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4화 - 콜록콜록!
물을 잔뜩 뱉어낸 더글라스가 눈을 떴다.
“크헉. 대체 여긴 어디야?”
더글라스는 혼미한 정신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분명 기괴한 나무에 몸이 파묻혔던 것으로 기억한다.
“집?”
주변은 특이하게 생긴 집이었다. 조개로 이뤄져 있는 벽면. 바닥은 푹신푹신한 천이 깔려 있는데 한 번도 본 적 없는 부드러운 천이었다.
푹신푹신한 침대에서 일어나서 주변을 둘러본다.
“여긴 천국 같은 건가?”
더글라스는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분명 죽었을 텐데.
불쑥, 무언가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고개를 돌리자마자 갑자기 튀어나와서 더글라스는 당황했다.
“으, 으악! 뭐, 뭐야. 거미잖아?”
실에 매달려 허공에 떠있는 거미를 보면서 더글라스가 뒤로 엎어졌다.
그러자 누군가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서 자세히보니 더벅머리카락의 소년 같았다.
“너, 넌 누구냐?”
그 소년은 삐죽삐죽한 자신의 이빨이 환히 보이게끔 씨익 웃으면서,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입으로 하는 게 아니라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정신파였다.
-내 이름, 지금은 로렌 헥센.
“헤, 헥센? 지, 지금은?”
-내 옛날 이름. 괴물.
“넌, 샤를 헥센과 자네는 무슨 관계인가?”
-엄마가, 이복 형제랬어. 얘는 내가 기르는 애완 동물이야.
아까 그를 놀래켰던 예의 그 거미를 가리키는 로렌을 보면서 더글라스는 또다시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을 느꼈다.
*
-실패했나?
-예.
-실패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거대한 수조관의 물 속에 담긴 누군가가 정신파를 흩뿌리면서 생각을 전달했다.
-샤를 헥센이 개입했습니다. 무명 교단의 교주입니다.
-무명 교단? 그 사이비놈들이 무슨 수로?
어부형제단의 교주, 부라토스의 분노를 상징하는 기포가 중수 내에서 뽀글뽀글 피어올랐다.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무명 교단이 너무 빨리 교세를 확장하고 있습니다. 혹여나 우리가 알지 못하는 신의 지원을 받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럴 리가. 무존자라는 신에 관해서, 수몰왕께서 말씀하신 적이 없다. 그러므로 그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부라토스의 말에 베일에 가려진 누군가는 침묵했다.
-기존에 이계에 존재하던 신이 아니라면 어떻습니까?
-그게 무슨 소리냐.
-이미 전례가 있지 않습니까? 헤르메스 트리메기스토스 말입니다. 인간에서 신이 된 존재.
다시 기포가 피어올랐다. 이번에는 유리 관을 가득 채울 정도로 많았다.
-그래. 그럴 수도 있겠군. 인간으로서 신에 도전하는 존재는 렘 시대 이후로 오직 헤르메스 뿐이었으나, ‘종말’이 오고 있으니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진 않겠지.
부라토스는 상고 시대의 존재들을 떠올리면서 명령했다.
-무명 교단에 첩자를 심어라. 그리고 정보를 파악해둬라.
-예, 알겠습니다.
-내가 신성의 씨앗을 전부 흡수하는 그날, 놈을 죽여 수몰왕께 바치리라.
*
더글라스는 죽었다.
더글라스라는 인재 대신, 밀드레드를 구해서 탈출하면서 샤를은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하. 구해야할 사람은 없고 다른 사람만 있네.’
어찌되었건, 어부형제단의 음모 하나는 막아낼 수 있었지만, 워낙 이러 저런 사건이 얽혀 있었다.
해안 동굴을 빠져나온 뒤, 샤를은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고민했다.
어부형제단과 얽힌 사건은 아는 사람이 없으니 해결 된 것이고 은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정신 병원 내부의 살인 사건은 문제가 많다. 살인 사건의 범인도 잡히지 않았고 뒷수습해야할 더글라스가 죽었다.
샤를이 여기서 개입해서 사건을 은폐할 수 없다. 루미너스가 경찰국의 국장으로 부임한 이상 불가능한 일이다.
루미너스의 수사 능력은 더글라스와는 비교가 안 된다.
금새 사건을 은폐했다, 혹은 더글라스의 살인범으로 몰려서 붙잡히고 메트로폴 타임즈 1면을 장식하겠지.
“하. 스트레스가.”
샤를이 머리를 붙잡고 골머리를 앓는 동안 밀드레드는 가만히 앉아 있었다.
여태까지 아무렇게나 살아온 그녀였지만, 최소한의 인정이라는 것이 있었다.
더글라스는 자신을 죽이려 했음에도 그녀를 구했고 대신 죽었다.
미증유의 부채감이 몰려왔다. 하지만 그걸 갚을 방법이 없었다. 이미 빚을 진 상대는 죽었으니까.
그러므로, 밀드레드는 적극적으로 샤를에게 협력하기로 했다.
“살인범이 누구인지 알아.”
“뭐?”
“잭 첼리너를 살해한 범인.”
“어인이 죽인 게 아니었어?”
밀드레드는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프랜시스 도너. 그 자도 어부형제단 소속이야.”
“뭐? 분명 맹인이라고 하지 않았나?”
“협력자가 있으면 맹인이라도 살인을 저지를 수 있는 법이지. 그리고 죽이고 내장을 빼간 건 미치광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짓이기도 하고.”
“…….”
아무래도 탐정 샤를이 나머지 사건을 해결해야 할 것 같다.
“탐정 양반. 더글라스는 어떻게 할 생각이야?”
“살해당한 뒤에 실종 처리해야 할 것 같은데.”
“내가 도와줄게. 더글라스와 프랜시스가 같이 취조실에 있었다고 증언하겠어.”
“시드니는?”
“셋이 함께 있으면 되지. 나는 법정에서 공범 증언하겠어.”
밀드레드는 품에서 물에 젖었다가 마른듯한 담배를 꺼내서 피웠다.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책임을 질 생각이군.”
“어차피 여분의 목숨이잖아? 할 일은 끝마치고 가야지.”
초탈한 듯한 밀드레드의 눈동자를 보면서 샤를은 입을 다물었다.
의외였다. 그간 밀드레드의 성격을 보면 도망치거나 책임을 회피할 것 같았지만, 개심한 것처럼 보였다.
“…….”
“담배 있었네?”
피식. 샤를의 말에 밀드레드가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저번에 그 아저씨 품에서 슬쩍 한 거야.”
*
뭍으로 올라온 샤를은 저택으로 되돌아왔다. 3박의 외출이었으나 플로나는 샤를이 오자마자 마치 어제도 봤다는 것처럼 자연스레 말했다.
“오늘 아침은 뭘로 드실래요?”
“모카빵으로. 아, 생선은 식단에서 빼줄래?”
“네.”
요즘엔 물고기만 보면 역겨워죽겠다.
식당으로 가서 탁자 위에 올려진 메트로폴 타임즈를 펼쳤다. 섀터 섬에서 벌어진 미스테리한 사건이라면 1면을 장식하고 있겠지.
뭍으로 올라오자마자 밀드레드를 공범으로 경찰국에 넘겼다. 지금은 유치장에 있고. 형사의 실종이라는 사건을 생각하면 규모가 큰 화젯거리가 되기 마련이었다.
“응?”
그러나, 메트로폴 타임즈의 1면을 장식한 것은 메트로폴 대성당을 테러하려고 했던 40대 남성 체포라는 글자였다.
“이게 왜……?”
샤를이 당황하는 동안, 방문 밖에서 누군가 문을 두들겼다. 제이크 집사였다.
“주인님. 손님이 오셨습니다. 모슌 박사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데요.”
“들어오라고 해.”
정중하게 말한 제이크는 곧 제롬을 식당으로 불러왔다. 샤를은 그를 보면서 냅킨으로 입을 닦고 손가락을 모았다.
“무슨 일인지 설명해봐.”
“예. 샤를님. 먼저, 샤를님께서 자리를 비운 3일동안 갑자스럽게 메트로폴의 대성당 폭파 계획 일정이 당겨졌습니다.”
“당겨졌다고? 2월 중에 일어날 일이?”
“예. 한 달 이상으로 당겨졌습니다.”
그 갑작스러운 전개에, 제롬도 당황했다고 말했다.
“보고를 드리려고 했으나, 갑작스럽게 일이 진행되었습니다. 저는 물론이고, 암흑성도회의 다른 사람들도 급작스럽게 고지된 바, 빠르게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도중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문제?”
“어떤 영성자가 나타났습니다. 광명교단의 사제들이 ‘성녀’라고 부르는 사람입니다.”
광명교단의 성녀. 검은 횃대를 들고 부정한 것과 타락한 자들을 무로 되돌리는자.
게임상에서 성녀가 등장하는 데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했지만, 이 세계는 이미 게임과는 많이 분화되었으므로 갑자기 등장하더라도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었다.
‘이러다가 뭐든 다 튀어나오게 될 지도 모르겠네.’
신화속에서 등장할 법한 괴수나, 등장 조건이 만족되면 시나리오를 전부 개판으로 만들어버리는 존재들이 등장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광명교 성녀는 암흑성도회의 이번 습격을 전부 막아내고, 역습을 가했습니다. 그 때문에 암흑성도회의 계파인 아슐라 일파가 괴멸적인 타격을 입었습니다.”
암흑 자체를 광적으로 숭배하는 일파가 괴멸적 타격이라.
여러모로 변수가 늘었다는 생각을 하면서 샤를은 머리를 두들겼다. 그리고 제롬에게 말했다.
“제롬. 네게 맡겨진 역할이 많아. 하지만 여태까지는 구두로 보고하거나 다른 방법 등으로 보고 했었지.”
“예,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젠 다른 방법을 사용해야겠다. 너도 내 제자가 되는 거다.”
“드, 드디어.”
제롬은 고개를 낮추고 감격에 부르르 떨었다. 실제 샤를이 가르치지 않더라도, 무명 교단 내부에서 제자라는 것은 최고의 직위에 속해 있었다.
“고개를 들어라. 봐라.”
샤를은 자신의 눈동자를 바라보게 했다. 제롬을 정신을 관통한 영성이 그를 어느새 샤를의 심상 세계로 끌어왔다.
“우오, 우오오오오!”
제롬답지 않은 엄청난 감정 변화가 눈에 보였다. 창조된 거대한 세계를 자유롭게 떠다니는 그의 눈동자가 주변의 신비로운 것들을 바라보았다.
“대, 대단하군요.”
“오라.”
샤를의 목소리가 들리자 어느새 제롬은 그 탁자에 착석해 있었다. 샤를의 뒤에서 반짝이는 문양을 보았다.
“이것이, 진정한 무존자의 힘.”
문양에 새겨진 그림을 보고 그 안에 깃든 엄청난 영성이 제롬의 신체를 진동시켰다.
“운명에 개입해 뒤틀 수 있는 능력이지.”
“실로, 엄청난 힘입니다.”
“이 공간에 초대된 사람은 정신을 열어서 언제든 이 장소로 도착할 수 있다. 다급하게 내게 보고해야할 일이 생긴다면, 이 장소를 사용해서 하라.”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샤를님.”
샤를이 눈을 깜박거리자마자, 제롬고 샤를은 현실로 되돌아와 있었다.
제롬은 그동안 자신이 겪었던 그 엄청난 공간을 보고 현실이 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성녀에 대해서 알아낸 것을 자세히 보고하도록 해라.”
“예.”
한동안 보고를 올린 제롬이 사라지자 샤를은 검지와 엄지로 미간을 짓눌렀다.
스트레스가 쌓이는 느낌이었다. 분명히 샤를은 강해지고 있고, 사건도 해결되고 있으며, 교단도 왕성해지고 있다.
그러나 참을 수 없는 피로감이 몰려오는 건 막을 수 없었다. 그도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어깨 좀 주물러 드릴까요?”
“어? 응. 그래.”
어느새 플로나가 옆에 와있었다. 샤를은 의자에 등을 기대고는 뒤로 물러났다. 플로나의 에메랄드 빛 머리카락이 흘러내렸다.
섬섬옥수가 샤를의 어깨를 주물러주자 긴장이 조금 풀리는 걸 느꼈다.
그래, 너무 어렵게 생각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복잡한 미래를 볼 수 있다. 최대한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이 좋을지도.
“기분 좋으시죠?”
“응.”
“헤헤!”
그러고보니, 기억조작자의 능력에 당했을 때, 플로나가 여자친구로 나온 적이 있었다.
생각해보니 그 스토킹을 당하면서 어떻게 살았던 거지. 그 환상 속의 수현은?
똑똑.
“이제 됐어. 고마워.”
“네.”
플로나가 뒤로 살짝 물러나자 문 밖에 대기하던 제이크가 들어왔다.
“주인님, 또 손님이 오셨습니다.”
“또? 누구지?”
“봉인 재단에서 오신 프레데릭 웹스 상무 이사님입니다.”
“들어오라고 해.”
정장을 잘 차려입은 신사가 모자를 벗고 고개를 숙였다.
“오랜만입니다. 샤를 헥센님.”
“친구로 찾아왔다면 조금 더 좋은 분위기에서 만날 수 있겠지만, 그 일로 찾아온 건 아닌 것 같군요. 와서 앉으세요.”
평소에 둘은 사적으로 만날 때는 편하게 얘기했지만, 공적으로 만날 때는 확실하게 거리를 쟀다.
샤를의 말투에 가시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프레데릭은 고개를 바짝 숙였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보관해주신 유물이 도난당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지금 도난당한 유물이 일으킨 일 하나를 수습하고 오는 길이니까. 담배는 평소에 안 피우는 데, 오늘 따라 한 대 피고 싶단 말이지요.”
샤를이 팔짱을 끼면서 몸을 뒤로 젖혔다.
이번 사건이 끝난 뒤에, 샤를이 곰곰이 생각해봐도, 왜 맥밀런 정신병원에서 사건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샤를이 개입하면서 이야기가 뒤틀어지긴 했지만, 그 스토리의 초입 부분은 작가들이 모임을 가졌던 산장에서 익히 들었던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 때, 괴테의 만년필은 활성화 된 채, 솔로 킹의 상의에 있는 주머니에 들어가 있었고.
“그래서, 범인은 누굽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