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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사이비 교주가 되었다-99화 (99/221)

제99화 - 모든 일이 끝나고 난 이후의 저택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이 안에 누군가 살아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의 적막.

‘이걸, 정상적인 승계라고 볼 수 있을까.’

요하네스 헥센은 유산을 물려준다고 하면서, 한 푼도 남겨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요하네스 헥센의 의식이 성공했다면 그는 영생불멸의 육체로 영혼을 갈아타고 영원히 살 생각이었을테니까.

그래서 샤를은 요하네스가 가진 헥센 가문의 정보를 알지 못했다.

“…….”

헥센 가의 사람들은 다 죽었다. 수천 년 전 광인이 만들어낸 핏빛 폭풍은 살아남은 자에게 공평하게 영향을 미쳤다.

사건이 끝난 다음 날 샤를은 저택 내부에 살아남은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이곳저곳 뒤졌다.

그리고 제정신이 아닌 에스텔라 헥센을 그녀의 방에서 발견했다. 샤를의 계모로, 보통 편지로 샤를을 조롱하거나 모욕하는 등의 내용을 교묘하게 돌려서 보내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정신이 나가서 백치가 되어버렸다. 밥도 먹지 않고 혼자서 매일 무어라 중얼거릴 뿐이었다.

“씁쓸하네.”

일반인이 이런 사건에 휘말리게 되면 대부분 미쳐버리고 만다. 보지 않아도 계몽 수치가 미친 듯이 치솟은 걸 알 수 있었다.

이제 그녀에게 무어라 말하더라도 소귀에 경 읽기였다.

저택에 생존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완전히 넋이 나간 에스텔라 정도만이 살아 남았다.

헥센 가의 가주 요하네스 헥센, 그리고 그 아들과 딸들은 모두 죽었다.

정확히는 요하네스 헥센의 몸을 빼앗은 비스타 헥센이었다. 요하네스 헥센의 영혼은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하인들, 이라고 쓰고 연구원이라고 읽는 그자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모조리 전부 다 죽었다.

마지막으로 에드워드 헥센을 죽인 하얀 유령은 주변을 배회하면서 하인들을 끝까지 추적해 죽였기 때문이었다.

집사 보마르도 죽었다. 백기사의 대검에 잘려나간 머리는 아직도 수몰된 저택 지하 비밀통로의 어딘가에 있겠지.

유마는 한동안 신경이 쇠약해져서 앓아누웠다가, 며칠 전에 일어났다.

허약해 보이는 외모와는 다르게 정신력이 높은 모양이었다.

보통이라면 샤를도 PTSD를 겪거나 미쳐버리는 것이 맞겠지만, 가벼운 현기증이 나는 정도였다.

그의 정신력이 높은 이유도 있었지만, 이 헥센 가의 사람들을 샤를의 가족으로 인식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 컸다.

사건의 여파 이후 샤를은 저택 내부를 대충이나마 정리하고 서류들을 모았다.

비밀 금고에 숨겨진 서류들을 보고, 요하네스 헥센이 벌이고 있던 사업을 살폈다.

요하네스 헥센은 어마어마한 땅 부자였다. 수도 인시그니아의 노른자 땅 다수와 식민지에 엄청난 양의 토지를 갖고 있었다. 정확히 얼마인지 짐작이 안 가는 금액…….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알아보려고 할 때쯤 유마 헥센이 문을 두들기고 들어왔다.

“일어났냐?”

“예. 이제 좀 괜찮아졌어요.”

그의 안색은 창백했으나 그래도 며칠 전에 비하면 괜찮아 보였다.

“이제 이 저택에 사람이라곤 너랑 나 둘 밖에 안 남았다.”

“…….”

“헥센이라는 이름을 쓰는 사람도 너랑 나 둘 뿐이지. 아, 백치가 된 에스텔라 헥센이 있긴 하네.”

“계모님이……?”

“그래. 정신이 나갔어. 가만히 내버려두다간 죽을 지도 모르겠어.”

“간병인을 고용해야해요. 그래도, 계모님이시니까.”

“그래야겠지. 유마. 어떻게 하고 싶냐 넌?”

유마는 굳은 눈동자로 말했다.

“형님, ‘보물’은 찾으셨습니까?”

“그래. 내 손에 있다.”

그 석판은 아직 제대로 흡수하지 못했다. 세레스가 무슨 방법을 사용해서 자신의 정신에서 석판을 꺼냈는지 모르겠어서 지금 방법을 찾는 중이었다.

“아버지의 몸을 빼앗은 선조가 시킨 일이라고 해도. 그분께서 유산을 집행할 권리를 가진 것은 맞는 말이죠.”

“그렇긴 하지.”

이 나라의 법은 요하네스 헥센의 몸 속에 무슨 다른 영혼이 들어가있건 상관없이 요하네스 헥센의 신체를 가진 사람 만이 유산을 나눠줄 권리를 갖는다.

“그럼 형님이 전부 가져가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전 이곳에 오고 싶지 않았거든요.”

유마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하늘이 노란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 아래의 숲에서 잎사귀 하나 없이 앙상한 나무들이 노란 빛을 받아서 가지 사이로 빛을 내려보내고 있었다.

“저는 수도로 가서 상회를 다시 관리할 생각이에요.”

“아니, 그러지 마.”

“네?”

샤를은 자신의 앞에 놓인 서류를 툭툭 두들겼다.

“재산은 내가 소유한다고 해도, 이걸 나 혼자서 다 관리할 수는 없어. 그러니 네가 관리해주는 게 어때?”

“저, 절 어떻게 믿으시고요?”

“그 사건이 일어나는 동안 대충 널 봤어. 믿을 만한 사람인지 아닌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지.”

유마는 샤를의 명령을 잘 따랐고 다른 일을 하지도 않았다.

“그, 그럼.”

“그래. 네가 내 비서가 좀 되어줘야겠다. 수도의 상회는 계속 관리해도 상관 없지만, 헥센 가문의 자금력이라는 든든한 지원금이 가면 어떻겠어?”

“그래도 되나요?”

“네게 자금에 대한 집행 권한을 줄게. 어떻게 쓰던 상관 없어.”

샤를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게이머들에게 유마 헥센의 정보가 퍼져 있는 이유가 좀 있다.

샤를 헥센과 같은 가문이면서, 동시에 상당한 재무 관리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영입 순위가 높다고 할까.

“좋아요. 해볼게요.”

“고맙다. 도와줘서.”

“아뇨. 형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았으면 전 벌써 저택에서 죽었을테니까요.”

샤를은 유마의 머리를 몇 번 두들겨주고 골치 아픈 서류를 잔뜩 챙겨다가 유마에게 넘겼다.

대신 그는 중요한 서류는 따로 챙겼다. 바로 비밀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었다.

비스타 헥센은 영성자였으니 그가 가진 재력으로 비밀 세계에서 사업을 한다는 게 이상하진 않았다.

비밀 세계에서 온갖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그중 가장 눈에 보이는 게 바로 봉인 재단의 투자금이었다.

‘16%.’

봉인 재단의 주식 16%가 비스타 헥센의 손에 들려 있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대주주라고 해도 믿을 만큼 많은 숫자의 주식이었다.

거진 80%의 주식은 웹스 가문이 나눠서 소유하고 있고, 나머지 4%는 개미들, 그러니까 야생의 영성자들이 나눠서 소유하고 있었다.

나름 비밀스러운 회사라, 상장 자체를 안 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게 보통이지만 이 세상에서 돈 없이 되는 것은 거의 없었다. 봉인 재단을 설립할 초창기의 웹스 가문은 그렇게 강성한 가문도 아니었으니까.

물론 이 정도로 낮은 주식으론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이 고작일 테지만, 웹스 가문 내의 알력 사이에 끼어들 수 있다는 점이 중요했다.

모든 인간은 권력을 가지고 있다면 각자 다른 생각을 하기 마련이었고 그건 웹스 가문도 마찬가지였다.

거기다 대주주가 되면 메트로폴에 있을 시에, 라쿤 팀 같은 경호부대가 붙는다. 아마 샤를이 완전히 가문을 승계하고 난 뒤에는 경호를 받을 수 있을 거다.

이건 양날의 검 같은 거라 아직 어떻게 할지 정해두지 않았다. 재단에게 샤를의 행보를 파악당하고 싶지는 않은데 경호는 받고 싶단 말이지.

그들의 원칙, 메트로폴의 교단들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는 건 불가능해질 것이다.

헥센 가문의 모든 것을 승계해서 얻는 재정적인 이점뿐만이 아니라 봉인 재단에게 선택지를 강요할 수 있다는 점이, 무척이나 매력적이었다.

‘교단의 확장을 시작할 때가 됐군.’

메트로폴 서북쪽에도 헥센 가문의 토지가 있었다. 그곳에 거대한 건물을 짓고 무명 교단의 교회로 만들 셈이었다.

다음 날 아침, 무슨 미친 짓을 했는지 유마가 헥센 가문의 모든 재산을 알아왔다. 그는 격식 있는 정장을 입고 있었고 매우 곧게 똑바로 섰다.

“형님. 헥센 가문의 모든 재산을 정리한 서류입니다.”

“……빠르네.”

유마는 저택 내부에서 어벙하게 굴었던 것과는 다르게 매우 또렷하고 당당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총 재산은 23억 파운드가량으로 추산됩니다. 8할가량은 토지로, 식민지에 대량 분산되어 있고 수도 인시그니아에도 상당수의 부동산이 있습니다. 군수 사업체, 철강 사업체, 철도 사업체, 그리고 보유중인 대량의 주식을 정리한 내역표입니다.”

“……23억이라고?”

샤를은 혼미해지는 금액에 정신을 놓을 지경이었다. 샤를의 포도밭에서 올리는 수익의 이백 배가 넘는다.

그도 자신이 부자라고 생각했지만, 진짜 부자의 앞에서는 정신도 못 차릴 정도였다. 구체적인 숫자를 나열하는 것만으로 샤를은 어떤 영성자들에게서도 느끼지 못했던 압도감을 느꼈다.

“비밀 금고에 숨겨진 자산을 전부 합산한 결과인데, 대부분 묶여있어서 현재 운용 가능한 자산은 5천 파운드 정도입니다.”

“하.”

“근데,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이상한 점?”

“출처를 알 수 없는 지출이 있습니다. 표기상으로는 이해가 안 가는 금액이 상당수. 거의 20% 가까운 금액입니다.”

“그건 신경 쓰지 않아도 좋아. 앞으로 없어질 테니까.”

요하네스 헥센의 몸을 차지한 비스타는 비밀 세계에 수많은 일에 엮여 있었다. 출처가 불분명한 금액들은 전부 비밀 세계에서 지출한 금액일 것이다.

유마가 생긋 웃었다.

“그럼 잘 됐군요. 운용 가능한 자산을 1억 파운드까지 늘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 운용 가능한 자산 중 20%은 내가 사용할게.”

“따로 어딘가 사업이라도?”

“아니, 용도가 불분명한 지출에 사용하게.”

샤를이 싱긋 웃었다. 그러자 유마는 그 용도가 불분명한 지출이 무엇인지 알아챘다. 필시 영성자들 간의 일이 분명할 것이었다.

“그렇게 많은 금액을 쓰는 군요.”

“이 바닥에선 돈이 장땡이거든.”

아! 경매장 가서 플렉스하고 싶다!

“마법도 돈이 있어야 쓰는군요…….”

“그래. 어쩔 수 없는 숙명이지.”

보통 주문 사용자들은 다량의 시약과 촉매 등을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 주문을 내려주는 자들에게 바치곤 했다. 샤를은 좀 특이한 케이스라 필요가 없었지만.

“뭔가 상상하던 거랑 다른 데요.”

괜히 비밀 경매장에서 고위급 영성자들과 ‘돈이 많은’ 사람들을 받는 것이 아니었다.

이 세계에서 돈이 많으면 어마어마한 실력을 지닌 영성자들과 연줄이 생긴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말인데, 식민지에서의 토지는 대부분 정리해서 현금화하는 게 좋겠어.”

“네? 왜요?”

당장은 아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 나라는 프랑기아 왕국과 전쟁을 벌인다. 그리고 패배하고 나서 식민지를 뜯기게 된다.

이건 5년 뒤의 확정된 미래라고 해야 할까. 당연히 거기 있는 땅은 다 뜯긴다.

“식민지의 부동산은 불안정하거든. 그 돈을 현금화한 뒤에, 공업에 투자하는 쪽으로 하자. 나머지 자금은 마음대로 집행해도 좋아. 장부 남겨두고.”

“예.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저, 근데. 이 저택은 어떻게 할까요?”

“…….”

유마나 헥센이나 아직도 헥센 가문의 본가에 머무르고 있긴 하지만 좋은 추억이라고는 눈꼽 만큼도 없었다. 거기다 인접한 곳에 대도시 하나 없는 시골이다.

“난 이 저택을 쓸 생각 없어.”

“저도 되도록 이 저택이 없어졌으면 좋겠네요.”

“나랑 생각이 맞네.”

“변호사들을 불러서 유산 처리하는 것과 동시에 저택도 폐기 처리할게요.”

“새로운 땅에서 시작하자. 메트로폴 근처의 저택은 어떨까.”

“아, 형님. 메트로폴 근처라고 하니까 생각난 건데 바이스 산 근처에 산장 하나가 매물로 나왔다는데요.”

바이스 산 근처? 샤를은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거긴 그 산장에서 만년필을 갖고 있던 솔로가 벌인 시나리오가 일어났던 곳이었다.

“절대 안 돼!”

“예? 왜요?”

“내가 가봤는데 마음에 안 들었어.”

“아, 예. 그럼 다른 곳으로 바꾸겠습니다.”

이상하게 감정이 실렸다는 생각을 하면서 유마는 앞으로 헥센 가문의 새 본가를 만들 위치를 선정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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