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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사이비 교주가 되었다-124화 (124/221)

제124화 - 비어 있는 잡역부 숙소 침대 하나를 차지하고 한숨 곯아떨어졌던 샤를은 하품하면서 일어났다.

별로 좋은 침대는 아니었지만, 비바람을 피할 정도는 되었다. 샤를은 가볍게 손을 털고는 일어났다.

회중시계를 들어 시간을 확인한다. 오전 5시.

활동하기엔 이른 시간이지만 비도 그쳤고 추적을 시작할 준비는 끝났다.

-쭈인. 옷 다 말려놨어.

-잘했엉.

파기나레코르는 붕붕 떠올라서 어젯밤 비에 푹 젖은 옷을 뽀송하게 말려놨다.

-근데 이렇게 느긋하게 있어도 돼? 누가 잡혀 갔다며.

-조급해할수록 어려워지지. 폭우가 쏟아지는 밤에 놈들을 쫓는 것보다, 다음날 아침에 컨디션이 좋은 상태로 쫓는 게 더 빨라.

그렇게 답하면서 깔끔하게 면도를 끝마치고 머리카락을 올려서 빗어 올렸다. 머리를 고정하고 하얀 이를 씨익 벌린다.

거울 너머로 그는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하고 젊은 신사처럼 보인다.

“자, 그럼.”

샤를은 무존자의 등불 주문을 사용했다. 이 주문도 그간 멈춰 있던 것이 아니었다.

샤를의 능력이 개화하면서 주문을 ‘변형’시킬 수 있게 되자 샤를은 무존자의 등불 주문을 변형시켜 다른 형태로 만들었다.

일렁이는 등불이 샤를의 눈 안쪽으로 스며들어왔다. 눈이란,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면 뇌가 변형되어 형성된 것이었다. 그래서 눈과 뇌가 연결된 것이고.

이 등불 주문의 변형 주문은 눈 속에 등불을 상시 유지시키면서, 샤를과 마주친 사람들에게 강한 암시를 심어준다.

‘무존자의 장막이라는 이름을 붙여볼까.’

“으아악? 다, 당신 누구?”

잡역부 중 한 명이 부스스한 얼굴로 샤워하러 나왔다가 샤를의 얼굴을 보고 기겁했다.

처음 보는 사람이 이 숙소에서 그것도 세면대를 쓰고 있다니?

마침 ‘무존자의 장막’ 주문을 시험해볼 대상이 나타나자 샤를은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어제 배를 타고 도착한 샤를 헥센 탐정이잖습니까. 어제 포커까지 쳤으면서 정신이 없군요.”

“어. 아. 아! 그랬었죠! 탐정님은 어제 형사님과 함께 오셨다고 하셨죠.”

“예. 그렇죠.”

샤를이 무언가 단어를 말하면 그에 연상되는 기억과 경험을 변형해서 말이 되게끔 만든다.

단순한 암시를 넘어서 최면의 수준에 가까운 능력이었지만 이것도 완전히 만능은 아니었다.

등불 주문의 한계가 그렇듯이, 일반인들에게나 통하는 정도고 높은 등급의 영성자에게는 전혀 소용이 없다.

영성이 없더라도 계몽 수치가 높은 자에게는 전혀 의미가 없는 수준이기도 하고.

‘하긴 그런 사람이라면 광인 그 자체일 테니 별 의미 없겠지만.’

가볍게 숙소를 떠나서 샤를은 정신 병원을 돌아다니면서 여러 사람과 인사를 했다.

주문의 효과로, 그들과 인사를 나눌수록 샤를의 존재가 더 공고해져서, 이제 누구도 그가 갑작스레 섬에 나타났다곤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심지어 경비대원들조차도 그랬다. 더글라스의 노트를 통해서 섬 사람들에 대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던 샤를은 경비대의 프랭클린 영허스밴드와 만나 인사를 나눴다.

“어젠 제대로 인사를 못 드렸군요 프랭크씨.”

“아, 멀미 때문에 낮에는 쉬었다고 했었죠? 하하. 별문제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경비대원 하나하나와 인사하는 도중, 샤를은 미묘한 비린내를 맡았다.

생선이 썩는 냄새가 나는 비린내. 그다지 심하진 않았지만, 일반인들도 느낄 수 있는 악취였다.

샤를이 잠깐 멈춰서 그 경비대원을 바라보았다.

“아, 어, 어제 오셨다고요? 저는 글렌 미가입니다.”

글렌 미가는 땀을 조금 흘리면서 샤를과 악수했지만, 그의 눈동자는 뭔가 혼란스럽다는 생각이 가득해보였다.

‘혀, 형사는 분명 혼자 왔을 텐데? 내가 잘못 알고 있었나?’

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악수하면서 샤를은 속으로 빙고를 외쳤다. 어부형제단의 주요 인물이라면 몰라도, 하수인들은 찾기 어려웠는데 여기서 찾게 되었다.

이제 더글라스의 추적은 따놓은 양상이나 마찬가지였다.

‘어인은 육체적으로 강해지지만 지능적으론 약해지지. 그 결과.’

샤를의 암시가 전혀 통하지 않았음에도 글렌 미가는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주변 사람들을 봤다.

그리고 그들이 다 고개를 끄덕이자 전혀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고 그러려니 하는 것이다.

“저 친구가 냄새가 좀 나지만 좋은 친굽니다.”

“아, 신경 쓰지 않습니다.”

프랭크가 머리를 긁적이면서 글렌을 두둔하는 식의 얘기를 했다. 글렌은 순박해보이는 얼굴 때문에 어느 정도 남들에게 동정을 사고 있는 듯 했다.

샤를은 경비원들과 대화를 끝마치고 메리 웰로드를 찾아갔다.

“아! 오셨군요. 헥센 선생님.”

“어제 저녁에 따로 배를 수배해서 왔습니다.”

메리에겐 따로 이야기를 해둔다. 그녀에게 강한 암시를 걸면 앞뒤 순서가 좀 바뀌니까, 어차피 암시에 걸린 사람들은 샤를이 언제 왔는지 같은 건 발설하지 않을 것이므로 걱정할 필욘 없다.

“더글라스 형사님과 함께 살인사건을 조사할 생각입니다. 그동안 잘 부탁드립니다.”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아, 근데 더글라스 형사님은 어디 계시죠?”

잡혀갔다고 얘기할 순 없으므로, 샤를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잠깐 섬 주변을 돌아보고 오신다더군요.”

메리는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그럴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샤를은 메리를 유심히 살피다가, 그녀가 어부형제단과 전혀 연관이 없는 것을 확인하곤 신경을 껐다.

샤를은 대충 인사를 끝마친 다음에는 글렌 미가를 쫓았다.

그도 의식에 참여하기 위해 슬슬 움직일 것이다. 아마도 경비원들에게 양해를 구하곤 어디론가 사라지겠지.

예상대로, 글렌 미가는 사라졌다. 대비하고 있었으므로 샤를은 곧 그를 찾을 수 있었다.

남들과는 전혀 마주치지 않을 만한 길을 통해서 움직이다가, 곧 간호사 숙소 앞에서 멈춰섰다.

“응?”

간호사 숙소 앞에 그가 서자 안에서 한 여자 간호사가 나와서 그에게 약이 든 병을 건넸다.

라벨은 보이지 않는다. 명찰을 보니 밀드레드 폴슨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샤를은 피터의 이야기를 이미 들은 상태이므로, 밀드레드 폴슨이 마냥 사람 좋은 간호사가 아니라, 오히려 살인범보다 더 무서운 싸이코적인 기질을 지닌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부형제단과 협력하는 사이인가.’

‘의식’에 참여하지 않는 것을 보면 한패까지는 아니겠지만 조력자인 것은 맞는 것 같다.

글렌 미가가 사라지자 샤를은 그를 뒤쫓았다. 그러다가 누군가 샤를을 목격하기도 했지만, 샤를의 눈과 마주치면 금세 그를 무시하고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어디까지 가나 보자.’

글렌 미가는 그대로 계속 주변을 살피면서 움직였다. 누군가 쫓아오는지 살폈지만 샤를은 은밀하게 그를 뒤따르고 있었으므로 들키지 않았다.

계속 산으로 오르면서, 울창한 섬잣나무 숲으로 들어서자 녹음이 우거지면서 그의 모습을 감춘다.

샤를은 그를 따라 뒤쫓아 들어가다가 그가 해안 절벽을 따라 내려가는 것을 보고 따라갔다.

파도치는 소리를 들으면서 절벽에 난 바위들을 따라 내려가는 모습을 정확히 기억해두곤, 그가 간 발자국을 따라 움직였다.

그러다 곧 거대한 해안 동굴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른 바위들과 바위들 틈 사이에 있어, 쉽게 발견되지 않을 것 같은 장소에 있었다.

‘이번 세계에서 사원 입구는 이쪽인가.’

섀터 섬은 메트로폴이라는 도시가 형성되기 전에도 이 장소에 있었다.

그리고 수몰왕은 아주 오래전 태곳적부터 존재하던 이계의 신이었다.

샤를은 머릿속의 설정집을 뒤져서 이곳의 사원에 대한 정보를 꺼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이 섬은 어부들의 거점으로 활용되었다. 수몰왕의 그림자가 이곳에 비친 이후, 뱃사람들은 그 존재의 그림자를 바다의 신으로 숭배했다. 드넓은 바다를 보면서 오늘도 살아남아 풍요로운 물고기들을 낚을 수 있도록 기원하기 시작했다.]

아주 오래전부터 전승이 남을 만큼, 이 섬에 살던 소수의 어부들에게 내려오던 전승이었다. 현대 사외가 되면서 이제 어부는 하나도 없고 그 지식을 받들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수몰왕이 본격적으로 물리 세계에 손대기 시작하자 추종자들이 모였다.

추종자들은 오래된 섬의 사원을 보수하고 유지하기 시작했다.

‘이 사원이 가동되기 시작되었다는 건, 시드니 호렌슈타인이 어부형제단에 협력하기 시작했다는 말과도 같지.’

샤를은 안으로 들어가면서 그렇게 잠정적으로 결정 짓고 종유석이 가득한 동굴로 향했다.

지금은 썰물 때라 바닷물이 빠져 있지만 언제라도 들어올 수 있는 것을 알고 있다.

바닥에 미쳐빠져나가지 못한 물고기의 시체를 발견한 샤를은 조용히 앞으로 나갔다. 이제 너무 깊이 들어가서 추적 중인 글렌 미가는 볼 수 없었다.

‘사원의 수호자는……. 아직 없는 것 같군. 정신 병원 내부의 조력자를 믿는 편인 건가? 아니면 더글라스를 납치했기 때문에 기강이 해이해진 건가.’

어쨌든, 지키는 이가 없다는 건 샤를에게 나쁠 것 없으니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다가 어디선가 멀리서 누군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한 둘이 아니다. 여러 사람의 목소리였다. 그들은 마치 기도를 하듯 말하고 있었는데 도저히 사람의 언어라고 할 수 없었고 마치 이교의 그릇된 사술을 읊는 것처럼 기이한 목소리를 냈다.

“음-바-간-다-길-갈-라-드”

“음-바-간-다-길-갈-라-드”

가까이 가면 갈수록 그 목소리는 더 커지고 선명해졌다.

샤를이 몰래 들어서자 동굴의 꺾어지는 곳 안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그 안에 수몰왕을 믿는 자들의 사원이 있었다.

사원 중앙에 사각형의 대리석 탁자가 놓여 있었는데 그 위에 생물의 내장들이 올려져 있었다. 아마도 인간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옆에는 물 웅덩이가 보였다.

‘첫 번째 공물인가.’

대리석 탁자의 주변에는 여러 사람들이 검은색 로브를 뒤집어쓰고 알 수 없는 주문을 읊조리고 있었다.

탁자 뒤쪽에는 더글라스가 완전히 의식을 잃은 채 밧줄에 묶여서 쓰러져 있었다.

샤를이 접근하면 접근할수록 멀리서도 느낄 수 있을 만큼 지독한 악취가 났다.

생물의 내장에서 나는 냄새가 아니라 마치 오래된 생선이 썩은 것 같은 냄새.

샤를은 그 로브를 뒤집어쓴 사람들을 관찰했다. 몇몇은 허리춤에 해적들이나 쓸 법한 커틀러스를 달고 있었다.

‘저쪽은 전투인원.’

나머지는 아무 것도 없이 달랑 로브만 입고 있었다.

특히 중앙에서 단검을 역수로 쥔 어떤 존재는 그 손을 높이 들고 있어 더 관찰하기 쉬웠다.

‘역시. 변이가 이뤄졌군.’

반쯤 어인이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변이가 이뤄진 손은 손가락 마디 사이에 물갈퀴가 있었고 나머지 피부는 반쯤은 살이, 나머지 반은 비늘이 가득 차 있었다.

그자는 칼을 높이 들고는 찌르지 않고 무어라무어라 계속 중얼거리기만 했다.

그때, 글렌 미가가 나타났다. 검은색 로브를 뒤집어 쓰고 있긴 했지만, 샤를은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글렌 미가는 품에서 밀드레드에게 받은 약병을 꺼내 들더니 내장 위에 물약을 조금씩 흘려서 고루고루 부었다.

-쭈인? 쟤네 뭐하려는 거야?

-심해의 괴수를 부르려는 속셈이겠지. 아마도 수호자로 삼을 생각이 아닐까.

사교도들의 의식이 극에 다랐을 때쯤, 멀리서 기이한 울음소리가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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