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3화 - 탕! 탕! 탕! 탕!
이때 칼튼 교수의 요사스러운 보라색 목걸이에서 빛이 나더니 총알이 전부 간발의 차로 빗나갔다.
“그딴 무기로…….”
칼튼은 상대의 조잡한 리볼버를 비웃으려다가 기겁했다. 허공에서 커틀러스가 날아왔던 것. 그 궤도에 목이 있다. 분명히 죽을 것이므로, 오른팔을 들어 올렸다.
커틀러스가 팔뚝의 뼈까지 뎅겅하고 잘라버렸다. 그러나 그 대가로 그는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재차 커틀러스가 돌아오려는 찰나 괴성을 지르는 칼튼의 주변에 무언가 나타났다.
“이런.”
칼튼이 흘린 피가 바닥에 떨어진다. 강당 바닥에 닿은 피는 기이한 문양을 스스로 형성하더니 그 즉시 마법진을 만들어냈다. 샤를은 그것이 소환 마법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미처 대처할 시간도 없는 사이 소환이 끝났다. 그곳에서 검은색 곱슬 머리카락을 가진 한 남자가 나타났다. 그 구릿빛 피부의 미남자는 이마에 계인이 찍혀 있었다.
그는 아주 손쉽게 날아다니는 커틀러스를 손으로 낚아챈 다음 마치 엿을 구부리는 것처럼 커틀러스를 구부렸다. 그래도 꿈틀거리자 커틀러스를 더욱 구부린다. 휘다 못해 깨져버린다.
“처음 뵙겠습니다. 제롬 모슌입니다.”
그리고는 아주 공손하게 자기소개를 했다. 그 사이 칼튼은 제롬이 있었음에도 자신의 팔을 부여잡고서 뒤도 보지 않고 도망쳤다. 끈질긴 집념이었다.
칼튼이 문을 열 수 있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혈족 계승으로 내려오는 그의 피가 가진 특징은 바로 경계면을 흐릿하게 만들고 틈새를 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심각한 PTSD 끝에 그의 가슴에 생긴 균열은 바로 공간의 불안정함이었다.
칼튼의 피가 가진 특성을 이용해서 제롬은 칼튼과 계약을 맺었다.
그래서 칼튼의 피는 바닥에 흐르면 그 즉시 소환마법진이 되어서 제롬을 언제든지 소환할 수 있다는 것. 여기까지가 샤를이 미리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
샤를은 조용히 그를 바라보았다. 제롬 모슌. 그는 언제든지 교주가 될 자격이 있는 고위 영성자였다. 그리고 무시무시하게 강하다.
“그를 쫓아갈 수는 없을 겁니다.”
“준비가 꽤 철저하군.”
샤를은 그간 직간접적으로 칼튼을 괴롭히고 그의 일을 사사건건 방해했지만 지금 여기서 또 막히게 될 줄은 몰랐다. 이게 운명의 흐름인 것인가.
“무슨 일이 생길 줄 알고 대비하고 있었으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당신. 대체 누굽니까? 당신같이 강한 영성자는 본 적이 없군요.”
“…….”
“맞춰볼까요? 당신은 일단 무명 교단의 영성자군요.”
제롬은 기이할 정도로 밝은 웃음을 지었다. 문제를 정확히 맞혔다.
“사실 우리는 이 전에도 한 번 얽혔던 적이 있죠.”
“얽힌 적?”
샤를은 제롬과 만난 적이 있었나 기억을 되짚어봤지만 그런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댈러웨이에게 아라네아의 서를 넘긴 것이 바로 저였습니다. 놀랍게도 하루 만에 마도서를 빼앗기고 죽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지만요. 샤를 헥센 교수와 드레이크 박사를 시켜서 아라네아의 서를 회수했겠지요?.”
“그 가짜 마도서를 넘긴 게 바로 너였군.”
대학 내부에서 사람들을 납치해서 아라크네에게 먹잇감으로 주려던 미치광이가 바로 댈러웨이였다.
댈러웨이가 가진 마도서의 출처에 대해서 궁금했었지만, 진전이 없어서 포기했었는데 범인이 스스로 자백을 하고 나섰다.
근데 제롬은 착각하고 있었다. 샤를 헥센이 무명 교단의 교주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긴 그의 입장에서 보면 그럴 만 한 것이, 사건의 뒤처리를 경찰에 신고하는 것으로 마무리했기 때문.
보통 영성자들은 비밀 세계의 일을 그런 식으로 마무리하지 않는다.
‘착각해준다면 오히려 좋지.’
“저는 맨 처음에 어떤 영성자와 엮여서 이 일이 마무리 되었나 싶었는데 어설픈 방식을 보니 초짜더군요. 그 시절에 초짜가 그런 사건을 처리한다라, 조각구원회에서는 대학 도서관에만 끄나풀을 넣었을 뿐이니 추리의 범위를 좁히면 자동적으로 무명 교단이 범인이 되지요.”
“…….”
제롬 모슌은 자신의 팔목에 걸려 있는 아대에 양손을 뻗었다. 그러자 챙하고, 아대가 두 개의 차크람으로 변해버렸다.
기이할 정도로 보랏빛을 띠는 차크람은 그가 쥐고 있는 곳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전부 칼날로 되어 있었다.
“어디 실력을 좀 봅시다.”
그 즉시 샤를은 무존자의 창을 날렸다. 제롬은 복싱 선수가 록어웨이를 하듯 상체만을 비틀어서 총알보다 빠르게 날아간 화염창을 피해냈다.
그리고 무시무시한 속도로 땅을 박차고 날아갔다. 그 사이 샤를은 상대를 분석했다.
‘수호자 전문화인가. 귀찮은 놈이군. 무기는 차크람인가.’
샤를같은 마도사에게 있어서 수호자 타입은 까다롭고 위험한 족속들이었다. 영성으로 신체의 근력을 강화하는 것이 바로 수호자였다.
그들이 산탄총 같은 화기까지 들면 진짜로 위험해진다. 하지만 저런 냉병기를 들고 있다고 해도 위험한 것은 매한가지였다. 단순한 냉병기가 아니라 유물이나 마도구 일테니까.
하지만 샤를은 오늘을 위해 상당히 준비를 많이 해왔다. 샤를의 손에서 새로운 검이 떠올랐다. 갓 심상세계에서 꺼낸 따끈따끈한 롱 소드로, 커틀러스가 부숴졌을 때를 대비한 예비용 무기였다.
롱 소드가 허공을 날아서 제롬에게 다가갔다. 제롬은 차크람 두 자루를 겹쳐서 롱 소드를 허공에서 낚아챘다. 묵직한 힘 때문에 돌진이 멈춰지고 뒤로 발이 밀릴 정도였다.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롱 소드는 차크람의 틈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양쪽에서 죄는 제롬의 힘이 더 강했다. 커틀러스를 부숴버렸던 것처럼 두 번째 롱 소드도 조각내버리는 제롬.
그 사이 샤를은 무존자의 겨울 주문을 완성했다. 역시 스스로가 내려주는 주문이기 때문에 따로 시료는 필요 없었다.
손끝에서 이루말 할 수 없는 한기가 집약되어 쏘아졌다. 순식간에 공기 중의 수분을 얼음 결정으로 만든 한기는 강한 바람과 함께 제롬의 정면으로 쏘아졌다.
냉기의 파동을 느낀 제롬이 롱 소드를 바닥으로 집어 던지면서 뒤로 물러나면서 공중제비를 돌았다.
재차 제롬이 돌격하려는 찰나, 추가로 개입하는 누군가가 나타났다. 허공에서 떨어지는 모닝스타가 강당 바닥에 직격하자 어마어마한 충격파가 쏘아지면서 제롬은 한 층 더 뒤로 물러났다.
“……방해꾼!”
막 즐겁게 춤추려던 찰나에 방해받자 제롬은 인상을 찡그렸지만 그래도 입가에 미소는 그대로였다.
제롬을 가로막은 것은 에메랄드빛 머리카락의 여성이었다. 그녀가 손을 뻗자 바닥에 떨어졌던 모닝스타가 픽하고 다시 돌아갔다.
“나도 바빠서 말이야. 부탁한다 플로나. 시간을 벌어줘.”
“물론이죠 교주님.”
샤를은 이미 심상세계에서 플로나에게 현재 자신의 위치를 가르쳐준 상태였다.
플로나가 제롬을 막는 사이 샤를은 그대로 몸을 돌려서 사라진 칼튼을 추적했다. 그가 어디로 향할지 이미 알고 있다.
샤를이 사라지고 나서 플로나는 샤를이 간 곳을 가로막았다.
“당신이 저랑 대신 춤을 추실 분이군요.”
“저는 춤출 분이 따로 계시는걸요? 그러니 춤 신청은 거절할게요.”
플로나는 정중하게 모닝스타를 휘두르는 것으로 거절의 의사를 밝혔다.
플로나와 제롬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그런데 모닝스터 끝에서 장미 가시들이 길어지더니 마치 채찍처럼 늘어나 제롬의 전신을 향해 습격해왔다.
거의 면 단위의 공격을 제롬은 뛰어오르면서 몸을 말고 공중제비를 도는 것으로 피해냈다.
장미 가시들이 날아오는 틈 사이로 정확하게 피해냈다. 실로 놀라운 균형감각이지만 그런 것은 플로나도 할 수 있었다.
플로나는 일격을 가한 직후 달려가 제롬의 머리통을 깨부수려고 모닝스타를 휘둘렀지만, 제롬이 더 빨랐다. 차크람 하나를 들어서 플로나에게 던지자 플로나는 모닝스타로 차크람을 밀어서 쳐냈다. 장미 가시들이 차크람을 움켜쥔다.
“그건 마도구는 아닌 것 같군요.”
‘일종의 주문 부여로 이뤄진, 평범한 모닝스타인가.’
제롬은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차크람을 던져버려서 비어버린 손으로 수인을 맺었다.
맺은 수인을 통해서 주문을 발동한다. 모닝스타 끝에 달려있던 차크람이 진동을 일으키면서 반발력을 일으킨다. 자석이 서로를 밀어내는 것처럼 모닝스타와 차크람이 퉁겨지고 제롬이 그걸 낚아챘다.
그리고 긴박한 근접전이 벌여졌다. 속도는 제롬이 우위에 있었지만, 힘은 놀랍게도 가녀리게 보이는 플로나가 더 우위에 있었다.
하지만 기교는 제롬이 우세였기 때문에 전투는 계속해서 제롬이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합을 마주칠 때마다 제롬의 차크람이 플로나의 드러난 피부에 상처를 냈다.
일곱 개의 상처를 냈을 때쯤 제롬은 상대가 과다출혈로 신체 능력이 저하되지 않는다는 점을 떠올렸다.
“재생력? 대체 신체가 어떻게 되먹은 겁니까?”
제롬은 그대로 플로나의 정강이를 걷어차고는 차크람을 내려찍었다. 플로나는 비틀거리면서도 모닝스타의 자루로 차크람을 받아냈다.
차크람이 미끄러져 올라와서 플로나의 팔목을 자르려고 했으나 장미 가시가 저절로 움직이면서 차크람을 꽉 잡았다.
여러모로 귀찮은 조합이었다. 속도와 기술은 우위에 있지만 힘을 비롯해서 기이한 마도구의 보조를 받기 때문에 완전히 처치할 수 없다.
어떻게 요리할까 고민하던 때 제롬의 눈매가 씰룩거렸다.
“이거 또 방해를 받는군. 두 번째 소환이라니 이 친구는 이렇게 피를 흘린다면 피가 남아나지 않을텐데 말이죠.”
제롬의 신체가 흐물거리면서 검은색 연기로 변하기 시작했다. 부름에 응해 소환된 것. 공간을 격하고 사라지는 제롬을 향해 모닝스타를 후려봤지만,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플로나는 사라진 제롬을 보면서 한숨을 쉰 뒤 자신이 시간을 잘 끌었기를 기대했다.
*
미친 듯이 탐사학부 건물로 달려갔다.
탐사학부 건물은 작지만, 그 옆에 부속된 운동장이 컸다. 평소에는 탐사학부가 사용하다가 공적인 일이 생기면 대학 운동장으로도 사용되기도 했다.
이 운동장 끝에 있는 작은 관리실 건물, 그 건물 아래가 메트로로 직행할 수 있는 수많은 입구 중 하나였다.
메트로폴 전역에는 메트로로 갈 수 있는 수많은 입구가 있지만 미스트위버 대학에서는 그 입구밖에 없다.
역시 샤를의 예상대로 입구는 열려 있었다. 그는 계속해서 추적해서 아래로 내려갔다.
나선형 계단이 보이자마자 샤를은 그 즉시 나선형 계단의 중앙으로 뛰어내렸다. 추락해가는 감각과 함께 수십 미터의 깊이로 떨어져 내렸다.
마침내 바닥에 이르렀을 때, 샤를은 굉음과 함께 수퍼히어로 랜딩을 했다.
-쭈, 쭈인 괜찮나? 무릎 안 아파?
-물론이지.
샤를은 에메랄드 브로치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었다.
물리 타격을 봉쇄한다는 것에서 착안한 것이 바로 낙하 충격의 상쇄였다. 아무리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샤를은 별 피해가 없다.
사뿐히 내려선 것 같은 감각으로 샤를이 주변을 둘러보면서 먼저 움직인 칼튼을 찾았다.
이 나선형 계단이 끝난 시점에서 주변은 거대한 열차 플랫폼처럼 보였다. 여기가 메트로 0층인 것은 분명했다.
바닥에 흘린 피는 없다. 칼튼이 뿌렸던 녹색 가루 덕에 상처가 재생된 탓. 하지만 상처 입은 자 특유의 비틀거림을 떠올리면서 샤를은 벽면에서 칼튼이 남긴 손자국을 찾아냈다. 그리 많은 피는 아니었다.
지혈하다가 피가 흠뻑 젖었었는데 자신도 모르게 그 손으로 벽면을 짚은 것 같다. 그는 거의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필사적인 의지로 움직이고 있다.
샤를의 머릿속에서 칼튼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피를 잔뜩 흘려서 정신은 모호한 상태로 그저 사명감에 휩싸여 칼튼이 움직인다.
그는 필사적으로 메트로 0층의 중앙으로 향하고 있었다.
칼튼이 필사적인 만큼 샤를도 필사적이었다. 그는 즉시 달려서 칼튼의 뒤를 쫓았다. 너무 늦으면 안 된다.
메트로 0층의 중앙에는 특이하게 생긴 정거장이 있다. 원형의 기둥처럼 생긴 열차 전용 승강기가 있는 정거장.
그 정거장의 중심을 기점으로 12방향으로 열차 길이 퍼져 있고 플랫폼이 그 주변을 감싸고 있는 형태였다.
샤를은 칼튼이 달리고 있는 장소가 그곳인 것을 파악했다.
‘어쩌면 메트로 0층을 사용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과도 마주칠 수 있겠군.’
그들에게 샤를이 살인마처럼 보일 테지만, 칼튼은 죽어야만 한다. 어차피 메트로 0층부터는 무법천지였다.
샤를은 달리면서 후드를 쓴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은 모두 모험가들로, 메트로 0층에 드럼통을 난로 삼아서 불을 쬐고 있었다.
칼튼을 추격하는 샤를을 흥미롭게 바라보는 자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무심했고 실제로 아무도 샤를이나 칼튼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려 들지도 않았다.
정거장에 도착한 칼튼이 보였다. 샤를은 그를 거의 다 따라잡았기 때문에 리볼버를 꺼냈다.
열차 승강기 근처에 있는 칼튼에게 연발 사격을 가한다. 달리면서 발사했는지라 한 발 정도만 칼튼의 옆구리에 명중했다.
칼튼은 상처를 무시하고는 비틀거리면서 열차 승강기 입구에 손을 대어서 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