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0화 - 메트로폴 남부에서 약 5km가량 배를 타고 가면 조그만 섬이 있다. 본디 작은 암초였던 섬을 개조해 매립을 하고 조그마한 부두를 세워둔 곳이 섀터 섬이었다.
이곳에는 맥밀런 정신병원이 있다. 사회에 위협적인 정신병자들을 격리하기 위해 세워진 곳이었다.
작은 배를 하나 타고 섀터 섬으로 이동한 더글라스는 섬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샷건을 든 경비원을 볼 수 있었다.
“어서오십쇼.”
느슨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경비원은 그에게 손을 내밀면서 자신을 소개했다.
“제 이름은 프랭클린 영허스밴드입니다. 섀터 섬 경비대장이죠.”
“반갑습니다. 메트로폴 경찰국 소속 형사 더글라스 헨치입니다.”
오컬트 부라고 대놓고 말할 수 없었으므로 그는 경찰국 소속 형사라고 조용히 말했다.
“영허스밴드씨.”
“프랭크라고 부르십쇼.”
“그래요, 프랭크 씨. 이번 실종 사건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아는 것만이라도 듣고 싶습니다만.”
“저도 많은 걸 알고 있는 건 아닙니다만. 자세한 건 맥밀런 정신병원 원장님과 얘기해보시는 게 빠를 겁니다. 저도 실종 사건이 있었다는 것 정도 밖에 모르거든요.”
프랭크의 인도를 받아 들어간 더글라스는 섀터 섬 전체를 빙글빙글 돌아서 들어가는 길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꼭 이런 식으로 돌아가야 하는 겁니까?”
“어쩔 수 없습니다. 높은 바위산을 깎아서 만든 곳이라 그냥 올라가긴 어렵거든요. 여기서부턴 마차를 타고 갑시다.”
대기 되어있던 마차에 경비대원 한 명이 마부노릇을 하고 있었다. 마차가 덜컹거리면서 올라가느라 더글라스는 불편함을 느끼고 속으로 투덜거렸다.
‘차도 없고, 마치 중세에나 썼을 법한 구닥다리 마차도 그렇고 참.’
불편한 비탈길을 올라가면서 섬 주변 여기저기에 보이는 곳을 둘러보다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저건 뭡니까? 저 뱀처럼 생긴 것.”
“아? 저거요? 여길 근거지로 사용했다던 어부들이 조각해둔 겁니다. 신기하게 생긴 조각상이죠?”
신기하다? 그렇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혐오스러웠다. 뱀이 무언가를 타고 올라간 것 같은데 마치 그 ‘무언가’가 형용할 수 없는 꿈틀거리는 바닷속의…….
“뭐, 저런 조각상은 몇 개 안 됩니다. 저것보다 신기한 것도 있죠.”
프랭크의 말에 파멸적인 생각에서 벗어난 더글라스는 자신이 잠깐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걸 깨닫고 물었다.
“신기한 거라뇨?”
“섬 안쪽에는 수 천 년 전의 기괴한 사원 같은 것도 있습니다. 저번에 박물관에서 나온 고고학자 친구들도 그것에 관심을 가지긴 했죠. 뭐, 금세 돌아가 버렸지만요.”
“흐음.”
계단을 타고 섬을 빙글빙글 돌면서 올라온 뒤에 맥밀런 정신병원을 볼 수 있었다.
‘무슨 수용소인가? 철조망에다가 높은 벽도 있군.’
안에는 여러 사람이 보였다. 덩치 큰 남자 간호사들이 돌아다니면서 이런저런 일을 하고 있었고 환자복을 입은 사람들이 밖에서 화단을 정리했다. 그밖에 허름한 옷차림의 잡역부들도 보인다.
병원부지 안을 보자 세 개의 건물이 보였다.
“왼쪽이 A병동입니다. 좀 상태가 괜찮은 경증 환자들이 있죠. A병동에서 퇴원하는 환자들이 가끔 있곤 합니다. 지금은 안 보이실 텐데. A병동 뒤쪽에는 원장님과 다른 의사들, 간호사들과 잡역부들이 지내는 숙소가 있습니다.”
“오른쪽은요?”
“B병동엔 중증 환자들이 있습니다. A병동에서 상태가 나빠진 친구들이 가는 곳이죠. 그쪽엔 힘쓰는 친구들이 몰려 있죠. 저기 맨 위쪽 건물은 C병동인데, 중증 환자들이면서 중범죄를 저지른 친구들이 수용되어 있습니다. 조금 더 올라가면 살벌한 인상을 주는 경비원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을 겁니다.”
나긋나긋한 표정으로 프랭크가 말했다.
“물론 그냥 올라갈 수는 없을 겁니다. 허가된 인원만 갈 수 있거든요. 저도 가끔 밖에 못 갑니다.”
A병동에 있는 원장실로 향하자 그곳에서 병원의 원장을 만날 수 있었다. 배 나온 더글라스와 비교되게도, 중년인이지만 체격이 좋은 남자였다.
“어서오십시오. 제가 바로 맥밀런 병원 원장 시드니 호렌슈타인입니다.”
그는 안경을 추켜세우고는 그와 악수를 했다.
“더글라스 헨치입니다. 처음에, 체격이 너무 좋으셔서 의사 선생님이 아닌 줄 알았습니다.”
의례 하는 덕담에 시드니가 웃으면서 자신의 팔을 걷어 알통을 보였다.
“다 타고난 것이지요. 저희 조부님이 키에프 제국인이시고 어머님은 저먼 왕국 시절에 제국으로 오셔서 아버지와 결혼하셨죠. 그래서 체격을 물려받았답니다.”
“그렇군요. 실종 사건에 대해서 자세한 내용을 보고 싶습니다만.”
“예. 실종된 친구의 이름은 잭 첼리너라고 합니다. B병동에서 일하는 간호사였죠.”
“언제 사라졌습니까?”
“시간상으론, 어제 아침이군요. 아, 담배 한 대 피우시겠습니까?”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그가 프랭크와 함께 담배를 피우면서 말했다.
“경비원들이 섬 전체를 수색할 수 있습니까?”
“예. 경호 책임자인 프랭클린 그 친구가 섬 전체를 수색하라고 하면 할 수 있을 겁니다.”
“일단 수색 시작하시고 실종되기 전에 그들과 만났던 사람들을 찾아봐야겠습니다. 직원들, 간호사들, 환자들도 말이죠.”
“음. 알겠습니다.”
똑똑.
그들이 대화하는 도중 누군가 노크를 한 뒤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곳엔 젊은 여자가 있었다. 의사들이 입는 하얀 가운을 입고 꽤 눈에 띄는 외모였지만 눈 밑이 퀭하고 화장을 전혀 하지 않아서 피부가 푸석푸석했다.
“원장님. 오늘 환자들에 대한 소견서입니다. 어라. 제가 방해됐나요?”
“아닐세. 들어오게나. 이분은 더글라스 헨치. 메트로폴 경찰국의 경찰일세.”
“반갑습니다. 정신 의학자 메리 웰로드입니다.”
“어. 그렇군요. 반갑습니다.”
이런 음침한 곳에 젊은 여성이 있을 줄은 몰랐던 더글라스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웰로드 박사는 A동과 B동의 대체로 아이들의 정신 분석을 맡고 있죠. 뭐 가끔 성인들의 진료도 맡지만 말입니다. 아, 마침 잘됐네. 웰로드 박사. 따로 일이 있나?”
“아뇨. 오늘은 소견서만 제출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럼 헨치 형사님을 좀 안내해줄 수 없겠나? B동에서 사라진 잭 첼리너의 일 때문이네.”
“아, 알겠습니다.”
메리 웰로드와 함께 더글라스는 B동으로 향했다. 더글라스는 상당한 공처가였으므로, 자신의 손에 낀 반지가 잘 보이게끔 거리를 두면서 메리와 조금 떨어져서 지극히 사무적인 어투로 말했다.
“잭 첼리너에 대해 아는 대로 다 말해주십시오.”
“간호사에요. 사회에 있을 때는 군인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얼굴에 큰 흉터가 있었거든요. 본인의 입으로는 곰에게 당한 상처라는데 총상으로 보였습니다.”
사무적인 것을 넘어서 딱딱해 보이는 말투에 메리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대답했다.
신대륙 전쟁에 나갔던 퇴역 군인이라는 말에 더글라스는 좀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자들은 대개 흉포하기 마련인데.
“그런 사람이 사라졌는데도 태평하군요? 위험하지 않습니까?”
“제가 만나본 바로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온화한 사람이었거든요. 발버둥 치는 환자들을 붙잡고 있는 것에도 마음에 상처를 입을 만큼 말이에요.”
“흐음.”
더글라스는 B동에 입장했다. B동에 들어가자마자 들린 것은 비명이었다. 처절할 정도의 절규.
“으아아아아아아악! 우린 모두 죽는다! 우린 모두 수몰왕님의 제물이 될 거야아아아아아! 어서 도망쳐! 도망쳐라, 이 멍청이들아!!”
“어서 제압해!”
“저 친구 또 병이 도졌군! 발작 중이야! 소라진 투약해!”
비명은 그 자체로 사람을 섬뜩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덩치 큰 남자 간호사 여럿이서 그 남자를 붙잡고 침대에 강제로 눕힌 다음 안정제를 주사하자 비명을 지르던 빼빼 마른 환자는 픽하고 쓰러져서 잠들었다.
메리는 매번 듣던 일인지 퀭한 눈동자로 그들을 바라보더니 입구에서 출입증에 사인했다.
“자, 받아요.”
메리는 더글라스 몫의 출입증을 건네주더니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를 따라 들어간 더글라스는 곧 B병동을 넘어서 실종된 간호사가 있던 장소로 가볼 수 있었다.
“여기가 그 친구의 숙소인가요?”
“예. 보통 간호사들은 A병동 뒤쪽에 있는 숙소에서 머무는데,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을 대비해서 B병동 뒤쪽에 있는 숙소에서 따로 머무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잭 첼리너도 그중 한 사람이었죠.”
잭의 숙소는 정말 간단했다. 방 가장자리에 있는 화분이 아니었다면 이곳이 사람이 사는 방인지 궁금할 정도로 깔끔했다.
“청소를 따로 한 겁니까?”
“아니요.”
더글라스는 젊었을 적 수사관이었을 때의 감각을 되살리려고 노력했다. 창가를 손가락으로 쓸었다.
먼지 하나 묻지 않는다. 어제 아침에 실종되었는데도 먼지가 없는 걸 보면 그제 청소를 했다는 얘기가 된다. 하지만 이렇게 깔끔한 방을 유지하는 사람의 특성을 보면 매일 청소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결벽증 환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자리에 기르는 화분은 수선화였다. 꽃이 피기에는 이른 시기인데도 벌써 꽃이 피어 있었다.
“일단 B병동을 한 번 수색해야겠군요. 같이 가실 수 있겠습니까?”
“네. 오늘은 이제 더 일이 없거든요. 제가 도와드리지요.”
더글라스는 자리를 옮겨 B 병동을 수색했다.
“마지막으로 그를 본 사람이 누굽니까?”
“그저께 저녁에 함께 일하던 같은 간호사 잭슨 덴스모어입니다.”
잭슨 덴스모어는 어색한 표정으로 더글라스와 대면했다. 더글라스는 최대한 무심한 표정을 지으려 노력하면서 그에게 말했다.
“어젯밤에 있었던 일을 최대한 자세히 말해주십시오. 당신과 잭이 저녁의 당직이었다고 했죠? 그것부터 이야기해보죠.”
“어, 그게 말입니다.”
“……?”
그의 표정을 보고 더글라스는 뭔가 숨기고 있는 걸 깨달았다.
“아는 대로 말하십시오.”
“어, 그게 전. 그날 비번이었습니다.”
“응? 정신병원의 당직이 혼자입니까? 웰로드 씨?”
“아니요. 원래 2인 1조입니다.”
“어, 그게 제가 너무 아파서 말입니다. 숙소에서 누워서 잠들기로 했습니다.”
“원래 그러면 대체할 사람을 구하는 게 규칙일 텐데요?”
메리가 묻자 잭슨이 고개를 푹 숙였다.
“원칙적으론 그렇지만, 대체할 사람의 스케쥴이 안 나왔습니다. 그래서 어젯밤에는 잭 혼자 당직을 서고 있었을 겁니다.”
“단순한 실종이 아닌 것 같군.”
메리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했는지 안색이 살짝 창백해졌다. 그때, 그들을 향해 한 남자 간호사가 나타났다. 그 간호사는 좀 어색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 형사님. 전달해드릴 게 있는데요.”
“무슨 일입니까?”
“이쪽으로 와보셔야겠습니다. 피투성이가 된 환자가 있습니다. 프랜시스요.”
메리가 당황한 듯 말했다.
“피투성이라뇨?”
더글라스는 예사롭지 않음을 느끼고 당장 걸음을 옮겼다.
간호사를 따라가자 그곳에 양손에 피범벅인채 앉아 있는 한 남자를 볼 수 있었다.
“이 친구는?”
“프랜시스 도너입니다.”
프랜시스는 바닥에 주저앉아서 무어라 중얼거렸다.
“그런가? 그가 새로운 자인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그의 규칙을 따라야만 해.”
“뭐라는 겁니까? 이봐!”
“잠시만요 형사님. 제가 먼저 말을 걸어볼게요. 프랜시스?”
말하면서 박수를 두 번 치자 그가 고개를 들었다. 백내장이 가득한 두 눈동자로 메리를 바라보는 모습이 섬뜩했다.
‘맹인이군.’
앞이 보이지 않는 이 남자가……피투성이가 되어있다니?
“프랜시스. 저에요. 주치의 메리. 괜찮아요?”
“질서를 만드는 자가 질서를 만들기 시작했다! 혼란을 일으키는 자가 질서를 만드는 자와 대적할 것이다! 승부가 나면 모든 것이 끝나게 될 것이다!”
헛소리를 잔뜩 해대는 프랜시스를 보고 더글라스는 도저히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메리는 침착하고 인내심 있게 여러 번 프랜시스에게 대화를 시도했다.
“피 말이에요. 대체 어디서 묻은 거예요?”
“피?!”
프랜시스는 크게 당황하더니 자신의 손에 묻은 것들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텅 빈 눈동자는 그 액체들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곧 그는 말했다.
“피. 이건 잭 첼리너의 피야. 따뜻한 마음을 가진 자의 따뜻한 피지.”
“예?!”
더글라스는 흠칫하면서 자신의 허리춤에 있는 총에 손을 가져가려다가 굳이 뽑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기다렸다. 일단 이야기를 더 들어볼 생각이었다.
“2층 간호사 화장실에 있었어. 불쌍하고 무서운 잭. 깨끗하지 못한 곳에서 잠들다. 나폴레옹이 좋아하겠군.”
그의 말대로, 그곳에서 잭 첼리너의 시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제 사건은 단순한 실종 사건에서 살인 사건으로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