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1화 - 종탑 위의 저격수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준비는 이미 끝나있다.
저격수가 의뢰를 받은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타겟은 두 명. 하나는 샤를 헥센이라는 교수고 다른 한 명은 드레이크 박사라는 자였다.
의뢰한 제롬이라는 자는 이렇게 말했다. 둘 중 한 명이 무명교단의 교주일 확률이 매우 높다고.
그래서 첫 번째 타겟인 샤를 헥센을 없애기 위해 미리 준비를 해뒀다.
저격수는 종탑에서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타겟은 시청에 들렀다. 돌아오는 길에 자동차를 고장내 뒀으니 걸어오게 될 터. 마차를 타려고 하더라도 이 도로를 지나야지만 역참이 있다.
저격수의 예상대로 정확히 들어맞아서 타겟은 걸어서 이 길로 오고 있었다.
어디선가 들은 오르골 소리를 흥얼거리면서 방아쇠를 당겼다.
*
밖에 나가니 보니가 난감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주인님, 자동차가 망가졌습니다.”
“음? 그럴 리가.”
빌트워치가 깜짝 놀라서 다가갔지만 간단하게 고칠 수는 없을 것 같다고 했다.
하는 수 없이 마차가 있는 곳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빌트워치나 보니는 자동차가 수리되면 타고 오라고 전하고 먼저 집에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탕!
-쭈이인!
도로 한복판에서 수많은 사람이 돌아다니는 대낮에 저격당했다. 그럼에도 샤를의 머리는 멀쩡했다. 물리효과를 막아주는 브로치 때문이었다. 하지만 피해를 받은 것처럼 얻어맞은 즉시 휘청이듯 쓰러지면서 몸을 긴급하게 엎드리려 엄폐한다.
“꺄아아아아아악!”
“초, 총소리가 났다!”
“도망쳐!”
엎드린 샤를은 바닥에 나 있는 구멍을 봤다. 도탄 되어서 바닥에 박힌 탄을 살폈는데 가격한 것은 7.62mm탄환으로 추정된다. 국가에서 극비에 개발 중인 최신형 군용 소총에 쓰는 탄환의 크기와 같았다.
‘군용 소총이면 8발 내장 클립형 탄창을 쓰고 있을 거야.’
처음 탄환이 명중했을 텐데도 기이할 정도로 확장된 감각이 경고하고 있다. 지금 일어서면 또다시 저격당한다고.
상대는 연사를 가할 준비가 되어있다. 샤를은 그동안 게임 속에서 쌓아 올렸던 경험을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이 세계에서 그는 용병으로 뛴 적도 있었다.
총소리가 가격한 이후에 0.4초 늦게 울렸으므로 상대의 거리는 대략 1200미터. 유효 사거리의 세 배가 넘는 곳에서 저격했다. 직선상으로 뻥 뚫려 있는 공간을 살피면 여기서도 보이는 종탑에 적이 있을 확률이 높았다.
정신을 집중해서 종탑 쪽을 살피자 검은색 인영이 종 옆에 있는 것이 보였다. 점처럼 보일 정도로 거리가 너무 멀다.
상대의 정체는? 제롬일리는 없다. 제롬은 저격 능력이 전무한 근접형 수호자 전문화의 영성자다.
그럼 누군가 고용한 상대일 수 있다. 머릿속 데이터에서 1200미터 거리에서 지나가던 사람 중에서 샤를을 골라서 한 방에 맞출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갖춘 용병 리스트를 검색한다.
‘몇 명 있긴 하지만 이런 식으로 일 처리를 하지 않을 거야. 그럼 한 명으로 좁혀진다.’
골레릭 본브레이커. 지상 최강의 살인청부업자. 강력한 영성자이면서도 살인을 업으로 삼는 인간. 남자인지 여자인지 노인인지 어린아이인지 수수께끼에 가득 차 있는 살인청부업자가 지금 샤를을 노리고 있었다.
-쭈인! 저 저격수 놈 없애버릴까?
-여기서 마법을 쓰면 안 돼.
-그럼 어떻게 해?
-도망쳐야지. 대놓고 저런 짓을 벌였으니 벌써 경찰은 출동했겠고 영성을 사용했다면 광명교회에서 움직였을 거다. 나는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이 자리를 빠져나가면 돼.
종탑의 사각 밖으로 나가면 해결되는 문제였다. 샤를은 엄폐한 가게 건물 뒤쪽의 골목길로 포복한 채 엉금엉금 기어서 들어갔다.
이제 종탑에서는 보이지 않을 터. 최대한 빨리 이 장소를 떠나면 된다. 그 전에 샤를은 자신의 얼굴에 가면을 씌웠다. 혹시 발각되더라도 샤를 헥센이라는 신분에 문제가 생겨서는 곤란하니까.
그때 두 번째 탄환이 샤를의 이마를 가격했다. 이번에는 정중앙이다. 가면에 총알이 박힌 채로 부르르 떨고 있었다. 이마 한가운데서 연기가 피어오르자 순식간에 식은땀이 흐른다.
‘탄환이 날아온 방향이 전혀 달라.’
골레릭 본브레이커는 이름만 들어봤지 직접 마주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습격당하는 처지가 된 지금, 샤를은 상당히 곤란한 상태에 처해있었다.
‘종탑이 아닌가? 아니야. 종탑 옆에 있는 인영을 봤어. 어떤 방식으로든 탄환이 휘게 했거나 그사이 자리를 옮겼거나.’
둘 다 현실에선 불가능해도 이 세계에서는 가능한 일이었다. 두 번째 공격도 실패했다는 것을 알아채면 골레릭 본브레이커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공격할 거다.
‘방어막이나 물리적 공격을 막아내는 유물이 있다고 가정하고 다른 공격을 할 거야.’
화학적 공격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독극물을 사용하거나 가스를 던지거나. 그런 짓을 해도 어차피 골레릭은 잡히지 않을 테니까.
샤를이 잘못 생각했다. 도망치는 건 최선이 아니다. 역습하는 것만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샤를은 비틀거리면서 벽면을 짚었다. 타격을 입었다는 신호를 보내서 적을 기만하려는 행위였다. 세 번째 탄환을 쐈을 때, 나비 한 마리가 튀어오르더니 샤를이 사라졌다.
골레릭은 조준을 멈추고 방아쇠에서 손가락을 뗐다. 목표를 놓쳤다.
“사라졌어? 아니야. 시각적 교란이야.”
자신이 어느 순간 환영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 골레릭은 오른쪽 손가락을 깨물어서 피를 냈다. 환영을 간파하려면 고통을 느껴야 한다.
골레릭은 정신을 차리고 이곳저곳을 조준했다. 골목 여기저기에 미리 거울을 설치해뒀으므로 놓칠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때 거울 한쪽에 한 남자가 보였다. 정장 차림의 남자였다. 재차 조준하려는 찰나에, 방해꾼이 나타났다.
“와, 대낮부터 총질이라니 제정신이냐? 미친 거다몽?”
백발의 레이어드 컷의 여성이 몇 번의 도약으로 종탑 위로 올라섰다. 골레릭은 중얼거리는 이 여자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MI7의 유스티나 요원이었다. 벌써 2년째 유스티나는 골레릭만을 추적해왔다.
“끈질겨.”
“내 머리에 총알을 박아넣은 대가는 치러야지. 몽몽?”
유스티나는 자신의 이마를 가리키더니 다른 쪽 손으로 단검 세 자루를 들더니 허공에 집어 던졌다. 가장 빠르게 날아오는 단검은 탄환으로 쏴버리고 나머지는 소총의 개머리판을 휘둘러서 튕겨냈다.
“아까 보니까 천방지축 쏘기를 쓰더라? 벌써 살살쏘기 단계를 넘어갔구나. 빠르다몽.”
“무슨 헛소리지?”
“에? 기억 안 나는 거야? 우리 같이 배웠잖아. MI7에서.”
골레릭은 즉시 총을 버리고는 쿠크리를 거꾸로 들었다.
“미안하지만. 난 네가 누군지 기억 안 나.”
“그럼 기억 날 때까지 맞으면 기억이 날거다몽.”
유스티나의 단검이 빠르게 휘둘러진다. 쾌속하게 날아온 단검을 쿠크리로 막아낸 골레릭은 발차기로 유스티나의 옆구리를 걷어찼지만 가벼운 동작으로 회피했다. 유스티나는 동물적인 감각으로 회피하고 재차 공격했다.
“너 좀 약해진 것 같기도 하고. 아, 내가 강해진 건가?”
골레릭은 공격을 막아내면서 확실히 그렇다고 생각했다. 처음 만났을 때 보다 유스티나는 배로 강해져 있었다. 유스티나는 엄청난 속도로 골레릭을 때려눕히고는 발로 걷어찼다. 종탑에 부딪힌 골레릭이 굉음을 냈다. 크게 종소리가 울리니 골이 울릴 지경이었다.
유스티나는 양 팔을 활짝 벌리면서 미친 듯이 웃었다.
“난 말이야. 그날 네가 내 머리에 총을 쏜 다음에, 어째서인지 강해지기 시작했어! 대신 가끔 말할 때마다 뒤에 몽을 붙인다몽.”
“…….”
“하지만 그 정도의 대가를 치른 거면 너무 값싼 게 아닐까? 어떤 의미에서 나는 너한테 감사하고 있다고. 루미너스가 널 붙잡아오라고 하지 않았으면 아예 신경도 안 썼을걸?”
골레릭은 그 즉시 바닥에 연막탄을 뿌렸다.
“소용없어!”
유스티나는 연막 속에서 정확히 적의 위치를 파악하고는 단검을 던져서 골레릭의 가슴을 꿰뚫었다.
“어라?”
하지만 골레릭의 옷만 남아있을 뿐이지 골레릭은 보이지 않았다.
“없어졌다몽.”
유스티나의 감각에 주변 몇 미터를 찾아봐도 골레릭은 없었다. 마치 허깨비처럼 사라져버렸다.
“어떻게 도망갔지? 아 등 가려워.”
유스티나는 자신의 등을 긁었다.
*
샤를은 방금 있었던 기묘한 저격전 이후, 품에서 무언가 사라졌다는 걸 깨달았다.
“보관함…….”
다급한 와중 동전을 담아 두었던 보관함이 떨어진 것 같았다.
‘시내 한복판에서 공격당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그래도 들고 온 내 잘못이야.’
하지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의 샤를이라면 굳이 들고 오지 않아도 되는 거면 저택의 비밀 서재에 보관하거나 혹은 자신의 심상세계에 넣어두었을 터.
‘그렇게 조작된 건가.’
크기가 작으니 품에 넣고 다녀도 별 상관 없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했다.
괴테의 만년필에 의해 운명이 조작당할 때의 감각과 비슷했다. 샤를은 턱을 괴고 생각했다. 아직 파멸의 동전이라고 불리는 그것의 능력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다.
동전은 스스로 어떤 주인을 찾아갔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관함의 봉인이 풀리면 내게 신호가 오게 되어있으니 일단은 그전까진 내버려 둬야겠군.’
손에서 빠져나가면 빠져나간 대로 샤를에게는 계획이 있었다. 점술 방벽이 없는 이상 동전의 위치는 항상 샤를이 알 수 있다.
*
골레릭은 가볍게 유스티나에게서 도망친 뒤에 자신이 목표로 했던 타겟의 마지막 위치를 확인했다.
‘흔적은 거의 없어. 하지만 어디로 갔는지는 알겠어.’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거나, 혹은 무명 교단의 거점으로 갔을 거다. 골레릭은 바닥을 살피다가 이상한 걸 발견했다.
‘뭐지?’
작은 보석함 같은 것이 부적으로 인해 꽁꽁 봉인되어 있었다. 이건 아마도 타겟이 흘린 것 같다.
골레릭은 자신의 거점인 골목길로 되돌아와서 위자보드를 꺼냈다. 점술을 할 수 있는 도구였다.
골레릭은 점술에 전혀 소질이 없지만, 어느 정도 흉내는 가능했다.
평소에 사용하던 책을 펼쳐서 위자보드를 가져다 대면서 점술을 펼친 결과 이 물건이 위험하지만, 봉인을 풀지만 않으면 괜찮을 것이라는 결과를 얻었다. 그래도 역시 믿기 어렵다.
골레릭은 그것을 들고 현지 협력자를 만나러 갔다. 문데이크 거리의 99호에 있는 퇴폐적인 주점 겸 클럽이었다.
간판에 잭&셀린이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면서 걸어갔다. 이 근처에는 클럽이 하나뿐이다. 선데이크 거리와 너무 가까워서 치안이 안 좋은 데다가 새로 주점이 생길라치면 잭&셀린에서 견제를 하기 때문.
클럽 입구에서부터 여자들이 달라붙었다. 골레릭을 보고 호들갑을 떨었다.
“어머, 예쁘다.”
“귀족가의 따님이야? 근데 옷차림이 왜 그래? 비행기 조종사 같네.”
“여긴 왜 왔어? 너도 여기서 일하고 싶어?”
골레릭은 말없이 메달을 내밀었다. 그러자 반갑게 말을 걸던 여자들이 거짓말처럼 정색했다. 누군가 한 명이 나와서 골레릭을 안으로 안내했다.
아래로 내려가자 덩치 큰 여성이 골레릭을 흘겨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래로 내려가자 대마초 냄새가 자욱했다.
“안녕.”
“어머어머. 이게 누구야. 골레릭 본브레이커잖아.”
연금술사 파테스트로피는 축 늘어진 여자들을 옆으로 발로 차버리고는 곰방대를 꺼내서 안에 대마를 쑤셔 넣었다. 그리고 살짝 골레릭을 흘겨보았다.
“필래?”
“은신처가 필요해. 추적자가 있어.”
“어머, 누군데?”
“MI7.”
“요원님들이 웬일이래? 너 혹시 정치인 죽였어?”
골레릭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나랑 원래부터 알던 사이라는데.”
“저런. 기억을 잃기 전에 만났던 친구네.”
“내가 MI7 요원이었대.”
“뭐? 푸하하하하핫. 올해 들은 농담 중에 제일 웃겨 아하하하!”
파테스트로피는 눈물을 흘릴 정도로 깔깔거리더니 말했다.
“뭐 괜찮은 물건 없어? 알지? 달란트로 물건 안 받는거.”
“이건 어때?”
골레릭은 타겟에게서 주웠지만 여전히 조금 찜찜한 기분이 드는 보관함을 꺼냈다. 점술을 이용해서 위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은 알아챘지만, 역시 그냥 들고 있기에는 그렇다.
“이게 뭐지?”
“나도 몰라. 안에 뭐가 보관된 지도.”
“흐음. 뭐 이 정도면 괜찮은 것 같네. 은신처 열쇠야. 선데이크 거리는 조심해. 요즘 조각구원회 놈들이 거기서 설치거든.”
“조각구원회?”
“미치광이 사이비 교단.”
“흐음.”
골레릭은 키를 받고 사라졌다. 파테스트로피는 보관함을 보면서 이걸 개봉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