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5화 - 메트로폴 어딘가.
클럽하우스에서 파티가 벌어지고 있었다. 어둡게 만들어둔 방에 부분부분 화려한 조명을 달아 전체적으로 신비해보이는 장소였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가면을 쓰고 있었는데 가면 무도회에서 쓸법한 가면들이었다.
각자 술잔을 한 손에 쥔 사람들은 무어라 떠들면서 방탕함을 즐겼다. 반나체의 여인들이 돌아다니면서 음식을 서빙하고 그들의 취향에 맞춰 놀아나고 있었다.
사자 가면을 쓴 남자는 가만히 서서 그들을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남들과는 달리 파티를 즐기지 못하고 초조한 듯 보였다.
“왜 그렇게 떨고 있나? 고든.”
해를 형상화한 가면을 쓴 남자가 어느새 다가와 그의 어깨를 두들겼다.
“크, 클럽장님.”
“솔직히 말해보게나 지금 말하면 질책하지 않을 테니까. 책임도 없을 거라네.”
“변이의 종자를 투약받은 개체 중 하나가 우리의 통제를 벗어난 것 같습니다.”
고든의 말에 클럽장은 한숨을 쉬었다. 그는 옆에 끼고 있었던 여자를 멀리 보내고는 고든의 어깨를 감싸면서 자리를 옮겨 한적한 테라스로 갔다.
창문 밖으로 나오자 쌀쌀한 바람이 그들을 맞이했다. 클럽장은 마시던 술을 쭉 들이키고는 말했다.
“번호는?”
“3번입니다. 존 도우…….”
“첫 실험이니 통제 실패는 충분히 가능한 얘기지. 존 도우의 신성의 씨앗과 링크율은 얼마나 되나?”
“상당히 높습니다. 90%.”
“추격팀을 편성하게. 훌륭한 실력을 가진 친구들로.”
“알겠습니다.”
클럽장은 그에게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말을 지켰으나 고든에게 경계심이 들도록 경고의 말은 남겼다.
“잡아 오지 못하면 자네는 책임을 져야 할 거라네. 알겠는가?”
“예. 알겠습니다.”
*
저녁 식사 자리에 초대받은 유마는 싱글벙글 웃으며 앉아있었다. 오늘, 이복형제가 저택에 온다고 하자 집사 제이큰은 주방장에게 말해서 맛있는 요리를 내왔다.
“왔구나.”
“예. 맛있는 냄새가 진동하네요.”
유마는 자리에 앉아서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는 며칠 전보다 더 긴 머리카락을 목 뒤에서 묶었다.
“머리는 왜 기르는데?”
“그냥요, 기분 전환?”
그래, 그럴 수 있지.
-쭈인, 얘 남자랬지? 여자 같네.
-남자가 맞아.
파기나레코르의 의문을 해결해준 뒤에 일 얘기는 나중에 하고 일단 저녁 식사부터 했다. 스테이크를 썰어서 먹으면서 유마는 행복하다는 듯 고개를 몇 번 주억거렸다.
“와, 이 포도 정말 맛있네요.”
“……어. 그래.”
“와인도 정말 맛있고요.”
온실에서 자란다면서 겨울에도 포도를 찍어내고 있는 디노가 만든 포도와 와인이었다.
참고로 디노가 새로 만든 와인셀러는 초창부터 대박을 쳤다. 어떻게 만들었는지, 제조 과정에서 풍미와 복합성이 대단하다고 한다. 프랑기아 왕국의 와인과도 견줄 수 있다고 어쩌고 하는데 샤를은 와인에 대해서는 까막눈이라 그러려니 할 뿐이었다.
“흐음.”
저택에서 보이던 모습과는 달리, 지금이 그의 본모습일 것이다. 평범하고 일상생활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사람. 식사가 끝나자 유마가 냅킨으로 입을 닦았다.
“아, 잘 먹었습니다.”
“그래. 이제 일 얘기를 하자.”
“여기 서류가 있습니다. 형님.”
그걸 건네면서 유마가 말했다.
“내용은 사건의 뒤처리에 대한 경비와 여러 비용에 관한 거예요. 변호사들을 고용하는데 비용이 좀 들어갔지만, 대체 적으로 큰 손해는 보지 않도록 했습니다.”
“좋아. 훌륭해.”
샤를은 서류를 읽어보면서 그가 제대로 일 처리를 끝냈다는 걸 봤다.
“다만 인맥이라던가 그간 헥센 가문에서 이어져 왔던 커넥션은 기대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아버지께서 후계자로 지목을 한 게 아니라.”
“어차피 그쪽 인맥을 사용할 생각은 없어.”
요하네스 헥센도 아니고 비스타 헥센이 만든 관계다. 물론 가져갈 수 있으면 좋겠지만 직접 나서서 구축하기에는 시간도 없고 할 필요도 없다.
“돈이 있으면 어차피 인맥은 늘기 마련이거든.”
“그럼 그렇게 알고 있을 게요.”
“메트로폴에 빌딩 하나만 사자.”
“메트로폴에요? 인시그니아에도 괜찮은 건물이 있는데. 이 건물은 헥센 가문 소유기도 하고요.”
메트로폴은 샤를의 근거지였다. 그리 간단하게 옮길 수는 없을뿐더러 앞으로 일어나는 온갖 개판(이라고 읽고 메인스토리라고 쓰는)이 벌어질 텐데 이곳만큼 그걸 총괄하고 제어할 수 있는 곳이 없다.
“그래도 메트로폴에 만들어야 해.”
“그럼 어디 쪽으로 할까요?”
유마는 자신의 근거지인 인시그니아를 버리고 메트로폴에서 활동하게 된다는 것에 조금 유감을 느꼈지만 이 도시도 수도 만큼이나 번화한 도시이므로 나쁘진 않을 것 같다.
“메트로폴 중심부에 하자.”
그간 탐정일을 하면서 세인트 생시르를 살폈었는데 도심지기도 하고 여러 방향으로 뻗어있는 교통을 생각하면 세인트 생시르에 있는 건물을 인수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세인트 생시르 거리에 크라이슬러 빌딩이라는 곳이 있어.”
“크라이슬러라면 포드와 함께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가 아니었습니까?”
포드가 선두주자로 자동차 산업에 뛰어들었지만 그 뒤를 이어서 크라이슬러라는 회사도 뛰어들었다. 이쪽은 자본력이 더 월등해서 꽤 위협적이다.
“회사를 살 생각은 없고, 빌딩을 구매할 계획이야.”
“상당히 많은 돈이 나가겠는데요.”
“감수해야지.”
그곳만큼 괜찮은 건물이 없다.
“그리고 유마. 저택에서 예전에 내가 했던 말 기억하니?”
“세 가지 원칙 말이지요? 기억하고 있습니다.”
샤를은 말했다. 유마를 회유하면서 했던 말이지만 아직 그 원칙은 유용했다.
첫째, 명령에 복종할 것. 둘째, 지시에 의문을 품지 말 것. 셋째. 배신하지 말 것.
“알겠습니다. 곧바로 빌딩 인수로 들어갈게요.”
크라이슬러는 초반에 경영난으로 문제를 겪는다. 아마 건물을 팔라고하면 흔쾌히 팔아넘길 것이다. 비싸게 받아먹을 테니 그걸 흥정해서 어떻게든 싸게 사야지.
유마에게 첫 번째 과제를 넘긴 다음에 샤를은 심상 세계로 들어가 교단을 총괄하고 있는 에세나를 불렀다.
에세나는 그 부름에 응해 정신을 집중하자 샤를의 심상 세계로 들어설 수 있었다.
어째서인지 이 심상 세계가 조금 더 커진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그게 기분탓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는데 설산을 기준으로 동쪽에 거대한 대륙과 화산이 즐비한 장소가 보였던 것이다.
“와아.”
잠깐 주변을 구경하면서 하늘을 날아오른 에세나는 곧이어 거대한 오벨리스크 앞에 도착했다.
에세나는 언제나처럼 경이로움을 느끼면서 원탁에 앉았는데, 샤를은 그곳에서 미리 기다리고 있었다.
늘 그렇던 것처럼 인사를 하려던 찰나에, 샤를이 앉아있는 기다란 왕좌 위로 거대한 문양이 그려져 있는 것을 깨달았다.
그 문장에서 엄청난 힘이 느껴졌다.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본능적으로 그 힘이 엄청난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에세나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안녕하세요 교주님. 저 문장은…….”
“무존자의 문장이다. 이 문장을 그리고 사용하는 건 나중에 가르쳐주도록 하겠다.”
샤를이 주문을 창조하기 전까지는 심볼의 가치가 크지만 저 문장 자체로도 힘을 형성하면서 샤를의 영향력을 증폭시키는 효과가 있으므로 이것을 밖에서도 채용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널 부른 이유가 있다.”
가볍게 고개를 숙이는 샤를이 왜 그녀를 불렀을지 짐작했다.
“드디어 교단이 드러나는 건가요?”
“그래. 이제 정식으로 무명 교단을 창단할 거다. ‘공식적’으로 말이지.”
“드디어군요.”
“신도들의 계급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샤를은 그렇게 말하면서 여태까지의 모호함에서 벗어나 조금 더 체계적으로 신도들을 설정하겠다고 했다.
“가장 낮은 계급은 신도들이다. 이 신도들은 영성에 관해 모르는 일반인들로 구성될 예정이지. 그들은 무존자를 섬기고 기도한다.”
“예.”
“그 다음에는 영성회원들이다. 이들은 모두 영성자로 구성될 거다. 외부 유입자들이면서 내게서 영성에 대한 기술을 전수받지 않은 자들 전부를 통칭하지.”
“이들에게는 어떤 권한을 주실 건가요?”
“무명 교단이 신비 세계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거다. 그들은 장기말이라고 할 수 있지.”
그렇게 말한 뒤에 샤를이 이어서 말했다.
“영성회원보다 더 높은 계급이 바로 제자다. 내 직속으로 편성될 거고 내게 맹세를 바쳐야한다. 그런 자들에게 주문과 유물을 내려줄 거다.”
“당연히 차등지급이겠군요.”
“그렇다.”
“외부인은 어떻게 할까요?”
“적과 외부 협력자로 나누거라.”
일종의 다단계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정도의 계급은 조직이 있다면 당연하게도 분화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사이비 교라기보다는 영성자의 비밀 결사 느낌이 강해지긴 했지만.’
어차피 일반 신도들에게서 돈도 걷지 않으니, 그들에게 해를 가하진 않을 거다.
“그럼 그렇게 알고 편성하겠습니다.”
“그래. 근거지를 옮긴 이후에 바로 해야할 것이다. 그동안 나는 권력자와 만나서 얘기를 나눠볼 생각이다. 그가 교단이 만들어지는 걸 쉽게 도와줄 거야.”
“그럼…….”
“그래, 메트로폴 시장 틸 크로포드와 만날 생각이다.”
에세나는 ‘공적인’ 문제를 샤를이 전부 해결하겠다고 하자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에세나를 심상 세계 밖으로 내보낸 뒤에 샤를은 틸 크로포드가 현재 겪고 있는 문제에 대해 생각했다.
그의 임기는 슬슬 지나가고 있었고 인기는 눈에 띄게 식었다. 지금하던 대로 했다간 다음 시장 선거에서 떨어지게 될테니, 그에게는 돌파구가 필요할 것이었다.
“그리고 내겐 돌파구를 열어줄 돈이 있지.”
그를 구워삶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
며칠 동안 벡토는 존 도우를 따라다니면서 다른 엑스트라들을 만났다. 그들은 하나같이 오페라 하우스에서 해고된 이들로 극심한 재정적 문제를 안고 있었다.
그 사건들 하나하나를 정리해서 전보로 정보 전달을 끝내면서 벡토는 머리를 긁적 거렸다.
“후. 이거 원. 하나같이 전부 동기가 있는데.”
그들은 에드먼드 피셔에게 괴롭힘을 당했는데 심각한 자는 한쪽 팔을 못쓰게 된 이도 있었다.
너무 동기가 많아서 의아할 정도였다. 샤를은 전보를 받고나서 나갈채비를 마친 채 라페르테 거리 근처의 카페에서 에드먼드 피셔와 만났다.
“어때요? 수상한 사람은 없었습니까?”
“존 도우의 도움을 받아서 사람들을 만나봤습니다만, 다들 동기는 있습니다만, 정확히 누가 그랬다고 할 증거는 찾지 못 했습니다.”
“흐음.”
사건이 미궁에 빠지는 것 같자 샤를은 자신이 뭘 놓쳤는지 생각했다.
무명 배우라는 점에서 감이 왔지만 그 뒤부터 직감은 묵묵부답이었다. 이럴 때는 점술을 펼쳐서 찾아보면 돌파구가 생긴다.
잠시 커피를 마시는 척 하면서 심상 세계로 들어선 샤를은 그곳에서 점술을 펼쳤다.
‘에드먼드 피셔를 살해한 범인.’
보티브 초에서 펼쳐진 빛의 잔상들은 어떤 장면으로 형상화되었다.
황혼 무렵의 인적 드문 골목길에 누군가 있었다.
그는 가면을 쓰고 있었는데 온몸을 비틀면서 괴로워하고 있었다. 자신의 몸을 긁거나 벽에 부딪치기도 했다.
그러다가 곧 배를 움켜쥐고 말했다.
“배고파…….”
그 범인은 터덜터덜 걸어서 어디론가 향했다. 그곳은 제이미 식료품점이었다.
“존 도우…….”
샤를은 그가 범인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상함을 느꼈다. 샤를은 무존자의 힘을 점점 더 깨우치면서 직감이나 예감 등이 긴밀하게 발달되었다.
점술을 치르기 전에, 샤를은 존 도우를 보고도 생활고를 겪고 있는 불운한 엑스트라 배우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결코 살인자라는 감각이 없었다. 위험하다는 느낌도 없었고.
그런데 점술의 결과는 달랐다. 심상 세계에서 현실로 빠져나온 샤를은 커피잔을 내려놓으면서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 벡토에게 말했다.
“존 도우는 어디있죠?”
“음. 아마 자기 집에 있을 겁니다. 오늘도 만나기로 했죠.”
“문제가 생겼습니다. 존 도우가 범인일 지도 모릅니다.”
“예? 갑자기요?”
샤를의 말에 어리둥절하다는 듯 대답한 벡토는 먼저 자리를 일어난 샤를을 선뜻 따라가기 어려웠으나 결국 발걸음을 옮겨 그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