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0화 - 샤를은 엘리엇도 카터와 같은 조건으로 계약했다. 카터의 고용 비용도 금 달란트 2개로 올려주었다. 눈 앞에서 더 많은 돈을 받아먹은 친구가 있다면 당연하게도 섭섭할테니까.
억만장자의 유산을 빨아먹은 아들이 돈을 펑펑써서 파산 나는 것 같은 행보를 보이는 것 같아 보이긴 해도, 이 금액도 다 여유 자금이었다. 대부분의 돈은 유마가 굴리고 있으며, 지금도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샤를은 그들을 고용한 뒤에 비밀 경매장으로 들어섰다. 엄청난 양의 재화를 달란트로 환금한 것을 이미 경매장 측에서 알고 있었으므로, 샤를의 대접은 이전 보다 훨씬 공손했다.
들어오자마자 코끼리 코를 가진 이족이 프리패스로 그를 들여보내주자 샤를은 비밀 경매장 앞 좌석에 앉아서 오늘 나오는 경매물품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분명 잭의 콩이 올라온다고 했지.’
자라면 끝도 없이 자란다는 잭과 콩나물 우화에서 따온 이름인 잭의 콩은 실제로 존재하는 작물이었다. 물론 그 수가 매우 적어 비밀 세계에서 거래되는 형편이었지만.
샤를은 이전에 여섯 번째 제자, 문글로즈가 있는 장소로 갈 수 있는 의식 주문에 필요한 재료를 그에게서 전달 받은 바가 있었다.
『자, 먼저 잭의 콩이 필요한 것이여. 그리고나서 암흑 쏘가리의 아가미에서 자라는 미나리, 달빛을 먹고 자라는 암흑탱자나무. 여름에만 열리는 은월잎 차 정도가 필요헌디. 아 그리고.』
『그리고?』
『영혼을 담는 그릇이 필요하제. 이 그릇은 비유법이 아니라 진짜 그릇말이여. 아니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야하는 기여, 마치 인신 공양을 필요로하는 사악한 영령을 쳐다보는 눈빛은 그만하지 않겠남?』
『아무튼, 그릇이란 말이죠?』
『그리여, 자기(瓷器)의 형태나, 은으로 만든 대접도 상관없는지라. 계몽을 정제해서 만든 대량의 꿈조각도 필요허구. 그릇 아래에 불길을 지필 재료로 그게 딱이거든. 그리고 제일 중요한 재료가 있는디. 바로 도약의 아스트롤라베여.』
그건 샤를로도 처음 들어보는 유물이라 그에게 되물었다.
『그게 뭐죠? 유물인가요?』
『내가 묶여 있는 공간을 도약하기 위해선 도약의 아스트롤라베가 필요하다 이말이여. 그건 오스굿이 가지고 있디야.』
『오스굿이라면, 다른 제자인 오스굿이요? 하지만 전 그녀의 행방을 모릅니다.』
『그려? 오스굿의 석판을 안 가지고 있다구?』
『그렇습니다만.』
『그럼 찾으면 될 게 아닌감?』
샤를은 문글로즈를 비오는 날 먼지날때까지 패고 싶다는 생각을 꾹 참고 알았다고만 말했다.
어쩌다 운이 좋아서 마쉬의 석판은 찾게 되었지만 남대륙으로 간 오스굿의 석판을 찾으려면 진짜 감도 안 잡힐 정도로 힌트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갈 수 있는 방법이야 있다. 지하에 있는 거대 유적지인 메트로. 그중에서도 심층 선회노선을 사용하면 된다. 50층 이하의 선회노선은 세계 어디로든 뻗어나갈 수 있으니까.
하지만 여러 난관이 있다. 첫 번째로는 아직 재단도 컨트롤하지 못하는 심층까지 내려가 메트로를 장악해야한다는 점.
거기다 지금 당장 메트로폴을 비우고 남대륙으로 갔다간 여러 사건들을 놓칠 수도 있으니 불가능하다.
그리고 남대륙이 오죽 넓은가? 단서가 없으면 진짜로 모래 사장에서 바늘 찾기다.
어찌되었든, 오늘 비밀 경매장에서 잡다한 재료를 구매하기로 해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샤를은 아는 사람을 찾았다. 경매장에 온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이 똑같이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알아보기에는 어렵지 않은 사람이었다.
“드레이크?”
“어, 어? 자네, 샤를이 아닌가?”
그곳에는 드레이크가 있었다. 맨 처음에는 기이한 사건에 얽힌 평범한 사람이었으나 아미티지 교수의 인도로 그도 역시 영성자의 길에 입문했다.
지금은 미스트위버 대학 비밀장서고 소속 영성자였다.
훌륭한 인재이고 샤를의 술친구이기도 했다. 마침 그에게 볼일이 있었기에 이런 곳에서 만나다니 반갑다고 말하면서 물었따.
“이곳에는 왜?”
“그, 아미티지 교수님께서 구하시는 물건이 있어서 말일세. 고 헤르메스 시적의 서적이라는데 자세한 건 모르겠다네.”
“이름이 뭐지?”
“우라가온 해독본.”
샤를은 그것이 고 헤르메스 시대때 있었던 서적을 해독하기 위한 암호 해독서라고 알고 있었다.
왜 구하는 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에게 용건을 꺼내려다가, 곧 경매가 시작했다.
“끝나고 술이나 한 잔 하지?”
“무슨 일인데?”
“평소랑 똑같은 일이야. 고대 시절의 흔적을 찾는 거지. 이번엔 보수가 조금 더 쌔.”
“아, 그야. 물론 알겠네.”
경매가 시작하자마자 샤를은 자신이 찾는 재료들을 찾았다.
잭의 콩은 손에 넣었다.
나머지 재료는 여전히 찾을 수 없었다. 아무래도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할 것 같다.
대신 명검을 하나 구매했다.
“이번 경매품은 조지아의 석검입니다. 고 헤르메스 시절, 박해자 에피마네스를 배신했던 배신자왕 가멜롯 유다가 사용하던 마법검이죠.”
에피마네스……. 어디선가 들은 내용이다 싶었더니 비스타 헥센의 전기에서 들은 단어였다. 한 단어로 듣고 지나가서 생각이 안 났지만.
“에피마네스를 쓰러트린 3명의 위인이 가지고 있던 물건이라, 굉장한 희소성과 함께 지금도 작동하는 성능! 가격은 은 달란트 9개부터 시작하죠.”
금 달란트 3개로 샀다. 파운드로 생각하면 꽤 비싸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이야 그 정도 지출은 상과없다.
“자, 이번 경매품은, 고 헤르메스 시절, 암살단에서 서로 암호를 주고 받기 위해 만들었던 우라가온 암호를 해독할 수 있다는 우라가온 해독본입니다.”
사회자가 말하자 드레이크가 눈을 번뜩였다.
“자, 처음 시작 금액은 은 달란트 1개로……. 아, 첫 구매자가 나왔습니다. 은 달란트 일곱 개! 은 달란트 일곱 개부터 시작합니다.”
“뭐, 뭐야?”
드레이크는 황당하다는 듯 손을 든 어떤 뚱뚱한 남자를 보았다. 그러다가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가면을 쓰고 있다고 해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찰스 라이스였다.
“저, 저거 라이스 교수 아니야?”
“그런가 보군.”
샤를은 라이스와 드레이크가 서로 같은 물건을 노리는 걸 보고 황당해하다가 드레이크에게 말했다.
“라이스 교수는 영성자는 아닐텐데?”
“그, 그래. 맞아. 아미티지 교수님은 찰스가 영성자가 될 수는 없을 거라고 했지. 하지만 비밀 세계에 관한 지식을 습득한 그는 이런 저런 유물을 모으는데 집중하고 있었다네.”
“흐음. 그래서, 살 건가?”
“사고는 싶지만, 돈이 모자라군. 다음 기회를 노리는 수밖에. 우라가온 해독본은 한 권이 아니니 말이네.”
“그럴 필요 있나? 내가 구매해주지.”
“자네, 꽤 큰 지출이 아닌가?”
샤를은 더 말하지 않고 씨익 웃었다.
“아! 금 달란트 한 개! 금 달란트까지 나왔습니다.”
라이스는 낙담한 표정으로 샤를 쪽을 바라보다가 곧 그가 샤를과 드레이크라는 걸 알아봤는지 더 손을 들지는 않았다.
경매에서 더 쓸만한 재료를 찾지 못한 샤를은 드레이크와 함께 경매장을 나갔다.
“이봐 친구들!”
가면을 벗고 경매장 밖으로 나가자 드레이크와 샤를을 향해 라이스가 다가왔다.
“자네들이 우라가온 해독본을 산 거 맞지?”
“그래. 아미티지 교수님이 필요하다고 해서 말이야.”
“그럼 자, 잠깐만 나좀 볼 수 있을까? 난 그걸 사기 위해서 숙부님이 가진 별장까지 팔았다네!”
“왜?”
“당연히 궁금해서지! 고 헤르메스 시절 유명한 암살단 아자크의 암호어란 말일세! 이건 무조건 봐야 해!”
순전히 학술적인 목적만을 위해 저택까지 팔고 비밀 경매장에 들어올 정도라니……. 라이스 교수의 광기는 이런 것에 집중되어 있는 것 같다.
샤를은 씨익 웃었다. 이걸로 둘 다낚을 수 있겠군.
“마침 잘 됐네. 그럼 술집으로 가서 더 얘기좀 해볼까? 어차피 할 의뢰도 있었고 말이야.”
라페르테 거리의 므냐시 펍에 도착한 세 남자는 여느때처럼 맥주를 주문하고 앉아있었다.
샤를은 구매한 책을 그들에게 보여줬다. 고급스러운 양장피 서적이었다.
우라가온 해독본이라는 암호어였는데 별로 중요하진 않아서 샤를은 내용을 정확히 외우고 있진 않았다.
학술적인 가치만이 있는 물건이지만, 교수라는 직업은 그런 학술적인 명예와 지식욕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다.
원래라면 샤를은 라이스와 드레이크에게 의뢰금을 주어서 그들에게 탐색 의뢰를 맡길 셈이었지만, 의뢰금 대신 이 책을 사용하면 될 것 같다.
“이걸 의뢰 비용으로 쓰지.”
“의뢰라니?”
“남대륙에서 오스굿이라는 이름을 찾아줘야겠어. 렘 시대부터 말일세.”
“저번에 의뢰하던 그런 것과 같은 맥락인가?”
“그래. 조사하면서 조심해. 너무 깊게 빠져들지 말고.”
린덴 가문의 의뢰와 비슷한 의뢰라는 걸 알아챈 드레이크와 라이스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본래는 따로 의뢰금을 지급하려고했지만, 자네들에겐 충분한 보상이 될 것 같아서 말이야. 먼저 찰스 자네가 이걸 보고, 그 다음에 드레이크 이 친구에게 넘겨주는 걸로 하지.”
“난 만족해! 그걸 볼 수 있다면야!”
“나도 좋네. 아미티지 교수님은 기한을 넉넉하게 주셨거든.”
“좋아.”
샤를은 모두에게 윈윈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들에게 오스굿에 대한 추적을 맡겼다.
기록이 거의 없을 것이므로 찾는데 오래 걸리겠지만 일단 이렇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들에게 맡겨두면 성과가 나올 지도 모른다.
“경매장에서 일은 끝났나.”
-지이이이잉
아까부터 부담스러운 눈으로 샤를을 바라보고 있는 파기나레코르를 보면서 그가 한숨을 쉬었다.
-알았어 줄게.
-만세! 금으로 줘! 금!
-…….
얘 먹이다가 파산하겠다. 어쨌든 경매장의 모든 일이 끝났으니 이제 콜르멜르 거리로 갈 때가 됐다.
*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서로 어색하게 인사하고 있는 사람은 에세나 플라크와 유마 헥센이었다.
유마는 쭈뼛거리면서 자신이 들고 있던 검은색 박스를 내려놓았다. 탓. 가벼운 소리가 났다.
“여기, 형님께서 두고 가라고 하신 물건이에요.”
“이게 뭐죠?”
“저도 정확히 모릅니다. 거금을 주고 구매하셨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내용물은 봐도 알 수 없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유마는 샤를이 하려는 일의 내막을 전부 알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샤를이 남들과는 다른 무언가를 할 생각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캐묻거나 말하지 않고 그대로 자리를 옮겨서 동행한 변호사를 불러 다른 사업가를 만나러갔다. 빌딩을 구매에 관한 여러 절차가 남았다.
에세나는 그가 떠난 뒤에 유마가 영성자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알 고 있지만 결코 섞일 수 없는 물리 세계의 인물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네. 교주님은 저 이복 동생을 끌어들이실 생각은 없는 거야.”
어쩌면 영성자라는 건 전혀 엮이지 않는 게 오히려 좋은 일일지도 몰랐다.
에세나는 떠나는 유마의 주변에 여러 사람들이 보이지 않게 숨어 있는 자들의 정신파를 감지했다.
‘재단의 경호원이라고 했나? 하나같이 기분 나쁘네.’
그들의 정신에서 나오는 일종의 파장을 느낀 에세나는 영 불쾌해졌다. 이유는 간단했다. 평범한 인간들과 달리 그들의 정신은 마치 무언가로 굳혀둔 것처럼 단단하기 그지 없었기 때문이었다.
저렇게 단단하게 굳은 정신은 나이를 많이 먹고 오랜 고집이 아집이 되어버린 노인들과 신념을 가진 인간들, 그리고 누군가에게 세뇌당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검은색 상자를 열어보자 안에는 특이할 정도로 검은색 일변도인 천이 있었다. 어쩌면 붕대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구매자에게서 이 유물의 이름과 사용법에 대해 적혀 있는 것을 확인했다.
“죄악의 붕대?”
글자를 읽자 밑에 내용이 새로 나타났다. 상대가 가진 ‘죄’의 크기에 따라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며 원거리에서 자동으로 움직이며 속박한다고 했다. 사용하기 위해선 매일 사용자의 피를 한 방울씩 흘려줘야 한다.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에는 괜찮은 물건이라고 생각했다.
샤를은 심상 세계에서 에세나를 호출했다. 위치는 콜르멜르 거리.
따로 움직여야하는 이유가 있었을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그 거리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