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3화 - 샤를은 열린 창살을 보고 무언가 이곳을 빠져 나간 것을 알았다. 그런데 좀 의외인 것이 있다.
이 장면을 보고도 더글라스가 생각보다 멀쩡한 편이었다.
기억조작자의 정신 공격에도 버틸 정도의 정신력을 갖고 있으니, 계몽 수치가 올라도 어느 정도 멀쩡하게 현실을 보는 것 같다.
“도망친 밀드레드는 이곳까지 왔었군요.”
비어있는 쇠창살. 밀드레드는 이 안에서 누군가를 꺼내갔다. 처음부터 밀드레드의 목표는 동생인 게리 폴슨이었을테니, 정황상 그녀의 동생이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있다. 이곳은 괴물같은 형태를 지닌 어인들만 수용한 장소라는 점이다.
“그 여자는 자기 동생을 찾으러 왔다고 했었지. 근데 이런 감옥에서 누군가를 꺼내서 데려갔다고? 그렇다는 것은.”
“네. 괴물을 꺼내서 데려간 겁니다.”
“아니, 그 여자는 대체 뭐야? 자네가 도와준다고 하지 않았었나?”
그오오오오오!
감옥에 갇혀 있던 한 괴물이 쇠창살을 건드리면서 기괴한 울음을 냈다. 그 모습을 보고 더글라스가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거, 기괴한 소리일세. 뭐라고 하는 거야 대체?”
“…….”
어렴풋이 저 생물이 자신을 꺼내달라고 말하는 것 같다고 샤를은 생각했다.
‘정황을 보면 밀드레드가 괴물을 꺼내간 것이 분명한데. 왜 그랬을까?’
문득 밀드레드의 계몽 수치가 엄청나게 높아져 있을 거라고 추측했다. 그럼 어느 정도 말이 된다.
그리고 계몽이 높으면 높을수록 광인이 되는데 공통적인 현상이 하나 있다면, 그건 이형의 것들이 ‘정상적’인 것으로, 평범한 것들이 ‘비정상적’인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일전에 자신의 몸에 계몽 중화제를 사용해서 꿈 조각을 꺼내기 전의 샤를과 비슷한 상태일 것일지도 모른다. 막 이상한 환각을 보는 상태.
그럼 밀드레드는 비정상적인 게리를 보고도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고 따라 갔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밀드레드는 등불 주문에도 저항력이 있을 정도로 정신력이 강한 편일텐데.’
그런 밀드레드의 계몽까지 올려버릴 정도면 더글라스도 성하지는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글라스. 이거 받으세요.”
샤를이 품에서 포션 병을 꺼내서 더글라스에게 보여주자 그가 물었다.
“이게 뭐길래?”
“계몽 중화제라는 겁니다. 정말로 미쳐버릴 것 같거나 혹은 환각이 보인다면 그 병을 꺼내서 안에 있는 걸 마시는 게 좋을 겁니다.”
“……알겠네.”
“최대한 늦게 사용할수록 좋습니다. 적당한 계몽은 정신이 견디는 데 도움을 줄 테니까요.”
말을 끝마치고 밀드레드의 흔적을 추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밀드레드의 발자국은 계속 아래로 향했다.
그곳은 출구가 아닐 텐데, 어째서 아래로 내려간 것이지?
*
밀드레드는 게리를 부축하면서 겨우겨우 걸었다. 이녀석, 겉으로 보기에는 비쩍 말랐는데 부축하다보니 상당히 무겁다.
그대 게리가 입을 열었다.
“누나 기억나? 우리 구빈원에 있을 때 말이야.”
“응. 기억나.”
지옥 그 자체였다. 매일 지급되는 것은 묽디 묽은 죽에 톱밥이 섞여 있다. 조금 더 달라고 말하면 곧바로 쫓겨나고 만다.
7살 먹은 아이부터 70세 먹은 노인까지 평등하게 공장에서 일해야만 했다. 그러다가 다쳐서 일하지 못하게 되면 구빈원에서 쫓겨난다.
어렸을 때는 구빈원이 아니면 정말로 얼어죽을 줄 알고 죽기 살기로 일했었지.
하지만 그건 전부 거짓말이었다. 밖에 나가서도 평범하게 다들 잘만 살고 있다.
“거기 로보라는 놈이 있었지. 감독관.”
“그 돼지 새끼는 왜?”
생각만해도 역겨움이 치밀어오른다. 로보라는 놈은 구빈원에 있는 여자들을 데려가서 하룻밤 보낸 뒤에 빵 한조각 던져주는 놈이었다. 결국 매독에 걸려서 뒈졌지만.
“그가 그랬잖아. 일하지 않은 자, 먹지도 말라고.”
“전부 개소리였지. 이 세상엔 일하지 않고도 먹고 사는 돼지들이 득실거렸고 평범한 사람들을 착취하면서 산다는 걸 말이야.”
밀드레드가 그 사실을 알았던 건 프로메트 트리메스라는 한 교수와 우연히 만나면서였다.
트리메스 교수는 이 모든 것이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부자들의 잘못이라고 말했었다.
그 다음에 말하는 소위 ‘빨간맛’나는 이론은 밀드레드의 취향이 아니라 무시했었지만.
“근데 그게 왜?”
“구빈원이 아니더라도, 그냥 다른 곳, 그러니까 공장 같은 데서 평범하게 일했으면 어땠을까 싶어.”
“서류를 조작해서 여기서 일하자는 건 너도 동의하는 거였잖아.”
“그래, 그랬었지. 난 경비원 일하다가 그 경력을 인정받고 다른 경호업체에 취직하고 싶었었고.”
게리는 쿨럭거리면서 자신의 배를 부여잡았다.
“하지만 그랬으면 안 됐어. 우린 이곳에 와서는 안 됐던 거야. 아주 바보 같은 짓이였어. 누나. 이제 도망가.”
“그게 무슨 소리야?”
“놈들이 내 뱃속에 무언가를 심어놨어. 그리고 그건 꿈틀거리면서 지금도 자라고 있지. 그걸 느낄 수 있어.”
“뭔가, 뭔가 방법이 있을 거야.”
“누나. 방법은 없어.”
“……네가 죽으면 나도 죽을래. 어차피 살아봤자 즐거운 것도 없고.”
밀드레드는 그렇게 말하면서 게리를 부축했다. 게리는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바보네.”
곧 게리의 몸이 부풀어오르기 시작했다.
*
샤를은 곧 그 아래로 가다가, 좀 커다란 공동을 발견했다.
“여긴 위 부위인가.”
엄청나게 큰 바다 같은 것이 있었다. 아마도 위액이겟지. 그리고 바다 위에 수많은 표류물이 둥둥 떠 있었다.
고대에 사용된 것 같은 갤리선부터, 강철로 이뤄진 증기선까지 파묻혀 있었다.
배가 아니면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심해 생물의 시체도 떠다녔다.
그것들은 반쯤 녹아내렸지만, 완전히 녹아내리지는 않았다.
“여, 여기가 이 거대한 생물의 위라고?”
“아마도.”
“죽은 지 오래된 생물이라며, 위액이 있나?”
“그때부터 녹지 않은 걸 겁니다.”
“이런 걸, 생물이라고 볼 수 있나 싶다만.”
배들은 하나같이 유령선이었다. 사람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떠있는 부표물을 징검다리 삼아 이동했다.
곧 이 장소의 중앙에 있는 거대한 나무를 볼 수 있었다.
“저거군요. 갑시다.”
“저게 뭔가?”
“어부형제단의 세컨드 플랜 같군요.”
가까이 가면 갈수록 그것의 정체가 뚜렷해졌다.
“저게, 저게 대체 뭐지?”
“저게 뭐든 상상을 초월한 무언가 일겁니다.”
부정형의 생물체가 마치 나무의 형태로 자라나 있었다. 그리고 가지 한쪽에 나무가 뒤틀린 채 밀드레드를 움켜쥐고 있는 게 보였다.
밀드레드는 기절한 채 축 늘어져 있었다.
“씨이벌. 저 여자를 구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찰지게 욕을 내뱉은 더글라스는 그래도 구해야 한다는 쪽으로 마음이 쏠렸다.
범죄자건 뭐건, 일단 살려서 데리고 가야지.
점점 더 가까이 나무를 향해 다가가던 더글라스는 도저히 역함을 참지 못해서 샤를에게 받았던 계몽 중화제를 마셔버렸다.
“씻팔.”
-와 쭈인. 이거 미쳤는데.
-나도 꿈에 나올까 무서운데.
더글라스보다 계몽과 정신이 높은 샤를은 그나마 버티고 있었지만 더글라스는 진짜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겠는지 계몽 중화제를 마시고 코에서 꿈조각을 마구 떨구는 중이었다.
거대한 살점 나무는 수많은 인간의 부품이 잔뜩 박혀 있는 듯한 모습이었고 검붉은 색으로 보였다.
지옥에서나 볼법한 풍경을 보면서 샤를은 저 생물의 정체가 밀드레드의 동생이라는 게리 폴슨일 거라고 짐작했다.
‘레비아탄의 시체를 양분삼아서 이계에서 무언가를 소환하려고 하는 것 같군. 이 나무는 전체적으로 차원을 뒤틀게 설계되어 있어.’
이게 어부형제단이 세운 두 번째 계획인 것으로 보인다. 파훼법은 간단하다. 물리적으로 저 생물 나무를 날려버리면 된다.
“어디보자, 다이너마이트가.”
샤를은 심상 세계를 뒤져서 다이너마이트 다발을 꺼냈다. 아, 물론 경매장에서 구한 거다. 군용 창고를 뒤지는 것보다 불법적으로 사는 게 빠르고 안전하다.
“구웨에엑. 우웨에에엑. 엑? 다, 다이너 마이트? 어디서 난거야?”
한동안 꿈조각을 토해냈던 더글라스는 샤를이 들고 있는 다이너마이트를 보고 이제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이걸로 저 나무를 날려버릴 겁니다.”
“알았네. 하지만 일단 저 여자부터 구하고.”
“……못 구해요. 지금 저 나무는 계속 증식하고 있습니다. 계속 자라는 거 보이죠? 지금은 다이너마이트로 처리할 수 있겠지만 나중가면 다이너마이트로도 불가능할 겁니다.”
더 커진다면 무슨 주문을 때려 박아도 소용 없을 거다.
“그래서, 버리자고? 난 못하겠네. 저 여자가 범죄자라고, 날 죽이려 했었다고 해도 저런 식으로 죽어서는 안 되는 거야.”
더글라스는 아닌 척 해도, 그의 내면에 선함을 갖고 있었다. 그게 그의 나머지 단점을 다 덮고노 남을 장점이다. 샤를은 그를 노려보다가 한 숨을 쉬고 말했다.
“서두르세요.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하고 필요한 순간이 오면 저는 그걸 터뜨릴 겁니다.”
“알겠네.”
샤를이 그 나무 밑동에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하는 동안, 더글라스는 욕설을 지껄이면서 나무를 올랐다.
그러나 나무는 계속해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손이 갑작스레 튀어나오자 더글라스는 고개를 돌려서 그 부위들을 피해냈다.
“썩을.”
욕설을 퍼부으면서 더글라스는 자신의 작은 단검으로 밀드레드를 묶고 있는 가지를 잘라대서 기어코 밀드레드가 있는 곳까지 갈 수 있었다.
“이봐! 밀드레드. 일어나라고!”
“…으음.”
기절해있던 밀드레드가 눈을 뜨자 더글라스의 얼굴이 보였다.
“응? 아저씨, 미친거야?”
“뭐!?”
“죽게 내버려두라고. 이 화상아.”
밀드레드가 체념 섞인 목소리로 욕설을 내뱉었다.
“댁은 진짜로 돌아버렸어? 난 댁을 어부형제단에 팔아버리려고 했었는데, 근데 목숨 걸고 날 구하다니 진짜로 미쳤어?”
“구해준다니까 진짜 심사가 뒤틀렸네.”
더글라스는 나뭇가지를 자르려고 칼을 비벼댔지만 너무 튼튼해서 가지가 잘려나가지 않았다.
“난 여기서 죽을 테니까 간섭하지 말고 꺼져.”
“근데 그거 아냐.”
“뭐?”
“네가 짭새라고 말 안하고 아저씨라고 말한 거. 그거면 널 구할 이유는 충분하지.”
더글라스가 씨익 웃었다. 밀드레드는 대체 더글라스가 왜 그러는 지 알 수 없었다.
거의 다 가지를 자르자 더글라스가 말했다.
“너 같이 새파란 꼬맹이가 무슨 일을 겪으면서 살았는지 난 모르고 알 바도 아니야. 하지만 아무렇게나 목숨을 던지지 마라. 아직 넌 기회가 있잖아.”
툭. 기어코 잘린 나뭇가지가 떨어지자 밀드레드의 몸이 아래로 축 늘어졌다. 중력 때문에 서서히 떨어지려고 한다.
“지랄.”
더글라스가 낄낄대면서 말했다.
“나한테 반하면 안 된단다. 난 여우같은 마누라와 토끼같은 자식들이…….”
밀드레드가 아래로 떨어진다. 밑에서 대기하고 있던 샤를의 백기사가 밀드레드를 받아냈다.
“더글라스! 그냥 몸을 던지세요! 받아줄테니까.”
샤를이 외쳤으나, 더글라스는 희미하게 웃으면서 자신의 발을 가리켰다.
“난 못 갈 것 같아.”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던 그 나무는, 기어코 더글라스의 왼발을 집어삼키고 이제 무릎까지 타오르고 있었다.
“어서 터뜨려!”
샤를은 시간이 부족한 것을 느꼈다. 더글라스를 구해내고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리면 이미 늦는다. 그때쯤 되면 성장한 이 나무가 모든 걸 집어삼키게 될 것이다.
“어서!”
더글라스의 몸이 완전히 파묻혔다. 샤를은 굳은 표정으로 다이너마이트에 불을 붙였다.
순식간에 타오른 심지가 연속으로 폭발하고, 거대한 생물 나무가 분쇄되기 시작했다.
폭발하는 나무가 비산하면서 공간의 일부분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이계와 현실이 반쯤 융화된 공간이 드러났다.
공간 너머로 얼핏 보이는 것은, 거대한 수중 도시였다.
‘소르 이븐! 그렇군. 심해의 생물을 소환하는게 아니라 이계의 문을 여는 게 목적이었어.’
수몰왕을 추앙하기 위한 그 도시를 열어젖히기 위한 어부형제단의 두 번 째 계획인 것이다.
그러나 나무가 폭발하면서 그 일렁이는 공간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이 지나자 사라지고 말았다.
나무를 비롯한 온갖 파편들이 그 공간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차원간의 거대한 압력차에 의해서, 마치 우주 정거장의 에어락 블록을 열어젖힌 것처럼 주변의 공간이 빨려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 공간의 구멍은 마치 블랙홀같았다.
바닥에 있는 온갖 파편들이 허공으로 떠올라 그 공간으로 빨려들어갔다.
“꺄아아아아악!”
“하!”
백기사가 달려와서 샤를을 낚아챈 다음 엄청난 속도로 움직였다. 떠 있는 파편들을 징검다리 삼아서 입구로 도착한 다음 계속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