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사이비 교주가 되었다-68화 (68/221)

제68화 - 저번에 에메랄드 브로치를 뚫고 타격을 가하는 미치광이 터미네이터를 만난 이후로 샤를은 자신이 가진 아라네아의 실을 제대로 써줄 만한 사람을 찾고 있었다. 그라면 충분한 자격이 있다.

그리고 샤를은 이 남자를 어떻게 영입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의 고민을 해결해주면 된다.

게임상에서 이때쯤 그는 기묘한 동전을 얻어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그가 떠나기 전에 그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십니까?”

“예? 아, 안녕하십니까. 무슨 볼일이라도?”

“만능의 재단사라는 이명을 듣고 처음 봤습니다. 당신의 명성을 알고 있습니다. 제가 가진 소재의 가공을 의뢰할까 하는데요.”

“그게 좀…….”

“곤란한 일이 있으신 것 같군요.”

“휴우. 네 그렇습니다.”

샤를은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제가 처리해드리죠.”

“예? 무슨 일인지 아시고요?”

“이번 주 수요일. 메트로폴 서부의 플뢰레 공원으로 나오십시오. 그럼 가지고 계신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겁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그리고나서 제가 할 의뢰의 대금입니다.”

샤를은 금 달란트 셋과 남은 동 달란트를 건넸다. 엄청난 금액에 재단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원래 그는 이 정도의 돈도 쉽게 벌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상황이 꼬이고 꼬여 빈털터리였던 것. 그야말로 가뭄 앞의 단비였다.

“이걸로 급한 불은 끌 수 있을 겁니다.”

“나, 나를 미리 알고 있던 겁니까?”

“아뇨. 우린 오늘 여기서 처음 만났죠. 난 당신을 오늘 처음 봤고요. 하지만 당신이 곤란에 처해있고 이게 필요할 거라는 건압니다.”

“이, 이건.”

“명심하세요. 이번 주 수요일에 플뢰레 공원에 나가야 합니다. 일이 잘 풀린다면, 메트로폴 교외에 있는 샤를 헥센 교수의 저택으로 오십시오.”

샤를은 능숙한 점쟁이처럼 말하면서 카터 존스의 앞주머니에다가 자신의 명함을 꽂아 넣었다.

만능의 재단사, 카터 존스는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몰라서 눈만 깜빡거리고 있었다.

‘평범한 사람은 아닌 것으로 보여. 하지만 그를 믿어도 되는 걸까?’

샤를이 가진 기이한 매력은 가면으로도 가려지지 않았다. 왜인지 모르게 카터 존스는 샤를 헥센과 한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인지도 몰랐고.

고개를 내려보자 주먹에 꽉 쥔 달란트가 반짝거렸다.

*

수요일 새벽이 되자마자 카터는 외투를 걸쳐 입고 플뢰레 공원을 향해 걸어갔다.

그는 급하게 공원을 향해 걸어가다가 넘어져서 손바닥에 상처가 났다. 영 재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밀 경매장에서 만났던 어떤 영성자는 그에게 마치 미래를 일러주듯이 말해주었다. 그를 믿는 건 아니었지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기 때문에 반쯤 믿고 싶은 마음으로 이 공원에 나왔다.

“하아.”

그는 벤치에 앉아서 미끄러지듯 의자에 등을 기댔다. 어쩌다 삶이 이렇게 변해버렸는지.

문제가 생긴 것은 얼마 전에 받았던 대금이었다. 정확히는 대금 대신 받았던 물건이었다. 오래된 유물처럼 보이는 동전.

원래는 달란트 이외는 받지 않지만, 꼭 좀 받아달라고 부탁하더니. 동전을 담보로 나중에 달란트를 주겠다고 약속한 손님은 다음날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어 있었다.

‘젠장.’

이 동전의 능력이 무엇인지 알 수 없으나 부작용은 확실히 알았다. 적어도 두 가지 이상의 부작용이 있다. 일단 금전적인 부분에서 문제가 생긴다.

대금이 갑자기 밀린다던가, 재료가 들어오지 않아서 고생하게 된다. 그 때문에 다음 일이 밀리고, 밀리고를 반복해서 카터가 쌓은 커리어에는 흠집이 심하게 났다.

지금 그는 빈털터리 상태. 비밀 경매장에서 만난 그 남자가 준 돈도 없었다면 당장 밥을 사먹을 돈도 없었을 거다.

그리고 동전을 그에게 건네주고 죽은 이 전의 손님을 미루어 볼 때, 또 하나의 부작용은 혹시라도 동전을 손에서 떼면 죽는 게 아닐까? 그런 공포감이 들어서 도저히 동전을 떼 놓고 다닐 수가 없었다.

카터는 정오가 될 때까지 그 벤치에 앉아있었다. 대체 자신이 뭘 하는 건지 모르겠어서 자리를 뜨려고 할 때쯤, 기묘한 노인이 나타났다.

노인은 그를 슥 보더니 손을 내밀었다.

“예?”

“카터 존스?”

카터는 퍼뜩 정신이 들었다. 이 남자가 혹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닌가?

“그걸 줘보게.”

하지만 불안한 나머지 동전을 건네주는 대신 손에 쥐고 있었다. 노인은 돋보기를 꺼내서 카터의 손에 놓인 동전을 이리저리 살폈다.

“고 헤르메스 시대의 동전은 아니야. 보니까 여명기에 있었던 동전이군. 롬 제국의 동전이라고 할까.”

“이, 이게 뭔지 아십니까? 혹시 탐구자십니까?”

“그렇다네. 동전을 몸에서 떼어놔도 별로 문제는 없을 걸세.”

“하, 하지만 이 동전을 미리 가지고 있던 손님은 동전을 떼놓고 나서 곧바로 죽었습니다.”

“우연의 일치지. 보통 유물은 부작용이 하나밖에 없다네. ‘특별한 유물’이 아닌 이상 말이지.”

노인은 동전을 세세하게 훑었다. 그리고 말했다.

“동 달란트 3개.”

“예?”

“완전한 감식 및 대처법에 관해서 가르쳐주지. 10분이면 충분해.”

돈? 샤를에게서 받은 달란트가 있어서 그걸 건넸다. 받은 노인은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동전에서 손을 떼도 상관없다네.”

“하, 하지만.”

“나는 탐구자야. 유물을 연구하는 사람이지. 날 믿지 못한다면 자네는 다른 탐구자를 알아보게나.”

“하겠습니다.”

조심스럽게 동전을 그에게 건넨다. 그의 말 대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노인은 돋보기로 동전을 보거나 무어라 중얼거리면서 손수건을 꺼내 동전을 닦기도 했다.

잠시 뒤 그가 말했다.

“이건 롬 제국의 동전의 형태를 띤 유물이고 이름은 행운의 동전이라네.”

“네? 행운?! 지금 장난합니까? 난 부자였습니다. 근데 그 동전을 얻고 나서부터 돈이 미친 듯이 사라지더군요.”

카터는 화가 나서 소리쳤다. 저 동전을 얻고 난 뒤로 되는 일이 없다.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다가 그가 돈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커리어에 먹칠까지 했다.

‘이거 돌팔이 아니야?’

노인은 손바닥을 펴보이며 그를 진정시켰다.

“진정하게나. 행운에도 종류가 있지. 돈이 들어올 재물운이라던가, 연인을 만날 연애운이라던가 있잖나? 그 중에서도 이 동전은 인연운을 극대화하는 동전이라네.”

“인연운? 누군가 좋은 사람을 만날 거라는 행운입니까?”

“그렇다네. 근래에 좋은 사람을 만난 적이 없나?”

“그러고보니.”

카터는 상황이 악화되는 동안 여러 고위층 사람들을 만났었다. 그들은 카터를 구명해주진 못했지만 도와줄 만한 가능성이 있었다.

또, 샤를 헥센 교수라고 자신을 밝힌 한 남자는 그를 구해주기까지 했다.

“인연운을 얻는 대신 그 대가로 부작용은 자네가 익히 경험하다 싶이 재물운이 극도로 망가지는 거야. 부작용이 점점 더 심해지면 다른 운도 심각하게 망가질 거고. 내게 오는 게 더 늦었더라면 자네는 더 극심한 빈털터리가 되었을 걸세.”

“어, 어떻게 해야하죠?”

“당연하게도 동전을 버리면 되지. 내가 이 동전을 사는 게 어떤가? 은 달란트 10개로 사겠네. 그 뒤 내 방식으로 봉인하지.”

“……가져가십시오.”

노인이 그걸 사겠다고하자 카터는 즉시 수락했다. 볼 것도 없었다. 저 유물 때문에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공짜라고 해도 줄 수 있다.

“근데, 당신 이름이 뭡니까. 내 인연운에는 당신도 포함되어있던 것 같군요.”

“하하. 나 말인가? 아미티지라고 부르게나.”

카터는 가볍게 아미티지와 악수를 했다. 아미티지는 동전을 받고 나서 그 즉시 특별한 함에 보관했다.

카터에게 말은 그렇게 했어도 이 동전, 생각보다 뭔가 더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뭔가 이상해. 이 동전, 그냥 유물은 아니다. 특별한 유물이야. 능력이 더 있을 거다.’

그는 탐구자 특유의 호기심으로 자신의 서재에 가져와서 동전을 분석했다.

그리고 다음날 메트로폴 타임지 1면에는 자동차에 대한 소개 기사가 떴다. 그리고 아미티지 교수가 샀던 마차를 제작하는 회사의 주식은 끝도 없는 나락행 열차를 탔다.

*

저택에서 쉬고 있던 중에 제이큰이 다가와 편지를 내밀었다.

“주인님, 새 편지가 있습니다. 이 편지는 본가에서 온 겁니다.”

“본가?”

샤를의 눈동자가 차갑게 식었다. 본가에서 온 거면 거의 대부분 그 여자에게서 온 거다.

샤를의 양모이자 현 가주의 부인. 편지를 찢어버릴까 하다가 그래도 내용물은 보고 나서 버릴 생각이었다.

“응?”

근데 편지의 발신인이 조금 다르다. 샤를의 현 가주이자 아버지의 측근인 데오그란트의 서명이 있었다.

“아버지가?”

“가주님께서 편지를 보내셨습니까?”

“정확히는 집사가 보냈지. 제이큰. 나가봐.”

샤를은 편지를 뜯어서 내용물을 읽었다.

『샤를 도련님께.』

『다음해 신년에 헥센 가문의 모든 사람이 모이는 자리가 있습니다. 주인님께서는 도련님도 이 자리에 참석해주시길 원하고 있습니다. 부디 이 자리에 오셔서 자리를 빛내주시길 바랍니다. 데오그란트 올림.』

헥센 가주가 편지를 보낸 적이 있었나? 샤를은 게임 플레이를 떠올리다가 생각했다.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근데 보통 무시해버렸는데, 샤를은 어째서인지 참석하겠다는 답장을 썼다.

신년이라면 이제 두 달 정도 남았나. 샤를은 펜을 놓고 ‘샤를 헥센’이 왜 대체 자신의 가문을 그렇게 증오하는지 떠올렸다. 그건 그의 어머니의 죽음으로부터 비롯된 일이었다.

펜으로 톡톡 책상을 두들겼다. 그 사건은 항상 샤를의 정신에 문제가 생기면 플래시백처럼 일어나곤 했다.

그의 어머니 샤를로테는 이 저택에 돌아온 뒤 헥센 가문을 저주하면서 자살했다. 이유는 전혀 알 수 없었다. 그게 마음에 걸린다.

회상에 잠기려던 찰나에 플로나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샤를님. 다음 일정이 있습니다.”

“아, 나갈게.”

샤를은 중절모를 머리에 쓰고 정장을 입었다. 오늘은 조금 힘을 줘서 차려입었다. 평소의 정장 같더라도 흠잡을 곳은 찾을 수 없을 것.

그때 누군가 외부인이 저택 안에 들어와 있었다.

푸른 눈동자에 금발 머리카락을 가진 소녀, 리카 웹스였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오랜만에 만난 리카는 예전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이전처럼 무구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무언가 깨달은 사람의 눈이었다.

“오랜만이네.”

샤를은 희미하게 웃었다. 리카 웹스는 영성자가 되었다.

플로나가 차가운 눈동자로 리카를 노려봤지만 정작 리카 본인은 그걸 눈치채지 못했다.

‘역시 플로나를 두고 가길 잘했어.’

어마어마한 질투심이 느껴지는데 플로나랑 리카를 같은 공간에 내버려 뒀다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플로나에게는 오늘 할 일이 따로 있었으므로 이번 일은 샤를 혼자만 간다.

샤를의 차를 타고 리카와 함께 움직였다.

리카는 무어라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지만 그걸 참아내는 표정이었다. 샤를은 그걸 눈치챘지만 말을 걸지는 않았다.

그 사이 자동차는 메트로폴 중심가 근처에 있는 쥬빌리 거리로 향했다. 도심 중서부의 고급 주택 단지들이 위치한 곳으로 윈즈강이 잘 보이는 강변가였다.

고위 공직자나 성공한 사업가들이 사는 부촌이라고 할까. 현대로 치면 한남동 비슷한 곳이려나. 그곳에서도 샤를이 도착한 곳은 웹스 가문의 저택이었다.

상당히 크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저택으로 입구 옆에는 향나무들이 있었다.

“향나무?”

샤를이 조용히 중얼거린 것을 리카가 어느새 알아챘는지 대꾸했다.

“예쁘죠? 아빠의 변호사 개업 축하 선물로 삼촌이 가져왔었는데 금세 자랐어요.”

“그렇구나.”

루크 웹스의 변호사 개업은 약 20년 전의 일일 것이었다.

담장을 살짝 넘긴 나무들이 약 20년쯤 된 향나무인가. 샤를은 마차에서 일어났다. 리카가 먼저 내리기 전에 내려버렸다. 그리고 뒤를 돌아서 숙련된 집사처럼 한쪽 팔을 뒷짐 지듯 지고 다른 팔을 내밀었다.

“가실까요.”

“고맙습니다.”

리카는 희미하게 웃었다. 샤를 나름의 인사다. 싸우지도 않았는데 왠지 화해한 것처럼 느껴졌다.

저택 내부로 들어가자 아름다운 정원이 보였다. 샤를은 아름다운 정원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느낌을 받았다. 그의 영성을 눈에 집중해 바라보자 꽃들의 배치 구조가 특별한 규칙에 따라서 이뤄져 있는 것으로 보았다.

아마도 이 안은 샤를의 저택만큼이나 함정으로 도배가 된 장소겠지. 보통의 어중이떠중이라면 저 정원에서 정리당할 거다.

‘결계로군. 사악한 것의 침범을 막는 식의 결계. 아마 4대 악신은 이런 방식으로 생성된 결계를 가볍게 뚫고 들어오겠지만, 그 이하의 악령이나 저주, 영성자의 침범을 막도록 설계되어 있어.’

누구인지 몰라도 괜찮은 영성자의 작품이었다. 아마 단순한 영성자는 아닐 테고 광명교의 사제나 재단 소속의 영성자, 어쩌면 초빙된 마도사 일지도 모르겠다.

“어서오십시오 아가씨.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저택 입구에서 느긋한 표정의 노인 집사가 그녀를 맞이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안으로 들어선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