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3화 - 보통 사람들은 섬으로 가기 위해서 배를 탄다.
하지만 샤를은 굳이 배를 타고 섬으로 갈 필요가 없었다.
메트로의 장점은 전 세계 어디든, 그것이 육지건 지하건 섬이건 심지어 하늘 한 가운데라도, 정해진 역이 있는 곳에서 멈춰선다는 점이었다.
메트로라는 열차의 권한을 공유받게 된 이상 거리에는 문제가 없다.
봉인 재단이 자유롭게 온갖 곳에 영향력을 행세할 수 있는 건 바로 이 메트로 덕이 컸다.
메트로폴 순행 열차 13-23을 타기 위해 노선표에 적혀 있는 장소로 이동했다.
평범해보이는 이름의 주점이었는데, 주점의 문을 열자마자 곧바로 다른 위상으로 이동되었다.
정확한 시간에 그 위치에 있다면, 같은 공간의 다른 위상으로 이동해서 순행 열차를 탈 수 있다.
‘물론 영성자에 대해서만 해당하는 얘기지만.’
일반인은 감지조차 하지 못하고 같은 장소의 다른 위상을 움직이게 될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 메트로의 노선표는 영성자들에게 있어선 귀중한 것이었다.
열차 내부는 다른 열차들과 비슷하게 푹신푹신한 의자가 놓여 있었다. 안에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메트로의 이용 권한이 있는 사람 중에서, 이 방향으로 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던 셈.
홀로 열차에 앉아서 샤를은 잠시 고민에 잠겼다.
‘너무도 많은 사건들이 종잡을 수 없을 만큼 많이 일어나.’
갑자기 대성당 폭파 계획이 들리지 않나, 아니면 맥밀런 정신 병원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나지 않나.
앞으로도 비슷하게, 메트로폴에서는 동시적으로 여러 사건들이 일어나게 될 것이었다.
밀려오는 사건을 혼자서 막는 건 벅차다.
왜 현대 사회가 수많은 사람에게 책임을 지는 형태로 발전되었냐하면, 과거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많은 사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이었다.
메트로폴에서 일어나는 일도 비슷하다. 이제 샤를에겐 선택지가 남았다.
‘하나는 취사선택하는 것이지.’
거를 사건은 거르고, 막아야 할 사건은 막는다. 이 과정에서 어떤 사건을 거르고 막아야 하는 지는 전적으로 샤를의 감에 따라 나뉜다.
‘다른 하나는 나 홀로 부담할 필요가 없다는 거야.’
샤를에겐 이제 발호를 시작한 무명 교단이 있다. 여기까지 끌고 오는 것만으로도 힘들었지만.
‘무명 교단에 영성자가 더 필요해. 그리고 내대신 손발이 되어서 사건을 막아줄 사람들도 필요하고.’
그 역할의 선봉에 설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플로나가 누군가를 지휘하는 건 어렵지.’
본신의 능력치는 상당한 편이지만 플로나가 통솔력이 있다고 보긴 어렵다. 성격의 문제다.
‘에세나는 교단 전체를 통솔해야하니 다른 일을 맡기기에는 무리야.’
지금도 기대 이상으로 많은 일을 하고 있다. 이번에 존 도우를 데리고 교단에 입교시킨 것도 에세나의 영향이 컸다고 알고 있었다.
‘제롬은 괜찮아.’
사실 제롬만큼 만능으로 쓸만한 인물이 없다. 본신의 능력도 나쁘지 않은 데다 통솔, 행정도 맡기면 쓸만하게 해낼 것 같다. 심지어 저번 존 도우 사건 때도 암살도 잘 수행하는 걸 확인했다.
거기다 제롬은 지금 암흑성도회에서 첩자 임무도 도맡아 하고 있었다.
‘골레릭을 데리고 다니는데 별 불협화음이 없는 걸 보면 괜찮아 보여.’
그러고보니 골레릭의 동료였던 전 MI7요원인 유스티나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이건 따로 알아볼 필요가 있겠다.
‘하지만 제롬만 믿고 있을 수는 없지. 다른 사람을 찾아야겠어.’
샤를을 대신해 움직일 사람에 대해 이런저런 후보를 고르고 있는 동안 메트로폴 순행 열차는 곧 그 섬에 도착했다.
‘역’이라고 해도, 메트로가 있는 위상에선 정거장이었을지 모르겠으나, 현실 위상에서는 아무 것도 없는 암초 위였다.
쏴아아아. 촤아아아아.
“뭐야.”
심지어 주변이 온통 바다로 둘러쌓여 있는 작은 암초 위였다. 눈 앞에 섀터 섬의 절벽이 보였다.
-여긴 바다 한가운데네?
-파기님. 해결해주세요.
-좋아. 나만 믿어.
드레스의 팔목 소매를 걷어올린 파기나레코르가 허공으로 떠오르더니 무존자의 겨울 주문을 난사했다.
꽁꽁 언 바다를 걸어서 불편한 절벽을, 검에 매달려서 떠올랐다. 꽤나 불편하지만, 내 몸 편하자고 수호자를 소환하는 것도 정신력의 낭비다.
“어쨌든 올라왔고.”
정장에서 바닷가의 짠 내가 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코를 킁킁거렸지만 어쩔 수 없다.
절벽 주변에는 나무들이 잔뜩 보였다. 섀터 섬이 그다지 크지 않다고 해도, 사람이 지내는 곳 이외의 곳은 대부분 이런 야생의 상태다.
특히 여긴 부둣가의 반대편이라 아예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라고 할까.
“이제 슬슬 움직여볼까.”
-어디로 갈 거야? 주인?
-먼저 정신 병원에 잠입부터 하자.
-작전명은 두근두근 정신병원 잠입 대작전?
-…….
마치 산책가듯이 말하지 말아 줄래?
*
밀드레드에게 조언을 듣고 난 이후 더글라스는 자신의 침소로 돌아왔다.
잡역부 숙소 중 한 곳이었는데 잡역부의 수가 상당히 줄어 있어서 빈 숙소가 남는다고 했다.
방 안에 있는 가스등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후미진 곳이라, 아직 수리조차 해두지 않았다는 말에 더글라스는 얌전히 촛대를 꺼내서 조명으로 사용했다.
그는 침실에 딸린 책상에 앉아, 자신이 아끼는 수첩에 마인드맵을 그리기 시작했다.
가장 중앙에 잭 첼리너의 이름을 넣는다.
맨 위에는 정신 병원에서 만난 주의할 인물들, 운영 측이다.
[메리 웰로드 : 정신의학자. 친절한 편. 마음이 따뜻해 보인다. 프랜시스 도너의 주치의다. 별다른 특이점을 찾지 못했다.
시드니 호렌슈타인 : 병원 원장. 외국인. 병원 전체를 총괄. 협조적임. 아직 별문제는 없어 보인다.
프랭클린 영허스밴드 : 병원의 경비대장. 샷건과 볼트 액션 소총 소지. 등대를 거점으로 삼고 있음. 그 안에 총기와 폭약류가 존재할 거라 추정.
밀드레드 폴슨 : 간호사(여). 내게 어부형제단이라는 사이비교가 있다는 것을 가르쳐줬다. 하지만 정말로 믿을 수 있을까?]
그리고 아래쪽에는 요주의 환자들에 대해 적었다. 이건 밀드레드와 메리의 의견을 종합한 것이었다.
[‘악마’ 프랜시스 도너 : 맹인. 시체의 첫 번째 발견자이자 유력한 용의자지만, 그가 잭 첼리너를 쓰러트렸다고 보긴 어렵다.
‘전문가’ 발터 코스트너 : 폭파 전문가, 공산주의자. 운동권 소속. 테러를 계획하다가 시도 중 발각됨. 과대망상에 빠져 있다고 한다.
‘소방수’ 폴 플랫 : 방화범. C병동 소속이었다가 증상이 약화되어 A병동으로 이송. 저지른 범죄는 방화라고 한다. 만약 그의 정신 질환이 치료되면 구치소에 수감될 예정.
‘나폴레옹’ ??? : 이름을 알 수 없다. 겁쟁이. 프랜시스 도너의 말에 의하면 그는 잭 첼리너를 두려워했다고 했다.]
환자 측은 아직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지만, 내일 취조 하면서 만나게 될 것이었다.
이렇게 정리한 뒤 그는 이번에 새로 가져온 단서를 하나 적었다. 어부형제단이라는 이름의 사이비 교를 끼워 넣었다.
오른쪽에 어부형제단이라는 그룹을 새로 형성하고 빈 공간으로 두었다. 이제부터 누가 사이비교에 소속되어 있는지, 차근차근 알아볼 생각이었다.
살인 사건과, 이 사이비교는 별로 연관이 없을 수도 있지만, 계속해서 마음에 걸린다.
“이건 내 생각보다 복잡하고 위험한 일이겠어.”
내일은 본격적으로 취조에 들어가겠다고 생각한 더글라스는 창밖을 보았다.
변덕스러운 메트로폴의 날씨에 영향을 받았는지 이곳도 하늘에서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빗소리를 들으면서 잠시 눈을 감자 피로와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느낌이었다.
“이만 눈을 좀 붙여야 하나.”
조용히 말한 그는 놀랍도록 섬뜩한 느낌에 허리춤의 권총을 뽑아 들었다.
“누구냐!?”
꾸득. 꾸득. 꾸득.
그것은 이상한 소리를 냈다. 마치 오물에서 나오는 공기 방울 같은. 폭우가 쏟아지는 소리 속에서도 아주 잘 들려서 오히려 섬뜩함이 든다.
창가에 있는 창문 한쪽이 열리면서 꾸득거리는 소리와 함께 생선 썩는 냄새가 퍼지기 시작했다.
더글라스는 침을 삼키면서 총을 들어 그것을 겨누었다. 그리고 사용하고 있던 촛불을 던져 잠시나마 그것을 확인하려 했다.
“……!”
그림자에 비친 생물은 인간이라고 볼 수 없을 만큼 끔찍하게 생긴 어인이었다.
“그륽륽륽”
“우, 우와아아아앗!”
자기도 모르게 이상한 비명을 지른 더글라스는 그 생물에게 총을 갈겼다.
*
샤를은 손쉽게 정신병원에 잠입할 수 있었다. 이곳의 경비는 매우 삼엄해 보이나 허실을 알고 있다면 뚫기 쉬웠을뿐더러, 주문을 사용할 줄 아는 영성자에게는 너무도 허술했다.
폭우처럼 쏟아지는 비는 이런 잠입을 오히려 더 쉽게 도왔다.
‘어디부터 갈까.’
A동 뒤쪽에는 간호사, 의사와 잡역부들의 숙소가 있다. 서로 다른 건물을 쓰지만, 거리는 가깝다.
시드니 호렌슈타인의 처소는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았으므로 그쪽으로 가보려다가, 그는 빗속에서 울리는 총소리를 들었다.
탕!
빗소리에 파묻혀 아주 작은 소리지만, 예민한 샤를의 감각에는 너무나도 크게 들렸다.
‘엔필드 리볼버 mk2. 메트로폴 경찰의 호신용 6연발 권총.’
이미 총소리만 들어도 무슨 총인지 알 수 있던 샤를은, 무슨 상황에 부닥쳐있는지 예측할 수 있었다.
그 권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이 섬에서 더글라스 헨치 뿐이고, 그가 이 야밤에 숙소에서 깡통을 쏘면서 노는 미치광이는 아닐 테니 분명 문제가 생긴 것이 분명했다.
빠른 속도로 달려간 샤를은 단숨에 뛰어서 잡역부 숙소 쪽으로 향했다.
2층 창문이 훤히 열려 있다. 샤를은 벽면을 타고 올라가면서 지독한 생선의 악취를 느꼈다.
‘어부형제단원이군.’
수몰왕을 너무 오래 믿게 되면 인간은 곧 그의 권속인 물고기처럼 변해간다.
어인은 이런 악취를 낸다. 단숨에 2층 창가로 들어선 샤를은 그곳에서 무언가 끌려간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너무 늦었나.’
샤를은 그 흔적을 쫓아가기엔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다. 비가 내리는 이런 날씨에 어인을 쫓아간다는 건 너무 어렵다. 물이 있는 곳에서 늘 버프를 받는 어인들은 이런 날에 신체 능력도 증가하는 데다가 말도 안 되는 경로로 이동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배수구같이 좁은 곳이라던가.
샤를은 자신의 추리를 통해서 더글라스가 죽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핏자국이 없다.
바닥을 살핀다. 제일 먼저 보이는 건 주사기였다. 샤를은 티오펜탈 나트륨이라고 적힌 약품을 보고서 곧바로 마취제를 떠올렸다.
격렬한 격투 흔적이 남아있다. 더글라스는 육연발 권총을 꺼내들고 어인을 맞췄다.
‘첫 번째 탄환은 어인의 어깨에 명중했군.’
바닥에 떨어진 생선 살 같은 것이 있다. 마치 생선반죽(fish cake)같이 생긴 그것에는 뼈가 붙어 있었는데 지독한 냄새의 근원이었다.
어인의 살점. 나머지 탄환은 빗나가 벽에 박혔다.
‘더글라스가 납치되었다. 하지만 납치되었어야 하는 이유는 뭐지?’
방안을 뒤적거리다가, 곧 그 이유를 알아냈다. 더글라스의 수첩을 발견했는데 그곳에 어부형제단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정황상 더글라스는 어부형제단의 흔적을 찾아냈고, 비밀을 알아낸 나머지 잡혀간 것으로 추정된다.
‘이야기가 변했군. 더글라스는 어부형제단의 인신 공양의 제물로 끌려갔나. 그럼 여유가 어느 정도 있다.’
괴테의 만년필에 들어있을 피터의 소설은 원래 이런 내용이 아니었다. 더글라스가 살인범을 추적하는 내용이었을 터.
‘하지만 이상하진 않아. 피터의 이야기는 미완성으로 끝났으니 다른 스토리가 개입되어도 이상하지 않지.’
샤를은 더글라스를 구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판단했다.
주머니에서 은색 회중시계를 꺼내서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오후 10시다.
어부형제단의 ‘공양의식’은 늘 정오 12시에 벌인다. 다음날까지는 여유가 있다. 그리고 위치도 알고 있으니 당장 급할 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