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6화 - 아미티지가 무명 교단에 관심을 보이자 샤를이 말했다.
“그렇다면 어쩌시겠습니까?”
“나는 무존자라는 신을 들어본 적이 없다네. 고서에서 본 적이 없었고. 그러나 내가 모든 걸 아는 건 아니지.”
“그럼, 진짜 무존자를 보게 된 다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무명 교단이 실재한다면 무존자 또한 진짜 일지도 모르지.”
“당연하게도 진짜죠.”
샤를이 희미하게 짓는 미소에서 아미티지는 섬뜩함을 느꼈다. 진짜 무존자가 존재한다면 메트로폴에 있는 영성자들의 세력 구도가 변하게 될지도 모른다.
또 다른 사악한 신의 재림이 될 것인가? 아니면 물리 세계에는 관심 없는 중립적인 신이 될 것인가.
“하지만 저희 교단은 다른 교단과는 다릅니다. 인신 공양도 없고 범죄를 저지르지도 않죠. 이단이라면서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지도 않습니다. 그냥 단순히 무존자께 기도를 드리는 것뿐입니다. 그분이 들어주시는지는 차치하고서라고요.”
“대체 왜 교주가 된 건가 자네는.”
아 글쎄, 눈떠보니 내가 게임 속에 들어와서 사이비 교주가 됐다니까요, 라고는 당연하게도 말할 수 없었다.
그러니 그의 궁극적 목표를 알려주는 것으로 그를 회유하기로 했다.
“이 세상은 언젠가 멸망합니다.”
“멸망?”
“사악한 악신들에 의해서 혹은 또 다른 이유로 세상이 멸망합니다. 저는 그 수많을 가능성을 없애기 위해서 무명 교단의 교주가 된 겁니다.”
샤를의 웃음에 아미티지는 진실로 이자가 세상을 멸망한다는 것을 믿고 있을 만큼 미쳤으며 도저히 그가 가늠할 수 없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것을 인지했다.
아미티지는 그동안 많은 유물들을 봐오면서 그것의 위험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는 위험한 것일수록 더 그것에 이끌렸다.
“날, 무명 교단에 끌어들일 생각인가?”
“어떻습니까?”
“다, 당장은 자네를 믿기 어렵네. 하지만 오늘 한 일을 생각하면……. 자네가 그렇게까지 위험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아. 협력하지.”
아미티지가 내민 손을 샤를이 잡았다. 그들에게는 샤를의 교단이 가진 인력이 필요했고 샤를은 비밀장서고의 책들에 담긴 지식과 영성자들의 협력이 필요했다.
아미티지와 비밀장서고는 교단에 소속되어 있지는 않지만 외부 협력체 정도로 느슨한 관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어쩌면 그들과는 이 정도가 최선일 것이다. 아직 무존자의 힘을 현실로 투사하지 못하는 상태. 진실 된 힘을 드러낼 수 있다면 그를 영입하기도 어렵진 않을 것이었다.
*
조각구원회의 신도 데이저스트는 열차의 선로에서 그의 주인을 건져냈다.
전신이 박살 났지만, 놀랍게도 그는 아직까지 살아있었으며 기계 심장은 미친 듯이 뛰면서 신체의 조직들을 재생하고 있었다.
열차에 깔려서 엉망진창이 되었던 철제 골조가 복구되고 그 위로 피부가 저절로 합성된다. 하지만 회복 속도는 터무니없이 느리다.
사실 인간이었으면 이미 죽었어야 정상이었긴 했다. 아니, 영성자였어도 죽었어야 정상인 상황이었는데 요나스는 그 상황에서도 살아남았다.
요나스의 이마에서 뽑아낸 철골은 두개골을 관통했으나 기계 심장은 뇌조직마저 재생하고 있었다.
정신이 되돌아온 요나스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으윽. 내가 얼마나 누워있었지?”
“거의 하루 정도 되셨습니다.”
데이저스트는 근처의 아무 호텔에서 요나스를 침대에 눕혀뒀다.
호텔 주인은 데이저스트의 가벼운 암시로 이미 최면에 걸린 상태여서 그다지 문제가 생기지는 않았다.
데이저스트는 과거에 벌였던 일의 진행을 알렸다.
“그 사이 암살자에게서 답신이 왔습니다. 의뢰를 수락하겠답니다.”
“골레릭 본브레이커가 말이지?”
“의뢰 대금을 선지급하길 원하더군요.”
“원하는 대로 해줘. 떼먹는 놈은 아니니까. 크윽. 더럽게 아프군.”
암살자 골레릭 본브레이커의 명성은 세계구급이었다. 전 세계를 순행하면서 원하는 타겟은 무조건 죽여준다는 암살자. 그런 자가 돈을 떼먹을 일은 없다.
오늘 전투로 요나스는 조금 더 자신의 신체를 강화할 필요를 느꼈다. 개틀링으로는 무리였으니 더 증강된 화력을 전신에 장착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정보의 부재도 문제였다. 새 정보원을 구할 필요성을 느꼈는데 기묘하게도 접촉해온 자가 있었다.
똑똑.
“누구지?”
데이저스트가 밖으로 나가서 문을 열자 누군가 나타났다. 이마에 계인이 찍혀 있는 구릿빛 피부의 미남자가 있었다.
“제롬 모슌?”
데이저스트는 암흑성도회에서 상당한 입지를 갖춘 이 인물이 이곳에 나타났다는 것에 강한 위기감을 느꼈다. 그 즉시 무기를 꺼내려는 찰나에 요나스가 그를 저지했다.
“놔둬. 죽이러 왔다면 저렇게 무방비로 오지는 않았겠지. 무기도 없이 말이야. 쿨럭.”
“그 말대로입니다. 제 소개는 하지 않아도 될 것 같군요.”
제롬이 고개를 숙이면서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데이저스트는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길을 비키는 것으로 명령에 복종했다.
제롬은 누워있는 요나스의 앞에 있는 의자에 걸터앉았다.
“제가 이렇게 오게 된 것은 일시적인 음. 협력을 원하기 때문이죠. 당신은 무명 교단의 교주에게 강한 원한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
“저는 정보를 제공하고, 당신은 그들을 죽이는 그런 느슨한 협력관계는 어떻습니까?”
“나는 암흑성도회의 이단들과 협상하지 않는다. 협력하지도 않는다. 잘못된 신을 믿지 않고 조각 기계를 믿는다면 또 모르겠지만. 개종할리는 없겠지.”
4대 교단은 협력할 수 없다. 그건 주지의 사실이었다. 메트로폴의 영향력을 두고서는 모든 교단이 서로에게 불구대천의 원수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요나스도 그 점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확고한 협력 대신, 느슨하고 언제든지 배신해도 무방할 정도의 얕은 협력을 원했다.
“하지만 들리는 정보는 어쩔 수 없이 들으셔야겠지요? 귀는 있으니까요.”
요나스의 눈 한쪽이 찡그려졌다. 초기에 무명 교단에 심어뒀던 간자가 죽지 않았다면 지금 이렇게 정보가 부족한 상황까지는 오지 않았을 거다.
아니, 무명 교단의 교주가 그들의 아지트를 습격해서 하레와 함께 모여있던 자들을 몰살하지 않았으면 이렇게까지 몰리지는 않았겠지.
요나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제롬이 떠날 때까지 공격하지 않는 것으로 대답을 했다.
잠시 뒤.
제롬은 모든 정보를 풀고 나서는 고개를 살짝 내린 뒤 밖으로 나갔다.
“어지간히 자존심이 강하군. 망한 교단의 교주 주제에.”
심지어 ‘씨앗’조차 소화하지 못한 반쪽짜리 교주가 아닌가.
제롬은 지하철역 앞에서 자신의 품에서 동전 하나를 꺼냈다. 그 동전에는 기묘하게 생긴 문양이 있었는데 한눈에 봐도 골동품이었다.
굉장히 오래되어 보이는 듯한 동전. 제롬은 이 동전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행운의 동전.”
이 유물은 그가 예전에 유적에서 구했던 물건이었다. 그가 방금 요나스의 침실에 들어갈 수 있었던 이유는 이 동전의 행운 때문이었다.
“확실히 효과는 있는 모양이군. 은신한 조각구원회의 교주를 한 번에 만나게 될 줄이야.”
다만 이 동전에는 여러 가지 부작용이 있는데 가장 큰 부작용은 돈이 없어진다는 점이었다. 그의 지갑은 벌써 소매치기에게 털린 지 오래되었다. 이 동전을 오래 가지고 있을수록 더 심각하게 돈이 빠져나간다.
더군다나 이 동전은 특별히 제롬이 ‘개조’했다.
그는 일부러 동전을 허공으로 튕겼다. 튕긴 동전은 지하철역 여기저기를 굴러서 아무데나 떨어졌다.
‘이걸로 무명 교단의 교주도 한동안 정신이 없겠지.’
제롬은 이 동전이 불러올 혼란을 떠올리면서 동전이 일으킨 혼란을 수확할 그때를 기대했다.
*
에세나는 기묘한 자세로 그 바이올린 소리를 감상하고 있었다. 어느 날부터 샤를의 저택에는 바이올린 소리가 매일 울려퍼졌다.
저택에 고용된 사용인들은 이 감미로운 바이올린 연주에 놀라서 그들의 주인이 바이올린에 취미를 들였나 싶었지만 정작 그 주인공이 작은 소년이라는 것에서 놀랐고 또 그 소년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두 번 놀랐다.
하지만 늘 보고 있는 에세나는 이 녀석의 생각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야. 그만 해.”
놀랍게도(?) 모리는 바이올린 연주를 멈췄다. 연주에 들어가면 광적인 집중으로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그가 연주를 멈추다니.
거기다 쭈뼛쭈뼛 에세나의 앞으로 와서 섰다. 샤를이 봤다면 놀라워했을 것이었다.
에세나는 마치 품평을 하듯 모리의 위아래를 살펴봤다.
“음. 너 정도면 합격인데.”
“뭐, 뭐가?”
모리의 목소리는 개미가 기어가는 것만큼이나 작았으나 에세나는 그걸 들었다.
“세 번째. 근데 샤를님은 대체 언제 오시는 거지.”
“…….”
모리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에세나를 힐끔거렸다. 정신이 온전치 못했던 그는 어느 순간부터 정신이 맑아지는 것을 느꼈다.
모리의 담당 선생님인 메리 웰로드 정신과 의사는 이 변화를 두고 기적이라고 말했지만 모리는 그게 기적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의 후견인, 이라고 쓰고 주인님이라고 부르는 그분께서 매일 저녁에 어떤 특이하게 생긴 잔에 담긴 물을 마시게 했기 때문이었다.
주인님은 그걸 ‘성배 조각품’이라고 불렀다. 그 잔에 담긴 영성의 힘을 가진 액체를 마시면 그의 정신이 놀랍도록 빠르게 돌아왔다. 늘 산만해지던 정신도 금방 되돌아왔다.
달라지지 않은 것은 딱 하나 뿐이었다. 무아지경에 몰입했을 때의 그 집중력. 바이올린에 대한 애착…….
밖에서 종이 울리는 소리가 났다.
“아! 샤를님께서 오셨어! 가자.”
에세나가 모리의 손을 잡고 끌었다. 모리는 기묘하게 생긴 것을 타고 나타난 주인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저게 뭐야? 누나?”
“자동차래.”
“자동차?”
“샤를님께서 투자한 사업이 있는데 그곳에서 저런 걸 발명했다고 하나 봐. 시제품이라는데.”
기묘하게도 보통 마부는 핸섬 마차의 뒤에 타기 마련이었는데 이번에는 마부…아니, 말이 없으니 운전자라고 해야 하겠다. 아무튼 운전석이 앞에 있었다.
삐죽거리면서 보니가 나왔다. 한동안 말을 몰아왔던 그가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은 어려웠겠지.
샤를은 그렇게 생각했다. 포드에 투자했던 것이 생각 이상으로 잘 풀렸다.
샤를은 투자금을 조금 넣어서 빌트워치의 포드사의 상당한 지분을 얻었다. 대신 경영권에서 영구히 손을 뗀다는 조건이었다.
그 뒤 이 자동차라는 물건은 메트로폴의 시장의 눈에 띄게 되었다.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 복잡한 도시인 메트로폴에서 마차는 너무 귀찮은 물건이었다.
일단 제일 심각한 문제. 똥이다. 말은 똥을 조절하지 못해서 아무데나 싼다. 엉덩이에 주머니를 차는 것으로 임시방편을 하고 있지만, 이 도시에 말이 얼마나 많은지.
그래서 빌트워치는 메트로폴의 시장과 만나기로 했고 그 자리에는 샤를도 동석하기로 했다.
다음 주다. 당연히 역사대로 시장은 자동차를 밀고 나갈 거다. 포드사는 샤를이 손대지 않아도 알아서 잘 성장할 테고. 투자자들도 미친 듯이 달라붙겠지.
“제이큰.”
“네.”
“포드사의 주식 사라.”
“네?”
“사면 후회 안 하니까. 사라면 사.”
“아, 알겠습니다.”
샤를은 마중 나온 충직한 노집사의 어깨를 두드리고는 안으로 들어섰다. 에세나와 모리가 밖에 나와 있었다.
“모리, 좀 어떠니.”
“이제 좀 괜찮아졌어요.”
수줍은 듯이 말하는 모리를 보고 에세나는 고개를 저었다. 샤를은 그간 성배 조각품에 담긴 영성이 깃든 물을 마시게 한 것이 효험이 있다는 것을 보고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리의 정신이 돌아오면서 영성의 힘도 커졌다. 곧 영성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
“샤를님.”
에세나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샤를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안으로 들어섰다. 그의 옆에 에세나가 붙고 제이큰이 뒤에 섰다.
“교단 사람들의 수가 좀 늘었어요. 이제 포도밭의 창고부지로는 안 될 것 같아요.”
“응? 벌써?”
그곳도 작은 곳이 아닌데. 이제 동네 교회 수준은 뛰어넘은 것 같았다.
“신도들이 새 부지를 설립하길 원하고 있어요.”
“새 건물을 알아보마. 이번에는 메트로폴 내부에 세울 생각이다.”
경찰과 광명교회 덕분에 게임 초반에는 오히려 메트로폴 내부가 안전한 경향이 있었다.
메트로폴 내부의 교단을 어디다 세워야 할지 생각했다. 강 근처는 어부 형제단의 영역이고. 메트로폴 동부는 암흑성도회가 잡고 있다. 중부는 지금 헬파이어 클럽과 광명 교단이 보이지 않는 사투를 벌이고 있을테고.
“서부로 하는 게 좋겠군.”
서남쪽에는 빈민가와 갱단이 밀집된 구역이 있으니 서북부 쪽에 자리를 알아봐야겠다.
에세나의 용건이 끝나자 제이큰이 다가와서 편지를 건넸다.
“웹스 상단에서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웹스? 아 맞아. 곧 보기로 했었지.”
프레드릭 웹스 때문에 거래를 좀 하게 되었다. 그래서 한 번쯤은 웹스 가문의 가주를 만나야 했었는데 그간 칼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계속 미루고 있었다.
“내가 답장을 곧 쓸 테니 미뤄두도록 해. 아, 그리고 그 와인 사업가는?”
“아직 대기 중입니다.”
“그쪽도 금방 해결해주겠다고 해.”
웹스 가문의 당주 리처드 웹스를 만나서 해결하면 될 거다.
“음. 그리고 또 무슨 스케쥴이 있었지.”
“다음 스케쥴은 오라클 경매장 방문입니다.”
기가 막히게도 플로나는 어느새 옆에 다가와 있었다. 암살자처럼 나타난 플로나를 보고 샤를은 놀라지 않은 척하면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