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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사이비 교주가 되었다-118화 (118/221)

제118화 - 봉인재단이 유물의 관리에 쏟는 금액은 매년 천문학적인 숫자였다. 유물에서 얻는 이득보다 유물의 관리에 쓰이는 비용이 더 크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외부의 투자자들을 모았고 그들에게서 돈을 받아낸다.

그중 한 명, 재단 전체로 볼 때에는 적은 수의 주를 갖고 있지만 마냥 무시하지 못할 숫자를 갖고 있는 한 남자가 있었다.

리처드 웹스는 재단 건물 1층에서 그를 만나서 악수를 했다.

“리처드.”

“프로메트. 오랜만이군.”

프로메트는 선한 인상을 가진 초등학교 교사같은 인상의 남자였다. 그의 사각 안경은 예전과 같은 걸 썼다.

“몇 년 만이지? 자네는 정말 안 늙는 것 같군.”

“나도 요즘 눈주름이 늘었어.”

프로메트는 너무도 동안이라 청년처럼 보이지만 리처드와 함께 인시그니아 제도대학에서 수학했으니 그는 벌써 중년의 나이였다.

“오늘은 무슨 목적인가?”

“내가 저번에 맡겨두었던 유물을 찾아가려고 말이야.”

“맡겨 두었던 거라면 뭘 말하는 거지? 자네가 맡겨 두었던 게 한 두 개가 아니라 말이야.”

프로메트가 희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만년필류였던 것 같은데.”

“만년필이라. 일단 내려오게나. 오랜 만에 지하도 구경좀 하고 그래.”

리처드는 지하로 내려가면서 새로운 시스템에 대해 설명했다. 봉인 재단은 계속해서 보안 시스템을 업데이트 해왔고 철통같은 경비로 모든 유물을 지켜내고 있다고 말했다.

“봉인 재단에서 분실한 유물은 단 하나도 없지.”

“호오. 그래?”

유리로 된 진열장을 바라보면서 프로메트는 걷다가 멈춰섰다.

「괴테의 만년필」

“음? 자네 유물은 그쪽이 아니라네. 이쪽에 있어.”

“내 생각엔 이게 맞는 것 같아.”

“그건 다른 VIP가 맡겨둔 유물일세.”

“아닌 것 같은데?”

“내 생각에도 아닌 것 같군.”

프로메트가 싱긋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대학 시절 그와 함께 다니면서 리처드의 몸에는 프로메트가 주입한 특수한 이계종 벌레가 들어가 있었는데 아직도 발견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럼 손쉽게 처리할 수 있다. 이미 리처드는 프로메트의 꼭두각시나 다름 없었다.

“자, 꺼내 주겠네.”

“그래. 고마워.”

경호팀을 부르면 프로메트도 꼼짝없이 죽을 수 밖에 없으니 이런 식으로 접근하는 수 밖에 없었지만 음모를 꾸미는 것도 생각보단 재밌을 것 같다고 프로메트는 생각했다.

괴테의 만년필을 받고나서 프로메트는 안에 메아리처럼 남아있는 ‘이야기’하나를 발견했다.

“꽁꽁 숨겨져 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네. 이것도 발동시켜봐야겠어.”

*

루미너스는 메트로폴 특급 열차를 타고 메트로폴 역에 도착했다.

인시그니아에서 메트로폴까지 오는 동안 여러 이상한 사건들을 마주했지만 결국 그녀는 메트로폴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다른 도시들과 다를 바 없네.”

해안가에 인접해 있어서 바다냄새가 조금 난다는 것을 빼면 이 나라의 다른 도시들과 그렇게 다를 것도 없었다.

그러나 이 도시는 다른 도시와는 다르다. 비밀 세계에서도 모든 비밀스럽고 기이한 사건들이 이 도시로 모인다.

인시그니아에서는 통제가 가능했던 것들도 메트로폴에 오면 통제가 불가능해지거나, 혹은 갑작스럽게 나타난 일 때문에 많은 것들이 어그러지곤 했다.

이곳에 보낸 루터 식스 요원이 사라진 것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더글라스가 아직도 살아있다는 점. 예전부터 루미너스는 그것이 이상했다.

동료들은 대체 그게 왜 이상하냐고 몇 번 물었지만 대답하진 않았었다.

오직 예언자가 그녀에게 한 말 때문이었다.

‘더글라스는 메트로폴에 가면 가장 끔찍한 죽음을 맡게 될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의 운명은 가장 예측 불가능하고 혼란스러운 방향으로 가게 될 것이다.’

예언자조차 더글라스의 운명을 점치지 못했으니 그저 배나온 평범한 수사관인 그가 루미너스의 관심을 받게된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루미너스는 가장 먼저 메트로폴의 시청에 들리기로 했다.

*

샤를은 시청에서 틸 크로포드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뜬금 없이 갑자기 시장과 얘기를 나누게 되었냐면, 샤를이 헥센가의 자본으로 중심부의 빌딩 하나를 매입하고 난 뒤에 틸 크로포드가 샤를과 얘기하기를 원했다.

포드 회사의 주주로서 서로 안면이 있었던 샤를은 틸 크로포드와 마침 할 이야기도 있었으니 그와 따로 만나기로 했다.

“어서오게나. 기다리고 있었네.”

틸이 기르고 있는 페르시안 애완 고양이가 무릎에 올라오자 그는 여러 반지가 껴진 손으로 고양이의 털을 쓰다듬었다.

“오랜 만입니다.”

“자네 가족들 얘기는 들었다네. 저택에서 끔직한 가스 폭발 사고가 일어나서 자네와 동생 한 명만 목숨을 건졌다면서.”

“안타깝게도 그렇습니다.”

샤를에게 사실은 그 미치광이 가족들이 어떻게 되든 상관 없었지만 억지로나마 슬픔의 감정을 꺼내야했다.

“유감을 표한다네. 내가 자네를 부른 것은 자네 아버지와 하던 계약이 따로 있어서 그랬다네.”

“아버지와 계약이 있었다고요?”

샤를은 유마의 도움을 받아서 여러 비밀스러운 서류를 정리하면서 틸 크로포드에게 정기적으로 ‘후원’을 해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모른척 두루뭉술하게 얘기했다.

“그는 정기적으로 날 후원해주고 있었거든. 비밀스러운 자금으로 말일세.”

“아, 그러시군요.”

그리고 갑작스럽게 요하네스가 죽으면서 그 일이 공중으로 붕 뜨자 틸 크로포드는 다급해진 나머지 샤를을 부른 것이겠지.

‘이용할만해.’

틸 크로포드의 타락한 제안은 샤를에게도 어느 정도 의미가 있었다.

‘돈으로 메트로폴의 시장을 사용할 수 있다면 오히려 쉬운 일이지.’

어느 세계나 정경유착은 있었고 메트로폴에 기반을 둔 샤를은 끝물이라지만 아직 시장 자리를 굳건히 차지하고 있는 틸 크로포드와 좋은 관계를 맺을 필요가 있었다.

“저도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받아 정기적으로 후원을 해드리고 싶군요.”

“오, 그렇게 해주겠나?”

“예. 대신 저도 조건이 있습니다. 아버지도 무상으로 후원을 해드리진 않았겠지요.”

틸 크로포드는 안도의 웃음을 내뱉었다. 두루뭉술하게 빼는 것 보다 오히려 이런 식으로 기브 앤 테이크로 나오는 것이 좋다.

“메트로폴 내부에 정식으로 교단을 창설하고 싶습니다.”

“응? 뭐라고?”

틸 크로포드는 어이가 없다는 듯 입에 물고 있던 시가를 내려놨다.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인 줄 알았지만 사실 제대로 들은 게 맞다.

“교단의 이름은 무명 교단. 정식 종교로 등록하고 싶습니다만.”

“……이 나라는 종교에 대한 자유를 허락하고 있다네. 창설에 관해서도 규정을 따른다면 문제는 없지.”

“영향력의 문제지요.”

“뭘 원하나?”

“서로에게 윈윈이 되는 거래를 원합니다. 선데이크 거리의 빈민가에 대해 아십니까?”

틸 크로포드는 얘기를 듣자마자 인상을 찌푸렸다. 당연하게도, 그의 골칫거리이자 만악의 근원이었다.

“그래서?”

“빈민가를 처리하게 도와드리죠.”

“어떻게 말인가?”

“내겐 돈이 있고, 당신에겐 지지자가 필요하죠. 다리 공사는 어떻습니까?”

“윈즈강에 다리를 놓자는 말인가? 이미 있는 데도?”

현대 한강에는 31개의 다리가 있고, 현대 템즈 강에는 75개의 다리가 있다.

윈즈강에 놓인 다리는 약 13개 남짓. 이것도 충분히 많은 수 였으나 더 늘리지 못할 이유도 없다.

“난 그들을 무명 교단으로 끌어들일 생각입니다. 뭐, 가벼운 종교 권유 정도라고 하죠.”

“……그거 마음에 드는 구만. 하지만 말이야, 신도를 모으려면 상류층에서 모아야하는 게 아닌가?”

“호오?”

샤를은 틸 크로포드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 속에는 황금보다 더 비싼 욕심이 가득해보였다.

“내가 아는 사람들이 좀 있는 데, 어떤 가? 충분히 무신론적이고 광명교단에는 다니지 않는 사람들이지.”

“재미있겠군요.”

샤를은 그의 이야기를 듣고 합의가 끝나자마자 밖으로 나갔다. 계속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였다.

샤를이 밖으로 나가고 난 뒤, 한 여성이 시청을 방문했다. 프리패스로 시장실까지 진입한 그녀는 루미너스였다.

“아, 어서오시게나.”

틸 크로포드는 인시그니아에서 온 ‘높으신 분’이 이런 아리따운 미녀일 줄은 몰랐다는 듯 호들갑을 떨면서 말했다.

루미너스는 기묘하게도, 무언가를 놓쳤다는 생각이 들면서 자리에 앉아서 틸 크로포드에게 말했다.

“경찰국에 자리 하나가 필요합니다.”

“어떤 자리로 내드릴까요?”

“경찰국장. 여태까지 공석이었다죠?”

“……음. 그건.”

틸 크로포드는 눈을 돌리면서 이런저런 계산기를 굴렸다가 곧 수락했다.

*

루돌프 경사는 사복 차림으로 자전거를 타고 움직였다.

벡토 기자를 찾아 움직이다가 그가 빈민가를 요즘 들락거린다고 들었다. 그러다가 우연하게도 벡토 기자를 발견할 수 있었는데 벡토는 팬던트를 한 손에 쥔 채 희희낙락하면서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누군가와 헤어진 뒤에 움직이는 것 같았지만 따로 인력이 없어 그를 발견한 이후부터 홀로 벡토만을 뒤쫓고 있었다.

“이런 건 탐정 사무소에다가 연락해야하는 거 아닌가.”

추적이 길어지자 루돌프는 투덜거렸지만 루이스의 말마따나 벡토가 조용한 것이 그도 궁금했으므로 계속해서 벡토를 추적했다.

그리고 그가 어디로 가는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메트로폴 동남부에는 귀족가의 저택이 몇 군데 있다. 그중에서도 작은 숲이 있을 정도로 넓은 부지가 있었다. 그리고 루돌프는 이곳이 어딘지 알고 있었다.

“여긴 보슈 백작의 사택이잖아.”

보슈 백작은 본래 인시그니아의 의회에서 정치를 하고 있다가 낙향하고 메트로폴에서 조용히 지내는 사람이었다.

그는 메트로폴 시청에도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정계의 거물이었는데 벡토 기자가 그곳과 연관되어 있을 줄은 몰랐다.

‘이거 점점 흥미진진해지는데.’

여기서 더 들어갈 수는 없었다. 잠입하려고 해도, 이 저택에는 많은 수의 경비병이 상시 거주 중이었다.

‘일단 여기까지만 하고 돌아가서 보고하자.’

*

“여기 있습니다. 부인.”

벡토는 자신이 가져온 펜던트를 보슈 백작 부인에게 건넸다. 백작 부인은 펜던트를 열어서 사진을 확인했다.

“정확히 가져왔군요. 잘했습니다. 리암.”

“아직 에드먼드를 죽인 살인범은 잡히지 않았다고 합니다만, 더 캐내 볼까요?”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오랫동안 잊고 지내던 이복동생을 죽인 살인범을 잡고 싶나요?”

“……범인이 잡힌다면야 좋겠지만.”

에드먼드를 따로 조사해봤더니 커리어는 굉장하지만 인간적인 평판이 나쁘고 성격도 별로 좋지 못했다.

이복동생이라지만 살면서 한 번도 본 적 없었고 여태까지의 그의 인생에 전혀 연관도 없다고 생각했다.

나서서 따로 알아볼 생각은 없었다.

보슈 백작 부인이 지령을 내리지 않았더라면 조사해보지도 않았을 거다.

“당신이 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리암.”

“무슨 일입니까?”

“한 사람을 찾는 겁니다. 안에 사진을 봤겠죠?”

“예.”

보슈 백작 부인은 팬던트를 열어서 그 안에 있는 사람을 보여주었다. 이 사진 안에 있는 사람 중에서 딱 한 명 벡토가 모르는 사람이 있었다.

에드먼드 피셔, 리암 벡토, 에이멜 보슈까지는 알고 있었으나, 젊은 남성은 이름조차 몰랐다.

분명히 같이 사진을 찍었음에도, 어째서인지 벡토의 기억에는 그 남자의 기억이 전혀 없는 것이었다.

‘아니지, 심지어 나는 에드먼드 피셔에 대한 것도 전혀 기억이 안나. 그 사진을 찍었다는 것도 기억이 나지 않지.’

보슈 백작 부인은 사진에 찍힌 남자의 이름을 말했다.

“이름은 프로메트 트리메스. 지금 나이는 마흔에서 쉰 정도 일겁니다. 인시그니아 제도 대학을 나왔습니다.”

이름에다가 행적까지 있으니 그 정도라면 사람을 찾기에 충분히 많은 정보였다.

“이 남자를 찾아오는 겁니까?”

“행적만 파악해도 됩니다. 하지만 조심해야 할 것이 있어요. 절대 가까이 가면 안 됩니다.”

“그건 무슨 말씀이시죠?”

보슈 백작 부인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들키지 않고 그를 찾아내야한다는 겁니다. 들키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벡토는 연속으로 내리는 이 ‘지령’이 꽤나 위험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보슈 백작 부인은 그의 후원자나 다름 없었다. 당장 신문사에서 나와도 돈 문제는 없을 터. 그는 저택을 나온 다음 곧바로 조사에 착수하기 위해 수도로 향하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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