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2화 - 메리가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경비대장이 경비대원들과 함께 왔다.
그들은 병원 내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졌다는 말에, 실종자 수색을 멈추고 당장 달려온 참이었다.
시체를 보면서 프랭클린 영허스밴드 경비대장이 혀를 찼다. 그는 이 끔찍하게 살해당한 시체가 두렵지 않은지 인상을 찌푸리는 것 정도의 반을 보였다.
“이건 마치, 사람을 도축해둔 것 같군. 어떤 미친놈이 저질렀는지 몰라도 그놈은 매우 위험한 놈이 분명합니다.”
더글라스는 예상했었지만, 그가 시체를 상당히 많이 보아온 유형이라는 걸 알았다. 이런 자들은 전직 군인이거나 혹은 전직 모험가일 것이다.
“프랭크. 경비원들의 숫자는 얼마나 됩니까?”
“총을 들고 있고 완전무장한 경비원은 나까지 합쳐서 일곱입니다. C동 지키는 경비원들을 제외한 숫자죠.”
“수가 적군요.”
“뭐, 박봉의 정신병원 경비원의 숫자가 얼마나 많겠습니까? 더군다나 이렇게 육지에서 떨어진 곳은 말이지요. 아무튼, 여러모로 귀찮아질 것 같군요.”
그 뒤, 곧바로 경찰국에서 전보가 왔다. 새 형사를 보내기 전까지 이 살인 사건은 더글라스에게 맡긴다는 내용이었다.
‘그의 말대로 귀찮아졌군.’
전보를 본 뒤 더글라스는 담배를 한 대 피우고는 앞으로 해야 할 일을 떠올렸다.
‘첫 번째로 섬을 봉쇄해야 해. 이건 어렵지 않겠군. 하루에 한 번 오는 그 배를 검역하면 되니까. 그럼 살인범이 빠져나가지는 못하겠지. 두 번째는 더 이상 살인이 일어나지 않도록 보안을 강화하는 거야. 하지만 이 경비대원들을 믿을 수 있을까? 아니지. 당장 믿을 수 없다면, 믿을 수 있게 그들을 시험해봐야겠군.’
평소라면 이런 극한의 상황에서 당황하면서 누군가 해결해주길 바랄 것이다.
지금은 배나오고 게으른 40대 중년인 더글라스였으나, 그래도 왕년에 그는 수도 인시그니아에서 손꼽히는 수사관이었다.
이런 긴급상황이 들이닥치자, 평소에 숨어져 있던 총기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얼마나 협조하는지, 그리고 나에 대한 신뢰가 얼마인지 보고 나서 그들에 대한 의심을 풀어도 늦지 않다.’
더글라스의 눈이 번뜩인다.
“프랭크. 당장 섬을 봉쇄하시오. 쥐새끼 하나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하고, 이 잭 첼리너라는 피해자가 살해당하기 이전, 배의 출입 기록을 가져다주시오.”
“알겠습니다.”
당장 더글라스는 말투부터 바꿨다. 그의 목소리에 그 나이대의 권위가 돋보이자 프랭크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면서 그의 말을 따랐다.
“간호사들을 불러주시오, 메리 선생.”
“아, 네.”
“그리고 다른 환자들에 대한 정보도 필요하오.”
갑작스러운 변화에 당황한 건 메리 웰로드도 마찬가지였다.
여태까지 별로 믿음직스럽지 못하던 형사가 갑자기 돌변해서 카리스마를 뿜어내면서 그녀에게 명령하고 있으니, 미덥잖은 과거의 모습과는 천지 차이였다.
‘이러면 헥센 교수님을 부르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메리는 잠깐 그렇게 생각했으나, 이미 전보를 치고 그에 대한 답까지 받은 상태라 물릴 수도 없었다.
더글라스의 명령에 따라 섬은 사실상 봉쇄되었고 살인범을 찾기 위한 취조가 시작되었다.
병원측의 협조를 받아서 식당을 급조된 취조실로 사용했다.
메리가 부른 간호사들이 오기 전에 더글라스는 최초로 시체를 발견한 프랜시스부터 취조를 시작할까 하다가 먼저 중대한 협력자가 될 경비원들부터 가볍게 확인해보기로 했다.
식당에 앉아서 프랭크와 더글라스는 맞담배를 피웠다. 이들은 조사 내내 앞으로 더글라스를 도와줄 사람들이었다. 단지 뒤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압박일 것이다.
“경비원이 범인일 수도 있겠습니까? 그들의 행적을 알아보고 싶소만.”
더글라스의 말에, 프랭크가 담배를 뿜어내면서 헛헛거리며 웃었다.
“경비원들이요? 우린 정신병원에 안 들어갑니다. 저기 등대 보이죠?”
식당으 창문 너머로 손가락을 가리키자 더글라스는 그곳에 등대가 있다는 걸 확인했다.
“경비원들은 보통 저쪽에서 지냅니다. 필요할 때마다 C병동의 다른 경비원들과 교대하지요.”
“그렇군.”
사실 더글라스도 굳이 경비원이 범인일거라 생각하진 않았다.
살인 사건을 조사할 때는 동기가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경비원들에게는 동기가 보이지 않는다.
경비원이 갑자기 미쳐서 굳이 야밤의 정신병원으로 들어와서 간호사를 죽이는 것보다, 정신병자 하나가 회까닥해서 잭 첼리너를 죽였다는 것이 더 말이 되기도 했고.
‘아직 그들이 이교의 석상을 숭배한다거나 하는 증거는 나오지 않았어. 의심의 눈초리로 볼 필요는 있지만, 완전히 믿지 않을 수도 없지. 어쩌면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일 수도 있고.’
어쨌든 지금 이 병력이 적이 되는 것보다 우호적인 편이 좋다.
경비원들을 50%정도는 믿을 수 있다고 판단한 그는 메리가 불러와서 기다리고 있었던 간호사들과 얘기를 나누기로 했다.
잠시 뒤, A동에서 일하던 간호사들 여럿이 몰려왔다. 간호사들은 남자가 많았으나, 삼분지 일 정도는 여자들도 있었다.
이들 간호사들에게는 입단속이랄 것이 없어서, 잭 첼리너의 시체를 발견했을 때 함께 있었던 간호사들에 의해서 살인 사건이 퍼진 상태였다.
특히 그들은, 프랜시스 도너가 살인범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여러분. 이번 살인 사건에 대해 유감을 표하겠소. 본 형사는 본래 실종 사건을 조사할 왔던 차. 그런데 갑자기 살인 사건이 벌어지다니 매우 유감이라오. 난 기필코 이 살인 사건을 완벽하게 조사할테니, 협조를 부탁드리오.”
힘 있는 목소리를 듣고 더글라스를 이미 만나본 간호사들은 더글라스가 여태 보던 그 사람이 맞는지 의심했고, 그를 본 적 없던 간호사들은 더글라스를 꽤 신뢰하게 되었다.
어찌 되었건, 살인 사건이 벌어졌는데 마침 형사가 있었다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적잖이 안도 되는 일이었으니, 간호사들은 순순히 협조했다.
“잭 첼리너가 실종된 그 날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든 일을 내게 말해주시오.”
“아, 제가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한 간호사가 입을 떼자 다른 사람들도 자신이 알고 있는 그 날에 관해 얘기했다.
그 얘기들을 종합해보자면 이랬다. 그날은 그다지 특이할 것도 없다고 했다.
갑자기 발작하는 환자가 허공에 대해 고래고래 소리지르거나 난폭하게 행동하는 일은, 병증이 가벼운 A동 환자들에게도 종종 있는 일이므로 그런 사건에 ‘특이’하다고 첨언하는 일은 없었다.
그러므로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난 뒤, 실종된 지 하루가 지난 지금 시체가 발견되자 다들 난색을 표했다.
밤에 있었던 일에 대해 중점적으로 추궁했지만, 간호사들은 다들 아는 것이 없었다.
그들에게 무언가 얻을 만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자 아쉽다는 생각이 들던 차에, 한 여간호사가 주저하는 것이 보였다. 붉은 머리카락에, 하얀 피부를 가진 간호사였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이렇게 간호사들이 모두 모인 곳에서는 할 수 없는 얘기군.’
왼쪽 아래 명찰에, 밀드레드 폴슨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녀의 이름을 기억해둔 그는 결국 다들 해산시켰다. 그리고 나서 따로 밀드레드 폴슨을 불렀다.
“이보게 폴슨 양. 따로 할 얘기가 있지 않소? 아까부터 내게 신호를 주는 것 같은 눈치였소만.”
“저, 그게. 여기서 얘기할만한 것은 아니군요.”
밀드레드는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피더니 잠시 뒤에 자신의 처소로 오라고 했다.
“A동 뒤쪽에 있는 간호사 숙소로 말이요?”
“당장 여기서 할만한 얘기는 아니니까요.”
개인적으로 밀폐된 공간에 만나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듣는 건 위험한 일이었다.
당장 밀드레드가 마음이 바뀌어서 비명을 지르면서 더글라스를 치한으로 몰 수도 있는 일이니까.
인상을 찌푸린 더글라스는 어쨌든 알겠노라 대답했다. 이렇게까지 비밀을 요구한다면 분명히 중요한 얘기일 것이다. 다만 안전장치는 따로 만들어 놔야겠지.
*
메리 웰로드에게 연락을 받은 제이크 집사는 그 즉시 자신의 주인에게 이야기를 전달했다.
“맥밀런 정신병원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졌다고?”
“예. 그렇습니다. 메리 양은 그 사건을 해결해주길 원한다더군요.”
“개인적인 의뢰인가. 음.”
보통 살인 사건이라면 샤를이 끼어들 필요가 없었다. 경찰에서 알아서 처리할 때지만
자세한 이야기를 제이크에게 전달받은 샤를은 이상한 기시감에 휩싸였다. 그러다가 곧 왜 그런지 알게 되었다.
‘바이스 산 근처의 그 산장에서 일어난 일.’
그때, 솔로가 이야기를 하기 전에 피터가 먼저 얘기를 꺼냈었다. 그가 만든 맥밀런 정신병원에서의 살인 사건 시나리오.
더글라스 헨치와 메리 웰로드가 주연이 된 그 이야기.
그 시나리오에서 샤를은 자신이 알고 있던 이름, 메리 웰로드라는 사람의 이름이 나타나자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사건이 갑자기 현실로 이뤄질 줄이야.
“어떻게 된 거지?”
샤를은 생각을 하다가 문득 괴테의 만년필에 대해서 떠올렸다. 여럿이 모여서 시나리오를 만들 때쯤 누구도 모르고 있었지만, 솔로는 괴테의 만년필을 옷에 넣고 있었다.
괴테의 만년필은 이야기를 현실화시키는 힘이 있다. 어쩌면 그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암흑성도회의 일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여러 계책을 내고 있던 샤를에게 있어선 귀찮은 일이었다.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하진 않을 거야. 당장 이 사건이 조금 더 빠르다. 하지만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어. 그렇다면 미리 대비를 해두고 가는 편이 낫겠군. 혹시 내가 돌아오지 못할 때를 대비해서 말이야.’
그곳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진 게 마음이 걸렸다. 다른 곳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별문제가 없겠지만 하필 그곳에는 수몰왕의 고대 사원이 있다.
‘맥밀런 정신병원의 원장 시드니 호렌슈타인은 때에 따라서 어부 형제단에 협력하기도 하는 사람이지. 확률은 50%인가.’
고립된 섬에서 정신병원을 운용하는 원장. 그 섬에는 고대의 악이 잠들어 있었다.
그에게는 그것에 영향받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다. 미치광이가 되거나, 미치광이보다 더 위험한 광신도가 되거나.
‘섀터 섬 내부의 모든 인간들의 계몽 수치도 체크하고 어디까지 위험해졌는지도 알아봐야겠어. 만약 뭔가 진행되고 있다면 막아서야겠지.’
살인사건이라는 위험한 문제가 발생한 이상 샤를은 섬 내부에 상황이 얼마나 안 좋은지 살펴봐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만약 인신 공양의 의식이 시작되었다면 또 다른 스토리가 전개되니 가만히 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
‘일단은 정찰, 정도로 해둘까.’
섀터섬이 어부형제단의 근거지로 변하고 있으면 막아설 생각이었다.
*
잠시 뒤, 더글라스는 메리에게 자신이 밀드레드라는 간호사의 숙소로 가서 그녀에게 따로 비밀 얘기를 듣겠다고 말했다.
이런 식으로 언질을 줬으니 갑자기 더글라스가 밀드레드를 덮치거나 했다는 일이 벌어지더라도 밀드레드의 자작극으로 덮어씌울 수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런 일을 벌인다면 그 여자가 범인이거나 범인과 연관되어 있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되지.’
꼼꼼하게 대비책까지 마련한 더글라스는 밀드레드의 처소로 향했다.
정해진 주소로가 방문을 두들기자 밀드레드가 재빨리 더글라스를 방안으로 들였다.
“들키진 않았겠죠?”
“그렇소. 대체 무슨 얘기길래 그런 거지?”
“무슨 일이긴요. 간호사들 사이에 ‘협력자’가 있으니 제가 따로 일러드리는 겁니다.”
“협력자?”
밀드레드는 궐련을 하나 꺼내서 입에 물고는 얘기했다.
“하나 피실래요?”
“됐소.”
평소에는 잘만 피던 담배였지만, 날카로운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 가볍게 거절한 더글라스를 향해서 피식 웃은 밀드레드가 말했다.
“이 정신병원 등지에 이상한 사람들이 있어요.”
“이상한 사람?”
“예. 섬 전체에 걸쳐서 퍼져 있는 사원에 대해 들었나요?”
“아, 그 끔찍한 뱀 동상을 말하는 거로군. 그거라면 이미 섬을 올라오면서 한 번 본 적이 있소.”
더글라스는 섬을 올라오면서 보았던 그 끔찍한 무언가를 형상화한 석상을 떠올렸다. 순간 정신을 잃을 뻔했었지.
“그걸 신으로 받들고 모시고 있는 집단이 이 섬 내부에 있다면 믿겠습니까?”
“섬 내부에 사교가 팽배해 있단 말이오?”
“네. 누구라고 특정할 수는 없지만, 많은 사람이 그 종교를 믿고 있지요. 환자나 의사, 간호사, 잡역부 할 것 없이 말이에요.”
“그게 정말이라면 매우 위험한 일이군. 그 사교의 이름이 뭐요.”
“자기들끼리 어부형제단이라고 부르더군요.”
꽤나 촌스러운 이름이었지만, 이 근방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면 만만히 볼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시체가 죽은 모습. 그가 신대륙에서 보았던 그 이상한 신앙의 정체와 연관이 있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얘기라고 판단했다.
더글라스는 자신의 품에 총이 있다는 걸 다행으로 여겼다.
“그럼 그 사교의 누군가가 살인범이란 말이오?”
“내 예상으론 그래요.”
적어도 눈앞의 이 여자가 헛소리를 하고 있지는 않은 거라고 판단한 더글라스는 밀드레드에게 몇 가지 정보를 더 얻어낸 후 헤어졌다.
더글라스는 밀드레드의 방에서 나오면서 벽면을 바라보았다. 그곳에 웬 병이 있었다.
그 병에는 티오펜탈 나트륨이라는 약물 이름이 적혀 있었다.
약에 대한 조예가 없는 더글라스는 머릿속에 그 이름만 기억해두고는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그는 밀드레드 폴슨이 싸늘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