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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사이비 교주가 되었다-111화 (111/221)

제111화 - 에세나는 아이보리색 페그톱 스커트에 연두색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고 시폰베일로 가려진 넓은 챙의 모자를 쓰고 있었다.

얼마 전에 플로나와 함께 도심지에가서 샀던 옷이었다.

콜르멜르 거리의 입구로 들어가기 전에 밝은색으로 빛나는 간판을 바라보았다.

가스등을 사용해서 만든 등불에 색을 입혀서 천박스러울 정도로 알록달록하게 만들어뒀다.

주변을 걷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젊고 늙은 남자들이었다. 피곤한 인상의 노동자들과 취객들.

“아가씨, 이런 곳에 들어가려고? 함께 온 사람은 없나? 이런 곳에 혼자 들어가는 건 위험해.”

약간 취한 듯 코가 빨간 한 남자가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정말로 걱정해주는 사람도 있네.’

“이곳은 위험하니, 돌아가는 게 어떤가? 이제 곧 해도 질텐데.”

“걱정해주셔서 고맙지만, 괜찮아요. 마중 나올 사람이 있거든요. 같이 서커스 공연을 보러 가기로 했거든요.”

“저런. 위험한 자들이 있으니 얼른 들어가는 게 좋아.”

그래도 자꾸 신경 쓰는 기색이 보이기에, 에세나는 그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러자 그 남자는 곧 에세나에 대한 신경을 끄고 이동했다.

그리고 그 남성의 경고대로 껄렁껄렁한 남성들 몇이 나타났다. 후줄근하고 누렇게 변한 흰 셔츠위에 멜빵을 걸친 부두 노동자들이었는데 누런 이를 드러내면서 물었다.

“이런 곳에 있을 것 같은 아가씨는 아닌 것 같은데?”

“그러게. 여기서 뭐해? 혹시 놀 사람 구해?”

양아치들이 다가오자 에세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양아치들이 꼬일 거라고 생각은 했었지만, 상대하기 귀찮다.

“냄새나니까 다가오지말아줄래요?”

“아니, 그런다고 우리가…….”

선두에 있던 한 마른 남자는 잠깐 멍해지더니 말했다.

“당연하게도 다가가지 말아야죠! 냄새나서 죄송합니다. 저희는 저희 갈 길 갑니다. 안녕히 계세요!”

“어? 너 무슨 소리를……. 어…….”

“우리가 왜 여기 있었더라?”

“가자.”

에세나의 눈빛이 잠깐 반짝였다. 이제 일반인들을 ‘조종’하는 수준은 매우 쉬웠다.

이런 양아치들은 정신력도 낮아서 솔직히 아무렇게나 조종할 수 있을 정도였다.

교단 사람들을 관리하는 데 사용하기도 하는 이 능력은, 일반인은 물론이고 영성자들에게도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이 능력을 악용한다면, 에세나는 정말로 끔찍하고 위험한 존재가 될 수 있겠지. 하지만 그녀는 샤를의 명령이 있다면 모를까, 보통은 샤를이 만든 규칙에 의해서 살아가고 있었다.

“왔구나, 에세나.”

잠시 뒤, 샤를이 나타나자 에세나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따로 모이라고 한 건 이유가 있어서 그랬다.”

“무슨 일이죠?”

“콜르멜르 거리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영성자가 덫을 놓고 있다. 여럿이서 함께 움직이면 걸리는 결계지.”

사실 샤를은 그가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지만 딱히 지금 설명해줄 필요는 없었다. 당장은 지금의 목적만 상기하면 된다.

“플로나와 제롬은 덫에 걸려든 나비들을 사냥할 거다.”

“제가 해야 할 일은요?”

“홀로 콜르멜르 거리를 순회하면서 우리가 놓친 영성자를 잡는 일이야. 그동안은 잠시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지형을 익히도록 해. 뭔가를 먹거나, 구경을 해도 좋고.”

“재미있겠네요.”

에세나가 싱긋 웃자 샤를은 꽤나 든든하다는 듯 그녀의 어깨를 두들겨줬다.

“믿고 있을게. 뭔가 일이 있으면 심상 세계를 통해서 전달하마.”

“예.”

*

미친 듯이 추다 탈진했던 존은 어느새 체력을 전부 회복했다. 놀라울 정도로 빠른 회복력 때문에 늘 자신의 신체에 대해서 감탄하곤 했다.

‘그래도 그 약을 먹고 다시 그곳에 갇히라고 하면 절대 하지 않을 테지만.’

존은 그때를 떠올리면 치가 떨렸다.

피험자들은 마치 원숭이 우리를 만들어 놓는 것처럼 한데 뭉쳐둔 창살에 갇혀서 먹을 것과 싸는 것까지 통제당했다.

그의 옆 창살에 있던 피실험자 하나는 갑자기 온몸에서 피부가 부글거리더니 어깨에 촉수가 자라났다.

머리카락이 전부 빠지고 두개골의 뼈가 녹아 흐물흐물해진 얼굴이 되었는데 꿈에 나올 것 같은 끔찍한 얼굴이었다.

『3번 뮤턴트. 진행 과정에서 변이 발생, 재구성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원형을 잃어버림.』

그런 짤막한 단어와 함께 창살 아래가 푹 꺼지면서 옆에 있던 피험자가 떨어졌다.

마치 쓰레기를 ‘처분’하는 것 같은 움직임에 공포가 밀려왔다.

『이제 슬슬 전부 변이가 될 테지. 잘 들어라. 너희들 중에 인간의 형태로 되돌아올 수 있는 놈들은 몇 안 될 거다. 인간으로 되돌아온 놈들만 살아남는다.』

그 말을 들은 이후, 절규하던 존은 온몸이 불타오르는 것 같은 감각과 함께 근육이 꿈틀거리던 것을 느꼈다.

그도 변이되고 있었다. 자신의 근육이 꿈틀대는 모습을 보면서 존은 형언할 수 없는 공포에 휩쌓였다.

『오, 4번도 변이 중이군. 오래 걸리는 거 같으니 경과 보고해라.』

『옙!』

엄청난 고통과 함께 몸이 꿈틀댄다. 근육은 있을 수 없는 형태로 찢겨지거나 늘어났고 신체의 나머지 부분은 차라리 죽여달라고 호소하고 싶을 정도로 깊은 고통을 느끼게 만들었다.

『아직도 변이인가. 인간으로 되돌아오는 것 같지는 않아. 어쩔 수 없군. 이 녀석도 실패작인 것 같네. 어이 신입. 거기 버튼 눌러라. 4번도 폐기장으로 보내.』

『옙!』

이성이 날아간 뒤, 마치 술을 너무 마셔서 필름이 끊긴 것 같은 기억의 손실 이후에, 존은 쓰레기장에서 깨어났다.

위에서 거대한 불길이 치솟는 것을 본 그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소각용 물품을 집어넣는 곳이 취약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물론 그것도 철문으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어째서인지 존은 철문을 그대로 종잇장처럼 구기면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하늘에는 비가 폭풍우처럼 내리고 있었고 존은 기어코 눈 앞에 보이는 강을 향해 몸을 던졌다.

한참 수영하고 보니 그곳이 어디인지 알 수 있었다. 윈즈강의 어딘가였다. 강을 따라보니 아는 거리가 나왔다. 저 멀리 자신이 일하던 오페라 하우스가 있었다.

홀린 것처럼 그곳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 그의 앞을 지나간 것이 바로 에드먼드 피셔였다.

한때 변이되었던 감각이 남아있던 존은 자신도 조절하지 못하는 격렬한 분노와 충동에 휩쌓였다.

사실 지금 그가 그 알약을 받았던 것은, 전부 에드먼드 피셔 때문이었다.

그자가 괴롭히고 협박하지 않았다면 극단을 그만둘 리 없었을 거고, 그렇다면 탈피 클럽에서 일할 리도 없었고 빈민가에서 약의 임상시험을 하는 고든이라는 남자를 만날 리도 없었겠지.

사실 별로 관계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존이 이렇게까지 궁지에 몰리게 된 것은 그와 전혀 관계가 없고, 오직 기구한 운명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존은 그걸 인정하지 않았다. 몸에 남아있는 기이할 정도로 강력한 힘의 잔재가 복수하라고 위치고 있었다.

에드먼드 피셔가 했던 모든 모욕적인 말들, 인격을 모독하는 독설, 무자비한 구타가 떠오르자 분노에 찬 존은 에드먼드 피셔를 미행했다.

그리고 그의 집에 따라 들어간 다음 살해했다. 그리고 살인을 저지른 뒤에, 그는 도망쳤다.

“뭘 생각하나?”

“리지안?”

쓰러진 존을 침대로 옮긴 것이 바로 리지안이었다.

“제가 어제 춘 춤이면 되는 겁니까?”

“아직 좀 더 배워야 할 여지가 있지만, 가능성은 있지. 이제부터 내 문하에서 그걸 배우면 돼.”

존은 어젯밤 춤을 추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건 단순한 춤이 아니었다. 내면에 있는 욕망을 바깥으로 꺼내는 춤이었다.

무한한 나선이라는 것은 아직도 감이 잡히지 않지만, 탈진할때까지 계속 춤을 추다니 정상이 아니었다.

“널 쫓는 인간들이 있다고 했지?”

“예. 약을 먹이고 실험을 했던 놈들이 쫓아올 겁니다. 그리고 제가 저지른 죄악의 결과로 인한 경찰들도 쫓아오겠죠.”

존은 이 모든 상황이 망가진 이후로 이제 마음을 놔버렸다. 죽으면 죽는 거고, 잡히면 잡히는 것일테지.

“내가 모두 막아주마.”

“그렇게까지 하는 겁니까?”

“일단은 스승이니까? 오늘은 절대로 콜르멜르 거리를 떠나지 마라.”

“알겠습니다. 아, 리지안.”

“왜?”

“근데 콜르멜르 거리 밖으로 나가지만 않으면 되는 겁니까? 서커스를 보고 싶어서요.”

존의 말에 리지안은 희미하게 웃었다.

“거리 밖으로 나가지만 않으면 돼.”

콜르멜르 거리 전체는 리지안의 영역이다. 이 안에서는 점술은 물론이고 추적도 불가능하다. 이 거리 밖으로 나가는 게 오히려 더 위험하다.

나무를 숨기려면 숲에 숨기라는 말이 있다. 서커스 같은 인파가 가득한 장소에 있으면 걸리는 것이 이상하겠지.

오히려 그의 공방에 있다간, 리지안이 위험해지면 존을 노릴 것이다.

존은 지금 죽기에는 너무 위대한 재능을 가졌다. 그런 오류 없는 움직임을 보이는 녀석은 처음 봤다.

리지안은 준비를 끝마쳤다. 이곳으로 오는 적들은 모래 지옥에 빠지는 개미처럼 하나하나 처리할 생각이었다.

‘죽기엔 좋은 날씨군.’

존을 쫓는 인간들은 매우 위험한 것이 분명했다. 여러 번 점술을 쳐서 콜르멜르 거리 내부를 확인해보려는 시도가 있었는데, 그중 한 번은 엄청나게 위험했다.

‘마치 신의 힘을 빌려서 점을 치는 것 같았지.’

그것이 무존자의 힘을 빌린 샤를의 점술이라는 걸 모르는 리지안은 상대의 강함을 대략적으로 예상할 뿐이었다.

*

샤를이 떠나자마자 에세나는 콜르멜르 거리로 들어섰다.

이런 장소는 평소에 한 번도 와본적이 없기에, 그녀는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서커스장을 발견했다.

이런 곳의 서커스는 어떨지 궁금하다고 생각하면서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에세나는 특이한 사람을 만났다. 열망에 가득 찬 눈으로 서커스장의 무대를 바라보고 있는 한 남자였다. 에세나의 앞에 서자 그가 앞을 다 가려버렸다.

“자리 좀 비켜줄래요?”

“아, 미안합니다.”

에세나는 희한하다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그의 생각이 전혀 읽히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그도 영성자였다. 에세나는 잠깐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저, 혹시 이름이 뭐죠?”

“예? 아, 전 존 도우라고 합니다. 아가씨는요?”

에세나는 눈앞에 있는 남자의 이름을 듣고 살짝 놀랐다. 유명 배우 에드먼드 피셔를 살해한 살인범이라고, 샤를이 미리 그에 대해서 얘기해줬다.

그리고 지금 벌어지고 있는 작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맡는 사람일 거다. 그러니까 이 남자는 지금 ‘미끼’였다.

이 남자를 미끼로 삼아서 헬파이어 클럽의 구성원들을 처리하는 게 목적이었다.

‘근데 여기 있다니?’

너무도 무방비할 정도로 돌아다니고 있다. 아직 자신이 표적이 되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일까?

“전 에세나 플라크에요. 서커스 단원이 되고 싶은 건가요?”

“아, 아닙니다. 저는 정확히 말하면 어떤 공연이든 하고 싶을 뿐이지요. 서커스라도, 할 수 있다면 하고 싶습니다. 저는 주목 받고 싶거든요.”

“정말 열정이 넘치시는 분이군요.”

에세나는 싱긋 웃었다. 그 말에 존이 자기의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말했다. 겉보기에, 전혀 살인을 할 사람 같진 않았다.

“너무 제가 할 말만 한 것 같군요.”

그가 무어라 말을 이어나가려고 할 때, 관중석에 있는 사람들이 일어서면서 환호를 질렀다.

높은 곳에 묶여있는 그네에, 공중제비를 돌던 서커스단원 하나가 다음 그네로 옮겨갔다.

그 다음, 나이가 어려보이는 서커스 단원 하나가 높은 그네 앞에 섰다. 광대처럼 색조가 짙은 분장을 했지만 아직 소년이다.

딱 봐도 주저하거나 머뭇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에세나는 그 소년을 보고 그 내면에 있는 긴장감과 불안감을 느낄 수 있었다.

심리를 읽을 수 있으면 어렴풋한 미래도 읽을 수 있게 된다. 너무도 긴장한 나머지 평소에는 잘 하던 공중 곡예도 실패하고 말게 될 것이다.

“저 아이, 곧 떨어지겠군요.”

“예?”

존 도우는 에세나의 말을 듣고 고개를 갸웃했다. 에세나가 그를 보면서 싱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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