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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사이비 교주가 되었다-70화 (70/221)

제70화 - 샤를은 동전을 들고 바라보았다. 평범한 골동품 같지만 이건 상상 이상으로 사람을 파멸로 몰아갈 수 있는 유물이었다.

괴테의 만년필처럼 운명을 조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하나 묘한 게 있다. 카터 존스가 동전을 얻는 사건 자체는 샤를이 개입하지 않더라도 늘 발생하는 일이었다. 차원문을 열어 재끼는 칼튼 교수처럼.

‘그런데 카터 존스의 동전이 내게로 왔다. 이건 뭘 의미하는 거지?’

일반적인 스토리 전개상 샤를은 카터와 엮이지 않고 엮이더라도 이 동전은 샤를의 손에서 벗어나게 된다.

쨍그랑!

그때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나서 샤를이 깜짝 놀라 돌아보았다.

“아, 죄, 죄송합니다.”

하녀 한 명이 복도에 전시되어있는 도자기 하나를 깨 먹었다. 최소 500파운드짜리 도자기가 허공으로 증발하는 걸 보고 샤를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이 동전, 오래 가지고 있으면 내 재산이 계속해서 사라질 거야. 재운을 깎아 먹으니까.’

큰 소리에 제이큰이 나타나서 벌벌 떨고 있는 하녀에게 뭐라고 하려고 하자 샤를이 막았다.

“다음부턴 주의하도록 해. 깨 먹은 건 변상하지 않아도 좋아.”

“관대하신 처벌이군요.”

제이큰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샤를은 당장 서재로 향했다.

하녀가 도자기를 깨 먹은 것은 굉장한 우연이 겹쳐서 그렇게 되었을 테지만 계속 가지고 있으면 이런 재물을 잃는 우연이 계속해서 일어나게 될 것이었다.

“봉인, 봉인, 봉인.”

비밀 서재로 빠르게 내려가서 창고를 열었다. 성배 조각품에서 자신의 영성이 잔뜩 깃든 물 한 컵을 뜬 다음 반지를 보관할 정도로 작은 함에 담았다.

그리고 그 아래에 동전을 집어넣고 특수하게 처리된 부적을 이용해서 보관함의 틈에 테이프 붙이듯이 철통같이 막았다.

샤를은 진땀을 뺐다. 일단 기본적인 봉인처리는 끝마쳤다.

-봉인했어?

-완벽한 봉인은 아니야. 빠져나오는 능력을 막아낸 것뿐이지.

이것도 암흑성도회의 비술로 ‘오염’되었으므로 성배 조각품을 정화한 것처럼 정화를 해야 지배의 권능을 행사할 수 있었다.

-그 노인네는 왜 이런 걸 뿌리고 간담?

-감당할 수 있는 사람한테 넘기는 건 현명한 일이지.

아미티지에게 선택의 여지는 여러 개 있었을 거다. 그에게 맡기지 않고 다른 동료들에게 넘겨줬을 수도 있다. 그런데 샤를을 골랐다는 것은…….

-어쩌면 유물이 소유자를 고르는 걸지도 몰라.

-소유자를 고른다니 무슨 말이야?

-특정 유물은 어떤 조건을 가진 사람에게 가게 되어 있어.

샤를은 곰곰이 생각했다. 제롬에 의해 변해버린 동전. 이 동전은 특정 조건을 가진 사람에게 온다.

그럼 그 조건이 뭘까? 카터 존스를 비롯한 여러 사람의 공통점. 그때 머릿속이 전구가 켜진 것처럼 환해졌다. 공통점이 있다.

‘위기.’

물리적인 위기가 닥쳐올 사람에게 동전이 옮겨가는 게 아닐까?

아미티지의 말로는 카터 존스의 손에 넘어오기 전에 어떤 손님이 넘겨줬다고 했다.

그 손님은 죽었다. 카터 존스는 동전을 얻고 나서 여러 차례 다쳤다고 한다. 넘어지거나 하는 등의 방식으로.

그리고 아미티지는 오늘 샤를에게 오면서 마차 사고가 날 뻔했었다.

‘그럼 나에게도 어떤 사고가 날 수 있겠지.’

아마도 그럴 확률이 높다. 샤를은 잠시 생각하고 있는 도중에 누군가 또 왔다는 연락을 들었다.

“카터 존스?”

“아, 하하. 안녕하십니까?”

그는 동전을 손에서 털어낸 이후로 부쩍 밝아진 것 같은 표정이었다. 응접실에서 가볍게 커피를 마시면서 대화를 나눴다.

“덕분에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잘 됐군요.”

샤를은 속내를 감추고 싱긋 웃었다. 카터가 물었다.

“소재 가공 의뢰라고 하셨죠?”

“그렇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아라크네의 실이죠.”

“실? 얼마큼 됩니까. 아라크네의 실은 좋은 가공 재료지만 양이 적고 한정적인 자원이죠.”

샤를은 서랍을 여는 척하면서 심상 세계에 보관해놨던 아라크네의 실뭉치를 꺼냈다.

“상당한 양이군요. 충분히 실만으로 가공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형태를 원하십니까?”

“이 정도의 실이면 어느 정도나 만들 수 있죠?”

“대략 상의와 하의 정도는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른 재료를 더 가공해 넣으면 전신에 착용할 수 있도록 제작할 수 있겠군요. 형태는 어떤 식으로 원하십니까?”

“정장으로 해주시죠. 상의, 하의, 조끼, 외투까지.”

“보통 다른 재료가 들어가면 추가 금액이 들어가지만, 이번에 절 구해주신 보답으로 그건 제해드리겠습니다.”

그럴 거면 공짜로 하지? 샤를은 그런 생각을 했으나 내색하지는 않았다. 동전의 영향에서 벗어났어도 당장 카터는 돈이 쪼들리는 상황이 맞을 테니까.

*

오늘도 오컬트 수사본부는 한가했다. 수사부라고 해도 그 혼자뿐이긴 했지만.

더글라스는 하품을 하면서 펜을 들고 머리를 긁었다.

“내가 왜 이걸 하고 있지?”

에브렌 린덴의 저택에서 흉험한 일이 일어난 이후 린덴 가문의 사람들을 전부 찾아달라고 공문을 보낸 지가 언젠데 아직도 처리가 안 되고 있다.

경찰국에서 더글라스의 영향력은 극히 미미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회의감도 든다.

“하아.”

더글라스는 등받이에 등을 받치고 빙글빙글 돌았다.

그때, 누군가 그의 뒤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경기를 일으켰다.

“끼요오오오오옷!”

거기에는 머리카락이 하얗게 탈색된 여성이 있었다. 귀신처럼 나타나는 바람에 너무 놀라서 계집애처럼 비명을 질러버렸다.

“귀아프다몽.”

“너, 너, 너.”

더글라스는 뒤로 넘어지면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두툼한 지방 때문에 다친 곳은 없지만, 심장이 안 좋다.

“너, 너, 너, 유스티나. 너 왜 여기에?”

“흐응. 루미너스에게 얘기 못 들었어? 며칠 전에 공문서 보냈을 텐데.”

“고, 공문서?”

더글라스가 놀라서 옆에 있는 수북하게 놓여 있는 서류 더미를 뒤졌다. 최소 하루 전부터 최대 1달 전까지 온 서류들이다.

“그나저나 여전히 더럽게 산다몽. 돼지우리 그 자체네.”

책상 모서리를 긁으니까 먼지가 수북하게 나온다. 유스티나는 자신의 손가락에 묻은 먼지를 훅 불었다.

“너, 그거 알아? 지상 최강의 암살자.”

“아, 암살자?”

“정확히는 살인청부업자다몽.”

“그 정도는 알지. 골레릭 본브레이커를 말하는 거 아닌가? 그 수배되었다는.”

“그놈이 우리나라에 입국했거든. 하으암. 며칠 전에 말이야.”

“뭐? 그거 큰일 아닌가.”

“그렇게 말한다고 해도 댁과는 전혀 관계없는 일이지만.”

유스티나는 옆에 있는 소파에 털썩 드러누웠다.

“아 등이 가렵네. 난 잔다몽.”

“아니, 니가 왜 왔는지는 얘기해줘야지?”

“zzz”

잠에 푹 빠져든 유스티나를 바라보면서 더글라스는 이를 갈았다. 이 녀석도 똑같다. MI7에 소속된 요원.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놈이었다. 더글라스에게 벽을 가르쳐준, 인간 같지도 않은 수사관 중의 하나였다.

골레릭 본브레이커가 오고 유스티나도 왔다. 그럼 뻔한 일이지. 유스티나가 골레릭을 추적하는 것이 분명했다.

“내 즐거운 경찰 생활이 어그러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군.”

빈둥대면서 노는 시간이 점차 줄어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

샤를은 포드사의 빌트워치와 함께 메트로폴 중심가로 향했다. 메트로폴 시청이 그곳에 있었다.

거대한 시청 건물의 주변에는 좀 큰 공원이 있었다. 공원을 돌아서 자동차는 시청 안쪽에 자리를 댔다.

빌트워치와 함께 시청으로 들어가자 경비원들이 가볍게 몸수색을 했다. 총이나 검 같은 물건들은 전부 심상 세계에 보관해뒀으니 별로 문제 될 건 없었다.

“어서오게나.”

“반갑습니다. 시장님.”

시장은 전형적인 높으신 분이었다. 살이 뒤룩뒤룩 찐데다가 전신에 명품을 도배하고 비싼 목걸이와 수십 개의 보석 반지를 끼고 비싼 시가를 가져다 피는 남자.

페르시안 품종의 고양이가 고급스러운 카펫 위를 걸어 다닌다. 방 어딘가에 사향 주머니가 있는지 특유의 향냄새가 난다.

그의 앞에 명표에는 틸 크로포드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오, 어서오시게나. 포드 사의 사장은 누구지?”

“저, 접니다. 시장님.”

빌트워치가 바짝 긴장한 듯 몸을 낮추면서 걸어갔다. 시장은 크게 웃으면서 그를 칭찬했다.

“이런 훌륭한 물건을 개발한 개발자가 그렇게 의기소침해 있으면 안 되지. 자 앉게.”

“예. 예.”

“난 이 마차라는 것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 그야말로 똥을 양산하는 똥덩어리들 아닌가? 자동차라는 것은 꽤 고급스러워 보이고 괜찮아 보인단 말이지.”

그 말에 얼굴이 부쩍 환해진 빌트워치가 자동차의 제원을 얘기하면서 얼마의 속도로 갈 수 있다는 등 자신만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시장의 표정에서 이놈, 전형적인 공돌이군.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흥미가 사라진 그가 눈을 돌려서 샤를에게 가져갔다. 그리고 씨익 웃었다.

“그래. 잘 들었네. 그런데 저쪽에 있는 자네, 이름을 아직 못 들었는데.”

“샤를 헥센입니다.”

“포드사의 사주나 마찬가지라고 들었네만? 자네의 지분 말이야.”

“그런 셈이죠. 하지만 경영권에는 간섭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샤를이 얘기하자 틸 크로포드 시장이 씨익 웃었다.

“그런데 자네는 헥센 가문과는 어떤 관계가 되나?”

“…….”

이건 알고서 묻는 거다. 샤를에게서 대답이 없자 그가 말했다.

“내가 듣기로 그 집에 아들은 둘밖에 없다고 들었는데.”

“정확히는 넷입니다.”

“아, 자네가 그 사생아중에 하나로군.”

샤를 말고도 사생아가 한 명 더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서 총합 넷.

샤를을 멸시하는 듯한 어조였지만 그는 이게 시장의 노림수라고 느꼈다. 단순히 감정에 휩쓸려서 말하는 어리숙한 놈인지 아니면 냉정하게 사고할 수 있는 놈인지.

“자네는 좀 쓸만하구먼. 자네의 두 이복형제와는 다르게 말이야.”

순간적으로 시장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역시 높은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은 다 이유가 있는 법이었다.

“자, 이제 사업 얘기나 해볼까. 나도 투자를 좀 하고 싶네만.”

“포드사에 투자를 하고 싶으시다는……?”

빌트워치는 놀라서 되물었다.

“그 자동차라는 물건 말일세. 하루에 몇 대나 생산할 수 있나?”

“지, 지금은 제가 손수 제작하고 있어서…….”

“저런. 언제까지 그럴 수 있겠나? 생산라인을 증설해야지. 공장도 세우고 일꾼도 고용하고 말일세. 회사의 확장일세.”

빌트워치의 목울대가 꿀꺽하고 넘어갔다. 샤를은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희미하게 웃었다.

사업의 이야기가 끝난 뒤로 틸 크로포드 시장은 빌트워치를 내보낸 다음, 샤를과 대화하기를 원했다.

샤를은 그가 뭘 원하는지 궁금했으므로 자리에 남았다.

“자네는 사생아니, 본가와 그다지 친하지 않겠지? 그렇지?”

“그런 편이죠.”

“그럼 이 정보도 모르고 있겠군. 자네 아버지의 상태가 안 좋다는 것 말일세.”

“예?”

샤를의 아버지라면 지금 헥센 가문의 가주인 요하네스 헥센을 말하는 것이었다.

“워낙 요하네스 그자가 폐쇄적인 자라서 다들 모르고 있겠지만 내 소식통에 의하면 요하네스 헥센의 건강이 위중한 상태라더군. 췌장암이라던가?”

샤를은 얼마 전에 아버지의 측근이 보낸 편지를 떠올렸다. 그 편지에는 신년에 있을 모임에 참석하라고 적혀 있었다.

‘흠. 요하네스 헥센은 원래 스토리를 따라간다면 세상이 끝날 때까지 멀쩡하게 살아있어. 그런데 건강이 위중하고 나까지 부른다고? 뭔가 이상한 부분이 있군.’

샤를이 그동안 했던 일 들 중에 무언가가 운명을 바꿨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왜 그런 걸 말씀해주시는 건지 의도가 궁금하군요.”

“나는 헥센 가문에 궁금한 게 많은 사람이야. 자네도 자네 가문에 궁금한 게 꽤 많겠지?”

“아뇨. 저는 없습니다만.”

틸 크로포드는 샤를의 희미한 웃음을 간파해보려고 했지만 그의 눈썰미로도 소용이 없었다. 샤를에게서는 감정이라는 것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것 같다.

이렇게 자신의 내면을 잘 숨기는 사람에게는 절묘하게 허를 찌르는 것이 좋지만, 요하네스 헥센이 위중하다는 사실로도 샤를의 내면을 간파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자 그는 더욱더 이 젊은 헥센에게 흥미를 느꼈다.

“우리는 꽤 친해질 수 있을 것 같군.”

“그렇습니까?”

“다음에 또 보세나. 그때는 더 재밌는 일이 있을 거야.”

샤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크로포드 시장이 샤를에게 관심을 보인다. 그럼 이것저것 알아낼 것이 분명했지만 그래도 무명 교단과 자신을 연결하지는 못할 것이었다.

그리고 돌아가려던 차에.

탕!

어디선가 날아온 탄환이 샤를의 관자놀이를 가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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