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9화 - 며칠 전 심상 세계.
샤를이 자신의 손에 들어왔던 행운의 동전을 쥐고 했던 두 번째 점술 구문.
“변화의 종착지.”
샤를은 점술을 친 결과를 얻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뜻밖이었다. 순식간에 주변의 풍경이 변하면서 미래가 보인다. 그리고 그곳에 제롬이 있었다.
샤를은 피투성이가 되어있었고 어째서인지 무명 교단 사람들이 모이는 창고는 전소되어 있었다. 플로나도 보이지 않고 에세나는 옆에 쓰러져 있다.
샤를의 왼손에는 검은색 동전이 절대로 떨어지지 않겠다는 듯 달라붙어 있었다. 손아귀의 힘이 풀려 있음에도 접착제라도 붙인 것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어때? ‘인연’이 파괴된 기분은? 네 무명 교단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우하하하하하!”
“…….”
미래의 샤를은 입을 꾹 다물고 제롬을 바라보고 있었다.
“타겟을 정하는 건 꽤 어려웠고 심지어 실패할 ‘뻔’했었지만 나는 성공했다. 후후후후. 엄청난 ‘부’의 행운은 덤인 셈이지.”
그 장면을 보면서 샤를은 어느 부분에서 잘못된 미래라는 것을 느꼈다.
미래의 샤를은 피투성이가 된 채 홀로 제롬과 싸우고 있었다.
대체 어디서 구했는지 압도적인 성능을 보유한 유물을 잔뜩 가지고 있었던 제롬은 시종일관 샤를을 몰아넣었고 곧 샤를의 심장에 날카롭고 잘 갈린 뼈로된 단검을 박아넣으면서 화면이 끊겼다.
점술이 보여주는 잔향이 사라지자 샤를은 턱을 괴고 고민을 했다. 이 동전은 ‘다른’ 동전으로 뒤바뀐다.
맨 처음에는 행운의 동전. 그 뒤에는 파멸의 동전으로 변한다.
파멸의 동전이 된 직후에는 부의 행운을 가져다 준다. 그러나 그 부의 행운에 파묻혀 동전에 대한 관리를 소홀히 할 때쯤, 동전의 겉에 씌워진 행운이라는 코팅이 벗겨지고 내면의 액운이 드러난다.
모든 인연을 파멸시키는 액운이.
미래의 샤를은 그 액운의 함정에 빠진 듯 했고 어찌된 영문인지 제롬은 부의 행운을 얻은 듯 했다.
그래서 얻은 돈으로 비싼 유물을 미친 듯이 사서 샤를을 괴롭힌 걸로 추정된다.
“‘부’의 행운이라고 했었지……?”
악동같은 미소가 샤를의 얼굴에 드러났다.
*
그때부터 샤를의 계획이 변경되었다. 골레릭은 부차적인 목표고, 진짜 목표는 바로 제롬 모슌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지금 샤를의 눈 앞에 나타나 있었다.
“우리가 이렇게 마주칠지는 몰랐겠지?”
“샤를 교수. 네가 무명 교단의 교주일 줄이야.”
얼굴을 드러낸 샤를을 본다.
드레이크와 샤를 중 누가 무명 교단의 교주일지 확신하지 못했는데 오늘로 제롬은 확신했다.
“동전을 빼간 게 네 녀석이라고?”
“행운의 동전을 ‘파멸의 동전’으로 만들어 뒀더라고. 암흑성도회에 그런 비술이 하나 있지 아마?”
제롬은 입을 다물었다. 상대는 다 알고 있었다. 파멸의 동전으로 바뀌면서 벌어질 일을……!
“행운의 동전은 무차별적으로 돌아다니지만, 파멸의 동전은 특정 인물을 타겟팅해서 사용할 수 있지. 뭐, 운이 나빴다면 충전되기 전에 한 번 내 손에 들어왔다는 점?”
으드득.
제롬은 이를 갈았다. 이 동전에 들이 공이 얼만데 이렇게 채갈 줄이야. 다른 평범한 영성자도 아니고 하필이면 무명 교단의 교주였다.
“넌 오늘, 여기서 끝난다.”
“헛소리.”
“이해를 못 하네.”
샤를은 천천히 걸어왔다. 그리고 평범한 장갑을 벗었다.
“제롬 모슌. 엔달린 식민지 태생, 광명교회에서 운영하는 고아원에서 자랐고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 졸업. 메트로폴의 트론탈 공립 병원 외과 의사. 비밀 세계에서는 암흑성도회 샴발라 일파의 일원.”
“잘도 조사했군.”
제롬은 단단히 준비하고 나온 듯한 샤를을 보면서 솜털이 솟구치는 듯한 기이한 감각을 느꼈다.
근원을 알 수 없는 공포가 등에서부터 바짝 뒤쫓아오는 느낌이었다.
“그건 겉으로 드러난 신분일 뿐이고. 진짜 신분은 따로 있지.”
“……!”
“너, 애초에 ‘이곳’에서 태어난 게 아니잖나. 네가 태어난 곳은 이계의 하층. 넌 이름이 없어. 존재도 없지. 제롬이라는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그림자처럼 행세하며 모든 걸 다 겪은 것처럼 으스대지.”
“닥쳐어어어어!”
제롬의 그 외침은 기괴한 단말마처럼 들렸다. 그는 자신이 있었던 이계의 하층을 떠올렸다. 살짝 떠올리기만 해도 기억의 편린이 몰려들어서 뱃속에서 구더기가 들끓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곳은 끔찍한 하수구처럼 생겼다. 물리 세계에서 도망칠 장소가 없어, 이계로 가는 차원을 넘겠다고 의식을 치른 일부 불운한 영성자들이 그곳에 살았는데 제롬의 어미도 그중에 하나였다.
하수구에는 매일같이 오수가 몰려든다. 이계의 하층에서도 제일 밑바닥이라는 그곳, ‘티누케’는 꿈의 세계와 가장 밀접한 곳이라고 했다.
꿈에서는 온갖 더럽고 추악한 날것의 욕망들이 통제 없이 무한하게 펼쳐진다.
티누케는 꿈과 맞닿아 있어서 그 안으로 오수의 형태로 꿈속의 추악한 욕망들이 밀려 들어온다.
행복한 꿈들은 어디론가 가버렸는지, 티누케로 흘러오는 꿈은 전부 쾌락적이고 때론 공포스러웠으며 대부분 사악한 것들이었다.
그리고 제롬은 그걸 보고 어린 시절을 보냈다. 죽어버린 어미의 옆에서 홀로 살아남기 위해 그 하수구에서 살았다.
“네가 뭔데! 거기다 어떤 곳인지나 알아!? 거긴 인간의 모든 감정이 밀려드는 지옥의 구렁텅이 같은 곳이다.”
“그래서 인간 행세는 즐겁나?”
“닥쳐! 난 인간이다! 단지 이계에서 태어났을 뿐이지!”
샤를은 냉정하고 차가운 눈동자로 제롬을 바라보았다.
“인간을 제일 많이 죽이는 건 인간 그 자신이 아닌가? 그리고 죄? 죄를 정하는 건 누구지? 그 잘난 인간인가?”
제롬은 냉소했다. 제롬은 물리 세계에서 수많은 인간을 봐왔다. 그들 중에 흔히 말하는 악인(惡人)이라는 것들이 저지르는 것도 봐왔다.
그들에 빗대어 생각해보면 제롬의 악행은 그들보다 특출나지도, 못하지도 않았다. 제롬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패배하는 자가 잡아먹히는 거다. 거기에 다른 상념을 들이미는 걸 보고 현실 감각이 부족하다는 얘기를 하지.”
“그럼 넌 이미 늦었어.”
샤를의 손바닥에서 하얀색 나비들이 피어올랐다. 수많은 나비가 허공을 수놓는 것을 보면서 제롬은 바짝 긴장하면서 자신의 차크람을 꺼냈다.
나비가 사라진 이후 샤를은 어디론가 사라진 뒤였다. 전신의 감각을 집중한 제롬은 재차 닥쳐 들어오는 살기를 느끼고 차크람 두 개를 교차하면서 불시의 일격을 막아냈다.
표정이 일그러진다. 평소라면 단지 거슬리기만 했을 뿐이지만, 감정이 격화된 지금은 너무나도 짜증이 몰려왔다.
“또 네년이냐아아아아아!”
플로나의 붉은 눈동자는 조금의 사감도 없이 무심하게 빛나고 있었다.
“너부터 없애주지!”
교차 된 차크람과 격돌한 모닝스타의 가시에서 식물이 치솟아 오르면서 차크람을 휘감아 왔다.
제롬은 염동력 반지를 이용해서 식물의 생장을 밀어냈다. 방향이 바뀐 줄기들이 허공으로 자라나는 동안 그는 뒤로 돌아가면서 오른손에 들린 차크람을 바닥에 떨어트린 다음 허리춤에서 비장의 무기를 꺼냈다.
“……!”
양쪽에 추가 달린 끈. 그건 남쪽 대륙의 원주민 수렵꾼들이 사용한다는 볼라였다.
플로나의 감각에 위험이 걸렸다. 생전 처음 보는 끈으로 된 무기는 예사롭지 않은 주문이 걸려 있는 듯했다.
“이거나 먹어라!”
원심력을 받고 여러 번 회전한 볼라는 허공을 체류하며 날아왔다.
플로나는 그 무기가 위험하다고 판단, 궤적에 걸리지 않는 선에서 옆으로 회피했지만 볼라는 놀랍게도 방향을 바꿔서 따라왔다.
들고 있던 무기로 내리쳐서 볼라를 쳐내려고 시도했으나 볼라는 메이스의 끝에 걸려서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
식물들을 사용해서 볼라를 밀어내려고 했으나 볼라가 회전하는 속도는 점점 더 빨라졌고 끈의 길이는 점점 더 길어졌다. 계속해서 길어지고 계속해서 빨라지는 무기는 순식간에 그대로 무기를 묶는 걸 넘어서 무기를 쥐고 있던 플로나까지 꽁꽁 묶어버렸다.
제롬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플로나와 한 번 격전을 벌이면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머릿속에 이미 전부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준비해 둔 물건이 바로 이 유물, ‘사냥꾼의 긍지.’
“자! 네 부하는 잡혔다!”
“너도 잡혔다.”
“뭣!?”
제롬은 바로 뒤에서 들리는 듯한 소리에 소름이 끼쳐서 되돌아보았다. 샤를이 소환한 백기사의 대검의 검면이 제롬의 몸을 짓눌렀다.
“무슨…….”
백기사의 대검은 제롬의 뒤덮고도 남았다. 태산이 쏟아지는 것처럼 거압에 휩쓸린 제롬이 그대로 바닥에 깔렸다.
제롬은 이렇게 완전히 꼼짝달싹 못할 때를 대비해서 미리 준비한 것이 있었다.
당사자가 죽었음에도 신선하게 보관되었던 칼튼의 혈청이 지금 제롬의 어금니 뒤쪽에 숨겨져 있었다.
칼튼의 피는 공간의 틈새를 열어서 어디든 건너갈 수 있게 만든다.
칼튼이 죽기 전에 미리 받아뒀던 그 물건.
깨물려는 순간 제롬은 자신이 옴짝달싹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는데, 오르골 소리가 들린다는 걸 이제야 눈치챘다.
“이, 이게 무슨.”
“굉장하군.”
제롬을 위한 함정을 만든 뒤에 조금 전 박물관 4층에서, 샤를은 골레릭이 바닥에 떨어트린 오르골을 주웠다.
[계몽주의자의 오르골]
[분류 : 유물]
[개요 : 계몽주의자 ‘하산’이 제작한 현실조작장치. ‘날개 없는 인간’을 대상으로 한다.
능력 : 오르골의 음악을 변경하여, 인간의 기억을 조작하거나 신체를 조작할 수 있다.
오르골을 소유한 자는 오르골의 능력에 영향받지 않는다. 음악을 듣는 자는 오르골 소리를 듣고 있는 한 능력에 영향을 받는다.
능력은 세 가지.
첫째, 기억을 봉인할 수 있다. 특정 기억을 봉인하고, 다시 오르골 소리를 들려주는 것으로 기억을 되살릴 수도 있다.
둘째, 임의 대상의 미래의 기억을 불러올 수 있다. 이것은 기억의 편린으로, 원하는 기억을 선택할 수는 없다.
셋째, 오르골을 듣는 이의 신체를 조종할 수 있다.
부작용 : 오르골의 자의식이 결정적인 순간에, 주인을 언젠가 배신하고 새로운 주인을 찾게 될 것이다.]
유스티나와 골레릭의 싸움이 끝나고나서 샤를은 본능적으로 골레릭에게서 오르골이 벗어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르골은 더 이상 ‘주인’을 만나러가기 위해 덜그락거리지도 않았으며 쓰러진 유스티나에게 반응하지도 않았다.
진짜로 자의식이 있는 것 같은 움직임.
샤를은 조금 전, 지배의 권능을 써서 바닥에 떨어진 오르골을 ‘지배’했다. 그래서 지금은 얌전히 샤를의 지배를 받고 있다.
‘언제든 다른 계몽주의자를 만나면 배신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지.’
그러나 이렇게 제롬과의 싸움에서 쓰기에는 충분하다. 움직이지 못하는 제롬의 앞으로 다가가서 그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수십 번이고 이 세계 속에서 악행을 저지르는 네놈을 보면서 나도 너에겐 강하게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뭐? 무, 무슨 소리야? 수십 번?”
“이 세계의 영성자는 하나같이 맛이 갔지만, 그중에서 너는 더 특히 맛이 갔어. 최악까지는 아니지만 그래, 악행에 등급이 있다면 중간쯤이라고 할까.”
“뭐, 뭐라는 거냐?”
“그렇게 알아두라는 거야. 빌런 순위 중급아!”
암흑성도회는 조각구원회처럼 뇌에 볼트를 막아넣는 등의 미친 짓은 벌이지 못한다. 머리가 터져버릴 걱정은 없었다.
스스로의 힘으로 지배에 저항해야한다. 그러나,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으윽. 무슨 짓을 하는 거냐. 무슨 짓을 으아아아아아아아!”
“내가 말했지. 넌 여기서 끝난다고. 네 모든 기억, 생각, 의지조차도 이제부턴 네 것이 아니야!”
“집어치워! 으아아아아아!”
허공에서 나타난 거대한 손의 속박, 오르골의 소리가 들리면서 들리는 또 하나의 속박이 제롬을 완전히 무방비로 만들었다.
샤를의 지배의 권능은 제롬의 뇌리로 파고 들었다. 그리고 제롬의 정신을 마구잡이로 주무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뒤, 제롬의 손에 찰싹, 달라붙어 있던 검은색 동전이 떨어졌다. 제 역할을 다한 동전은 희미해지면서 완전히 사라졌다.
모든 인연의 파괴. 그건 그와 연계된 인맥을 없애버리는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지만, 제롬 본인이 죽어버리는 것으로도 달성되었다.
“끝났군.”
이로서 제롬의 인연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아니, 제롬 자체가 파괴되었으니 제롬이 남아있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