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1화 - 경찰국 내부의 인사 문제는 샤를에게 있어선 중요한 일이었다. 버나드 힙슨은 평범한 경찰이지만 무명교에 투신한 이후로 아주 훌륭한 정보책이 되어 주었다.
그의 보고 때문에 경찰국 내부의 알력이나 변화를 알 수 있었다.
이번에 들어온 보고는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다. 새로 부임했다는 경찰국장의 이름을 듣고 샤를은 약간 놀랐다.
“루미너스라고?”
“예. 도저히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머리카락이나 눈 색깔도 그렇고요.”
그야 그렇지. 루미너스는 일단 평범한 인간이 아니다. 어쩌면 인간이 아닐지도 모른다.
게임 커뮤니티에서는 루미너스가 인간의 형상과 비슷한 무언가라고 추측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이계 심층에서 지내는 인간과 닮은 고위 장생종이라고 하기도 했고, 더러는 고 헤르메스 시대에 승천해서 신이 되기 위해 수련 중인 영성자라는 말도 있었고 누군가는 머리 위에 있는 헤일로 때문에 그녀를 천사라는 다른 종족이라고 생각했다.
여러모로 베일에 싸인 캐릭터. 루미너스는 등장 초기부터 미스테리에 쌓여 있었다.
거기다 무슨 수를 냈는지 이 나라의 의회를 구워삶아서 초기에 있었던 섹션 원이라는 정보기관을 개조해서 MI7을 만들었다.
의회의 지원이 있었다고 하나 사실상 MI7을 혼자서 만들어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루미너스는 그곳에서 국가에 충성할 요원들을 만들어내고, 추가적으로 영성을 사용할 줄 아는 요원들도 만들었다. 이들이 루터 식스다.
이 루터 식스들에게는 루미너스가 새로이 만들어낸 영성을 다루는 기술을 익혔다. 총에다 영성을 불어넣어서 궤도를 변경하는 기술, 마총술이다.
골레릭이 사용하던 살살쏘기…부터 천방지축 쏘기라던가, 얼렁뚱땅 쏘기라던가. 하나같이 괴상한 이름의 사격술이 전부 그 마총술에 속해 있었다.
“루미너스가 국장이 되었다? 다른 인사들의 반발이 있었을 텐데.”
“상당한 반발이 있었지만 금세 제압되었습니다. 새로 부임한 국장님은 이상할 정도의 카리스마가 있었습니다.”
루미너스를 만난 모든 사람들은 고분고분해지거나 그녀를 숭배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났다.
자체적으로 가진 카리스마도 있지만 카리스마를 넘어선 무언가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다른 것은?”
“더글라스 형사에 관해섭니다.”
오컬트 부의 더글라스 형사. 샤를은 그의 존재를 알고 있었으나 전혀 마주치지 않아서 사실 반쯤 잊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 가볍게 볼 일은 아니었다.
더글라스 헨치는 엑스트라가 아니다.
보통은, 게임 속에서 사이비 교주를 적극적으로 방해하는 귀찮은 경찰로 나온다.
“더글라스의 운명이라.”
많은 운명의 분기에서 더글라스는 여러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보통은, 교주들과 싸우다가 죽는다.
죽지 않는다면 끔찍한 것을 목도하게 되어 미쳐버리게 되거나, 혹은 드문 경우지만 미쳐버리다가 갑자기 각성해서 교주급 영성자가 되기도 한다.
이 경우에는 플레이어를 괴롭히는 압도적인 능력을 발휘하면서 상상을 초월하는 잠재력을 폭발시키게 된다.
‘더글라스가 회유가 가능했던 캐릭터였던가?’
샤를의 기억상으로, 더글라스는 회유가 불가능한 계통에 속해 있었다.
어쨌든, 그만큼 중요한 캐릭터라는 것이다.
보통, 그가 죽거나 리타이어해서 사라지고 나면 더 강력한 MI7의 오컬트 수사관이 등장하므로 헛정보를 보내서 그의 수사를 혼선시키는 방법으로 내버려 두거나 확실히 ‘죽여서’ 처리하거나 두 가지 패턴이다.
“의외란 말이지.”
그런데 이번 세계에서 그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다.
샤를은 이렇게까지 더글라스와 마주치지 않게 되는 루트는 처음 겪어본다.
더글라스는 MI7의 요원들에게 강렬한 질투심과 시기심을 갖고 있어서, 그들에게 질 수 없다는 듯 비밀 세계를 쑤시고 다니게 된다.
당연히 이 과정에서 여러 교주의 흔적을 찾고 지지든지 볶든지 여러 사건이 일어난다. 근데 이 세계에서의 더글라스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전과는 다르다.
“더글라스 형사는 루미너스 국장이 부임하기 전에 실종 사건 수사를 위해 메트로폴 남부로 향했습니다. 맥밀런 정신 병원이죠.”
“섀터 섬으로 향했다는 건가?”
메트로폴 남부의 작디작은 섬. 맥밀런 정신병원이 있는 곳. 딱 정신병자들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의 작은 그 섬으로 향했다라…….
여태 아무 일도 하지 않던 더글라스가 처음으로 무슨 사건과 마주친 것이다. 이건 간단히 볼 일은 아니다.
샤를은 버나드 힙슨의 어깨를 두들겨 주고는 맥밀런 정신병원에 있는 걸 떠올렸다.
‘수몰왕을 모시는 사원이 그곳 어딘가에 있었던 것 같은데.’
어부형제단이 믿고 있는 수몰왕의 고대 사원이 그곳에 있다.
뭐, 문제가 있겠느냐 잠깐 생각했던 샤를은 곧 걸려온 전보로 인해 생각을 바꿔야 했다.
메리 웰로드에게서 걸려온 전보였다.
*
시체는 2층 직원 화장실에서 발견되었다.
시체를 보고 패닉에 빠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은 광인이거나 시체에 익숙한 사람일 것이다.
정신의학자 특성상, 음침하거나 기괴한 것을 마주해, 이런 것에는 내성이 있었지만 실물 시체는 또 다른 문제였다. 거기다 그 시체가 마치 짐승을 해체한 것 같이 끔찍하다면 더더욱.
메리 웰로드는 그 끔찍한 시체를 보고 비명을 질렀다.
당연하게도 그녀를 따라왔던 수많은 사람도 마찬가지로 패닉에 빠졌다. 오직 더글라스를 빼고.
그는 수사관이던 시절 이것보다 더 끔찍한 것을 본 적이 있었고, 젊었을 적 전쟁에 참전했을 때는 더 끔찍한 것도 본 적이 있었고.
그는 침착하게 다른 사람들의 흥분을 가라앉혔다. 좀 잠잠해지자, 이번에는 바깥에서 어떤 환자가 들어오더니 또 소리질렀다.
“흐아아아아악! ‘악마’가 잭을 죽였다!”
“조용히 좀 하라고 좀! 저 환자 내보내시오!”
더글라스는 인상을 쓰면서 간호사들을 보내서 환자를 제압하게 했다.
메리 웰로드는 시체를 보고 반쯤 정신이 나갔다가 되돌아왔다.
잭은 인상은 험악하지만 간호사나 의사들에게는 서글서글하게 대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죽어서 발견된다니…….
“악마가 누굽니까? 메리 선생?”
“어, 그건 프랜시스를 말하는 걸 거에요.”
메리는 떨리는 목소리로 프랜시스의 특징에 대해 말했다. 평소에, 남들에겐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들을 수 있다고 한다.
특징만 봐서는 샤먼이라고 봐도 이상하진 않지만, 그가 악마라는 별명을 갖게 된 것에는 이유가 더 있었다. 그런 멸칭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즐긴다는 점.
더글라스는 옆에 있는 프랜시스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프랜시스는 중얼중얼거렸다.
“곧 그자가 온다. 그는 죄의 천칭을 들고 악마를 잡아먹는 사악한 왕이자 그릇된 종자이니. 이 악에 모든 것이 휘말려갈 것이다.”
“…….”
“도저히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군.”
“병이 더 심해진 것 같군요. 원래는 이렇지 않았는데.”
메리는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A 병동에 수용된 정신병자라고해서 어느 정도 대화나 소통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던 더글라스는 한숨을 쉬었다.
“이 정도면 중증환자들만 모아뒀다는 B병동에 수용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예전에는 그나마 소통이 되긴 했지만 요즘은 점점 더 저런 망상을 하고 있습니다. 그 자가 나타나서 우리 모두를 죽일 거라는 식으로요.”
“일단 가둬두고 정신이 돌아올 때 다시 조사하도록 하죠.”
말하기 무섭게 프랜시스가 괴성을 지르면서 벽면에 자기 머리를 박았다.
“흐하하하하하! 제물이다! 제물이다!”
“이 자식 또 발작이군! 어서 제압해!”
프랜시스는 시체를 보고 오히려 즐거워하는 것이 아닌가?
광인처럼 웃는 프랜시스를 제압해 자신의 병동에 집어넣는 걸 보면서 더글라스는 담배를 빼어 물었다.
일단 시체를 살펴볼 생각이었다.
“메리 선생. 경비대를 불러주시죠. 간호사만으로는 안 되겠군.”
“예. 제가 가서 불러올게요.”
“가는 김에 경찰국에 새로 신고하는 게 좋겠습니다.”
“네.”
그가 시체를 조사하면서 단서를 캐내려고 하는 동안 메리는 서둘러 경비대원들을 부르고 나서 곧바로 경찰국에 전보를 쳤다.
경찰국에 다시 전보를 보내어 신고했지만 여전히 마음 한편이 걸렸다.
더글라스 헨치만을 믿고 있기에는 조금 뭔가 미덥잖았다.
그러다가 그녀는 자신이 다루던 환자의 보호자 중에 탐정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것도 인맥이다.
연락할까 말까 하다가, 곧 그녀는 전보를 보내기로 했다. 큰 저택에 사는 교수이자 탐정인 샤를 헥센에게 전보를 보냈다.
전보를 보내고 난 뒤 메리는 곧이어 도착한 경비대장과 함께 더글라스에게 갔다.
메리가 오기 전까지, 더글라스는 이 화장실에 홀로 남아 시체와 단둘이서 있었다. 으스스하지도 않은지 더글라스는 냉철한 눈동자를 반짝이며 시체를 조사하고 있었다.
직접적인 사인은 교살. 밧줄 자국이 아니라 손이나 팔뚝으로 감싸 안아, 질식사시켰다.
이렇게 큰 덩치의 남자가 그냥 당했을 리는 없다. 그러니 정면의 공격은 아닐 것이 분명했다.
뒤에서 공격했다. 그럼 범인에 대한 선택지가 늘어난다. 담배를 피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조금 더 냉정해지기 위해 계속 시체를 살핀다.
범인은 이런 방법으로 피해자를 살해한 다음, 배를 갈라 내장을 꺼냈다. 그리고 그 옆에 피를 이용해 작살과 물고기 같은 심볼을 그려뒀다. 이 방식……. 언젠가 본 적이 있다.
더글라스는 자신의 20대 초반을 떠올렸다. 그는 젊었을 때 군역을 치르기 위해 육군에 입대했고 남부의 신대륙 전쟁을 치렀다.
그리고 그곳에서, 식민지 원주민들과 전투를 벌인 적이 있었다. 끔찍한 살마 고지에서 총기로 무장한 이주민들, 그리고 활과 창으로 무장했던 원주민들을 만났다.
그들의 시골 마을에는 아주 비밀스러운 의식을 거행하고 있었다.
“이 방식……. 그 원주민들의 방식과 유사해.”
듣기로, 그들은 이런 방식으로 자신들의 사악한 신에게 인신공양을 바치던 것이었다. 교살 후 내장을 신에게 제물로 바치는 식으로 포로를 죽였다고 들었다.
“분명 물고기의 신에게 바치는 방식이었지…….”
이게 단순한 살인이 아니라는 것이 명확해졌으나, 아직 범인은 물론이고 단서도 찾아내지 못했다.
신고를 끝마치고 곧이어 메리가 돌아왔다.
“용의자는 찾았나요?”
“그야 첫 번째 발견자인 프랜시스 도너요.”
“프랜시스가 살인을 저지를 리가 없어요. 그는 맹인이에요.”
“맹인이라고 사람을 죽이지 못한다는 말은 없습니다. 일단 모든 사람을 조사할 생각이니 잠시 기다리시죠.”
더글라스는 프랜시스가 범인이 아닐 거라고 예상했지만, 의례적인 대답을 남겼다. 당장 이 메리라는 의사도 완전히 믿기는 어려웠다.
그리고 곧 올 경비원들을 기다렸다. 이 섬의 무장 병력은 그들뿐이었으니까.
‘일단 그들을 먼저 떠봐야겠어.’
경비대원들의 정보 수집이 먼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