린 것처럼 공허감이 몰려왔다.
탄환에서 치솟던 엄청난 힘은 사라졌다. 끝도 없이 강해질 수 있을 것 같던 고양감은 이제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등이 가렵지도 않았다. 머릿속에서 들려오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마치 부표를 놓쳐버린 배처럼 그녀는 아무 곳에나 흘러가는 것 같았다.
가장 치명적인 곳에 가장 가까웠던 그것은, 유스티나를 효과적으로 파괴했다.
예전의 그녀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변했다. 말투는 그 나이대의 평범한 여자아이 말투로 변했고, 하반신이 반쯤 마비되어서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었다.
유스티나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마치 시간을 빼앗겨 버린 것처럼, 머리에 탄환이 박혀 있었을 때의 기억이 희미해져 버렸다.
“그땐 어떻게 지냈었지?”
그렇다고, 골레릭을 미워하거나 외면하지는 않았다.
누군가 친구가 황금을 양 손에 가득 쥔 채 낭떨어지로 걸어가고 있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골레릭은 목숨을 걸고 유스티나를 구한 것이다.
대신 그녀에게 닥친 것은 무료함. 그녀를 괴롭히는 것은 한 없이 무료한 매일매일이었다.
띠링띠링.
“나왔어.”
“왔어?”
조용한 방 안에 방울 소리가 울렸다. 골레릭이 집 안으로 들어오면서 자신의 목에 두른 검은색 머플러를 벗었다.
“저녁 먹을래?”
“응.”
유스티나는 양 손은 쓸 수 있었으므로, 미리 저녁 준비를 해뒀다.
식탁에 올려진 간소한 식빵과 고기 섞인 감자 스튜. 평범해보이는 이 식단 메뉴에도 골레릭은 전혀 거리낌 없이 먹었다.
원래라면 원수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터인데 둘의 특이한 성격 덕에 골레릭은 유스티나를 경제적으로 부양하고, 유스티나는 골레릭을 챙겨주는 이 기묘한 관계가 성립되었다.
골레릭은 아직도 유스티나에게 부채감을 갖고 있었고, 유스티나는 공허감 속에서 어떻게든 자신을 살아있게 해주려는 끈을 붙잡고 싶을 뿐이었다.
“오늘도 모슌 선생이랑 같이 정찰.”
옛 고용주였지만 골레릭은 지금은 그를 모슌 선생이라고 불렀다.
“암흑성도회인가 뭐인가 하는 거기?”
“응. 신도들 전원의 인적사항도 체크하고 있어. 뭔가 범죄를 저지르려고 한다거나, 일을 벌이면 바로 알아차릴 수 있게끔.”
“흐응.”
그렇게 말하더라도, 유스티나는 별 관심이 없었다. 마음속 깊은 곳의 공허는 어떻게도 채울 수가 없었다.
“재활은?”
“하고 있는 데, 잘 안 되네.”
유스티나의 다리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아직 신경이 살아있을 수 있다면서 움직이게 될 수도 있을 거라는데 의사 말은 믿기가 어렵다.
“곧 움직이게 될 거야.”
“그래.”
“내일은 나가보는 게 어때? 날씨가 좋을 것 같아.”
“알았어.”
뚱한 표정으로 창밖 너머를 바라보던 유스티나는 곧 불을 끄고 잠들었다.
이런 삶이 거의 몇 달간이나 이어졌다. 날씨가 슬슬 풀려가는 2월 초가 되자, 여전히 추위는 그대로인 것 같지만 바람이 불지 않아서 사람들이 거리로 나왔다.
유스티나도 간만에 방구석 폐인 신세에서 조금 더 벗어나 보고자 집 밖으로 나왔다.
세상이 기이하게 일그러진 것처럼 보인다. 계몽주의자가 유스티나의 몸에서 벗어난 이후로도 유스티나의 눈동자는 문득 이상한 것을 보곤 했다.
일그러진 공간을 따라가 보면 마치 세상 한쪽에 검은색 물감을 바른 것처럼 보이는 공간이 보였다. 그 장소를 바라보면 점점 유리의 균열이 늘어나는 것처럼 검은색 물감이 증식하곤 했다.
그럴 때는 잠깐 눈을 감았다가 뜨면 된다.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한 곳이 보인다.
유스티나는 간만에 컨디션이 좋아져서 여기저기 돌아다닐 수 있었다.
따스한햇살이 내리쬐는 도시의 거리는 활동적이고 역동성 있었다.
광장 중앙에 도착했을 때쯤, 특이한 것을 볼 수 있었다. 중앙의 분수대 앞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던 소년이었다.
벌써 유스티나의 앞에는 구경꾼들로 가득했고, 소년의 앞에 있는 가방에는 동전이 수북했다.
잠시 호흡을 고른 소년이 곧이어 연주하고 시작했다.
아름다운 음률이 퍼졌다. 광장을 걷던 사람들은 너도나도 그 바이올린 소리에 이끌렸다.
너무 바빠서 걸어가면서 샌드위치를 먹고 있던 증권가의 남자도, 구걸을 하던 거지들도, 남녀노소할 것 없이 그 바이올린 소리에 이끌렸다.
그건 유스티나도 마찬가지였다. 악기라는 것이 그렇게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는지 처음 알았다.
구멍이 뚫린 마음에 선율이 가득 들어차자 무언가 알 수 없는 감정이 느껴져서 눈물이 맺혔다.
움찔.
연주가 종반쯤 도달했을 때, 유스티나는 처음으로 발가락 끝을 움직일 수 있었다.
그건 너무 놀라서 입을 다물 정도의 충격이었다.
연주가 끝나자 사람들의 박수갈채가 이어졌다.
“브라보!”
“대단하구만!”
“바, 바이올린이 이런 소리를 낼 수 있었나?”
“저 아가씨는 음악이 너무 좋아서 눈물까지 흘리고 있구만.”
“대단해.”
소년은 자신의 머리를 숙이면서 볼을 빨갛게 물들이며 쑥쓰러워 했다.
한참 치하의 목소리와 동전 세례가 끝나고 난 뒤에, 소년은 바이올린을 케이스에 담아 움직일 준비를 했다.
“저기.”
“네? 무슨 일이세요?”
유스티나는 소년에게 가까이 가서 물었다.
“이름이 뭐야?”
“모리요. 모리 린덴.”
“너, 음악이 참 좋더라.”
“헤헤. 고맙습니다.”
고개를 가볍게 숙인 모리를 보면서 유스티나가 말했다.
“내일도 연주하러 올 거니?”
“네. 다음 달에 3월 콩쿠르가 있거든요. 그날을 대비해서 미리 준비하고 있어요.”
“잘 됐으면 좋겠다.”
“헤헤. 고맙습니다.”
순수한 소년의 웃음에 유스티나도 왜인지 마음이 놓이는 것 같았다.
그 뒤에, 유스티나는 계속 모리와 대화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어째서인지 이 작은 소년과 유스티나는 서로 마음이 잘 맞았고 대화를 나누기에도 편했다.
아까 노래를 들을 때 움찔했었던 발가락은 거짓말처럼 움직이지 않았으나, 재활을 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적인 생각이 들었다.
“그럼, 내일 봐.”
“잘 가요 누나.”
모리는 바이올린을 접고 나서 곧 유스티나와 헤어졌다.
오늘 모리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광장에서 연주만 했다. 정보 수집을 할 겸, 적을 유인할 생각이었다.
그런데도 전에 그들을 습격했다는 인형을 만날 수는 없었다.
“인형은 역시 못 봤어. 하지만 소득은 있는 것 같아.”
대신, 광장을 돌아다니는 조각구원회의 끄나풀 하나를 찾아낼 수 있었다.
모리의 연주는 마치 박쥐가 초음파를 뿌려낸 뒤에, 반사된 소리로 상대방을 알아내듯이, 그 연주를 통해서 연주를 듣는 모든 사람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
보지 않아도 바이올린 음에 반사된 파장만 분석하면 되는 일이었다.
거리의 악사가 거리의 탐색자가 되었다.
이제 다른 사람에게 바톤을 넘겨주고 그들이 추적하게 내버려 둔 다음, 모리는 내일도 이 광장에서 연주할 생각이었다.
*
샤를은 그간 제자들에게 수색과 대비를 명한 뒤, 자체적으로 조사에 들어갔다.
보그다노프는 마피아 거리에서 찾을 수 있겠지만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어서 당장 쳐들어갈 수 없다.
바로 대체 어디서 제3식, 연소 도르래 상자를 구했냐는 것이었다.
마법을 무효화하는 높은 등급의 유물은 이 도시에서 손가락에 꼽을 정도의 숫자. 그중에서도 왜 하필 그 유물을 갖고 있었냐는 의문.
경매장에 주기적으로 들리는 샤를도 그런 유물이 팔려 나갔다는 얘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비밀 경매장에서도 마찬가지.
그러므로 이 유물은 경매장에서 나간 물건은 아니다.
‘어떻게 얻었지? 그리고 요나스 샤프트가 왜 굳이 보그다노프를 시켜서 그 유물을 사용하게 했을까?’
본인이 사용하거나, 아니면 부하인 데이저스트를 이용해서 연소 도르래 상자를 사용하게 했을 수도 있었다.
이유를 알아내지 못한 이상 접근은 신중해야했다. 샤를이 보그다노프를 쫓아 선데이크 거리로 들어가는 것이 함정일 수도 있으니까.
그럼 경매장이 아니라면 어디서 구할 수 있었을까? 이 도시에는 영성자들끼리 모이는 사적인 모임이 상당히 많다.
그중에 가장 큰 규모라면 역시 즈카펠 클럽이었다.
그리고 샤를은 예전부터 안면이 있던 인맥을 사용하기로 했다.
뚜벅뚜벅.
“통과.”
메달을 보여주자마자 곧장 통과시켜준다. 여전히 매캐한 냄새가 나는 파테스트로피의 방을 보면 상태가 안 좋음을 느낀다.
“어머어머, 이게 누구야? 잘생기고 멋진 교수님이잖아.”
하늘하늘한 가운은 오늘도 흘러내릴 것처럼 파테스트로피의 어깨에 걸려있었다.
그녀의 손에 들린 곰방대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는, 기묘하게도 샤를의 몸 근처에서 이리저리 흩어졌다.
오늘은 저번처럼 난잡한 분위기는 아닌 것 같다.
“파테스트로피. 오랜만이군.”
“이번엔 또 무슨 목적으로 오셨을까. 포션?”
“아, 맞아. 며칠 전에 상비약이 떨어졌거든.”
“당연히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겠지? 그런 거라면 편지를 전달해서 배달을 시켜도 되거든.”
곰방대의 담배를 한 모금 빨아들인 파테스트로피가 후하고 연기를 뿜었다.
“어떤 유물의 행방을 찾고 있는데 아는 것이 있나 싶어서.”
“무슨 유물?”
“제3식, 연소 도르래 상자.”
“완전 특이한 이름이네. 그 유물을 만든 사람도 어지간히 이상한 사람인가 봐.”
“모르는 건가?”
“음. 난 모르지만, 알 만한 사람은 알고 있지. 만나볼래?”
“물론이지.”
“우리 즈카펠 클럽에는 클럽장이 있어. 클럽장은 매우 유물에 박식하고 유물의 부작용마저도 저항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지.”
파테스트로피는 품에서 명함 같은 것을 꺼냈다. 백지 명함처럼 보이던 그것에 저절로 글자가 적히기 시작했다.
“이쪽으로 가봐. 그 유물이 어디서 이동되었는지 알 지도 모르지.”
“좋아. 이 은혜는 갚지.”
“물건이나 잔뜩 사가면 그만이야. 아님 나랑 하룻밤 즐기는 건 어때?”
“다음에 잔뜩 사가겠다.”
“저런, 철벽이네.”
손을 흔드는 파테스트로피를 뒤로하고 샤를은 받은 명함의 주인의 이름을 읊었다.
“엔시우스 혼블로워인가.”
이 남자는 여러 번 간접적으로 본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붉은색 폭탄 머리의 주인공.
플레이어들은 그를 가끔 모 만화 주인공에 빗대어 파라오 할배라고 부르기도 했다.
유능한 탐구자이기도 했다. 유물과 서적에 능하며 지식을 위해서는 돈을 물처럼 사용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전형적인 영성자다. 아무런 곳에도 소속되지 않고 홀로 활동할 수 있는 야생 영성자들을 모아서 정보 교류 및, 최소한의 저항을 할 수 있게 협력체로 만들어본 것을 보면 수완도 굉장해보인다.
명함의 주소를 본다.
“티소 본느 거리?”
티소 본느 거리는 세인트 생시르보단 덜하지만 도심에 근접해 있었다.
그리고 메트로폴 박물관이 있는 곳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