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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사이비 교주가 되었다-93화 (93/221)

제93화 - “여기도 저택 지하인가?”

이놈의 저택은 대체 비밀 통로가 몇 개인지 알 수가 없다. 샤를이 본 것만 해도 세 개나 된다.

세바스찬이 죽은 뒤뜰 정원의 비밀 통로, 동서관을 이으면서 객실에 묵은 사람들을 감시할 수 있는 비밀통로.

거기다 저택 복도 아래로 이어지는 비밀통로도 있다고?

그렇다면 비밀통로가 더 있을지도 모른다. 샤를은 주변을 둘러보면서 움직였다. 이 비밀통로는 다른 곳보다는 몇 배나 커 보였다.

탄환의 개수를 잠깐 체크했다. 마법 걸린 탄환은 충분히 준비해뒀다.

내렸던 권총을 다시 올려서 언제든 쏠 준비를 마친 다음 앞을 겨누면서 이동했다.

그때 자수정 목걸이가 빛나면서 과거의 환영을 보여줬다.

그건 조금 더 자란 샤를로테의 모습이었다. 목걸이를 걸고 있던 그녀는 굳은 결심을 한 듯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샤를로테를 따라 움직인 끝에 지하 통로에 있는 오래된 문을 발견했다. 중세쯤에 만들어졌을 법한 문은 어떤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

‘이 자물쇠…….’

엘리자베스가 갖고 있던 열쇠총의 자물쇠가 떠올랐다. 그 만능키가 있으면 좋겠지만 없으면 어쩔 수 없지. 총을 쏴서 괜찮을까? 시도해볼만한 가치는 있다.

자물쇠 위의 쇳덩어리 부분에 총을 겨누고 탄환으로 자물쇠를 날려버렸다.

박살난 자물쇠가 멀리 날아갔다. 위력은 충분해 보였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완전히 다른 풍경이 나타났다.

‘뭐야?’

흰 대리석 바닥. 벽면도 마찬가지로 되어 있다. 거기다 흰 도료를 발라서 더 희게 만들어뒀다.

딱 보고 느끼는 건, 이 장소가 연구실 같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지하에서 일어난 실험이라는 얘기가 떠올랐다. 이곳이 헥센가 지하에 있는 실험실이 분명했다.

샤를이 들어온 곳은 정식 출입구가 아닌 듯, 주변에는 이것저것 물건이 쌓여 있었다.

그중에서 제일 많은 건 쇠철창으로 되어 있는 우리였다. 그 숫자도 한 두 개가 아니라 수십 개는 되어보인다.

안에는 아무것도 없다. 전부 비어있었다. 고개를 돌렸다.

“…이건.”

주변에 서류가 잔뜩 있는 장소를 보고 샤를이 다가가서 확인했다. 그건 연구를 위해 적어둔 어떤 기록이 있었다.

『실험체, ‘괴물’에 대한 정보.』

[32번 실험체 ‘괴물’.

인어와 인간의 교잡종이다. 외형은 소년의 모습을 닮았지만, 머리카락이 꼬리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으며 손톱은 강철 칼날보다 날카롭다.

인간보다 강한 신체 능력을 갖고 있으며 태어날 때부터 영성자의 재능을 지녔다. 머리카락이 자주 움직이며 고강도의 육체 고통 및 정신적 고통을 가하더라도 놀라운 탄력성 덕분에 금방 회복한다.

성격은 낙천적이며 싸움을 싫어한다. 입안에서 작은 거미들을 기르기도 함.

-사견, 이렇게 강한 생물로 태어났는데도 투쟁 본능이 없다. 여러번 교정하려고 했으나 실패. 생물 병기로서의 가치는 없음.]

다음 서류로 넘긴다.

『불로불사에 관한 연구』

[인어의 피로 불로불사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피험자 엘리자베스 이하 X로 명명. 고농축의 인어 혈청을 투입한 결과, X의 피는 인어의 피와 비슷한 성분으로 변했다. 혈청을 투여하지 않으면 조로증으로 인해 순식간에 늙어버리게 된다. 그러나 불로(不老)까지는 확실하지만 불사를 이룩하기 위해선 넘어야 하는 단계가 ……]

이 뒤는 어떻게 불로의 혈청을 개발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서술이어서 다음 서류로 넘겼다.

『불로불사의 파생연구 – 휠레모르페 엔진.』

우리는 불로불사의 연구 과정에서 특이한 현상을 발견했다. 제한적인 불로를 달성한 피험자 X는 어느날 영혼의 일부를 인위적으로 분리할 수 있었다. 이 분리된 영혼의 일부는 물리력을 가할 수 있었다.

그점에서 착안한 것이 바로 휠레모르페 엔진이었다. 이 놀라운 현상을 군사적 목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재단 및 헥센 가의 지원을 받아 휠레모르페 엔진을 작성하기로 했다.

재단 및 헥센가는 영성자들의 내부에 생성할 수 있는 주술성흔이라는 것의 개념도를 제시했으며 이 연구의 초기 설계도가 되었다.

수많은 피실험자들을 선정했으나 대부분의 인간 피실험자들은 신체 내부에 주술성흔을 생성하기도 어려웠으며 인어의 혈청을 받아들이다가도 면역 반응이 일어났다.

어려번 테스트를 걸친 결과, 피험체 ‘괴물’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판단되어 그의 신체 내부에 휠레모르페 엔진을 형성할 주술성흔을 만들었고 훌륭하게 ‘하얀 유령’이라고 불리는 영체를 만들 수 있었다. 이 영체는 ‘괴물’보다 약 2배 이상으로 강했고 형체가 없어 적에게 공격받지 않았으며 벽이나 문의 틈사이로 돌아다닐 수 있었다.

인어의 피로 만든 혈석을 이용하면 ‘하얀 유령’을 컨트롤 할 수 있다. 인어의 피는 그리 많지 않으므로 통제권자인 보마르와 요하네스 헥센에게 넘겨졌다.]

“보마르라면, 집사 보마르를 말하는 거겠군.”

그리고 샤를의 생물학적 아버지 요하네스 헥센도 포함한다.

샤를은 그러다가 누군가 지나가는 것을 느끼고 잽싸게 숨었다.

지하실 내부의 조명은 그렇게 밝지 않아서 충분히 숨을만한 공간이 나왔다.

하얀색 가운을 입은 남자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젠장. ‘하얀 유령’이 어떻게 튀어나온 거야? 여태까지 의도치 않게 하얀 유령이 튀어나올 때는 스트레스 수치가 너무 높았을 때뿐이었어. ‘괴물’의 스트레스는 충분히 억제하고 있었잖나.”

샤를은 연구원으로 보이는 두 사람의 뒤를 따라가면서 귀를 기울였다.

한 연구원이 다른 연구원에게 서류를 내밀었다.

“밤에만 저택 내부를 돌아다니게 해서 스트레스를 억제하는 건 충분히 효과가 있었습니다. 이 자료를 보시죠. 며칠 전 호르몬 수치입니다.”

“코르티솔 수치가……낮군.”

“예. 스트레스로 인한 격발은 아닙니다. 누군가 휠레모르페 엔진을 강제 작동시킨 겁니다.”

멈칫.

두 연구원은 그 자리에서 멈춰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휠레모르페 엔진의 강제작동 권한을 가진 사람은 아시다시피…….”

“연구책임자 보마르나 최고위 명령자 요하네스 헥센이지. 그들이 강제로 하얀 유령을 꺼냈다고? 우리에겐 전혀 통보도 하지 않고?”

“예,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럼 간단하군. 우리를 전부 죽여서 입막음할 셈이야.”

“예.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이대로 죽을 순 없지. 따라와.”

샤를은 그 연구원 둘이 어디론가 빠르게 도망치는 것을 보고 그들을 따라 움직였다.

연구원 둘은 이동하면서 대화했다.

“‘그녀’는 포탈을 열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부장님. ‘그녀’에게 주문을 사용할 정신이 있겠습니까?”

“아냐. 가능해! 주문을 억제하는 억제제만 해제하면 알아서 포탈을 열거다.”

“‘그녀’가 우리를 위해 주문을 사용해주겠습니까? 가면 죽을지도 모릅니다.”

“여기 있어도 죽어! 하얀 유령은 이 지하에도 내려올 수 있어.”

샤를은 그들의 뒤를 따르면서 자수정 목걸이가 빛나는 걸 느꼈다. 영성을 주입하니 목걸이에서 환영이 솟아올랐다.

한 소녀가 이 길을 따라서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어딘가 많이 낯익은 뒷모습.

잠깐 나타난 환영이었지만 샤를은 두려워하거나 당황하지 않고 계속 그 길을 걸었다.

이윽고 당도한 곳에는 거대한 실험실이 있었다. 중앙에는 연한 녹색 빛을 띠는 액체가 놓인 수조가 있었다.

그리고 그 수조 중앙에는 인어가 있었다. 성별은 여성으로 보인다. 인어는 눈을 감고 잠들어 있었는데 인어의 몸에는 이런저런 기계장치들이 붙어 있었다.

‘인어?’

수조 앞에는 거대한 계기판이 있었다. 무언가 분주히 장치를 누르면서 가동하고 있었다.

연구원들이 레버를 내리자 발전기가 작동하면서 빛이 뿜어진다. 여기저기 빛이 들어오고 그들의 계기판에도 불이 들어왔다.

‘여긴 다른 곳보다 더 발전한 느낌인데.’

아직도 대부분 외연기관을 사용하고 있는 당대의 기술력보다 더 뛰어나다. 전기를 사용해서 동력을 얻는 기관을 갖고 있다니.

헥센가 지하에 있는 기술 장비는 현대로 치면 구식이겠지만 당장 지금 시대에는 첨단 장비인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리고 인어의 몸에 부착된 기계 장치가 하나씩 떼어지기 시작했다. 몇몇 장치는 그대로 남아있었으나 많은 장치가 떼어졌다.

수조에서 공기거품이 일어났다. 샤를은 자신이 쥐고 있는 자수정 목걸이가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이 목걸이와 인어는 무언가 관계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곧 인어가 눈을 떴다. 이 세상에 없는 것 같은 영롱한 빛깔이었다.

인어(人魚)라는 존재는 신비 세계에서 특별한 생물 취급받고 있었다. 그 겉모습이 흉측하게 생긴 어인(漁人)과는 달리 상반신 만큼은 인간이기 때문이었다.

대체로 다들 아름답게 생겼지만 목소리로 사람을 유인해 바다로 끌고가기 때문에 결코 좋은 생물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샤를은 그간 얻은 정보로 이 인어가 누구인지 추리할 수 있었다.

‘초대 헥센테르프. 비스타 헥센테르프가 죽였다던 인어에 대한 기록.’

기록이란 믿을 만한 게 못 된다. 그것을 집필한 사람의 척도로 과거를 작성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맨 처음 보물에 대한 기록, 그러니까 비스타 헥센테르프가 인어를 죽이고 보물을 빼앗은 게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초대 가주 비스타 헥센테르프는 인어를 죽이고 보물을 빼앗은 게 아니라, 인어를 사로잡고 보물을 빼앗은 게 아닐까?’

그렇다면 저 인어의 정체가 말이 된다. 비밀 세계에서 인어는 그 특성 때문에 불로불사의 약재로 취급하며 매우 귀한 취급을 받기도 했고, 기본적으로 인어란 인간보다 수명이 더 길다.

샤를이 생각하는 동안 연구원들은 직접 말하지 않고 옆에 있는 수화기 비슷한 물건을 통해 말했다.

“아아. 들리는가? 교섭을 하고 싶다.”

-무엇?

샤를은 머리가 찡하게 울리는 걸 느꼈다. 이건 파기나레코르의 대화같은 텔레파시였다.

그러나 상당히 거칠고 무자비한 대화 방식이었다. 상대에 대한 배려가 없는 정신파가 널리 흩뿌려졌다.

연구원들도 머리가 아픈 건 마찬가지였는지 인상을 찡그리면서 말했다.

“이 저택 지하에서 널 빼주마. 네가 주문을 사용할 수 있도록 장치도 제거해주겠다. 대신 우리를 구해다오. 넌 분명히 어디론가 갈 수 있는 ‘문’을 열 수 있는 주문을 알고 있었지?”

-그렇다.

“그래. 거래다! 우리를 바깥으로 빼내주면 네게 걸린 모든 제약을 풀어주마!”

인어는 잠시 멈추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샤를은 연구원들을 제지해야하나 생각하다가 자수정 목걸이가 계속 진동하는 걸 느꼈다.

그때였다. 누군가 나타나서 장치를 해제하려는 연구원의 머리에 총알을 박아넣었다.

탕!

단발에 머리를 관통한 총알이 부장이라고 불렸던 연구원에게 꽂혔다. 축 늘어져서 더 볼 것도 없었다. 즉사였다.

옆에 있는 일반 연구원의 얼굴로 피가 잔뜩 튀었는데 피가 잔뜩 튀고 나서야 그는 비명을 질렀다.

그건 샤를이 발사한 게 아니었다.

“내가 이럴 줄 알았지. 혼란을 틈타서 인어를 풀어주려고 하는 녀석이 있을까 싶어서 대기하고 있었거든. 내 예상이 맞았네.”

그곳에는 열쇠총을 들고 있는 엘리자베스가 있었다. 그녀는 무정한 표정으로 앞으로 걸어왔다. 또박또박. 그녀의 하이힐에서 나는 소리가 마치 사신의 발걸음과도 같았다.

열쇠총 끝에서는 방금 탄환을 쏟아낸 흔적이 보인다.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연구원은 피를 뒤집어 쓴 채 어찌할 줄 모른 채 입을 벌리고 덜덜 떨고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열쇠총을 들고 훅 하고 바람을 불었다. 복잡한 기계식 열쇠총의 태엽이 빙글빙글 돌아가면서 자동으로 움직이면서 다음 탄환을 저절로 재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세레스는 풀어줄 수 없어.”

인어의 이름이 세레스라. 엘리자베스가 인어의 앞에 섰지만 인어는 엘리자베스를 보고도 무표정했다.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비, 비밀관리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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