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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사이비 교주가 되었다-76화 (76/221)

제76화 - 유스티나는 그렇게 말했다. 움직이지 않는다고.

그 말을 듣자마자 골레릭도 몸을 움직여 보았으나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 마치 몸이 쇳덩이라도 된 것처럼 꿈쩍도하지 않는다.

오르골은 유물이 분명했다. 소리를 듣고 있으면 몸이 움직이지 않는 부류의 유물인가?

“소, 손이 멋대로 움직여!”

유스티나는 그렇게 말했다. 그 순간, 유스티나의 손이 몸과 완전히 별개의 물건인 것처럼 바닥을 기어가서 오르골을 들어서 손에 쥐었다. 그뒤 다시 움직인다.

대체 어디서 난 힘인지, 쓰러진 유스티나를 강제로 끌고 가는 것같다. 몸이 축 늘어진 채 손만 움직이는 유스티나의 모습은 기괴함 그 자체였다.

“도, 도와줘! 골레릭!”

“기다려! 반드시 구해줄 테니까!”

골레릭은 자신의 신체를 완전히 통제할 수 없다고 느꼈다. 오르골은 점점 멀어지고 소리가 작게 들리자 유스티나는 아주 약간의 통제력을 되찾았다.

그래―혀를 깨물 수 있을 정도 만큼의 통제력 만큼은. 유스티나는 볼 것도 없이 혀를 잘라버릴 기세로 깨물었다.

엄청난 고통과 통증이 몰려오면서 신체를 짓누르고 있던 기이한 감각이 사라졌다.

그 즉시 유스티나는 자신의 옷 소매를 찢어서 귀에다 찢어 넣었다. 그것도 모자라서 천을 찢어서 귀를 가리는 가리개를 만들었다.

그렇게 소리에 의한 공격을 단단히 대비한 채 유스티나는 입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삼켰다. 아무리 세게 씹어도 오르골의 통제를 받는 동안 힘이 약해졌는지 혀가 잘리지는 않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차치하고, 유스티나의 흔적을 찾는 게 먼저였다. 끌려간 유스티나의 흔적을 찾았다.

바닥을 질질 끌려갔으니 흔적이 남을 수밖에 없다. 흔적을 바라보다가 계단을 올라간 것을 보았다.

목재 계단을 올라갈 때 힘이 부친 것인지 손톱까지 사용해서 올라갔다. 유스티나의 손부터 손목 아래까지 엉망진창일 게 뻔했다.

빠진 손톱이 보이고 그 피의 흔적이 드러나 있으므로 그 뒤로 추적은 쉬웠다. 상대가 어디로 갔는지 알아냈다. 그들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안으로 들어섰던 기원 전시실.

그 안에 들어서자 이제 유스티나는 서 있었다. 그러나 신체 대부분의 통제력을 빼앗겼는지, 눈동자만 불안한 채로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곧 그 눈동자의 움직임도 멈췄다.

그녀는 그 책을 들고 있었다. 그들이 회수한 표지가 없던 그 책. 보니까 책을 회수했던 몸통 없는 화석 앞에 서 있었다.

유스티나가 웃으면서 말했다.

“이 책에, 뭐가 적혀 있는지 알아? 인류의 기원에 대해서 적혀 있어.”

“유, 유스티나?”

“여기 적힌 바에 따르면 인간은 원숭이에서 진화하지 않았대.”

“더 읽지마!”

“인간은 ‘나비’에서 진화했대. 정확히는 퇴화라고 해야겠지. 우리는 나비의 날개를 자르고 인간으로 퇴화한 거야.”

금지된 지식을 읽는 유스티나의 등 뒤쪽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가 말했어. 그가 부르기 시작했어. 최초의 인간으로의 회귀(回歸)를. 위대한 존재로 도약해나가는 길을 내게 가르쳐준 거야. 나는 파랑색 날개가 갖고 싶네.”

“멈춰어어어!”

골레릭은 권총을 겨누고 유스티나의 머리를 향해 당겼다. 그러나, 그 뒤에 탄환은 빗나가 골레릭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너무 늦었다.”

유스티나의 껍질을 뒤집어 쓰고 있는 ‘무언가’가 깨어났다. 눈은 파랗게 빛나고 있었고 등에는 파란 나비의 날개가 활짝 펴져 있었다.

“아둔한 아인(亞人)이로구나.”

그것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목소리조차 굵고 허스키하게 변한 유스티나는 희미하게 웃으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는 대체 몇 만 년 후의 세계인 거지? 참으로 효율적이고, 천박하군. 더러운 공기가 느껴져.”

골레릭은 유스티나의 앞에서 화석으로 남은 고대 인류의 뼈가 완전히 사라진 것을 깨달았다. 어디로간 거지?

그리고 스스로 떠올리기에도 이상한 가정을 했다. 단단한 뼈가 흐물거리면서 유스티나에게 흡수되었을 지도 모른다.

“손가락이 다섯 개인 것은 적응이 되지 않는군. 그리고 너무 짧아. 이래서야.”

“죽어!”

탕! 탕! 탕! 탕!

방아쇠를 미친 듯이 당긴 골레릭은 유스티나의 주변에서 희미하고 투명한 방어막이 있는 것을 깨달았다.

탄환이 이리저리 튕겨 나가고 있었다. 유스티나는 골레릭을 완전히 무시하고 여전히 울리고 있는 오르골을 집어들었다.

“호,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겠는데 굉장히 잘 만든 장난감이군. 여기 걸려 있는 능력은. 음. 그래. 생물의 신체를 조종하는 능력인가. 추가로 기억을 봉인하는 능력에, 미래의 기억을 가져오는 능력도 있군. 우리 종족이 만든 물건인가? 왜 이렇게 조잡하게 여러 능력을 넣었지? 음?”

혼잣말을 하던 그 존재는 이상함을 느꼈다.

탕! 퍽.

유스티나의 두개골에 탄환이 박혔다. 그리고 그것은 골레릭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골레릭은 완전히 광인이 된 것처럼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귀를 막은 귀마개에서는 어째서인지 피가 흐르고 있었다.

“아인이여. 무슨 짓을 한 거지?”

“…….”

유스티나의 몸을 빌어 부활한 무언가는 골레릭을 전혀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골레릭은 두려움 속에서, 상대의 방어막의 능력을 파악해냈다.

강하게 날아오는 것을 튕겨내는 능력이었다. 그럼, 살살 쏘면 그만 아닌가?

MI7의 루터 식스에게 처음 가르치는 ‘살살쏘기’를 사용해서 방어막을 꿰뚫었다. 아음속 이하로 속도가 내려간 탄환은 방어막을 관통하고 두개골을 관통하진 못했지만 적중시키는 데 성공했다.

“!”

탄환의 충격량이 뇌에 전달되었는지 유스티나의 몸을 차지한 무언가의 한쪽 눈이 완전히 돌아가 백안을 드러내고 있었다.

“재밌구나? 아인이여.”

그 상태로 고개만 돌려서 초점 맞지 않는 눈동자로 골레릭을 바라본다.

“내게 이 정도의 피해를 입힐 줄이야. 이 세계도 그다지 만만한 건 아니겠어.”

‘무언가’는 생각했다. 부활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었다고. 아인을 너무 얕보고 있던 게 문제였다.

작은 충격에도 죽을 만큼 부활 이후의 그는 약해져 있었다.

‘그럼 또 부활하면 되는 게 아닌가?’

무언가는 자신의 영혼을 옮기는 비술을 사용해 총알에 그 영혼을 담아버렸다.

그와 동시에 그를 죽인 적을 저주할 방법을 찾았다. 오르골에 있는 기억 봉인 능력을 사용해서 상대의 기억을 봉인할 셈이었다.

오르골은 그를 지금 주인으로 인식하고 있으므로 당연히 따를 것이다. 오르골의 음악소리가 들린다. 골레릭은 귀를 막아둬서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너무도 안일한 오산이었다.

그 잊지 못할 멜로디가 계속 이어지고 기억이 완전히 사라진 골레릭만 그곳에 남아서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고 있었다.

“여긴……어디지?”

골레릭은 손을 뻗어서 아직도 울리고 있는 보석함을 잡았다. 보석함을 탁하고 닫은 다음 자신의 귀에 집어 넣어놨던 걸리적 거리는 천을 빼냈다.

“여긴 대체 어디야?”

주변을 둘러보다가 골레릭은 시체를 발견했다. 정확히는 시체라고 의심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피를 흘리고 있는 유스티나의 모습이었다.

정황상 골레릭은 자신이 유스티나를 죽인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어떤 위험 본능에 의해서 즉시 자리를 떴다.

*

“허억. 허억. 허억.”

기억이 되돌아왔다. 여태까지 어떻게 이걸 모두 잊고 있었는지 도저히 알 길이 없었지만 한 가지 만큼은 확실했다.

유스티나는 지금 매우 위험한 상태가 분명했다.

“너, 무슨 짓을 한 거야?”

그때, 유스티나가 말했다. 유스티나는 꼼짝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옆에 있던 큐레이터도 부들부들 떨면서 말했다.

“모, 몸이 안 움직여요.”

‘오르골의 효과야.’

골레릭이 생각하기에, 신체의 통제력을 잃게 만드는 건 오르골의 효과가 분명했다. 그런데 자신은 평소에도 이 오르골을 듣곤 했는데 별문제가 없었다. 그렇다면 간단하다. 주인을 제외한 대상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물건일 터.

예전에 오르골이 펼쳐졌을 때 유스티나의 몸을 뚫고 나왔던 ‘무언가’도 영향을 받지 않았던 이유겠지.

‘생각해보자, 이 오르골을 어떻게 사용하면 유스티나를 막을 수 있지?’

신체를 조종하는 능력을 어떻게 발동할 수 있을 것인가? 물어본다면 대답할 수가 없다.

강력한 기운을 물리력으로 전환해 발사하던 섬광절도 그 용도를 파악하고 암시장에서 내 돌던 물건을 샀을 뿐. 골레릭은 유물에 관해 전문가는 아니었다.

그때, 골레릭은 섬뜩해지는 기분에 몸을 피해 앞으로 굴렀다. 그리고 그 자리에 단검 한 자루가 꽂혔다.

‘어느새?’

신체의 통제력을 되찾은 유스티나가 단검을 던졌다. 골레릭의 기억상으로, 이 오르골을 듣고 있으면 신체는 무조건 봉쇄되었을 텐데. 어떤 변인이 있어서 유스티나가 움직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알지 못했지만 지금 유스티나의 기분은 최고조에 달했다. 머릿속에 깃든 탄환에서 엄청난 힘이 솟아나고 있었다.

“최고로 최고인 기분이다몽!”

오르골이 들리고 있는 동안, 처음에는 혀나 손가락만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손목도 움직일 수 있었다. 다음은, 상체를 움직일 수 있을 터였다.

유스티나가 점점 속박에서 벗어나려 하자 골레릭은 일단 위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올라간 뒤에 첼로 케이스에서 부품들을 마구잡이로 꺼냈다.

곧이어 부품들을 조립했다. 빠르게 움직이는 손을 정밀하게 조종해서 저격총을 만든다.

어쩌다 알게 된 미래 지식을 이용해 스스로 만들어낸 개조 총으로, 대구경의 탄환을 발사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그때 2층으로 유스티나가 들이닥쳤다. 유스티나의 얼굴은 더욱 창백해져서 얼핏 보면 유령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아하하하!”

광인처럼 웃으면서 단검을 던지는데 탄환보다 빠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밀성이 그다지 높지는 않아서 손쉽게 피해내면서 총을 쐈다.

팅!

쿠크리의 넓은 면을 펴서 탄환을 그대로 튕겨냈다.

“아, 힘 조절이 어렵다몽.”

머릿속에 깃든 탄환에서 계속해서 미증유의 힘이 전달되고 있었다. 그러나 싸우면서 그 힘을 조절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 유스티나는 계속해서 헛발질하거나 매우 정교한 공격을 연달아서 가했다.

정교하거나, 허점투성이거나의 공격은 여러 빈틈을 만들어냈다.

그 빈틈 사이로 어찌어찌 따라붙을 수 있었던 골레릭은 유스티나를 발로 걷어차 멀리 날려 보내고는 탄환을 장전하면서 말했다.

“유스티나. 내가 널 쐈다고 했었지?”

“근데?”

“그걸 누가 얘기해 줬지?”

“그야 루미너, 음? 루미너스가 얘기한 적 없었던가? 누구였지.”

유스티나는 단검을 던지는 것을 멈추고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너, 내 이름 기억나?”

“뭐?”

“내 진짜 이름 말이야.”

“?”“내가 누군지, 네가 누군지도 모르는구나.”

골레릭은 확신했다. 유스티나는 지금 정상이 아니었다. 그때의 기억은 전혀 떠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거기다 골레릭의 ‘진짜 이름’도 모르고 있었다.

그렇다면 기이할 정도로 빠르게 강해지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무언가’가 유스티나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유스티나에게 씌었던 ‘그것’이 아직도 그녀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 몰라. 내가 알 바야?”

재차 덤벼들려던 유스티나의 앞으로 미친 듯이 가시넝쿨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아으! 이거 뭐야?”

벽면을 관통해서 통로를 가득 메우고도 모자라서 계속해서 자라나는 것을 보니 비정상적인 생장 속도였다.

엄청난 식물의 생장. 이 능력은 유스티나가 가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골레릭은 그 즉시 위층으로 올라가면서 정비할 시간을 벌었다.

플로나는 모닝스타 끝에 대고 있던 손을 뗐다. 급속도로 식물을 생장시키는 권능은 그녀와 계약한 생물, 아에라푸스에게 빌려온 것이었다.

모닝스타에 식물을 두르고 싸우는 정도는 그다지 어려울 건 없지만 이런 식의 능력 전개는 플로나의 영성을 상당량 사용하게 된다.

위력적인 공격을 퍼부었으나 별 소득이 없다는 걸 깨달은 플로나는 역시 이런 식의 공격보다 근접해서 적을 쓰러트리는 것이 훨씬 낫다는 판단을 내렸다.

플로나가 2층에 박힌 가시를 타고 벽면을 뚫고 들어오자, 예상치 못한 공격에 한쪽 어깨에 가시가 박힌 유스티나가 플로나를 바라보았다.

“너, 뭐야?”

플로나의 붉은색 눈동자가 어두운 실내에서 안광을 번뜩이면서 유스티나를 바라보았다.

유스티나는 상대가 상상 이상의 강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재차 새로운 단검을 뽑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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