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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사이비 교주가 되었다-112화 (112/221)

제112화 - “저 아이를 구하면 단 번에 스타가 될 수 있을 텐데요.”

“아, 제가, 말입니까.”

존은 주저했다. 그는 살인범으로, 분명히 경찰의 추적을 받고 있을 터였다. 그런데 저곳에 나가도 되는 걸까.

그러나 존의 내면에서 누군가 말을 걸었다. 추적? 그런 걸 여태까지 생각하긴 했었냐고.

오른손에 붉은색 가면이 들려 있었다. 저번에 묻었던 피가 마치 문양처럼 변해서 가면에 새겨져 있었다.

“떨어질 것 같으면, 제가 나가서 구해주죠.”

“해보세요.”

존은 가면을 얼굴에 착용했다. 이러면 누군가의 추적을 염려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사람들을 밀치면서 관중석 앞으로 향했다.

“어이, 밀지마.”

“핫. 비좁아 죽겠네.”

사람들이 투덜거렸다. 본래의 존 도우라면 그런 사소한 일에 일희일비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신경쓰지 않는다. 큰 사람이 되려면 사소한 일쯤은 흘려넘겨야하는 법이었다.

그네 위에 선 소년은 어느새 모멸찬 욕설을 관중들에게 받고 있었다.

“어이 꼬맹이! 못할꺼면 꺼져!”

“단장은 뭐하는 거야? 저런 놈 안내보내고 말이야.”

“뛰어라! 뛰어라!”

분명히 공연을 하기 전에는 누구보다 더 열심히 뛸 수 있었던 소년은, 실제 무대에 오르자 너무도 긴장해서 딸국질이 나올 정도였다.

그는 반대편에서 날아오는 다른 동료의 눈이 차갑게 변하자 울며 겨자먹기로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허공으로 뛰면서 앞으로 나갔다. 평소에 맞아가면서 배운대로 하면 된다.

양 손을 위로 뻗고 다시 가슴으로 X자를 그리듯 당긴 다음에 오른발 에 힘을 줘서 세 번 회전하면 된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리고 세 번 반.

소년은 자신이 반박자 실수했다는 걸 깨달았다. 반대편에서 그네를 타고 날아온 동료가 소년의 한쪽 손을 잡아챘지만 너무 멀어서 손끝이 닿기만 했을 뿐, 미끄러져 내려갔다.

죽음을 직감한 소년이 눈을 질끈 감을 때, 떨어지다가 누군가 그를 잡아챘다.

“오오오오!”

“누구야? 붉은색 가면을 쓰고 있는 저사람?”

“마치 가면에다 피를 뿌린 것 같네!”

존은 자신에게 쏠리는 관심을 보고 희열을 느꼈다. 그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소년이 떨어졌던 그 그네 위로 올라갔다.

중력을 무시하는 것처럼 폴짝 뛰면서 장애물을 잡거나 딛고 그 위로 올라선 존을 보고 사람들이 당황했다.

이건 서커스 단의 단장도 마찬가지여서 당황하면서 그를 제지해야하나 망설이고 있었다.

“자, 다시 이쪽으로!”

존이 크게 소리치면서 양손으로 자신을 가리키자, 잡아주는 역할의 서커스단 단원이 황당하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가 아래쪽에 있는 단장을 바라보았다.

단장은 위에 서서 소리치는 존의 목소리를 듣고 자신감과 확신에 차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럼 해봐도 되는 게 아닐까? 원래도 도전정신으로 가득했던 서커스단 단장이었다.

“떨어지면 당신의 책임이오!”

“물론이지!”

자신의 불안감을 상대에게 책임을 미루는 것으로 대화를 끝낸 단장은 곧이어 오케이 사인을 냈다.

완전히 당황한 서커스단 단원도 다시 그네를 타고 원래대로 되돌아가면서 침착하게 다시 움직일 준비를 했다.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사인을 보낸 단원이 그네를 타면서 상대를 받기 위해 움직였다.

그걸 보고 존은 허공에서 엄청난 곡예를 선보였다. 신체 하나하나를 통제할 수 있는 존은 허공에서 수십 바퀴를 돌고서, 그에게 손을 뻗은 단원의 손을 잡고 반대편으로 뛰었다.

“우와아아아아아아!”

“뭐야!?”

“저거 누구야? 서커스 단원이야!?”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

미친 듯이 곡예를 하는 존 도우를 보면서 에세나는 어처구니 없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이상한 사람이네.’

가면을 쓰자마자 사람이 완전히 바뀐 것 같다. 소심하지만 평범한 남성에서, 뭐든지 할 수 있는 강인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남성으로 변했다.

샤를이 그를 어떻게 처분하건 간에, 에세나는 존이 마음에 들었다. 저런 사람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

제나 헵번은 헬파이어 클럽의 구성원 중 하나였으며 또한 빙결 계통의 주문의 달인이었다. 그래서 그녀의 별명도 차가운 입김이라고 불렸고, 많은 하수인들도 데리고 있었다.

영성에 대한 재능은 거의 없는 졸개 수준의 하수인들이지만, 어차피 그들은 고기방패에 불과했다.

제나 헵번을 대신해서 시선을 끌어줄 소모품 정도.

거기다 그녀의 품에는 지금 ‘그것’이 있다. 그것까지 받은 뒤, 이번 임무는 실패할 수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콜르멜르 거리에 들어선 그녀와 하수인들은 순식간에 길을 잃었다.

제나 헵번은 자신이 강력한 결계 속에 들어왔다는 것을 깨달았고, 거리 전체에 결계를 펴둘 수 있는 상대 영성자의 힘에 감탄했다.

‘이 결계를 친 정도면 우리 교단에 끌어들여도 되겠는데.’

야생의 영성자들은 대게 하찮은 실력을 갖고 있었지만 이렇게 강력한 능력을 가진 사람도 모래 속에 진주 만큼이나 있었다.

‘하지만 그건 적을 제압하고 난 뒤에 생각할 일이지. 반항하면 죽여도 좋다고 했으니.’

명령에 충실한 제나는 그 즉시 하수인들을 잘게잘게 쪼갰다.

그리고 그녀 홀로 결계의 근원지라고 생각되는 곳으로 향했다.

*

리지안이 친 결계는 적대적 영성자를 걸러내기 위한 수단이었다. 2인 이상 함께 움직인다면 길을 잘 알고 있더라도 방향 감각을 잃고 같은 길을 맴돌게 된다.

결계를 파괴하려면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 거리 전체가 그 자의 손아귀에 있군.’

상대방의 영역에서 자유롭게 행동하는 건 어렵다. 리지안은 마도사 타입이었고 자신의 근거지를 요새화한 마도사는 엄청난 메리트를 얻는다.

‘하지만 어짜피 주요 목적은 리지안을 공격하는 게 아니야.’

아마도 리지안이 보호하고 있을 존 도우를 노리는 헬파이어 클럽원들의 구성원들을 처리하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적의 적은 아군이 되는 셈이었다. 상대가 아군이라고 여겨 줄지는 논외로 치고.

샤를은 에세나를 비롯해서 플로나, 제롬에게 각자 따로 움직이게 당부를 해두었다.

수많은 사람이 돌아다니는 와중에, 샤를은 사냥감을 찾는 맹수가 되어서 주변을 살폈다.

장점은 많다. 일단 상대는 샤를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직접적으로 마주친 적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상대는 대비를 해두고 있을 확률이 높다.

샤를은 그러다가 곧 어떤 직감을 느꼈다.

어떤 홍등가로 향하는 거리 앞에, 검푸른색 로브를 걸친 여성이 나타났다.

창백한 입김의 제나 헵번이었다. 그녀의 양손은 너무도 하얀 장갑을 끼고 있었고 그녀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한기가 느껴졌다.

저번에 보았던 모습과 다르게, 전투를 하기 위해 확실히 옷차림을 갖춰 입었다.

‘일반인들을 소개시키는 환술을 걸었군.’

근처의 사람들은 그녀를 보고 잠깐 흠칫하면서도 그다지 이상하다고 느끼지는 못하고 있었다.

‘너무 대놓고 들어가는데.’

리지안은 전투에 능숙한 타입은 아니었지만 수많은 비술을 알고 있는 마도사였다.

샤를은 제나가 향하는 곳으로 따라 걸었다.

그리고 그 앞에 탈피 클럽이라고 적혀 있는 간판이 보였다.

클럽 내부로 들어가자 수많은 사람이 기이한 불빛 아래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어서와.”

포주로 보이는 여자가 하나, 입구에서 그를 맞이했다. 샤를은 본능적으로 이곳이 결계의 근원지인 것을 파악했다.

최대한 정체를 숨기고 움직이고 있었으므로, 샤를은 평범하게 돈을 내고 무용수들의 춤을 관람하겠다고 했다.

“남자 무용수? 여자 무용수?”

“어느 쪽이건.”

“까칠한 사람이네.”

눈짓을 하는 마담을 무시하고 안으로 들어서자 분홍색 조명 아래에서 춤을 추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하나같이 눈에 기이한 열망이 서려 있었다.

“신기하지 않나? 저 사람들 말이야.”

옆에서 누군가 말을 걸었다. 남자 목소리인데도 올리는 톤을 보아하니 게이였다.

샤를은 별로 대꾸하고 싶지 않아서 입을 다물었다.

“이곳은 사회에서 배척받은 사람들의 열망이 가득한 곳이지. 숨겨진 욕망을 끌어내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아. 인간이라는 단위에서 진정한 탈피를 끌어내는 곳이랄까.”

“관심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고개를 돌리자 샤를은 놀랍게도 결계를 친 주범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샤를의 정체를 알고 다가온 것은 아닌 듯 영성자 리지안이 그를 향해 윙크를 하고 있었다. 그의 반들반들한 민머리가 조명에 반짝거리고 있었다.

여태 자신과 말하던 사람이 바로 리지안이었다니.

-저거 지금 꼬리치는 거야?

파기나레코르가 끼어들어서 낄낄거렸다.

상대는 분명히 샤를의 정체를 모르고 있었으나 이렇게 관심을 보인다는 건 그냥 샤를의 외모 때문이었다.

‘아, 기, 기분이 안 좋아.’

이거 지금 꼬리치는 것 같은데. 샤를은 게이에게 대시를 받은 경험은 생전에도 없었고 게임 속에 들어와서도 없었다. 명백한 이성애자인 샤를은 아주 확고하게 고개를 저었다.

“저런. 혹시 몰라? 당신의 숨겨진 아주 깊은 내면에는 그런 욕망이 있을지도?”

“일 없습니다.”

딱잘라 거절한 샤를을 보고 리지안이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어쩌면 이걸 기회로 그에게서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도.’

생각보다 좋은 기회가 찾아와서 샤를은 그를 회유할 방법을 고심했다.

불청객이 나타난 것은 그때였다.

파란색 로브를 입은 사람이 주변을 서성거리면서 이곳저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리지안은 눈살을 찌푸리면서 일어섰다.

“어머, 얘. 너 냄새가 역해.”

그녀는 파란색 로브를 입고 있었다. 얼굴에는 창백한 여성의 얼굴을 형상화한 가면이 붙어 있었다.

아름다운 외모였지만 진짜 얼굴이 아니다. 샤를은 그녀를 보자마자 누군지 알아챘다. 제나 헵번이었다.

헬파이어 클럽에서도 역시 추적에 성공했다. 제나의 관심은 오롯이 리지안에게 가 있어서 샤를은 평범한 민간인 인줄 알고 있다.

샤를이 영성을 거두어 몸속에 은폐시켰기 때문. 리지안의 모욕적인 말에 그녀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

“냄새?”

“그래. 썩은 인간의 냄새. 구리구리한 영혼의 냄새를 보아하니 마도사로구나.”

리지안은 목을 좌우로 꺾으면서 말했다.

“자꾸 점술로 내 결계 안을 들여다보려고 꾸물꾸물거리나 본데, 소용없어. 오홍홍”

“일단 하나 경고하지 영성자. 네가 숨기고 있는 사람을 내놔라. 그는 우리의 계약을 어기고 도망쳤다.”

제나 헵번의 눈이 요사스럽게 빛나자 리지안은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걔는 이제 내 제자라서 말이지. 그 전에 무슨 계약을 어겼든 당장은 내 보호하에 있지.”

“이야기가 안 통하는 아저씨네. 그럼 실력 행사로 나가는 수 밖에 없겠어.”

“나도 그런 거 좋아해.”

제나의 오른쪽 중지에 낀 청금석 반지를 들어보였다.

그러나 리지안은 씨익 웃으면서 손에 쥐고 있던 컵을 내려놓았다.

“오홍홍. 여긴 별로 좋지 않은 곳이라 자리를 옮기는 게 어때?”

“?”

그 순간 공간에 구멍이 뚫리면서 리지안, 제나가 함께 빨려 들어갔다.

샤를은 깜짝 놀랐다. 둘이 순식간에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둘이 사라졌는데도 다른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서로 얘기하느라 바빴다.

영성을 눈에 집중하자, 곧 보이지 않던 것이 보였다.

제나와 리지안이 있던 장소에, 보이지 않는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건 일종의 차원문이었는데, 칼튼 교수가 만든 차원문과는 달리 간이 차원문이었다.

주변에는 평범한 사람들의 무의식을 건드려서 이쪽으로 오지도 않고 관심도 끄게끔 설계되어 있었다.

‘칼튼 교수의 혈청이 없으면 제대로 된 차원문을 만들 수 없지. 이 간이 차원문은 오래 유지되지 않는다.’

칼튼 교수의 혈청은 제롬이 아주 극미량 갖고 있는 것이 다 였으니 리지안이 그것을 가지고 있을 리는 없다.

몇몇 마도사들은 이렇게 간이적, 일시적으로 차원문을 만들어서 이계로 이동할 수 있는 주문을 알고 있었다.

샤를은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했다. 리지안과 제나가 싸우는 동안 끼어들 수 있는 틈이 생길 것이었다.

이계로 통하는 공간에 손을 대어서 영성을 불어넣었다.

샤를은 곧 다른 풍경 속에 들어와 있었다. 화려한 조명이 반짝 거리던 탈피 클럽 내부에서, 한 번도 본 적없는 사막에 도착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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