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0화 - ‘아까 그 유령이잖아!?’
“휠레모르페 엔진이 작동됐어!”
“저 저 봉인을 누, 누가 해제한 거야!? 그놈 혼자서는 해제할 수 없게 되어 있을 텐데!”
“코드 제로! 코드 제로!”
하인들이 서로 그렇게 외치면서 미친 듯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뭐, 뭐야?’
푸직. 푸지지직.
무시무시한 기세로 찢긴 하인의 팔다리가 허공으로 날아오르자 샤를은 이를 악물면서 오른손을 뻗어서 유마의 목덜미를 낚아챘다.
유령은 그들을 향해 다가오다가 샤를을 보고는 흠칫했다. 샤를의 왼손에 총이 들려 있는 걸 보고는 더 다가오지 않고 도망치는 하인들을 쫓아갔다.
“혀, 형님, 저, 저게 뭡니까. 어? 히익! 총!?”
목덜미를 붙잡혀서 딸려온 유마가 샤를의 왼손에 들린 총을 보고 기겁을 했다.
샤를은 침착하게 말했다.
“저건 뭔지 모르겠다만, 어쨌든 정상적인 건 아니야. 너, 영성자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냐?”
“그, 그게 뭔데요!?”
혹시나 해서 물어봤는데 정말 모르고 있는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유마 헥센은 비술에 대한 조예도 없고 영성도 독특하지 않았다. 정말 일반인 수준.
샤를은 권총을 들어서 주변을 살피면서 말했다.
“일단 내 방으로 가자. 여긴 너무 위험해.”
유령은 너무 빠르다. 샤를의 권총 정도가 그놈에게 피해를 줄 수 있을 무기라고 생각했다.
검이나 다른 마법도 위력적이긴 하지만 놈은 엄청나게 빠르다.
지금은 요새 수준으로 주문을 떡칠해둔 샤를의 방으로 가는 게 더 안전하다.
푸직. 푸직! 촤아아아아악!
피가 분수처럼 쏟아지는 광기어린 광경을 보고 유마는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샤를을 따라 움직였다.
샤를은 자신의 방으로 가는 도중 갑작스럽게 복도 위쪽에서 격벽이 내려오는 것을 발견했다.
격벽 뒤쪽에는 중년의 하인이 사색이 된 채 비밀리에 감춰져 있던 버튼을 미친 듯이 눌러대고 있었다.
‘고전식 저택에 무슨 격벽이 있어!!’
은밀하게 감춰져 있던 기관장치로 보이는데 샤를의 방은 저 격벽 너머에 있었다.
“뛰어!”
헐레벌떡 미친 듯이 뛰어간 샤를과 유마는 겨우겨우 격벽 아래로 통과할 수 있었다.
둘이 통과하자마자 격벽이 쿵하고 바닥과 맞물리면서 닫혔다.
-이 띱때끼! 저새끼 죽여!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다.
샤를이 반대쪽 복도를 보자 저 멀리 끝자락에 있는 복도도 격벽의 문이 내려가 닫혔다.
그 즉시 샤를은 옆에 있는 중년 하인의 멱살을 잡아챈 다음 벽으로 밀치면서 외쳤다.
“이 새꺄!”
워낙 불이 잘 안 붙는 샤를의 성격이었지만 이번에는 진짜 열 받았다. 뒤에 유령이 있는데 도망치는 사람이 있는 걸 보고도 뻔히 격벽문을 닫고 있다니.
“너 뭐야!? 저건 뭐고! 빨리 말해!”
“혀, 형님 일단 멱살은 좀 놓고.”
유마가 말렸지만 샤를이 더 강하게 밀어붙이자 하인은 겨우 한 마디를 내뱉었다.
“프, 프로토콜.”
말하면서도 손으로 샤를의 팔을 툭툭 치자 샤를은 거칠게 하인의 멱살을 놓아버렸다. 하인은 그대로 벽에 부딪혀서 목을 붙잡으면서 켁켁거렸다.
“프, 프로토콜에 따라서 한 것밖에 없단 말입니다. 와, 완전 격리조치. 아, 이 이럴 게 아닙니다. 창문도 다 닫아야 한다고요!”
“뭐?”
프로토콜이라니?
“너, 정체가 뭐야. 너희들 단순한 하인이 아니지?”
“우, 우리는…….”
“제대로 말 안하면 넌 여기서 죽어.”
샤를이 권총을 그에게 겨누면서 협박하자, 하인은 눈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아무도 없는 걸 보곤 말했다.
“저희는 봉인 재단의 연구원이었습니다. 헥센 가문과의 계약에 따라 헥센 연구실로 파견된 것 뿐이고요. 겉으로 드러난 모습은 하인이지만…….”
연구원? 샤를은 봉인 재단에서 지하에서 무슨 실험을 하고 있는지 얼추 알고 있었다.
그곳은 봉인물로 지정된 유물을 지속적으로 테스트하는 장소로, 비윤리적, 비합법적 실험까지 극비리에 자행하는 곳이었다.
“여기서 뭘 하는데.”
“그, 그건 기밀인데…….”
“기밀이 좋아? 총알이 좋아?”
턱밑까지 권총을 들이대자 하인인척 하고 있던 연구원이 말했다.
“아, 알았어요 알았다고요. 우린 이 저택 지하에서 연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휠레모르페 엔진에 관한 연구죠.”
“휠레모르페?”
샤를로서도 처음 듣는 단어였다. 이 게임 속에 숨겨진 비밀이 이렇게 많았나 싶으면서도 어느 정도 호기심을 느끼는 샤를 본인에도 혐오감을 느꼈다.
“헥센가 내부에서 비밀스럽게 진행해오던 연구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헥센 가에서 계속해서 진행해오던 불로불사 연구의 파생 연구라고 할 수 있죠.”
“불로불사 연구는 또 뭐야?”
어떻게 된 게 헥센 가의 놈들은 무슨 양파처럼 까도 까도 비밀이 또 튀어나오냐.
“그, 그건. 저희도 잘 모릅니다. 불로불사 연구는 저희 파트가 아니라 다른 부서에서 진행했으니까요.”
“그럼 아는 걸 얘기해. 그 휠레모르페 엔진이라는 거.”
“바, 방금 보셨던 그 하얀 유령. 그게 휠레모르페 엔진의 결과물입니다. 인간 혹은 아인간을 생체 엔진으로 사용해서 숙주로 삼고 통칭 ‘하얀 유령’을 형성하는……. 브그으으윽.”
연구원등 뒤, 벽면에서 무언가 튀어나오더니 연구원의 등을 찔렀다.
그는 도저히 뱃속에 넣고 오래 있을 수 없었는지 자신의 내장을 입으로 뱉어냈다.
샤를이 인정사정 볼 것없이 연구원의 뒤로 튀어나오는 하얀색 유령을 쏴버렸다. 유령의 팔이 그대로 불타오르면서 놈이 찢어지는 고음대의 비명을 내질렀다.
‘벽면을 뚫고 오다니!?’
정확히 보면, 벽면이 아니라 옆에 있는 창문의 틈새를 통해 들어온 것 같다. 샤를은 아까 연구원이 창문을 닫아야한다고 했던 걸 떠올렸다.
샤를은 창문 밖으로 겁쟁이처럼 빠져나가는 유령을 보면서 총의 사격각이 나오지 않는 걸 보고 총구를 위로 들면서 뒤로 물러났다.
샤를은 마법이 걸린 탄환을 장전하고는 모노클을 썼다. 저 괴물의 앞에선 에메랄드 브로치가 효과가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장착했다.
그리고 조금전 연구원이 내리던 격벽문 옆에 있는 버튼을 눌러서 창문도 완전히 격리시켰다.
“이, 이게 대체.”
“일단 내 방으로.”
샤를은 자신의 방 안으로 들어왔다. 내부의 결계는 완벽하고 마법 방어는 충분히 되어있다. 함정도 많고.
샤를은 유마를 보면서 말했다.
“이 저택에는 아무래도 비밀이 있어. 보물 말고도 괴물이나 유령이 있다.”
“네…….”
직접 봤으니 더 말할 것도 없다.
“넌 이제부터 선택 해야해. 날 따라서 갈 거냐? 아니면 숙부가 했던 유지를 따라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거냐.”
“그……. 그게.”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해.”
유마 헥센은 이 저택에서 유일한 정상인이고 그나마 다른 이들보다는 상대적으로 믿을만 했다.
“그, 알겠습니다.”
“좋아. 그럼 이제 넌 나랑 한 배를 탄 거다.”
“네.”
“첫째, 내 명령에는 복종할 것. 둘째, 내 말에 의문을 품지 말 것. 셋째. 배신하지 말 것. 이 세 가지만 충실하면 넌 어떻게든 살려서 이 저택 밖으로 내보내준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할께요.”
“좋아, 그럼.”
덜커덕 덜커덕.
누가 열쇠로 문을 여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린다. 그러더니 다시 노크가 울렸다.
똑똑.
샤를이 조심스럽게 총을 꺼내면서 문 옆에다 대고 쪼면서 손잡이에 손을 가져다 댔다. 문틈 사이로 문을 살짝 열었자 밖에는 뜻밖에도 엘리자베스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고모님?”
“고, 고모님라고요 형님?”
“방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완전 철통같이 잠겨 있더라. 내 열쇠도 소용없고.”
샤를은 어깨를 으쓱 들었다. 엘리자베스는 늘 신출귀몰하게 움직였었다. 그게 열쇠총이 가진 능력일 거라고 생각했다. 일종의 만능키처럼 어느 문이든 열고 돌아다니는 거다.
이미 그 정보를 알고 있으니 다른 방법으로 자신의 방이자 요새인 이 장소를 보완하는 건 상식 그자체다.
“제 방은 왜 들어가려고 하셨죠?”
“너랑 정보 공유 좀 하려고.”
남의 방에 허락 없이 들어간다는 게 범죄라는 자각이 없는 사람처럼 엘리자베스가 혀를 내밀면서 말했다.
-근데 저 여자 말이야, 50살 먹은 아줌마라고 하지 않았어?
-…….
-극혐이네.
파기나레코르가 눈앞에서 대놓고 흉을 보는 와중에 유마가 물었다.
“고, 고모님 지금 밖에 무슨 일이 일어나셨는지 아시는 건가요?”
엘리자베스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그래. 나도 대충 알고 있어. 하얀 유령이 풀려나왔나 보네.”
“그게 뭔지 자세히 좀 들어야겠습니다. 그리고 저택 지하에 있다는 연구가 뭔지도.”
유마는 도저히 그들의 대화를 따라갈 수 없었지만, 기억력 하니만큼은 자신 있었으니 무슨 짓을 하더라도 머릿속에 욱여넣기로 했다.
“휠레모르페 엔진은 ‘괴물’이라고 불리는 아이의 내면에 새겨진 일종의 완전 자동 작동하는 주술 성흔 같은 거야.”
“…….”
주술 성흔은 이전에 죽었던 솔로에게도 있던 것으로, 고대에 어떤 특징을 얻은 존재가 가진 능력이다. 이 경우에는 조금 다르다.
“성흔에 기생하는 영혼체인가.”
“맞아. 이름은 ‘하얀 유령’이라고 불러. 대충 유령이라고 하지. 지금은 프로토타입이려나.”
영성을 가진 영혼체를 성흔에 깃들게 한다. 그 뒤 조종해서 사용하는 건가.
“저놈은 무지막지하게 강해. 물리적인 공격에 피해를 입어도 아무렇지도 않은데, 자신은 상대에게 물리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지.”
“저런 게 왜 그 이름 없는 괴물에게 붙어 있었습니까?”
“그 녀석도 실험체였거든.”
샤를은 인상을 찌푸렸다.
“자기 자식을 실험체로 썼다는 겁니까? 아버지나, 계모나 그걸 납득했다고?”
“안 될 게 뭐야? 더 미친 사람도 있었는데.”
-씨발 미치광이 가족이네.
파기에게 욕하지 말라고도 못 하겠다. 샤를도 하고 싶은 얘기였으니까.
“아무튼. 이렇게 복도에서 얘기할 거야?”
“…….”
자신의 요새에 이 여자를 데려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입을 열었다.
“알아서 잘하시리라 믿습니다.”
“나도 하얀 유령과 만나면 죽을 지도 모른다니까? 협력할 테니까 나도 좀 끼워줘.”
샤를은 싱긋 웃으면서 문을 닫았다.
“정말 안 열어줄 거야?”
엘리자베스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방문을 다시 두들겼다. 문을 두들기는 동안 잠금장치가 풀리는 소리가 났다.
“들어오시죠.”
*
저택 내부의 기록이 적힌 고서적 몇 권을 뒤적거리던 도중 에드워드는 자신의 회중시계를 꺼냈다.
그다지 길진 않았다. 이제 그의 앵무새에게 되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그때 저 멀리에서 도망치는 하인들을 발견했다. 여럿이서 사색이 된 채, 비명을 지르고 도망간다.
“뭐야?”
멀리서 희끄무리한 형체가 돌아다닌다. 유령은 밤에만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던가?
스스로에게 되물었지만, 대낮에 돌아다니면서 하인들을 처참하게 살해하는 유령은 허깨비도 아니었고 착각도 아니었다. 피가 뒤고 내장이 허공을 날아가는 비정상적인 모습을 보고 에드워드가 제일 먼저 떠올렸던 건 서랍에 둔 샷건이었다.
저 괴물에게 총이 먹힐 거라는 생각을 하긴 어려웠지만 어찌되었건 그는 방으로 달렸다. 뒤돌아보지 않고 달리다가 다른 곳에서 평범하게 일하고 있던 하녀 하나를 발견했다.
에드워드는 같이 뛰자는 말도 없이 바로 골목길을 꺾고 전력으로 달렸다.
“꺄아아아아아악!”
콰――직.
퍽. 퍽. 퍽. 퍽.
사람의 신체에서 날 수 있는 소리라고는 믿기지 않는 끔찍한 소리가 뒤에서 들리지만, 에드워드는 다른 하인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자신의 방으로 되돌아오는 데 성공했다.
“트위티!”
“에드워드! 에드워드! 방문을 잠가!”
트위티가 창살 안에서 계속해서 경고하자 그 즉시 에드워드는 방에 설치되어 있던 여러 개의 잠금장치를 잠그고 서랍에서 샷건을 꺼내들었다.
“바, 밖에, 밖에, 유령이 있어!”
“진정해 에드워드. 유령은 살육을 반복하는 괴물이지만 우선순위가 있어.”
“우선순위?”
트위티의 눈이 요사스럽게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