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9화 - 플로나는 흥얼거리면서 복도의 창틀에 쌓인 먼지를 닦았다. 메트로폴을 한참 떠들썩하게 했던 에드먼드 피셔 살인 사건 이후로 샤를은 탐정 사무소를 휴업했다.
“휴업하시니 매일 집에서 쉬시니 좋아.”
밖에 나가 있을 때는 샤를의 행적을 알아낼 수 없지만 저택 안에 있을 때는 뭘 하고 있는지 일거수일투족 감시할 수 있다.
“헤헤. 서재에서 책을 보고 계시네.”
“호홋. 뒤쪽 정원을 산책하고 계시는구나?”
샤를을 ‘독점’하고 싶은 플로나에게 요즘만큼 행복한 때가 없었다.
“아! 샤를님의 머리카락이네.”
저택에 있는 사람들의 머리카락 사이에서 오직 샤를의 머리카락만을 골라서 찾아낸 플로나는 핀셋으로 머리카락을 살포시 집어서 보관하고 있던 봉투에 고이 보관했다. 그리고 자신의 방에 비밀리에 전시했다.
“1033호. 샤를 님의 머리카락. 후헤헤헤.”
플로나는 광기 넘치는 웃음을 지으면서 이 머리카락 밑에다가 그 기록을 적었다.
이 사실을 샤를이 알면 기겁하겠지만 그럴 리는 없다. 절대 들키지 않도록 극도로 조심하고 있다.
심지어 집사 제이크까지, 플로나의 통제하에 있었다. 제이크는 플로나의 눈치를 본다.
그날도 플로나는 아침을 들고 샤를이 깨어나기 전에 침실로 가져왔다.
쇼트 도우로 구운 애플파이, 모카향이 첨가된 식빵. 생토마토와 늘 좋아하는 파인애플. 우유를 함께 유리병에 담아왔다.
“샤를님. 식사에요.”
“응. 고마워.”
부스스하게 깨어난 샤를은 아침을 먹다 보면 곧 정신이 돌아온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서 저택 정원을 조깅한다. 조깅을 마치면 플로나가 어느새 옆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수건을 건네준다.
“고마워 플로나.”
“별말씀을요.”
싱긋 웃고 있는 플로나를 지나쳐서 샤를은 응접실로 향한 뒤 그곳에서 커피를 즐기면서 신문을 편다.
메트로폴 타임지를 펴고 골몰하고 있는 샤를은 문득 외출 준비를 한다. 가끔 플로나를 동반할 때도 있지만 보통은 홀로 움직인다.
그간 밀린 교단의 일 처리를 마치고 집으로 되돌아온다. 그럼 제이크 집사와 함께 플로나가 샤를을 맞이해준다.
옷을 벗고 준비된 욕조에 몸을 뉘면 따뜻한 물이 나온다. 샤를은 욕조에 누워서 문득 생각했다.
“그러고보니.”
넥타이는 플로나가 사온것을 쓰고 있다. 양복도, 중절모도 플로나가 고른 것…….
먹는 것도 플로나가 고른다.
어? 이거 보통 부인이 하는 일이 아닌가?
“워. 아니지. 플로나의 직업이잖아.”
이러다가 플로나에게 모든 걸 관리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샤를은 고개를 저어 부정했다.
그래도 마음 한편에는 좀 우려가 되는 것이, 플로나느 무명자에게 바치는 기도에서……샤를의 목을 달라고 한 적도 있었다.
문득 시선이 느껴져서 욕조 밖 문을 살펴보았으나, 아무 것도 없었다.
‘에이 설마 플로나가 지켜보고 있었겠어.’
물론, 샤를은 플로나가 여태까지 샤를을 훔쳐보고 있었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스토킹 당하는 사람마저 느끼지 못하는 스토킹이라면, 그것은 스토킹인가? 아닌가?
“아, 아무튼.”
샤를은 샤워를 마치고 나서 침실로 들어가서 곰곰이 생각을 해볼 필요를 느꼈다.
바로 이번 사건에 관한 것이었다. 리지안과 존 도우는 자신들의 거처를 헬파이어 클럽원들이 찾지 못하는 비밀스러운 곳으로 옮겼다.
헬파이어 클럽의 클럽장도 부상을 당했으니 당분간 문제는 없을 거라고 샤를은 판단했다.
그것보다도 광명자가 마음에 걸린다.
전투를 벌이는 동안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었지만 샤를은 광명자와 마주해 대화를 나눈 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광명자에 대한 가정.”
확실한 건 광명자도 이 세상이 게임이었다고 기억하고 있으므로 현대에서 온 것이 분명하다는 것.
광명자에 대한 것은 여러 가지가 미스테리에 쌓여 있다. 게임 속에서 광명자에 대한 설정이 있다.
헤르메스 시대 끝 무렵이자 여명기의 초창기에 광명자가 등장하고 광명 교단이 설립된다.
광명 교단이 나타난 이후, 세상에서 비밀 세계가 나눠지게 된다.
마법과 미신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합리와 이성이 대체해나갔다.
신앙은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현대의 크리스트교처럼 대체 불가능한 권위와 이념을 형성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광명자에 대한 이야기는 비밀에 감춰져 있다.
그가 빛의 권능을 갖고 있다는 건 안다. 그리고 모종의 이유로 광명자가 상처를 입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 이상은 알 수 없었다.
“늘 광명 교단은 게임상에서 몰락했으니까, 자연스러운 일인 줄 알고 있었지.”
게임 플레이 동안 광명 교단은 초반에 버티다가 늘 몰락하고 만다.
“광명자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아야겠어. 그리고 광명자가 말했었지. 협력자를 보내주겠다고.”
광명자를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는 아직 판단이 서지 않는다. 그가 현대에서 왔다는 것 때문에 동질감이 들긴 했지만, 신뢰할 수 있는 가는 다른 문제였다.
“일단 협력자라는 존재가 나타난 뒤에 판단을 내려도 늦진 않을 거야.”
샤를은 그렇게 생각하곤 다음 사건을 떠올렸다.
노트에 대고 글을 끄적거린다. 맨 처음에는 칼튼 교수의 차원문, 그다음에는 헬파이어 클럽의 뮤턴트, 세 번째 사건은 암흑성도회의 사도 천사가 강림하게 되는 사건…….
이 사건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암흑성도회에서 광명교를 공격하기 위해 대성당 폭파 계획을 준비하고 있었다.
‘헬파이어 클럽처럼 암흑성도회를 처리해야 할 필요가 있겠어.’
제롬과 골레릭은 차근차근 준비를 마치고 있다. 필요한 때가 되면 계획을 실행하게 될 것이다.
*
더글라스는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보면서 새로 장만한 자동차를 타고 운전하고 있었다. 곧이어 부둣가에 도착하자마자 차를 세우고 중얼거렸다.
“썩을. 어쩌다 여기까지 왔지.”
그리고 담배를 한 대 피웠다. 연기가 하늘 위로 흐트러져 올라간다. 마음을 정리한 더글라스는 곧 차에서 내려서 부둣가로 걸어갔다.
평범한 오컬트 조사부의 형사가 이런 곳에 와 있는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루미너스가 메트로폴을 방문하기 며칠 전.
메트로폴 경찰국 오컬트 부서의 더글라스는 며칠 전에 길을 걷다가 한 집시 소녀를 만났다.꾀죄죄한 외모에 특유의 옷차림.
그리고 그 소녀를 언제 한번 봤던 것을 기억했다. 분명히 불타오르는 공장 부지에서 흔적을 찾을 때였다.
“아, 넌?”
소녀는 빤히 더글라스를 바라보다가 걸음을 옮겼다. 더글라스는 어째서인지 그녀를 따라갔다가, 곧 천막을 볼 수 있었고 그 앞에 열린 틈 사이로 한 노파를 보게 되었다.
노파는 눈에 주름이 자글자글했고 백내장이 가득한 눈동자로 먼 허공을 보는 듯했으며, 그녀의 앞에는 수정구슬이 놓여 있었다.
“이 보게나. 미래를 알고 싶나?”
“응?”
더글라스는 갑작스럽게 등장한 노파를 보고 눈을 깜박거렸다.
“점술이라도 봐 주십니까?”
“물론이지. 이리 와서 앉게나.”
그는 이런 ‘점술’이나 오컬트에는 별로 익숙하지 않았다. 원래라면 그냥 무시하고 지나쳤을 테지만 이 기이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수정구를 바라보게.”
“여기 미래라도 보인 답니까?”
“글쎄.”
더글라스는 뚱한 표정으로 앉아서 수정구슬을 바라보았다.
한참을 구슬을 바라보고 있자 갑자기 그 안에서 무언가의 형상이 보이는 것 같았다.
백발의 머리카락과 은색의 눈동자. 그리고 무심한 듯한 아름다운 얼굴.
“히익!”
더글라스의 PTSD를 자극하는 공포의 마녀를 보고 나서 그는 뒤로 물러났다. 어우, 꿈에 나올까봐 무서운 얼굴이 여기 나오다니.
“이, 이게 뭡니까.”
“이게 자네의 미래라네.”
그 뒤, 더글라스는 자신이 죽을 거라는 근거 없는 강렬한 예감에 휩싸였다. 루미너스! 루미너스가 바로 그 일의 근원이다!
“미, 미래라고?”
“피할 방법도 있지.”
“어떻게 말입니까?”
“수정구슬을 다시 들여다보게.”
그 뒤에, 더글라스는 어떻게 미래를 피할 수 있을지 알았다. 앞으로 제일 먼저 마주치는 ‘기이한 사건’을 조사하러 가야 루미너스와 마주치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
“정말 고맙……. 어?”
감사의 인사를 하려는 순간, 더글라스는 자신이 허공을 바라보면서 무어라 중얼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노파와 수정구슬은 온데간데없었고 여긴 그냥 골목길이었다.
“할머니를 만났나 보네.”
“우, 우왓. 꼬마야. 아직 있었구나?”
예전에 보았던 집시 소녀가 있다.
“꼬마가 아니에요. 이름은 샨티.”
“그래. 근데 할머니라니 무슨 소리냐?”
더글라스는 이름은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하면서 말했다.
“우리 할머니. 돌아가셨는데 가끔 나와.”
“뭐, 뭐? 그럼 내가 유령을 본 거라고?”
끄덕.
더글라스는 그냥 점쟁이도 아니고 죽은 지 오래된 집시 유령 점쟁이를 만나서 점을 봐주었다는 것이 매우 기이하고 소름이 돋아서 그날은 곧바로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뒤, 실종 사건의 제보가 경찰서로 들어왔다. 맥밀런 정신병원이었다. 그는 즉시 그 사건에 자원하고 움직였다.
그리고 몇 시간 뒤, 루미너스가 경찰국의 국장에 취임했다.
경찰국 내부의 사람들은 저마다 수군거렸다.
“들었어? 여자가 경찰국의 국장에 취임했다는데.”
“시대가 어느 시댄데, 여자가?”
몇몇 여성 차별적인 남자들도 있었고.
“나이가 젊다는데.”
“20대래. 거기다 엄청난 미녀라고 들었어.”
“정신 나갔냐? 그런 사람을 국장으로 앉힌다고?! 시장은 뭐 하는 거야?”
“보나 마나 낙하산 아니겠어?”
“아니, 낙하산이어도 정도가 있는 거 아니야?”
국장 자리에 앉힌 시장 틸 크로포드를 욕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케인 청장은 이쪽 부류였다.
“이건 말도 안 돼.”
여태 경찰국 내에서 1인자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케인은 자리에서 밀려나는 사람이 듣도 보도 못한 한 여자라는 말에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자신의 줄에 서 있는 경찰들을 이끌 준비를 했다.
“이건 지도력의 문제야. 당장 파업할 준비를 해!”
대부분은 처음 들어오자마자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기세등등했으나 루미너스가 경찰국으로 들어오자마자 다들 넋이 나갔다.
“뭐, 뭐야?”
20대의 젊은 미모의 여성이라고 했으나, 너무 아름다워서 다들 넋이 나가버렸다. 길고 흰 머리카락과 은색의 눈동자를 보면 도저히 사람 같지가 않았다.
“내가 오늘부터 부임하게 된 경찰국장 아샤 루미너스다. 당신이 케인 청장인가?”
“……예.”
“경찰국 내 주요 인사들은 다 데려오라고 해.”
“아, 알겠습니다.”
케인은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마력에 이끌리는 사람처럼 사람들을 데리고 갔다. 알 수 없는 박력이, 케인을 옭아맨다.
“아니지. 내가 잠깐 정신이 나갔었군. 사람들을 모아라.”
정신이 반쯤 나간 채 사람들을 모았던 케인은 여전히 루미너스를 거부하기 위해서 기세 등등하게 국장실로 박차고 들어갔지만, 루미너스의 모습을 보자마자 곧바로 공손해져서 자리에 앉았다.
어째서인지, 그는 루미너스에게 거역할 수 없는 것을 느꼈다. 루미너스는 케인과 루이스 등등의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문득 보여야 할 사람이 없는 것 같아 말했다.
“오컬트 부 형사, 더글라스 헨치는 어디 있지?”
“아, 그는 이번에 맥밀런 정신병원에서 벌어진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웠습니다.”
루미너스는 우연히도 더글라스가 자리를 비웠다고 하니, 이상한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곧 돌아올 테니 일단 경찰국 내부를 정리하는 데 시간을 써야 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