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1화 - 「루터 식스 실종에 관한 사건 보고서」
「발단 : 배치된 일반 요원에 대한 비밀 세계의 교육 및 관리감찰을 목적으로 투입된 요원 유스티나가 행방불명되었다.」
「결말 : 모일 일반 요원 더글라스의 손에 행운의 동전이라고 불리는 유물이 들어옴. ‘봉인물 – 금화 자루’에서 튀어나온 것으로 보이지만 자세한 정보는 확인 불가. 들어온 유물은 곧 유스티나에게 넘겨졌다. 유스티나는 본래의 임무인 관리감찰 이외에 무언가 ‘특별한’ 개인적인 임무를 수행 중인 것으로 추정되었다. 골레릭 본브레이커를 처단하는 일로 추정. 동전을 얻고 난 유스티나는 골레릭 본브레이커와 마주쳤고 그 이후 행방불명 상태. 높은 확률로 죽었을 것으로 사료 된다. 이후 동전의 행방도 불명.」
「감독관의 의견서 : 루터 식스를 메트로폴에 투입하는 것은 여전히 시기상조. 더 영성자를 잃고 싶지 않으면 예언자의 결론에 따를 것. 기존에 투입된 요원에 대한 교육은 따로 자료를 보내는 것으로 해결한다.」
쾅!
검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중년 남자가 주먹을 내리쳤다.
“이게 무슨 개소리야! 루터 식스를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잃었다고?”
MI7에서도 여섯뿐인 존재. 하나하나가 ‘제대로 된’ 영성자에다 통제불능의 몇몇 단점을 뺀다면 완벽한 해결사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루터 식스는 그저 그런 평범한 요원이 아니다. 무려 영성자이면서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요원들이었다. 그런 자들을 둘이나 잃다니.
그 앞에 서 있던 안경잡이 분석가가 무심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분노는 분석에 도움이 안 됩니다.”
“화가 안 나게 생겼어? 다른 곳으로 돌리다가 겨우 여유가 나서 메트로폴에 보냈는데 몇 주가 지났다고 손실? 소온실?!”
“예언자께서는 메트로폴이 세상에서 제일 위험한 지역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곳에 간 영성자 하나가 죽는 건 당연히 감수해야 할 일이었죠.”
“그래 맞아요. 길버트.”
중년인의 옆에서 누군가의 고운 미성이 들렸다. 길버트는 인상을 찡그리면서 옆에 있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루미너스. 넌 화도 안나는 건가?”
무표정한 모습으로 서있는 백발의 미녀가 있었다.
눈동자는 은색이었고 머리 위에는 링이 떠 있다.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게 생긴 이 여자는 인간과도 같지 않은 아름다움을 갖고 있었다.
“제가 궁금한 건 대체 왜 더글라스는 안 죽었냐는 거에요.”
“예? 그는 일반 요원이잖습니까.”
“더글라스는 영성자가 될 자질이 있죠. 그럼 그 이후부터는 더는 일반 요원이 아닙니다.”
“그건 그렇긴 합니다.”
분석가가 안경을 치켜세우면서 말했다. 영성자가 될 자질이 있다는 것부터 이미 일반인의 영역을 넘는다. 비밀 세계와 인접해있으며 언제든 그쪽의 영향을 받아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
보통 이런 자질 있는 존재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루터 식스의 수련생으로 들이게 되지만 더글라스는 요원이 되면서 권태감과 절망감에 스스로 넘어진 케이스였다.
분석가는 몇 번이고 더글라스를 수련생으로 올릴까 하다가 말았었다.
“아무래도 제가 메트로폴에 들러야할 것 같군요.”
“뭐? 아직 다른 루터 식스도…….”
“그들에게는 할 일이 많습니다.”
“루미너스. 네가 없어지면 MI7 본부가 위험해진다.”
“한 번은 메트로폴에 가봐야 합니다. 일정 잡아두십시오 체스터필드.”
분석가 체스터필드는 결국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루미너스가 하고자 한다면 여기 있는 그 누구도 막을 권한이 없다. 사실상 루미너스는 MI7의 창시자였으니까.
“추가적으로 새로 루터 식스로 올릴 수련생을 선발하세요.”
“알겠습니다 루미너스님.”
*
홀로 서재에서 샤를은 플로나가 가져다준 캐모마일 티를 마시면서 옆에 있는 파인애플을 집어 들었다. 입으로 가져가니까 영 내키지가 않는다.
‘으, 물려.’
에메랄드 브로치의 부작용 때문에 파인애플을 하도 먹다보니 이제 주식이 파인애플이 된 느낌이다.
찻잔을 내려놓고 이번 일에 관한 계획 및 장비를 정산했다.
물질적인 소득인 부분에 있어서 몇 가지 있다.
첫 번째로는 오르골이 있다. 소리가 들리는 범위는 그다지 크지 않지만 들리는 범위 안에 있으면 거의 모든 종류의 인간들을 조종할 수 있다.
‘비슷한 능력의 다른 유물과 능력이 겹치게 된다면 어떻게 될지 궁금한데.’
유물과 유물의 능력이 부딪치게 되면 어느 한쪽은 효과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
하지만 인간이 이 땅을 거닐기도 전에 살았던 종족인 계몽주의자가 만든 물건이라, 등급은 꽤 높을 것으로 생각된다.
오르골을 이용해 샤를은 상대방을 손쉽게 포획할 수 있겠지만 언제 배신할지 모르니 오르골을 사용할 때는 주의가 필요했다.
그다음은 계몽주의자의 ‘날개’. 이것은 굉장한 재료로 의식 마법이나 비밀 세계 전반에서 다용도로 사용된다.
골레릭이 유스티나의 등에서 뜯어낸 것으로 그녀의 것이었으나 스스로 소유권을 포기했다. 유스티나의 등에서 나온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또 하나는 계몽주의자의 파괴된 영혼이 깃든 납탄. 이건 이미 본래의 영혼를 잃어서 파편 조각 정도로 남은 수준이었지만 영혼을 제물로 바치는 의식에 대용품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제롬의 장비는 전부 제롬에게 돌려줬다. 스파이 일을 하면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도 했고 샤를에게 장비를 빼앗긴다면 제롬을 아는 사람에게는 이상하다고 생각될 수도 있을 테니까.
또, 소득은 뱃속에 깃든 행운의 응결체 정도일까.
생각보다 이번 일에서 소득이 있었다. 파기나레코르를 실전에서 사용해봤기도 했고.
아, 추가적인 소득이 있다. 스탯치가 조금 올랐다. 생각이 떠오른 김에 그간 얼마나 스탯이 올랐는지 중간 점검을 하기로 했다.
* * *
【제5교단 무명 교단의 교주】
【샤를 헥센】
[스탯]
[신체 7, 정신 13, 행운 6(+??), 계몽 7]
[특성]
[카리스마, 경전 연구가, 냉정함, 비신지체, ???]
[보유 기술]
〔지배의 권능〕 - 이계에 상주하고 있던 마도사 헤르메스와 거래해 얻어낸 권능. 생물, 무생물 가리지 않고 그것을 ‘지배’할 수 있다. 정신 스탯에 비례해 최대 지배 개수가 증가한다.
▶현재 지배중인 개체 8/9
파기나레코르(마도서) - 1
모노클 - 1
에메랄드 브로치 - 1
성배조각품 - 1
괴테의 만년필 - 1
계몽주의자의 오르골 - 1
제롬 모슌 - 2
* * *
정신 수치가 상당히 올랐다. 거기다 행운의 뒤에 물음표로 적혀 있는 건 행운의 응결체의 효과. 한 자릿수도 아니고 두 자릿수니. 분명히 좋은 일이 생길 거다.
계몽이 7이지만 샤를은 아직도 멀쩡했다. 전체적인 정신 수치가 증가했기 때문이었다.
정신 스탯이 오른 덕에 지배의 권능으로 지배할 수 있는 숫자도 늘었고.
제롬 혼자 숫자가 2다. 무생물에 비해 생물을 지배하는 건 2배의 점유치가 든다.
샤를은 마지막으로 꼼꼼히 체크한 뒤에 일어서서 기지개를 켰다.
대학도 이제 슬슬 방학 시즌이었다. 계절학기에 강의할 생각은 없으니 12월 말부터는 이제 휴일이었다.
동료 교수들도 신년에는 따뜻한 남쪽 나라에 가서 휴양을 보내고 온다든가 하는 일정이 있다고 했다.
샤를도 그들과 같이 휴양차 어딘가에 갔다 온다면 좋겠지만…… 샤를에게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 곧 다가오기 때문에 불가능했다.
“가족을 만나야 한단 말이지.”
몇 달 전에 헥센가의 가주이자 샤를의 생물학적 아버지는 그에게 편지를 보냈었다.
샤를의 신체로는 가족이지만 김연수에게는 완전히 남남인 타인이었다. 저번 게임 속 샤를을 플레이할 때는 메인스토리 전개상 접점이 전혀 없었으므로 마주친 적이 없었다.
보게 된다면 이번이 처음일 터였다.
“그쪽 가족계열이 죄다 싸가지가 없는데.”
샤를이 아니라 다른 캐릭터로 플레이할 적에 헥센 가문의 사람들을 가끔 만나볼 수 있었는데 성격이 다들 개차반이었다.
특히 지금 가주의 부인이자 샤를에게는 계모되는 사람은 히스테리가 정점에 달했을 터다.
“후우. 하는 수 없지.”
신년 가족 행사는 싫다고 피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김연수일 적, 명절날 가끔 보게 되는 친척들의 영 반갑지 않은 얼굴을 떠올릴 때처럼 기분이 착잡해졌다.
똑똑.
“주인님. 제이크입니다.”
“어, 들어와.”
샤를이 적당히 유물들을 치워두고 말하자 집사 제이크가 공손하게 들어와서 인사한 다음 말했다.
“베르나르도 프로벤짜노가 도착했습니다.”
“응? 왜?”
베르나르도 프로벤짜노, 디노는 리처드 웹스에게 찍힌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준다면 샤를이 만들기로 했던 와인셀러의 사장이 되기로 했었다.
샤를은 괴테의 만년필을 봉인재단에 보관할 적, 그들의 전무이사 루크 웹스를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적에 디노의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요구했고 그건 순순히 받아들여 졌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는 샤를이 투자할 와인셀러의 사장 자리를 맡기로 했었다.
“그, 그건 좀 만나서 얘기를 나눠보셔야할 것 같습니다.”
제이크가 당황한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으므로 샤를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짓고 몸을 일으켰다.
샤를의 영성이나 직감에는 별 문제가 없으므로 사소한 일일거라고 생각했다.
응접실로 가자 디노가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봤던 얼굴과는 좀 다르게 잠을 별로 자지 못한 듯 눈이 퀭한 모습이었다.
“무슨 일인가? 디노.”
“샤, 샤를님 안녕하십니까 헤헤.”
디노는 기괴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이놈 성격이 좀 변한 것 같은데.’
“제가 이번에 새로 개발한 포도 품종에 관해서 설명해드리려고 왔습니다.”
“포도?”
“예. 제가 보르도의 품종보다 더 훌륭한 포도를 개발해냈지 뭡니까!?”
최고의 와인 생산지로 유명한 보르도의 포도보다 더 뛰어난 포도? 미안한 말이지만 이 나라에서는 그런 게 나올 수가…….
샤를의 생각은 디노가 슈트케이스에서 꺼낸 포도를 보고 멈춰버렸다.
“뭐야 이거.”
포도가 맞긴 한데. 여러 방향으로 가지가 뻗어있었고 그곳에 마치 크리스마스 트리의 장식품들처럼 포도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헤헤. 제가 개발한 신제품 육즙 포도입죠. 우리말로 슈고 우라라고 합니다. 자 보십쇼.”
사과만한 포도알 하나를 든 디노가 포도를 껍질채로 베어물자 육즙이 미친 듯이 튀어나왔다. 한입 베어물었는데도 아직도 그만큼이나 남아 있다.
샤를의 응접실 바닥은 곧이어 포도즙으로 가득해졌다. 디노가 베어문 포도에서 포도즙에 바닥으로 계속 떨어진다.
“육즙이 가득하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이 포도는 제가 특별히 제작한 온실에서 길러지기 때문에 사시사철 기를 수 있습니다!”
“…….”
포도즙이 입가에 흐르는데 광기 어린 표정으로 슈고 우라에 대해 설명하는 디노는 어딘가 정상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이새끼는 대체 뭘 먹었길래 이래?
-저 포도 때문인 거 아니냐.
“자, 한 번 드셔보십쇼. 함 무바라! 디지뿐다!”
샤를은 점점 더 맛이 가는 디노를 보고 떨떠름하게 포도알을 받았다.
경고? 없다. 꺼림칙하긴 하지만 포도에 사악한 영성이 깃들어 있다던가 뭔가 나쁜 기운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샤를은 눈동자를 돌려서 뒤에 시립해있던 자신의 충실한 집사를 바라보았다.
그도 혼란스러운 표정인지 샤를을 바라보고 헛기침을 했다.
“제이크, 먹어……볼래?”
“알겠습니다. 제가 한 번 먹어보죠.”
그래도 정신을 차린 제이크는 포도를 먹는 게 뭐 대수냐는 듯 가져다가 한 입 베어물었다.
육즙이 미친 듯이 튀어서 신사의 셔츠에 묻었다. 그러나 포도를 먹던 제이크의 표정이 바뀌었다.
“대, 대체 이건.”
“뭔데?”
-뭔데뭔데?
“이 포도로 와인을 만든다면 정말 대단한 와인이 될지도 모릅니다.”
“무슨 맛인데?”
“서, 설명하기가 힘듭니다. 한 번 드셔보시길.”
제이크는 냅킨을 꺼내서 샤를에게 건냈다. 냅킨을 착용하고 포도즙 때문에 손을 버릴 각오까지 끝마치고 나자 드디어 한 입 베어물 수 있었다.
“어? 맛있는데.”
-마약 포도 아니야?
-마약 성분 같은 건 없는 것 같아. 영성의 오염도. 단순한 포도 같은데.
파기나레코르가 옆에서 묻자 샤를이 대답했다. 입에서 터지는 이 맛, 도저히 형용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
“맛있죠? 그죠? 맛있죠? 그죠?”
-이놈 왜 미쳐버린 거야?
샤를은 디노를 보면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 현상을 어떻게든 파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플로나를 불러서 따로 뒷조사를 시켜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