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2화 - “에드워드! 도망쳐! 에드워드!”
“그, 그래.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는데 괴물이랑 유령이랑 싸우고 있으면 좋지! 도망가자!”
에드워드는 당장 등잔을 들고 앞으로 달리려고 했다.
-도망치지마! 맞서 싸워!
파기나레코르가 소리쳤다. 샤를도 같은 판단이었다. 저 상황이라면 차라리 다음 탄환 두 발을 장전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피해를 아예 주지 못한 게 아니었거든.
결과적으로 에드워드의 판단은 최악이 되었다.
유령은 괴물을 그대로 아예 뒤로 저 멀리 날려버리고는 아주 빠른 속도로 다가와 에드워드의 두개골을 잡았다.
“흐아아아아악! 꺼져! 꺼지라고!”
더 이상 그를 구해줄 괴물은 존재하지 않았다.
유령은 그대로 허공으로 들어올린 뒤에, 심장에 다른 손을 박고 난 뒤 그대로 뜯어냈다.
끔찍한 것은, 혈관이 딸려서 밖으로 나오는 와중에도 에드워드는 죽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그는 몇 초 동안 더욱 고통받다가, 두개골이 압착되면서 죽었다. 심장을 손에 넣은 유령은 빠른 속도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저 멀리 날려졌던 괴물은 더 보이지 않았다. 샤를은 그 장면을 지켜보다가 느꼈다.
‘괴물은 유령과 적대하는 사이인가? 유령이 괴물을 숙주로 삼아 기생하고 있다면서…….’
괴물은 유령과 적대관계다. 그 점을 머릿속에 기억해뒀다. 그때 새소리가 들렸다.
짹. 짹.
에드워드는 죽었지만 아직 트위티가 남아있었다. 트위티는 언제 들어갔었는지 에드워드의 왼쪽 주머니에 쏙하고 들어가 있었다.
“에드워드?”
에드워드는 죽었다. 트위티는 몇 번 툭툭 에드워드를 건드려보더니 확실히 죽은 것을 인지했는지, 말했다.
“아 이 씹쌔끼 드디어 뒤졌네.”
-뭐야?
-?
트위티는 이제 더 이상 귀여운 앵무새가 아니었다.
“아 씨발 앵무새인척하는 것도 좆같아 뒤지겠는데 저 유령한테 뒤질뻔했잖아. 담배마렵네”
-저거 뭐야?
-기다려 봐.
트위티는 에드워드의 다른 주머니를 어떻게 열려고 낑낑대더니 결국엔 단추를 뜯어내서 열었다.
주머니를 열고는 특이하게 생긴 유리병을 꺼냈다. 유리병 안에는 알약 한 알이 있었다.
“그럼 이건, 내가 써야겠는데. 하. 좆뺑이치는거 개빡치네. 빨리 임무 끝내고 이 좆같은 저택에서 나가고 싶어.”
트위티는 유리병을 입에 문 채 뚜껑을 열려고 빙글빙글 돌리고 있었다. 그래서 아주 조용한 사냥꾼처럼 걸어온 샤를을 발견하지 못했다.
덥썩.
“끼야아아악!”
샤를은 트위티의 부리에 걸린 유리병을 빼앗았다. 안에는 알약이 들어 있었는데 붉은색으로 넘실거리는 뭔가가 깃들어 있었다.
“너, 뭐야?”
“삐, 삐약! 삐약!”
“앵무새는 그렇게 안 울어.”
트위티는 빠져나가려고 발버둥쳐도 소용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네 진짜 이름이 뭐지?”
“트위티! 트위티!”
“방금 하던 얘기 다 들었으니까 개소리 말고.”
“썩을 개새꺄!”
-오늘 저녁은 닭튀김다!
-넌 아무 것도 안 먹잖아, 아. 아니지 일단 기다려.
태클 걸게 하도 많아서 샤를은 대화하기를 포기한 뒤, 파기나레코르가 무존자의 창을 쓰려던걸 제지했다.
“이름.”
“똥이나 먹어라!”
그러자 허공에 떠올라 있던 파기나레코르의 앞에 붉은색 화염창이 떠올랐다.
“…….”
“이름.”
“안토니오 세스파데스.”
외국인이네?
“소속.”
“아, 암흑성도회 그누사 일파.”
그누사 일파라면 소환 계통에 충실한 능력자들이 있다. 이계에서 기괴한 생물을 소환하는 능력이 있다.
그걸 미루어 생각해봤을 때, 안토니오라는 이 자는 자신이 소환한 생물에게 빙의된 것으로 보인다.
‘그누사 일파의 주문 중에는 소환물과 정신을 연결하는 능력이 있는 경우도 있어.’
근데 왜 굳이 그럴 필요가 있지?
“이곳에서 뭘 하려는 거지?”
“…….”
뭐 쉽게 캐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샤를은 자신의 지배의 권능의 점유가 1 남은 걸 알고 있다.
인간을 지배할 때 2의 수치가 든다면 짐승을 지배할때는 역시 무생물을 지배하는 것과 똑같이 1의 수치가 든다. 하지만 내면에 있는건 인간일텐데, 이게 어떻게 적용되더라?
샤를이 큰 맘먹고 지배의 권능을 사용하려고 하자 뭔가 이상한 것을 느꼈는지 안토니오가 말했다.
“자, 잠깐. 기다려. 아는 건 뭐든지 말할테니까 목숨만은 살려줘.”
“말해.”
“내가 앵무새가 된 이유는 단 하나야, 헥센 가문 내부로 들어오려고 했던 것뿐.”
“뭐?”
“네, 네가 모르는 정보가 있어. 이 헥센 가문에 들어온 건 나 뿐만이 아니야. 메트로폴에 있는 다른 교단에서도 자기들의 신도들을 보내놨다고!”
“…….”
“자세히 말해봐.”
*
헥센 가는 메트로폴 내부에 있는 세력들에게서 상당한 주목을 받고 있었다. 헥센 가문에는 엄청난 재산이 있다. 옛 헥센테르프 공작가 시절부터 모으던 재산이 그대로 있었으므로 사이비 교단에서는 당연하게도 그들을 끌어들이고 싶을 것이었다.
그래서 새로 발호한 여러 교단들은 자신들의 신도들을 헥센 가에 잠입하기 위해 몇 가지 수를 써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몰래 들어가려고 해도 한 번 들어간 자는 다시 나오지 않았다. 하인 하나를 매수하려고 해도 그 하인에게서 연락이 끊기기 부지기수.
슬슬 헥센 가로 영향력을 넓히는 건 불가능하다고 포기하려던 차에, 가주가 쓰러졌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번에 불러들이는 건 헥센 가문의 사람들이라고 했다.
헥센 가문의 본가 저택을 넘는건 어려웠지만 그들 자식들에게 교단의 사람들을 붙이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에드워드는 암흑성도회의 비밀스러운 지식을 보고 감탄했으며 여러 가지 비술을 익혔다.
에드워드에게 암흑성도회의 끄나풀이 붙은 것을 눈치챈 헬파이어 클럽에서는 세바스찬에게 접근했다.
“그럼 비앙카에게 접근한 다른 교단은 없나?”
“내가 알아낸 건 암흑성도회와 헬파이어 클럽이 붙었다는 것뿐이야.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교단이 붙었는지는 몰라.”
트위티라고 불렸던 앵무새, 안토니오는 여전히 샤를의 손에 목이 잡힌 채 말했다.
“어떻게 알지?”
“그, 이 목좀 놔주고 얘기하면 안될 까?”
“…….”
허공에 떠있는 책, 파기나레코르가 주문을 허공에 날리는 시늉을 했다.
“알았어. 알았다고! 샤이디라는 녀석이 있어. 내가 야생의 영성자일 때부터 알던 녀석인데 짐승과 사람의 영혼을 잠시 뒤바꾸는 술법을 알아. 지금은 서로 다른 신을 믿고 있지만 예전부터 알던 사이였으니, 좀 ‘조언’을 받았지.”
샤이디? 그건 낮에 처참한 죽음을 맞았던, 세바스찬이 기르고 있던 말하는 셰퍼드였다.
그럼 대충 무슨 내용인지 짐작이 가는군.
“그래서 동물로 위장하고 같이 들어왔다?”
“헥센 가에서 부른 건 헥센 가문의 사람들이지만, 그들의 애완동물은 신경 안 쓸테고. 그리고 헥센 가문에서는 보통 한 마리씩 애완동물을 기르라고 권장하기도 하잖아?”
뭐야, 그런 관습이 있어? 샤를은 전혀 몰랐다. 게임 속에서도 샤를 헥센이라는 사람은 전혀 동물과 친하게 지내지 않는, 감성적인 면모라고는 하나도 없는 냉혹함 그 자체이기도 했고.
“그래서 샤이디와 나는 만나서 공모를 좀 한 다음에 짐승과 영혼을 바꿨지. 나중에 다른 하인 하나를 잡아서 영혼을 바꿔서 헥센가 내부에 잠입할 생각이었다.”
“서로 힘을 합쳐?”
다른 교단이?
“아, 물론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영성자의 영혼이 깃들어도 거부감이 많지 않은 ‘동물 소환’ 주문이 있고. 그녀석에게는 ‘영혼 교환’ 주문이 있었으니 기브 앤 테이크 한 거지.”
“그래서.”
“기회를 봐서 하인과 영혼을 바꿔치우려고 했는데, 젠장.”
요컨대 스파이가 되려고 헥센 가문 내부로 잠입했다는 얘기였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4대 악신을 믿는 교단들은 하나같이 영향력을 여기저기 뻗치고 싶어서 안달이 났으니까.
“그럼 이건 뭐냐.”
샤를은 조금 전 안토니오에게서 빼앗은 알약을 하나 꺼내 들었다.
“그, 그건.”
“뭔데.”
“그, 일단 나부터 살아야 하지 않겠어? 그래서 준비한건데.”
샤를은 안토니오의 오른쪽 발톱을 꺾었다.
“아아아아아아아악!”
“나도 이렇게까지 사람을 고문하고 싶지 않아.”
“이 개새꺄!”
“다른 쪽 발톱도 꺾여볼래?”
“죄송합니다 선생님. 그건 ‘변이의 종자’입니다.”
“…….”
변이의 종자. 샤를은 이게 뭔지 알고 있었다. 헬파이어 클럽에서 만들어낸 궁극의 생물 병기, 뮤턴트의 제작을 위한 그 재료였다. 특히 ‘씨앗’을 담을 그릇을 만드는데 탁월한 재료기도 했다.
“이거, 샤이디라는 영성자에게서 빼앗았겠군. 헬파이어 클럽의 물건이지?”
“……사실 훔쳤습니다.”
이놈들이 그럼 그렇지. 서로 협력한다고 하면서도 서로 뒤통수치기 바쁜 모양이었다. 그건 샤를이 알 바가 아니었다.
변이의 종자의 효과는 먹고 나면 전신의 신체가 변이되면서 거대화한다. 그리고 강력한 힘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이거 먹고 뭐하려고?”
“도망치려고 했죠. 혹시 아시는 지 모르겠습니다만 변이의 종자를 사용하면 신체가 강력해집니다. 일단 밖에 나가야 내 원래 몸으로 돌아갈 수 있으니까.”
근육질 앵무새가 되어서 밖으로 탈출할 계획으로 알약을 구했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을 너무 지체했군.”
감이 안 좋다. 샤를은 안토니오를 잡아서 주머니에 넣고 그 주머니 위를 단추로 잠가버렸다.
변이의 종자를 품에 넣고 이동했다. 샤를의 뒤로 조금 전 심장을 취했던 하얀 유령이 힐끗 보였다.
이제 샤를이 도망자였다. 샤를은 달리면서 생각했다.
하얀 유령은 명백하게 목표를 갖고 움직이고 있다. 하인들은 척살 대상이다. 보이면 무조건 죽인다.
그리고 헥센 가문의 피가 이어진 사람중에서도 상대하기 쉬운 ‘약한’ 녀석들을 위주로 노린다.
맨 처음 세바스찬을 죽이고 뇌를 꺼내어 가지고 갔을 때, 샤를의 총알에 맞고 만만찮은 상대라고 생각했는 지 도망쳤다.
그 뒤로는 하인들을 학살한 다음, 무슨 이유에서인지 방안에 있는 게 아니라 복도를 돌아다니고 있던 에드워드를 노려서 가슴의 심장을 뽑아냈다.
‘뇌, 다음은 심장.’
전형적인 인신공양 주문을 위한 제물이었다. 인신공양을 통해서 사악한 존재에게 더 강력한 주문을 내려 받는 것이다.
샤를은 그다음 장기를 뽑히고 싶진 않았으므로 뒤로 총알을 쏴대면서 계속 달렸다.
하얀 유령은 여기저기 총알을 맞긴 했지만, 이전보다 더 빠른 복원력으로 샤를을 쫓았다.
‘역시 속도가 너무 빨라.’
이전에도 그랬듯이 녀석은 속도가 너무 빠르다. 권총 탄환은 이제 다섯 발 남았다.
거기다 놈은 회복력까지 생겼다. 세바스찬이 있던 지하실로 갔을 때 총알에 맞았을 때는 확실히 효과가 있었는데 놈의 회복력이 빨라진 이후로는 효과가 더디다.
탕. 타탕!
급속 접근하려던 유령은 마음을 고쳐먹었는지 벽면의 사각이나 문틈으로 들어가는 방식으로 샤를의 탄환을 피했다.
이제 두 발. 재차 달려드는 유령의 어깨에 두 발 박아준 다음 리볼버용 스피드로더를 꺼내면서 말했다.
-파기! 겨울 주문!
-응!
샤를의 주변에서 날고 있던 파기나레코르가 무존자의 겨울을 사용했다. 넓은 범위에 냉기가 휘몰아치면서 얼어붙었다. 이번에는 확실히 효과가 있는지 유령의 움직임이 굼떠졌다.
그동안 샤를은 스피드로더를 사용해서 권총 여섯 발을 리볼버에 장전했다.
그리고 잽싸게 달렸다. 놈의 속도가 샤를보다 훨씬 빨랐으므로 따라잡히는 건 시간문제였다.
코너를 돈 뒤, 뒤뜰로 나가서 넓은 지형에서 놈과 맞서 싸우려고 하다가 샤를은 발아래가 붕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아니, 디딜 것이 없으니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복도 한가운데가 바닥 함정처럼 푹 패여 있었다!
샤를은 아래로 떨어지면서 상당한 부유감을 느꼈다. 3층, 4층. 이건 계획적인 함정이다.
떨어지면서 위를 바라보았다. 그가 들어왔던 입구가 점점 닫히고 있었다.
‘아까 그 괴물이야!’
하얀 유령과 다툼을 벌였던 괴물은 지금 손을 뻗어서 복도의 바닥을 닫고 있었다.
쿵.
샤를은 자신의 등 뒤에 무언가 닿는 것을 느꼈다. 에메랄드 브로치의 보호 효과로 낙하 충격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효과가 발휘될 필요도 없이 등 뒤에 닿은 것은 부드러운 지푸라기들이었다.
유물이 없이 그 높이에서 떨어져도 죽지는 않았을 거다.
고오오오오오.
잠시 닫힌 천장 위로 하얀 유령이 움직이는 소리가들렸다. 확실하게 따돌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천장에서 문을 닫은 괴물은 그제야 바닥으로 내려왔다.
“날, 구해준 거냐?”
샤를이 한 말을 이해하지 못 했는지 녀석은 그저 눈만 깜빡였다.
“넌 뭐지? 대체 목적이 뭐야?”
녀석은 조용히 샤를을 바라보다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샤를은 녀석을 따라 갈까하다가 자신이 대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는 걸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