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8화 - 도망친 존 도우는 윈즈 강 근처로 이동했다.
빈민가에서는 윈즈강 근처로 길이 이어지는데 블리어템트 다리 아래쪽 부근이었다.
그곳에는 몇몇 판자촌이 있었으며 범죄자의 소굴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최대한 사람의 흔적을 피하려면 어쩔 수 없다.
불가피하게 들키더라도 전신에 피범벅인 존 도우가 그곳에 있다면 당연하게도 의심을 받겠지만 무법천지인 만큼 상대적으로 덜 집중 받을 터였다.
최대한 사람을 피해 움직이면서 존 도우는 윈즈 강에 몸을 던졌다. 한겨울이 차가운 강물이 얼음장처럼 몸을 강타하는 것 같았지만 견딜만했다.
그 정체도 알 수 없는 약을 몸에 받아들인 이후로 그의 신체는 알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 그리고 하나 더. 정교할 정도로 신체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놀랍도록 강해진 힘 덕에 그는 윈즈강을 헤엄쳐서 건널 수 있었다. 반대편에 도착한 뒤 다시 으슥한 길만을 골라서 콜르멜르 거리에 도착했다.
시간이 늦어 주변은 노을이 지고 있었다. 완전히 깜깜해지면 거리 전체에 가스등이 켜지므로 차라리 지금이 그 거리로 새어들기 좋은 시점이었다.
어느새 존 도우의 얼굴에는 가면이 사라진 상태였다.
마치 쪽빛 사이에 숨은 한 줄기 강물처럼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탈피 클럽에 도착했다.
아직 개업도 하지 않은 가게의 로비에는 마담 엘레느와 리지안이 대화를 하고 있었다.
엘레느가 고개를 돌려서 존 도우를 보고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일은 그만둔다면서? 옷차림은 왜 그래?”
“도움이 필요합니다.”
존 도우는 허름하다 못해 거지꼴인 상태로 나타났다. 그의 옷은 붉은색을 넘어 검은색에 가까웠는데 강물에서 씻어도 채 지워지지 않아, 피가 변색 되어있었다.
“어우 냄새야. 내가 일도 그만두고 나간 무용수를 도와줘야한다고?”
마담이 질색하는 도중에 리지안은 의외라는 듯 표정을 지었다가, 그를 안으로 들여보내기로 했다.
“어머어머. 잘 왔어. 안으로 들어와.”
“리―지안??”
“마담. 나중에 곧 돌려 보낼 테니까 잠깐 안에 들여보내서 씻기기라도 하죠. 오홍홍.”
“…….”
마담은 뚱한 표정으로 리지안을 바라보았지만 리지안은 그녀에게도 꽤 중요한 파트너였다. 그러므로 존 도우를 가게 안으로 들여보냈다.
리지안은 존이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말했다.
“옷에 묻은 거. 그거 다 피지?”
“예. 리지안. 대체 내게 뭘 한 겁니까?”
“오홍홍?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비음 가득한 목소리를 내는 리지안은 호기심에 가득한 눈초리로 존을 바라보았다.
“무용수들에게 지급되는 가면……. 그거 보통 가면이 아니죠? 난 그 가면 때문에 마치 인격이 바뀌는 것 같은 경험을 했습니다.”
“맞아. 겉보기에는 보통 가면이지만, 그 안에는 특수한 처리가 되어있지.”
“그게 뭡니까?”
“그걸 알아낼 정도면 확실히 눈을 뜬 것 같군. 따라와.”
리지안은 존을 의상실로 데려갔다. 그리고 의상실 옆에 있는 커튼을 걷어내고 그 아래로 이어지는 창고문을 열었다.
창고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가자 안에는 마네킹과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무대의상들이 잔뜩 놓여 있었다.
“영성자라는 것에 대해 알아?”
“그게……. 뭐죠?”
“인간을 초월한 인간이 될 수 있는 존재. 가능성의 시작이지. 초인이라고 생각하면 믿으려나?”
존은 리지안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일어난 일들은 전부 현실이었으니까. 하지만 대체 그의 몸에 투약된 그 약과, 리지안이 주었던 가면은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리지안은 그 아래 마네킹이 진열된 곳으로 향했는데 그곳에 수많은 가면이 놓여 있었다.
“난 어렸을 때, 어떤 위험한 일에 휩쓸렸었지. 정확히는 영성자들 간에 벌어지는 전투에 휘말리게 되었어. 그리고 나는 현실에 구멍이 뚫린 것을 봤어. 그 너머로 이계가 존재한다는 걸.”
“이계?”
“그래. 꿈에 침투해 있는 또 다른 세계를 말하는 거야. 영성자들은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이계에 맞닿아 있지. 나는 그곳에서 아주 특이한 존재를 봤어.”
리지안은 그 존재를 회상했다. 팔이 여섯 개 나 있으며 다리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분명히 인간이 아니라 겉보기에는 괴물이었지만, 그 존재는 춤을 추고 있었다.
온몸에서 수많은 비늘을 떨어트리면서 결국 자신의 몸에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계속 춤을 추었다.
“모든 잡념을 없애고 끝 없이 집중하는 존재. 그것은 영원히 춤을 출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난 그 무희를 무념무상의 무희라고 부르기로 했어. 그리고 그 가면은 무희의 비늘로 만든 물건이야.”
“정확히 이게 날 어떻게 만드는 겁니까?”
“너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게 하지. 넌 대단한 배우가 되고 싶어 했잖아? 그 가면을 쓰면 넌 진짜 배우가 될 수 있어. 이 세상 누구든 속일 수 있는 대배우.”
그렇게 리지안은 존에게 기술을 가르쳤다. 영성자가 되는 것과, 존이 가진 능력을 파악하는 일 등등.
*
그 뒤 따로 조사에 나간 루이스가 전보를 보내자 샤를은 경찰서가 있는 래보 거리의 카페에서 그를 만나 자세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존 도우가 머무르던 판자집에서 여러 장신구를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피셔 부인 것이더군요.”
“여러 장신구?”
“예. 아마도 도주 중에 사용할 패물을 훔친 거라고 봅니다만.”
“그렇군요.”
그런데 샤를이 그와 만났을 때 존 도우는 식료품점 앞에서 침을 흘리며 먹을 것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장물이라 처리를 못한 건가.’
그럴 수도 있다. 훔친 물건을 처분하면 당연하게도 존 도우의 흔적이 드러날 테고 그걸 역추적한 경찰에 의해 덜미가 잡힐 수도 있을 테니까.
혹은 장물을 처리하는 방법을 모르던가. 존 도우는 변이의 종자를 투여받아 뮤턴트가 되기 전까지만 해도 일반인이었다. 범죄에 관한 커넥션이 있을 리가 없다.
그럼, 말이 된다. 나비 문양의 펜던트는 피셔 부인의 패물을 훔칠 때 같이 가지고 나온 것이다. 그래서 벡토 기자가 달라붙은 거고.
정확히는 알 수 없었던 존 도우의 범행 동기도 알 수 있었는데, 존 도우는 다른 엑스트라들과 마찬가지로 에드먼드 피셔에게 엄청난 학대를 당했다.
“매질은 기본이고, 배우 생활을 못하도록 아킬레스 건을 끊어버리겠다고 협박했다더군요.”
“그렇게 한 이유가 뭐라고 합니까?”
“그냥 눈에 거슬렸다는 거라더군요.”
“…….”
에드먼드 피셔는 단순 갑질을 넘어서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칠 수 있는 협박을 가했다.
존 도우는 그 길로 일을 그만뒀다고했다.
“그 뒤 3개월 정도 행방이 묘연하다가 일주일 전 갑자기 등장해서 에드먼드 피셔를 살해했던 겁니다. 대체 3개월 동안 어디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그 3개월 동안은 어디에 있는지 알 것 같다. 헬파이어 클럽에선 변이의 종자를 빈민가 사람들에게 투약했고 가둬두고 관찰하고 있었다.
말로는 보호라고 하고 사실상 감시겠지만. 3개월 뒤, 존 도우는 탈출에 성공했다.
“그래서 이제 존 도우를 지명수배할 생각입니다. 신문에도 공표하고요.”
“그렇게 하시죠.”
여기서 이제 탐정 샤를의 역할은 끝났다. 하지만 이제 무명 교단의 교주 샤를이 움직여야할 시간이었다.
루이스 형사와 헤어진 뒤 샤를은 래보 거리의 광장에서 잠시 사람을 기다리면서 존 도우에 대해 생각했다.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정황상으로 보면 탈출한 뒤 곧바로 에드먼드 피셔에게 갔던 것 같다.
‘힘을 손에 넣게 되자 에드먼드 피셔를 살해했다고 치자.’
뮤턴트는 인간과는 상대도 안 될 정도로 강력한 육체 능력을 갖추고 있었으므로 자신감이 충만해져서 살인을 저질렀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런데 쫓기는 와중에도 살인을 저질렀어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던 걸까?’
헬파이어 클럽에서 그를 쫓아올 거라는 것을 알 수 있었을 텐데, 도망쳐서 한 일이 곧바로 에드먼드 피셔를 살해한 일이라고? 그럼 경찰의 추격을 늘릴 뿐이었다.
경찰은 헬파이어 클럽에게서 그를 보호해 줄 수도 없다. 유치장에 갇혀 있어봤자 손쉬운 표적으로 전락하는 것밖에 더하나.
혹은 에드먼드 피셔에게 받은 모욕과 분노가 너무 커서 주체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어느쪽이든 아직 존 도우에겐 샤를이 모르는 어떤 비밀이 있었다.
‘그러고보니 협력자도 있었지.’
콜르멜르 거리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점술 전문가가 그를 비호하고 있다. 그것도 수준급. 존 도우의 뒤에 어떤 세력이 있는 건 아닐 것이다.
“콜르멜르 거리에 있는 영성자라면. 역시 트레이너 리지안이겠지.”
리지안은 영성자를 기르는데 최상의 자질이 있었다.
다만 그 성정이 D&D식으로 치면 혼돈-중립에 가까우므로, 샤를은 그에게 접근하지는 않은 상태였다.
그런 종류의 인간들은 개인 본위의 흥미에 따라서 움직인다. 무명 교단으로 끌어들이기도 어려울뿐더러 다루기도 어렵다.
‘콜르멜르 거리로 가봐야 할 필요가 있겠어.’
하지만 그곳으로 냅다 들이칠 수는 없다. 헬파이어 클럽원이 개입할 것이 예고된 이상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동맹도 필요하지.’
동맹이라고 하니 생각났는데, 마침 샤를은 제롬을 발견했다.
광장 거리에 나타난 제롬은 예전과 같이 평범한 정장 차림새였다.
흔한 신사의 옷차림을 한 제롬이 고개를 숙이며 샤를에게 말했다.
“샤를님. 저 제롬, 그간의 일을 보고 드리기 위해 왔습니다.”
“일단 자리를 옮기지.”
샤를은 방금 루이스 형사와 헤어졌던 래보 거리의 카페로 가서 그와 한 테이블에 앉았다.
제롬은 앉자마자 종업원에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여기 민트를 넣은 초콜렛 커피를 주게.”
“……민초?”
샤를은 제롬을 어떻게 죽여야하나 고민하다가 곧 멈췄다. 그래 민트 초코 같은 치약 맛 커피를 먹는 사람도 있겠지.
“제롬. 너 설마 파인애플 피자도 좋아하는 건 아니겠지?”
“예? 그런 피자가 있습니까? 피자 위에 파인애플을 얹는다니 맛있어 보이는 조합이긴 하군요.”
아직 파인애플 피자가 있는 시기는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제롬 이쉑. 역시 정상인이 아니다.
“아무튼. 그간의 경과입니다.”
“그래.”
제롬은 샤를에게 명령을 받은 뒤 겨울 동안 암흑성도회의 일에 간여하면서 여러 정보를 캐왔다.
“제 역할을 도와줄 동료가 있어서 좀 편했습니다.”
“골레릭 말이지?”
“예. 아직까지는 순조롭게 임무를 수행하더군요.”
골레릭을 고용하는데 지출된 금액이 뼈아프긴 하지만, 그건 헥센 가문의 재산을 물려받기 이전의 일이었고 지금이야 아프지도 가렵지도 않은 수준이다.
“암흑성도회 내부에서 씨앗을 한 명이 홀로 받아들이는 건 매우 어렵다고 결론이 났습니다. 그래서 씨앗을 여러 조각으로 나눠서 각 지파의 장이 그것을 흡수하기로 했죠.”
“그런가.”
샤를은 때가 된 것을 느꼈다. 암흑성도회에서 왜 굳이 그런 비효율적인 일을 하냐면, 당연하게도 권력다툼 때문이었다.
인간이 셋 이상이 모이면 정치가 시작된다. 당연하게도 그건 초월적인 힘을 가진 영성자들에게도 적용되는 말이었다.
암흑성도회는 메트로폴의 사교 중에서도 제일 규모가 큰 만큼 분열도 심하게 일어난다.
“그리고 이건 암흑성도회의 정확한 정보입니다.”
암흑성도회의 구성원 및 지금 조직의 위치, 어디가 약점인지까지 고루고루 섞어온 정보였다.
이걸 알아내더라도 아직 무명 교단의 힘은 암흑성도회에 미치지 못한다.
샤를 혼자 가서 깽판 치더라도 금세 재기할 것이고.
“암흑성도회는 지금 광명교단을 무너트리는 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광명 교단을 무너트리는 일?”
이 일은 분명히 일어나야 하는 일이긴 했으나 진도가 빠르다. 보통 씨앗을 온전히 이어받고 난 교주들이 세력을 투사할 상대를 찾다가 발견하는 것이 바로 광명교단이었다.
“예. 메트로폴 대성당 폭파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골치 아픈 일이 늘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