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사이비 교주가 되었다-91화 (91/221)

제91화 - “그래. 유령이 제일 싫어하는 건 하인들이야. 하인들을 다 죽이고 난 다음에는 눈에 띠는 곳에 있는 사람. 그다음에는 시끄럽게 구는 사람. 그다음에는 복도를 돌아다니는 사람. 그다음엔 진짜 목표를 노릴거야.”

“넌 그런 걸 어떻게 알고 있지?”

“난 처음부터 이런 일이 일어날 걸 알고 있었거든.”

“어떻게?”

원하는 대답을 다시 묻자 그제야 트위티가 말했다.

“암흑성도회는 헥센 가문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이 많거든. 그중에는 재단에 관련된 일도 있었어.”

“재단? 봉인 재단을 말하는 건가? 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래. 하인들은 모두 봉인 재단의 연구원이야. 그리고 그들은 이 헥센 저택 지하에서 실험했지.”

“무슨 실험?”

“어떤 아이를 고문하고 개조해서 휠레모르페 엔진에 어디까지 견딜 수 있는지 알아내는 실험. 암흑성도회는 그 휠레모르페 엔진에 관해 관심이 많았거든. 아! 지금 그가 왔어. 조용히 해야해.”

그때 밖에서 소리가 들렸다. 무언가 끌리는 소리. 스르륵. 스르륵.

에드워드는 비정상적으로 긴장된 자신의 감각이 명령하는 대로 방문앞에다 샷건을 겨누고 언제든 방아쇠를 당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철푸덕.

무언가 액체가 튀기는 소리가 나더니, 스르륵거리는 소리는 이윽고 들리지 않게 되었다.

“오늘 밤까진 기다려야해.”

*

샤를은 그동안 괴물의 심장에 봉인되어 있다는 휠레모르페 엔진에 관해서 엘리자베스에게 들었다.

봉인 재단 내부에는 유사과학과 신비학에 심취한 오컬티스트들이 다수 존재했다. 유물을 모으고 관리하는 것을 하다 보면 그런 극단적인 사상을 가진 존재들이 생겨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다.

보통 재단의 고위직은 그런 연구원들을 어떤 방식으로 ‘소각’하건 ‘제거’하건 없애버리건 하는데 이번은 예외였다.

재단에 상당한 지분을 가진 요하네스 헥센의 요청에 따라 그런 자들을 한데 모아서 외부인력으로 ‘파견’했다. 그리고나서 헥센 가문의 지하에 실험실을 차렸다고 한다.

이런 얘기는 왜 맨 처음에는 얘기하지 않았느냐는 말은 하지 않았다.

영성자들 사이에서 상대가 묻지 않았는데 자신이 알고 있는 비밀을 드러내는 건 아마추어나 하는 일이었다.

“그 지하에서 하는 실험은 대체로 어떤 거죠?”

“글쎄. 헥센 가문에서 구했던 이런저런 신비한 유물들이나 이런저런 마법을 실험하는 장소지.”

직감적으로 샤를은 엘리자베스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여자 말이야 비밀이 너무 많은걸?

-내 생각도 그래. 따로 정보를 알아내야겠는데.

-드럼통을 준비할까? 마스터?

-뭐?

-공구리치자.

-안 돼! 아직은 적이 아니니까.

-그럼 고문은 어때? 인간은 눈 아래에 있는 삼차신경을 찌르면 엄청나게 아파한다는 걸 의학책에서 봤어.

-좀 닥쳐.

파기나레코르가 적극적으로 호러 무비에 나올법한 싸이코패스짓을 저지르라고 외치고 있었지만, 샤를은 단호하게 무시했다.

영성자들이 비밀을 갖고 있다는 건 일반 사람들처럼 숨기고 싶은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니다.

정보적으로 우위에 서 있는 것이야말로 영성자가 지켜야 할 규범이니까. 그렇지 못한 자들은 모두 죽었기 때문이지.

아직까진 엘리자베스와 적대할 생각은 없었으므로 추궁하진 않았다.

엘리자베스는 창문에 처져 있는 커튼을 열었다. 하늘에는 만월이 떠올라 있었다.

“음. 지금쯤이면 충분할 거야. 휠레모르페 엔진의 가동 시간은 아주 길어 봐야 8시간 정도니까. 유령은 이제 사라졌을 걸?”

“꽤 잘 알고 있네요.”

“일단 명목상으론 내가 걔 보호자라서?”

엘리자베스는 희미하게 웃었다.

“일단 밖으로 나가서 탐색하자.”

“그래야할 것 같군요.

샤를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자베스가 밖으로 나가자 샤를도 밖으로 나가서 탐사를 지속해야 한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었다.

엘리자베스가 먼저 밖으로 나간 뒤 샤를은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 유마에게 말했다.

“유마. 넌 이곳에 있어라.”

“예, 예?”

“이 방은 다른 방보다 안전해. 여러 가지 주문이 걸려 있으니까.”

“아, 네.”

유마는 그동안 영성자와 주문, 괴물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들었다. 유마는 겁이 많았지만 멍청하지는 않았다.

상식을 파괴하는 것 같은 상황 속에서 자신이 알던 상식을 파괴하는 것쯤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걸 들어라.”

“초, 초, 초, 총이요?”

“쏘는 법은 알려주마. 내가 준 탄환 여섯 발을 사용해.”

“아, 알겠습니다.”

“누군가 다가와도 절대 문을 열어주지 마. 혹시 내가 오더라도 말이야. 암호를 정해두지.”

샤를은 심상세계에서 보관중인 여분의 권총을 건네주고 암호도 정했다.

혹시 형상 변환을 해서 샤를의 외모를 모방한 누군가 돌아다닐 수 있다는 가정 때문이었다.

이 미친 저택 내부에 뭐가 있을지는 지금 도저히 짐작이 안 가니까.

샤를은 밖으로 걸어 나오면서 주변을 살폈다.

“엘리자베스?”

샤를은 주변을 둘러봤으나, 아무도 없었다. 분명히 엘리자베스는 샤를과 함께 걷고 있었는데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

‘뭐야?’

납치된 것 같지는 않았다.

‘단독행동하자는 건가? 아니면 이대로 배신?’

엘리자베스는 말도 없이 사라졌고 주변에 없다. 샤를은 할 수 없이 홀로 움직였다.

샤를은 걸으면서 생각했다.

밤이 되기 전까지 꽤 고민했다. 이 저택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실마리를 얻기 위해서였다.

문제를 정하고 기존에 얻었던 정보를 삭제한다.

첫 번째. 왜 요하네스는 자식들을 저택에 불러냈는가.

두 번째. 괴물은 누구이고 괴물에게 숨겨진 비밀은 무엇인가.

세 번째. 엘리자베스의 목적은?

큰 틀에서는 이렇게 정할 수 있겠지. 첫 번째 질문부터 해결한다.

요하네스는 자식들에게 보물을 찾게 하려고 저택으로 불렀다고 했다.

본래 샤를은 헥센 가의 사람들이 아니면 보물을 찾을 수 없는 특수한 저주라도 걸려 있는 건가 생각했었는데 그 추리는 틀렸을지도 모른다.

지금 상황으로 봐서 요하네스는 저택 내부로 자식들을 끌어들여서 죽이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자식들이 목표였을지도 모르지.

예로, 그 이름 없는 괴물이 세바스찬을 함정에 빠트려 죽여버린 것을 들 수 있겠지.

연결해서 생각하면, 괴물은 요하네스의 명령을 받들어서 처형자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실험체일 가능성이 높다.

보통은 괴물의 형상으로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필요할 때 내부에 있는 유령을 꺼내서 해방하는 것일지도.

‘그럼 대체 엘리자베스의 목적은 뭐지?’

엘리자베스는 대부분 거짓말을 하고 있고 잘못된 정보를 흘리고 있다.

짜증나는 건 진실 속에 거짓을 섞고 있다는 것이다. 봉인 재단의 연구원들이 괴물에게 휠레모르페 엔진이라는 특수한 능력을 가진 것은 확실한 것 같다.

그 점에서는 의문이 들지 않지만 나머지는 거짓말을 하거나 대충 둘러댄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그래서 엘리자베스가 말한 정보를 대부분 거짓이라고 판단하고 편견 없이 생각하기로 했다.

복도를 돌아다니다가, 샤를은 소름 돋는 감각을 느끼고 발을 멈췄다. 고개를 아래로 내리자, 미세한 실 같은 게 복도 양옆으로 이어져 있는 게 보였다.

‘함정이야.’

무슨 함정인지는 몰라도 발목으로 저걸 건드리면 위험할 거라는 건 알겠다.

샤를은 복도 옆으로 달라붙어서, 창문 앞에서 멈췄다. 그의 앞으로 인기척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젠장 그 유령이 내방까지 쳐들어오다니! 이제 방도 안전하지 않잖아! 하인들은 다 죽은 건가?”

‘무슨 소리야?’

샤를은 인상을 찌푸렸다. 엘리자베스가 또 거짓말을 했다. 휠레모르페 엔진의 가동시간이 8시간이라고? 그럼 왜 유령이 에드워드를 습격했는데.

“다 죽었어! 다 죽었어! 유령이 죽일 수 있는 하인들은 다 죽였을 거야.”

앵무새 트위티를 자신의 어깨에 올리고 등잔을 든 채 복도를 걷고 있는 에드워드가 보였다.

그는 한 손에 샷건을 들고 있었다. 언제든 양손으로 쥐고 쏠 수 있도록 등잔을 느슨하게 쥐고 있는 게 보였다.

샤를이 자의적으로 복도로 나왔다면 에드워드는 타의적으로 복도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에드워드의 방에는 출입구가 하나지만, 에드워드가 있는 방의 벽에는 비밀통로가 있었다.

저택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던 유령은 비밀통로를 통해 에드워드의 존재를 알아챘고 그대로 벽면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단단한 벽면이므로 부서지진 않았지만 에드워드가 경기를 일으키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미리 준비해둔 무기와 장비를 가지고 에드워드는 재빨리 도망쳐 나왔다. 물론 트위티도 잊지 않고 새장에서 꺼내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복도로 나온 것이었다. 두려움에 떨면서 등잔불에 의지한 채.

주변은 너무 어둡고 샤를은 코너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으므로 그를 찾지는 못했다.

그리고 곧 에드워드는 샤를이 눈치챘던 함정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실을 건드렸다.

실에는 폭약이 연결되어 있지도 않았고 날카로운 죽창이 날아오지도 않았다. 대신 소리를 냈다.

딸랑. 딸랑. 딸랑.

방울이 걸려서 내는 소리였다. 샤를은 권총을 들었다.

“에드워드! 에드워드!”

“그래! 알고 있어. 제기랄.”

에드워드는 등잔을 옆에 있는 탁자 위에 올려두고 품에서 아주 독한 주향이 나는 술병을 꺼냈다. 그리고 술병의 끝부분에 불을 붙였다.

-화염병이라고?!

-미친놈인가? 저 불 번지면 다 죽잖아?

이 목조 저택에서 불을 지르면 어떻게 될지 알고 저런 식의 무장을 준비해왔다니.

오른손으로 샷건을 쥐고 왼손은 손등으로 샷건의 총대를 받친다. 그 손에는 화염병이 쥐어져 있었고.

“어서 나와! 이 개자식아!”

그때 그의 말대로 천장 위쪽을 돌아다니던 작은 소년 체구의 괴물이 나타났다. 괴물을 본 에드워드가 샷건을 갈겼으나 너무 멀리 있는 데다가 손등으로 총대를 지지하고 있어서인지 빗나가버렸다.

그러나 더블 배럴이므로 아직 한 발 남아있었다. 다가오면 반드시 머리에 총알을 박아주겠다는 생각을 하려는 찰나, 괴물은 더 다가오지 않고 멀찍이서 그냥 지켜보고만 있었다.

‘뭐지?’

샤를은 괴물의 행동을 보면서 이상함을 느꼈다. 역시 다가오지 않는다.

‘이전부터 이상했어.’

저 괴물, 샤를이 공격했을 때도 직접 공격해온 적은 없었다.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멀찍이서 구경만하고 있다.

‘놈은 공격할 의사가 없어.’

샤를은 그게 총 때문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침착하게 괴물을 관찰하고 있으니 아무리봐도 놈의 행동에서는 공격성이 보이지 않는다.

그때였다. 앵무새가 괴성을 질렀다.

“에드워드! 저거 뒤! 저거 뒤!”

에드워드가 앵무새의 경고를 받고 시선을 더 뒤로 돌리자 저 먼곳에서 흐릿한 형체가 복도를 따라 엄청난 속도로 이동하는 것이 보였다.

그걸 본 에드워드는 왼손에 쥐고 있던 화염병을 놈에게 던졌다.

하얀색 유령의 발치에서 폭발한 하염병은 놈에게 일정량의 피해를 입히는 것 같았다.

유령의 하얀 형상이 흩어지면서 더 다가오지 못하고 있었다.

“하하하! 어떠냐 이 유령아!”

불꽃으로 타오르는 곳을 본 유령은 잠깐 뒤로 후퇴하나 싶더니 순식간에 엄청난 한기를 내뿜으면서 불꽃을 지워버렸다.

“뭐, 뭐?! 뭐야!? 아까 불꽃은 통했었잖아!”

에드워드는 자신의 방을 탈출하면서 불길을 이용해 유령을 따돌렸었다. 그런데 이제 대응책을 만들었다고!?

탕!

두 번째 샷건 펠릿이 달아가자 유령의 전신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탄환이 훑고 지나갔다.

트위티가 건네 준 마법 탄환이었으므로 에드워드는 승산이 있다고 느꼈다.

그러나 탄환에 걸린 마법의 힘이 약했는지 끝내 피해를 입으면서도 유령은 멀쩡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구경만하고 있던 괴물이 다가와서 유령을 콱, 잡았다. 다른 사람은 누구도 유령을 만지지 못했는데 괴물만큼은 유령을 만질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유령은 성가신 듯 괴물을 옆으로 밀어서 던져버렸다. 괴물은 큰 소리를 내면서 벽에 부딪치면서 자국을 만들었다.

그러나 다시 벌떡 일어나서 유령에게 달려든다. 정황을 보면 명백하게 유령을 말리려는 것처럼 보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