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9화 - “그런데 그놈은 왜 여기까지 들어왔을까?”
“보물의 흔적을 찾았을지도 모르지. 월월.”
“보물을 찾으면 놈을 없애고 우리가 빼앗아버리자. 근데 아직도 못 찾았어?”
“이곳에서는 옛날부터 후각이 이상해진다고. 기다려봐.”
샤를은 그들이 무슨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전혀 모른다. 에메랄드 브로치가 있어서 총격에는 어느 정도 버틴다고 하더라도 언제 어떤 수단으로 공격당할지 모른다. 그러니 정보를 더 얻기 전까지는 싸울 생각이 없었다.
얌전히 뒤로 물러나 왔던 길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때였다.
“어? 뭐야?”
셰퍼드, 샤이디가 이상하다는 듯 말하곤 미친 듯이 짖기 시작했다.
샤를은 청각을 활성화해서 그들이 어디 있는지 알아내려 했으나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반사되어 도저히 그 위치를 알 수가 없었다.
“저기 저 꼬맹이.”
“뭐야 저 괴물은……?”
저 꼬맹이, 괴물? 이상한 단어의 조합이었는데 샤를은 번뜩 떠올랐다. 야밤의 복도를 돌아다니던 그 사람인지 짐승인지 모를 존재.
분명히 낮에는 비밀통로에서 살고 밤에는 저택 동서관을 돌아다니는 걸로 알고 있는데?
탕!
멀리서 총격이 울려퍼지자 샤를은 자세를 살짝 낮췄다. 그리고 그들이 있는 장소로 최대한 빨리 움직였다.
‘소총이야.’
사냥용 소총이다. 에드워드처럼, 세바스찬도 총을 들고 있었다.
계속해서 개가 짖다가 달려드는 소리, 혹은 이리저리 부딪히고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 괴물새끼! 꺼져! 꺼지라고!”
깨개개개갱.
고함치는 세바스찬의 목소리가 들리고 조금 뒤에 샤이디가 높은 음성을 내면서 어딘가 부딪쳤다. 샤를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최대한 소리의 근원지로 향해 도착했을때에는 그곳에 아무것도 없었다.
바닥에는 격렬한 전투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여러 발의 탄피, 짐승인지 사람인지 모를 피가 떨어져 있는 바닥. 부서진 정원.
“비늘…….”
바닥에 비늘이 흩뿌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확실히 놈이 분명했다.
‘하지만 이상해. 어째서인지 습격자가 둘 인 것처럼 보여.’
괴물 말고도 다른 습격자가 있었던 걸까?
싸움의 흔적 이외에 무언가 질질 끌려가는 흔적이 있었다. 개와 사람 둘 다 끌고 갔다.
그 길을 따라 샤를이 쫓아갔으나 그 흔적이 정원 중간에서 뚝하고 끊겨 있었다. 바닥의 흔적도 없고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는다. 그야 말로 완전히 사라진 것 같은 느낌.
‘뭐야?’
한순간에 사라진 흔적. 샤를은 그 장소에서 점술을 쳐보려고 하다가 강한 점술 방벽의 힘을 느꼈다.
‘석판 조각의 힘이 느껴져.’
화산처럼 용솟음치는 힘의 편린이 머릿속을 잠시 스쳐 갔다.
샤를은 집중력을 최대치로 가동해서 추리를 시작했다. 사람이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다. 냄새, 풀의 모양, 걸음.
‘여기서 사라졌어.’
샤를은 마지막에서 몇 발자국 정도 역수로 세면서 기존의 발자국과 비교했다.
‘백트래킹이야.’
영리한 짐승은 자신의 발자국을 따라오는 사냥꾼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발자국을 역으로 밟은 뒤에 발자국이 남지 않는 곳으로 이동해 상대에게서 회피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이놈은 완전히 짐승이군. 괴물이라는 그 녀석이 습격한 건가.’
마지막 걸음에서 몇 발자국이 깊이 패인 이유는 개와 세바스찬을 둘러업으니 무게가 늘어났기 때문일 터였다.
샤를은 수풀 사이로 점프한 흔적을 발견했다. 발자국을 따라가다가 잔디가 풍성한 곳을 발견했다.
잔디 한쪽이 뭉개져 있다. 무언가 여기 내려놓았던 흔적이다.
바닥에 손을 대고 잔디를 쓸었다. 들 수 있는 손잡이가 만져졌다.
‘찾았어.’
자신의 추적이 성공했다는 희열이 잠깐 그를 감쌌지만, 샤를은 금세 그 감정에서 벗어나 냉정을 되찾았다.
그리고 손잡이를 당기고 아래쪽을 바라보았다.
아래쪽엔 지하통로가 있었다. 하수도가 흐르는 곳이 아니다. 아예 물이 없었다. 처음부터 만들어진 통로다.
‘대단하군.’
이 저택은 대체 비밀통로가 몇 개인지 감도 안 잡힌다. 뒤쪽 숲까지 이어진 비밀통로가 있다고?
샤를은 그 아래로 내려가면서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인프라비전을 키고 움직였다. 어디선가 바람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방금 들어온 통로는 닫았으므로 이쪽 문은 아닐 터였다.
바람이 들어오는 곳으로 향하면서도 샤를은 자신이 들어온 길을 외웠다.
“도와줘! 거기 누구 없어?!”
“읍. 읍. 읍. 읍. 읍.”
누군가 외치는 소리를 듣고 샤를이 움직였다.
샤를은 빠르게 달려갔다. 그곳에는 전신이 묶여서 이상한 제단 앞에 놓인 세바스찬과 샤이디가 있었다.
제단은 작은 촛불이 놓여 있어서 그들만을 간신히 비출 수 있을 정도였다.
‘개까지 묶네?’
세바스찬은 평소의 무표정하거나 퀭한 눈동자로 아무것도 관심이 없어 보였지만 자신의 목숨에는 아주 관심이 많았는지 그간 느긋하던 모습에서 벗어나 소리치고 있었다.
그의 죽은 물고기 같던 눈동자도 생기가 돌아왔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에게 살아있다는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은 바로 공포인 것 같다.
샤를은 제단 위에 빛이 들어오는 작은 창이 있었고 그곳에 철창이 저절로 떼어지는 것을 목격했다.
‘뭐지?’
“샤, 샤이디 살려줘! 무슨 방법 없어? 너 암흑성도회의 무슨 영성자라면서!”
“마법을 사용하려면 일단 내 목에 걸린 줄부터 풀어야 한다고! 젠장 개의 형태만 아니었어도!”
철창살은 이제 전부 떼어져가고 있었다. 아직 어두워서 그들은 보이지 않을 터였다.
‘일단 구해야겠어!’
샤를은 자신을 죽이러 온 사냥꾼들이 분명했지만 당장 저렇게 묶여서 죽는 건 막아야 했다. 그래야 어떻게 써먹기라도 하지.
그때였다.
드르르르륵. 쾅!
“커헉.”
창살이 떼어지자마자 엄청난 속도로 떨어지면서 피가 이리저리 튀었다.
샤를은 눈앞에서 세바스찬을 구하지 못했다는 것에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는 않았지만 알 수 없는 찝찝함을 느꼈다.
보아하니 옆에 있던 개도 그 창살에 찔린 것 같다.
이리저리 주변을 둘러보다가, 복도 한쪽에 희끄무레한 것을 발견했다.
희끄무레한 형체는 세바스찬의 시체에 달려들더니 두개골을 쪼개곤 뇌를 꺼냈다.
그 즉시 샤를은 권총을 들어서 무존자의 창 마법이 걸려있는 마탄을 쏴버렸다.
불꽃이 피어오르고 무시무시한 겁화가 몰아치자 유령 같은 그것은 엄청난 속도로 복도 저 너머로 사라졌다. 진짜로 총알 같은 속도였다. 공격이 통했는지 아닌지도 알 수가 없었다.
샤를은 식은땀이 나는 걸 느꼈다.
정확히 보진 못했지만 유령 같은 형체를 띠고 있었다.
*
‘괴물’은 유령이 날뛰는 걸 막으려 했다. 그는 그간 ‘하얀 옷’을 입은 나쁜 사람들의 실험을 통해서 누구도 유령을 잡을 수 없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유령을 만질 수 있는 건 숙주인 괴물뿐이었으므로 그것을 막을 수 있는 것도 그뿐이었다.
요하네스의 명령을 받은 유령은 제일 먼저 무력화된 비앙카를 죽이고 그 피를 병에 담아 요하네스가 자고 있는 5층 침실의 창틀에 올려뒀다.
그 다음날에는 놀라운 속도로 움직이면서 뒤뜰로 움직였다. 괴물도 따라서 뒤뜰로 향했다.
그러나 가장 먼저 ‘목표’를 찾아낸 건 괴물이었다. 개를 데리고 있던 그 남자였다.
괴물은 그 남자를 어떻게든 유령에게서 숨기고 싶었다. 타인과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해본 경험이 거의 없는 ‘괴물’은 그 자를 설득하기 어렵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으므로 아예 기절시켜서 어딘가에 숨길 생각이었다.
길쭉한 막대기에서 ‘아픈 철덩이’가 튀어나왔지만 원체 튼튼한 몸 때문인지 견딜만 했다.
옆에 있는 다리 네 개 달린 짐승도 때려 눕혔다. 마침 잘 알고 있는 곳이 있었다.
괴물은 두 사람을 끌고 갔다. 그리고 자신만 알고 있는 비밀 통로로 데리고 가서 그들을 숨겼다.
숨긴 뒤에는 또 다른 사람들을 비밀 통로로 숨기기 위해 움직였다.
그러나 괴물에게는 모르는 정보가 하나 있었다.
유령은 괴물이 알고 있는 정보는 전부 알고 있었다. 괴물을 숙주로 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괴물이 한 일은 유령을 도와주는 일이 되었다. 괴물이 떠난 뒤 유령은 그 비밀통로로 들어왔다.
높은 곳에서 철창을 떨어트려서 꽁꽁 묶인 둘 다 죽인 다음, 요하네스의 명령대로 ‘가져’올 생각이었는데 누군가 유령에게 총격을 가했다.
탄환에 무시무시한 불길이 깃들어 있으므로 유령은 그자도 목표 대상안에 들어간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목표 대상의 우선 순위에서 좀 낮춰버렸다. 원래 약한 자부터 없애는 것이 정석이었으니까.
*
유령 같은 형체가 적의를 갖고 샤를에게 덤벼온다면 지금의 샤를로서도 막기 어려웠다.
‘당장 이 주변을 탐사하긴 어렵겠어. 적어도 저 유령에 관한 대책을 만들기 전까진.’
엑토플라즘으로 이뤄진 유령은 물리력이 통하지 않으므로 여러모로 까다롭다. 준비하고 다시 돌아와야 할 것 같다.
이 지하를 탐사하는 건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샤를은 다음번에 다시 오기로 하고 자리를 비우기로 했다.
그리고도 잠시의 적막이 지난 뒤. 셰퍼드 한 마리는 죽은 척을 그만두고 눈을 떴다.
‘진짜 죽는 줄 알았네. 마지막에 샤이디랑 몸을 바꿔치기하지 않았으면 죽었을 거야.’
놀랍게도, 세바스찬은 샤이디가 가르쳐준 비술로 샤이디의 몸을 빼앗았다. 샤이디가 먼저 철창에 허리춤을 찔려서 고통에 절어있지 않았더라면 불가능한 일이었겠지.
샤이디의 몸을 빼앗은 세바스찬은 앞발로 자신의 몸에 박힌 창살을 뜯어냈다. 그리고 상처를 치유하는 주문을 사용한 뒤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나저나 여긴 대체 어디지?’
끝없는 어둠 속 기다란 통로만이 이어져 있었다.
샤를은 뒤쪽 숲을 빠져나오면서 조금 전 나타났던 흰 형체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비늘의 형태로 보아, 분명히 난 그 이름 없는 괴물이 둘을 납치해갔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그 유령 같은 건 뭐지?’
알 수 없는 게 너무 많다. 샤를은 불편해진 심기로 저택으로 돌아왔다.
이곳에서 점술이 제한 되는 것 또한 한쪽 손을 봉쇄당한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쭈인쭈인쭈인쭈인쭈인쭈우우인
-파기? 너 잠들어버린 거 아니었어?
샤를의 허리춤에 걸려 있던 책에서 파기나레코르가 기괴한 기상소리를 내면서 일어났다.
-나는 깨어났다! 그리고 힘찬 기분이 든다!
팔뚝을 걷어서 있지도 않은 알통을 내보이는 파기나레코르를 보면서 샤를이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여태 자던 이유가 뭐야?
-나, 강화, 성공적. 쭈인에게서 나오는 파워를 흡수했따.
샤를은 그러고보니 자신의 2번째 석판이 완전히 소화되었던 걸 느꼈다. 기존의 능력이 조금 더 완숙해진 정도.
-네가 자던 이유가 그거였군.
하도 기괴한 일에 휩쓸리다보니 샤를은 자신의 힘이 소화되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이제 3번째 석판의 힘을 느긋하게 받아들이면 되겠지만 당장은 힘들 것 같다.
-자는 동안 대충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기록을 확인했어.
-어? 그래?
-응. 요하네스라는 인간 엄청 수상하지 않아?
-내가 생각하기에도 그래.
생물학적 아버지인 요하네스 헥센이 무진장 구리다. 어쩌면 이 모든 음모의 배후에 그가 있을지도 모른다.
파기나레코르와 대화를 하면서 저택으로 돌아오자마자 샤를은 어수선함을 느꼈다.
“흐아아아아아아아악!”
하인의 비명이 들리자 샤를은 곧바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곳에 하인 몇 명과 함께 유마가 있었는데 그는 안색이 창백해진 상태였다.
“뭐야? 무슨 일이야?”
“시, 시, 시체가. 우, 우욱.”
유마가 하인의 방을 향해 손가락질하다가 도저히 견디지 못하겠는지 바닥에 구토했다.
샤를이 고개를 돌리자 그도 도저히 견딜 수 없는 혐오감을 느꼈다. 하인 하나가 죽어 있었는데 마치 무슨 압착기에 짓이겨진 것처럼 짜여서 죽어 있었다.
‘이건 대체.’
좀 더 자세히 조사해보기 위해 방 안으로 들어간 샤를은 이게 인간의 소행이 아님을 깨달았다.
“으, 으아아아아아아아악!”
밖에서 비명이 들리자 샤를이 밖으로 튀어 나갔다. 그때 보았다. 허공에 붙잡힌 하인 하나가 어디론가 끌려가는 모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