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2화 - 문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문이 된다.
그는 꿈을 꾼다. 어릴 적 술주정뱅이 아버지에게 학대당하던 어머니가 작은 창고의 문 너머에서 조용히 멈춰서 움직이지 않던 날.
그의 가슴에는 작은 점처럼 생긴 균열이 생겼다. 맨 처음에는 이 균열은 매우 작다. 티끌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었다. 스스로도 자각하지 못한 균열.
이 나라로 밀입국을 할 때도, 교수라는 번득한 직장이 생기기 전까지도 없었던 이 정신적 균열은 그가 아버지를 죽인 날에 완전히 부상(浮上)했다.
그의 아버지는 죽어 마땅했다. 사인은 심부전이었다. 그는 창고의 문 앞에 쓰러져서 죽었다. 그렇게 만들었다.
칼튼은 영성자가 되고 싶어서 된 것이 아니라, 어떤 특이점 때문에 영성자가 되고 말았다. 가슴에 떠오른 균열을 통제할 수 없어서 인간을 벗어난 무언가가 되고 있던 도중 그를 도와준 것이 바로 제롬이었다. 제롬 모슌.
제롬은 그의 불안정한 상태를 안정화해주면서 암흑성도회로 끌어들였다. 솔직히 그들의 종교는 시대착오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순전히 그에 대한 존경심 때문에 이름만 올려둔 상태였다.
제롬은 균열이 생긴 이유를 가르쳐줬다.
“사람의 내면에는 치유할 수 없는 어떤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한 외상이 존재하죠. 그게 당신처럼 이질적인 신체를 가진 존재에게서 발현된다면 당신의 소망과 PTSD가 결합해서 그 균열을 만듭니다.”
“이질적인 신체라니요?”
“당신의 조상 중에는 아마도, 신비스러운 존재와 몸을 섞은 자가 있었을 겁니다. 이제 와서 그런 이능력이 발현된다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혈족으로 계승되는 능력은 격세유전되기도 합니다.”
“그럼, 전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당신의 소망을 이루십시오.”
칼튼은 그의 소망을 떠올렸다. 소망? 글쎄. 그러다가 그는 떠올렸다. 그래, 그는 문이 되고 싶었다. 제롬은 허무맹랑한 칼튼의 소리에 비웃지 않고 진지하게 눈을 마주치면서 물었다.
“갑자기요? 왜 문이 되고 싶었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내가 사랑한 사람들 모두는 문 너머로 갔으니까요. 내가 문이 되어서 그 문 너머로 다른 사람들을 보내주고 싶군요. 이상한 소망이지요?”
뇌리에 새겨진 선명한 감각. 그 문 너머에서 멈춰있던 어머니와 아버지. 칼튼의 일그러진 소망은 그 문 너머를 본 순간부터 각인된 것이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처럼 스스로 문이 되고 싶어 하는 존재는 본 적이 없습니다.”
얼핏 듣기에 어린아이의 철없는 소망을 긍정하는 보육 교사의 말투 같다고 생각했지만, 제롬의 눈빛을 본 이후로 칼튼은 그를 존경하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
진지하게 허무맹랑한 소문을 믿고 있는 것이었다. 제롬은 오히려 문이 될 방법을 가르쳐주기도 했다.
“진짜 문이 되고 싶다면, 그 방법을 가르쳐드리죠.”
제롬의 비술은 인간의 상식을 벗어난 경계선에 있었지만 애초에 칼튼은 스스로 패륜을 저지르기까지한 사람이었다. 그의 비윤리적인 방법에도 흥미를 느꼈다.
그건 그 자체로 살아있는 사람을 문으로 만드는 비술.
그날이 오면 이 균열이 커진다. 커진 균열은 점점 신체를 늘린다. 키가 커진다.
살이 늘어나기 시작한다. 맨 처음에는 아주 서서히 늘어나게 될 것이다. 내장이 끊어질 듯이 늘어나지만, 형태가 변질 되면서 끊어지지 않는다.
혈관은 계속해서 가늘어져서 종국에는 머리카락보다 더 얇게 늘어난다. 피부와 몸이 늘어나고 뱃 속에 있는 균열이 계속해서 커진다.
그렇게 인간의 형상을 벗어나는데도 그는 여전히 살아있다. 뇌는 망가지고 몸은 밀가루 반죽처럼 아주 크고 길게 늘어나 거대한 문처럼 변할 것이었다.
그리고 그 문이 그가 맞이할 최후였다.
“꿈인가.”
꿈에서 깨어난 칼튼 교수는 잠에서 깨어났다. 와인을 한 잔 입에 머금는다. 이게 살아서 마시게 될 최후의 포도주가 될 것이다.
그의 계획은 완벽했다. 제2의 계획, 제3의 계획까지 준비해뒀으므로 실패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 결심은 실행 날짜가 되기 전까지 많이 흔들렸다.
기이할 정도로 많은 방해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학생들에게 문제가 생겼다. 학식에 문제가 생겼는지 음식을 먹고 난 뒤로 그의 강의에 올 학생들이 하나같이 식중독에 걸렸다고 했다.
그리고는 메트로폴 경찰국에서 조사가 들어왔다. 루이스라고 이름을 밝힌 형사는 이번 사건을 조사하기로 했단다.
“아니, 경찰이 왜 대체?”
“아, 글쎄 말입니다. 미스트위버의 대학생 중에 높으신 분들의 자제분들도 계셔서 말입니다. 이번 식중독 사건으로 그분들 심기가 불편해서 말이죠, 사실 관리 부실 때문에 그런 것처럼 보이는데 경찰까지 동원하다니 참. 이거 양해 좀 부탁드립니다.”
루이스라는 경찰은 사사건건 그를 귀찮게 만들었다. 마치 그가 범인인 것처럼 계속해서 추궁해오는 것 때문에 신경이 곤두섰다.
그러나 귀찮게 만들 뿐 그 이상으로 조사가 들어오진 않았다. 당연하게도, 그는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두 번째 사건은 대학 상위층에서부터 내려온 탐사학부에 대한 견제였다.
아미티지 교무처장이 작정하고 탐사학부의 비리를 캐고 있다는 소문이 쫙 퍼졌다. 아니, 감사팀도 아니고 갑자기 교무처장이 왜? 그것도 대학 내부에서 소문이?
“대체 교무처장이 왜 그런단 말이오?”
“그러게 말입니다. 저희가 대체 뭐 횡령할 게 있다고.”
“그거 그냥 뜬소문이라고 하던데요?”
“뭐, 뜬소문?”
탐사학부 내부의 교수들 사이에서도 이야기가 갈렸다.
세 번째로는 그가 신비학 물품을 보관 중이던 시에서 운영하는 창고가 불타버렸던 것. 거기에 달란트와 골동품들, 마도구 몇 점이 보관되어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끔찍할 정도로 지독했다.
이러다보니 칼튼은 스트레스가 머리 꼭대기까지 차오른 상태였다.
그러나 실행 당일 날 그는 경건한 자세로 일어섰다. 죽을 날이 다가오니 이제 그런 사소한 일 쯤은 아무래도 상관없어졌다.
새벽 일찍 일어난 그는 의식을 치르듯 몸을 씻고 나서 펑퍼짐한 중세에나 입었을 법한 로브를 입고 일어섰다. 그리고 미리 준비해뒀던 마부를 시켜 그를 미스트위버 대학으로 인도했다.
아무도 없는 새벽에 움직이는 마차는 기가 막히게도 바퀴가 빠져버렸다.
“아이고, 어쩌죠 교수님. 이대로는 못 갈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지. 걸어가겠네.”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하더라도 늘 임시방편을 찾는 것이 바로 칼튼이었다. 그래서 습격자가 나타났을 때도 그는 차분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
“누구냐.”
골목길 옆에 가면을 쓴 여성이 서 있었다. 영성을 넓게 퍼트리고 있지 않았더라면 상대를 발견하기 어려울 정도로 은밀하게 숨어 있다.
비로드로 된 상의, 가죽 재질의 승마복 하의를 입고 있는 그 여성의 머리카락은 에메랄드 빛으로 이뤄져 있었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매혹적인 것보다는 두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쥐고 있는 중세에서나 썼을 법한 흉악한 모닝스타 때문이었다. 모닝스타의 가시는 강철로 된 게 아니라 장미 가시 같은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 기이한 모습을 보고 상대가 영성자라는 것을 깨달았다.
상대는 대답이 없었다. 새벽녘에 마주친 흉악한 살인마가 그를 향해 덮쳐왔다. 칼튼은 품에서 기이하게 구부러진 주목나무로 이뤄진 지휘봉을 꺼냈다.
지팡이 끝에는 세 개의 금속 재질의 원형 고리가 매달려 있었는데 하나같이 요사스러운 빛을 뿜고 있었다.
“주목 고리의 힘을 부르노니.”
이계의 신중 하나인, 주목 고리의 힘을 불러온다. 첫 번째 금속 고리가 일렁이더니 그 안에서 거대한 덩굴이 자라기 시작했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급생장하는 덩굴줄기가 쏘아지자 암살자는 옆에 있는 벽을 박차고는 공중 제비를 돌며 회피하면서 칼튼에게 다가왔다.
다급해진 칼튼이 두 번째 주문을 외웠다.
“주목이여! 여기 천벌을 내리노라.”
마른하늘에서 무시무시한 번개가 내리쳤다. 엄청난 섬광과 우레를 동반한 번개 한 줄기가 암살자를 강타했다.
칼튼은 두 번째 금속 고리가 사라지는 것을 보고 이제 확실하게 암살자를 처리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암살자는 삐걱거리면서 일어섰다.
상의를 새까맣게 태우고 살갗을 지졌는데도 불구하고 번개로 인한 상흔이 서서히 재생되고 있었다.
세 번째 금속 고리를 조정해서 주문을 시전하려는 찰나에 좀비처럼 벌떡 일어난 암살자가 날 듯이 다가와 칼튼의 면상을 모닝스타로 후려쳤다.
“커허허어어어억”
가시에 얼굴 여기저기가 찔린 칼튼이 쳐낸 야구공처럼 허공을 붕 떠서 골목 저편으로 처박혔다. 장미 가시가 얼굴을 침범하면서 피부를 찢어놓는다.
그러나 치유할 시간이 없다. 칼튼은 그 즉시 세 번째 주문을 외워서 장소를 이탈했다. 세 번째 금속 고리는 그를 안전하게 미스트위버 대학의 강당으로 이송했다.
적이 사라지자 암살자가 가면을 벗었다. 플로나는 새로 얻은 힘에 감탄하고 있었다. 분명 번개에 직격당했는데도 신체가 저절로 재생되고 있었다.
다음번에 아에라푸스를 만나면 감사해야 할 것 같다라는 생각과는 별개로 샤를의 말대로 상대가 도망치는 것을 플로나는 막을 수 없었다.
모닝스타로 얼굴을 후려친 이후에 상대가 다른 주문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 플로나는 샤를이 미리 일러둔 대로 미스트위버 대학으로 향했다.
새벽의 강당은 지독하게 고요했다. 그곳에 피를 토하면서 칼튼 교수는 자신의 얼굴을 만졌다. 손에 상처가 나는 것을 무시하고 얼굴에 달라붙은 장미 가시들을 뜯어서 떼어냈다.
그사이 더 깊게 파고든 장미 가시가 오른쪽 눈을 심하게 파고들어 실명에 이르렀다. 얼른 장미 가시를 바닥에 버린 칼튼은 품에서 녹색 가루가 담긴 주머니를 열어서 자신의 손과 얼굴에 발랐다.
지독한 고통이 가라앉자 그는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때, 누군가 입을 열었다.
“여깄었군.”
*
샤를은 그간 칼튼을 제거하려고 노력했으나, 운명의 인도인지 모르겠지만 칼튼을 마주칠 수 없었다. 그를 기다리고 함정을 판 곳에서는 칼튼이 오지 않았다.
또한 칼튼을 독살하려고 해도 그는 아주 우연히 독이든 물잔을 마시지 않는 등, 수많은 방법으로 죽음의 위기를 피해갔다.
‘역시 소용없군.’
칼튼은 차원문을 여는 그날 죽는다. 그 말은 그날이 되기 전에는 절대 죽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샤를은 그전까지는 간접적으로 괴롭히는 것으로 만족하고 계획 당일에 그를 제거할 함정을 짜는 데 집중했다.
칼튼 교수가 가진 마도구, 주목 고리 지휘봉은 세 가지 효과를 가지고 있다. 세 개의 특별한 주문을 보관하는데 그중 하나는 반드시 이탈 주문일 거로 생각했다.
칼튼 교수는 목적을 위해서 무엇이라도 한다. 그러나 그 때문에 오히려 더 보신적으로 변하는 경향이 있었다. 목적을 이루기 전에는 위험을 감수해서는 안 되었으니까.
그래서 샤를은 상대가 도착할 곳이 미스트위버 대학 어딘가일 것으로 추측했고 플로나가 칼튼을 습격하게 만든 다음, 샤를은 미리 대학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칼튼의 연구실을 비롯한 몇 군데에 나비들을 이용해 알람을 설치해뒀다. 본인은 몇 장소 중에서 한 군데를 골라 기다리고 있었는데 우연하게도 그가 찍은 강당에 칼튼이 나타났다. 호재다.
“넌 대체 누구냐?”
“당신이 하려는 일을 막으려는 사람.”
“뭐? 하하하.”
칼튼은 낄낄거리면서 웃다가, 교주의 목소리가 낯이 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목소리……. 설마 샤를 헥센 교수?”
“용케도 기억하시는군요.”
가면을 쓰고 있는 데다가 목소리를 좀 바꿨는데도 칼튼은 정확히 그를 기억했다. 체형을 비롯해서 목소리까지 비슷하다면 주변인의 눈은 속일 수 없는 모양이다.
“헥센 교수. 내가 뭘 할지 알고 이런 함정을 꾸몄지?”
“문이 되고 싶으신 거죠.”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상대는 자신의 계획을 알고 있다. 어디에서 탄로 났는지는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칼튼은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봐. 자네, 내가 왜 문이 되려는지 그 이유를 아는가?”
“알지.”
시간을 끌 새도 없이 샤를의 손에 들린 리볼버가 불을 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