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6화 - 그녀는 요하네스를 바라보면서 음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녀의 손에는 단검이 들려 있었다.
그녀는 헥센 가문에 시집온 이후로 즐거웠던 기억이 단 하나도 없었다. 눈 앞에 있는 자가 인간인지도 의심스러웠다.
요하네스는 진짜로 냉정한 인간이었다. 에스텔라 헥센을 ‘자식낳는 도구’ 정도로 밖에 보지 않는다.
“뿌린대로 거둔다. 누군가 말했지.”
“자식들을 수확한다고요?”
“이건 아주 오래전부터 내려오던 가문의 전통이야. 여러 번 실패했었지만 이번에는 성공할 거야.”
“그, 그게 대체 무슨 소리죠?”
“에스텔라. 불로불사라는게 뭘까?”
뒤돌아보는 요하네스의 눈동자는 광기가 가득했다. 에스텔라는 뒷걸음질을 쳤다.
“옛날 옛적. 영원히 살고 싶다는 욕망을 가진 존재가 한 존재가 있었지. 그는 그걸 실현시킬 의지도, 능력도 있었지. 물론 운도 따라주기도 했고 말이야.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봐도 신체가 늙어가고 죽는 걸 막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지. 시간 앞에서 모든 것이 무의미해졌거든.”
“그, 그게 대체 무슨 소리에요!?”
“그래서 몇 가지 방법을 세웠지. 몸은 죽더라도 영혼은 죽지 않게 만드는 방법 말이야. 그래서 몇 차례 이곳저곳에 빙의하면서 살아갔어.”
“그, 그런게 가능할 리가.”
“가능해. ‘보물’의 힘이 있다면 말이야.”
에스텔라는 진짜로 그 보물이 있다고 믿는 요하네스가 미친 건지 아니면 자신이 미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보물’이 없어지더군. 그래서 그자는 생각했어. 후손의 몸을 빼앗아서 살자! 그렇게 몇 대를 걸쳐서 살아오다가 그는 다시 깨달았지. 후손이 다 죽으면 어떡하지? 그래. 이렇게 하자. 영원히 영생불멸 사라지지 않는 완벽한 신체를 만들자고!”
“당신은 미쳤어.”
“크크크. 크크크크크. 모든 인간은 미쳤어! 나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고! 자, 찔러!”
에스텔라는 단검을 들어서 요하네스를 죽이기 위해 달려들었다.
그녀는 마구 찔렀다. 미치광이 남편의 피가 온몸에 튀었다. 그러나 그 피의 색은 붉은색이 아니었다. 새카만 검은색이었다. 마치 시체의 것 같은 피의 색깔이었다.
“어쩌지? 내 몸은 이미 죽은지 오래라.”
“다, 당신은 대체 누구야? 당신은 요하네스가 아니야!”
에스텔라의 귀에다 요하네스가 속삭였다.
“내 이름은 비스타 헥센테르프다.”
그 말을 들은 에스텔라는 멍하게 주저앉았다. 요하네스는 밖에 있는 하인들을 시켜서 에스텔라를 치우게 했다. 자신의 방에 감금해서 앞으로는 나오지 못하게 할 예정이었다.
조금의 시간이 지난 뒤에, 땅이 진동하면서 바닥이 분쇄되었다. 눈에서 신광을 내뿜으면서 한 인어가 파도를 몰고 찾아왔다.
“저택이 완전히 물로 흠뻑 젖어버렸군. 보마르. 저택을 청소하는데 오래 걸리겠어.”
“그게 제가 할 일입니다. 주인님.”
-내 아들은 어디있지?
날카롭고 무자비한 정신파가 흩뿌려졌지만 보마르도, 요하네스도 멀쩡했다. 요하네스가 희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 애는 지금 저택 어딘가에 있을 걸?”
-내 아들을 돌려줘.
“내 아들이기도 하지. 그리고 양육은 내가 하기로 한 것 같다만.”
-양육? 자식 취급조차 한 적도 없으면서 말이지? 이 망령아.
요하네스는 실실 웃었다.
“내가 망령이라면 넌 뭐지? 대체 얼마나 오래 살아야 너같은 괴물이 되는 거냐?”
세레스의 오른손에 물로 이뤄진 창이 떠올랐다. 창을 집어던지자마자 바닥에서 불쑥 유령이 튀어나왔다.
-내 아들을 이용해서 만들어낸 조잡한 영혼이군.
“크크. 아주 잘 놀아보라고.”
보마르는 세 마리의 동물들을 들고, 요하네스는 피가 든 병, 심장이 든 플라스크와, 뇌가 든 플라스크를 들었다.
그들의 옆으로 열쇠총을 든 엘리자베스가 나타났다.
“제단으로?”
“그래. 제단으로 가지. 내 온전한 부활이 곧 이뤄질 거다.”
엘리자베스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정말로 비스타 헥센테르프가 부활한다. 이 혼란 속에서 그의 손에서 벗어날 방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긴 했는데, 전혀 없었다. 앞으로도 엘리자베스는 비스타 헥센테르프의 수족이 되고말 것이다.
문을 열고 도망치자 세레스의 찢어지는 듯한 정신파가 울려퍼졌다.
*
유마는 방에 갇혀서 조용히 중얼거렸다. 즐거웠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어떻게든 공포를 극복하고 싶어했다.
그러다가 무언가 방문 앞에 있는 걸 깨달았다.
똑똑.
겁에 질려서 권총을 꺼내서 방문을 겨누었다.
“제발, 제발, 제발.”
“나다.”
“혀, 형? 샤를 형 맞지?”
유마는 화소를 지으면서 앞으로 나가서 문을 열려고 했으나 밖에서 샤를이 한 말을 듣고 멈췄다.
“바보야. 암호 안 물어봐?”
“오, 올리브!”
“오일. 너 내가 헤어지기 전에 암호 제대로 말 안하면 들여보내지 말랬지?”
“헤헤.”
샤를은 한 숨을 쉬면서 유마의 머리에 가볍게 딱콩을 날렸다.
베시시 웃는 게 아무리 봐도 미소녀로 보인다. 분명히 성인 남성일텐데 말이지.
“그동안 무슨 일 있었어?”
“그, 잠깐 유령이 왔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샤를이 심각한 표정으로 되묻자 유마가 말했다.
“잠깐 문을 두들기다가 다른 곳으로 사라졌어요.”
이 어수룩한 놈이 살아남은 건 엄청난 행운이 분명해 보였다.
샤를이 구축해둔 진지를 뚫기 어렵다고 생각하자마자 곧바로 런해서 다른 사람부터 찾는 것 같았다. 타겟은 많았으니까.
“그럼 분명히 날 찾아서 죽이려고 움직였겠지.”
“아……. 유령을 어떻게 해결할 방법이 없을까요 형님?”
“내 생각에, 그건 별로 문제가 아닐 거야.”
“예?”
“일단 나가자. 여기도 안전하진 않을 거야.”
샤를은 세레스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 대충 예상하고 있었다. 감옥에 갇혀서 겪었던 수많은 일들을 복수하려고 하겠지.
첫 번째 타겟은 요하네스가 될 것이고, 요하네스는 유령을 조종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콰아아아아앙!
마치 대포가 터지는 것 같은 엄청난 소리가 들렸다. 유마가 머리를 부여잡고 돌렸다.
“우와아아아악!”
“본관이 터져나가는 군.”
샤를은 유마를 그대로 옆구리에 끼고 창문 밖으로 탈출했다.
안뜰로 나가자 본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 보였다.
지이이잉. 콰아아아앙.
초고압의 물대포가 쏘아지면서 본관 벽면을 그대로 갈라버리거나, 거대한 물의 구체가 건물을 폭파시키고 있었다.
“혀, 형님 이게 주문이라는 거에요?”
“인간의 주문은 아니지만.”
초고압의 워터제트를 쏘아내는 주문은 ‘바다왕’의 주문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럼 결론적으로는 마쉬가 바다왕이었던 건가.’
마쉬의 연대기에 대해서는 석판 조각을 가지고 대양으로 나갔다는 것 이외에는 모르고 있었다.
대양으로 나가서 어떤 여정 끝에 바다왕이라고 불리게 된 존재가 된 것이 분명해 보인다.
“비스타 헥센테르프은 얼마나 강했던 거지?”
저런 주문을 난사하는 인어를 사로잡아서 저택 지하에 몇 천 년 동안 가둬두다니.
‘흠, 아니 어쩌면 저렇게 강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어. 긴 세월 동안 마법을 사용하지 않은 것에 대한 일종의 해방이 아닐까? 그래서 영성이 폭주하는 것일지도.’
건물 한쪽이 붕괴하면서 반대쪽에 빛이 반짝였다. 파도를 타고 하늘로 올라간 세레스가 반대편에서 튀어나오는 유령에게 손짓했다.
날아가는 유령은 무차별적인 물세례를 얻어맞고 땅바닥에 처박혔다.
“유, 유령이?”
유마가 깜짝 놀랐다. 인간을 도살자처럼 처리하던 하얀 유령이 제대로 힘써보지도 못하고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었다.
유령이 어떻게든 그곳을 빠져 나와 저택 안으로 들어가자 인어의 주변의 허공에 떠오른 물방울이 포탄처럼 이리저리 날아가 저택을 박살 냈다.
샤를의 방도 그 주문의 위력에 통째로 날아가버렸다. 유마는 자신이 저곳에 좀 더 머무르고 있었으면 어떻게 될지 간담이 서늘해졌다.
-내 아들은 어디있어!
격렬한 정신파가 이리저리 쏘아지자 샤를은 인상을 찡그렸다.
“아, 아들이라니?”
“누군지 알겠더라고.”
“누, 누구에요?”
“밤마다 복도를 돌아다니던 애.”
이제와서 알게 된 건데, 여태 ‘괴물’이라고 불리던 그 아이가 누구의 자식인지 알 것 같았다.
엘리자베스는 단순하게도 ‘하녀’라고 말했지만 그건 인어인 세레스의 자식이었다.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말 안 해도 알 수 있었다. 요하네스 헥센이다.
-인어박이 새끼…….
-…….
장기간의 격전 끝에 저택의 본관 절반 정도를 개판으로 만들어 버린 뒤, 유령을 처참할 정도로 분쇄해버린 세레스가 멈추자 잠시 소강상태가 되었다.
그동안 샤를은 생각했다.
자신이 요하네스가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여태까지의 기록으로 보아, 그는 불로불사에 집착하고 있었다.
요하네스가 한 짓은 대부분 알고 있다. 보물과 유산이라는 것을 미끼로 자신의 자식들을 데려온 뒤 전부 죽인다.
죽인 뒤에는 그들의 신체를 가로챈다. 심장, 뇌, 그리고 알지 못하겠지만 비앙카의 신체의 어딘가도 보관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제단을 만들고 그곳에서 주문을 사용하겠지.’
그럼 제단이 있는 곳이 어디일까? 저택 서관, 동관은 아니다. 그곳은 그저 남는 방. 본관도 아닐 테지.
그럼 이 저택에 널려 있는 비밀 통로 어딘가에서 의식을 거행할 것이 분명했다.
세레스의 물을 얻어맞고 하얀 유령이 완전히 압도당해서 짓눌러지는 동안 샤를은 품에서 총탄을 들었다.
이 총탄은 아논의 것이 아니었다. 열쇠총에서 발사된, 100년도 더 오래전에 썼을 법한 구식 탄환이었는데 모양도 원추형 탄의 모습이 아니라 동그란 원형이었다.
샤를의 주특기는 바로 남의 물건을 가지고 점을 치는 것이었다.
‘내게 패배한 엘리자베스가 붙을 상대는 요하네스 뿐이지.’
어쩌면 엘리자베스와 요하네스는 처음부터 같은 편이고 샤를을 속인 것일 수도 있고. 그럼 분명히 둘은 같이 있다.
점술의 결과는 뒤뜰로 이어졌다. 샤를은 자신이 미처 탐사하지 못했던 뒤뜰의 미로 같은 정원과 그곳에 있었던 비밀 통로를 떠올렸다.
‘그렇군. 거기인가.’
그때, 유마가 말했다.
“저기, 형, 죄송해요.”
“왜?”
“제가 아무것도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아서…….”
샤를은 머리를 긁적였다. 이런 미친 상황 속에서 영성이 없는 일반인이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누구 말마따나 팝콘이나 가져와서 씹는 것밖에 할 게 없지.
“누구에게나 할 수 있는 게 있고 없는 게 있지. 너, 전쟁터 나가서 총 쏠 수 있겠어?”
“그, 그건 좀.”
“그래. 하지만 난 너처럼 재무 관리에 관한 능력이 없지.”
유마 헥센은 홀로 수도로 가서 밑천을 스스로 만들고 상단까지 키울 수 있을 정도로 재능이 있었다.
“그러니 지금은 얌전히 살아남는 것에만 집중해. 이 사건도 금방 끝나갈 테니까.”
“네, 알겠어요.”
“그리고, 날 좀 따라와야겠다. 넌 혼자 있는 게 더 위험할 테니까.”
샤를이 구축해둔 진지도 죄다 망가졌고 어딘가 숨을 곳도 변변치 않다. 그러니 차라리 그의 옆에 있는 것이 더 도움이 될 것이다.
-파기, 이제부터 유마 좀 지켜줄래? 주문은 마음대로 사용해도 좋아.
-이 나약해 보이는 인간을 지켜주라는 거지? 알겠음.
“어디로 가는 데요?”
“진실을 파헤치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