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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사이비 교주가 되었다-59화 (59/221)

제59화 - 경계면을 열자마자 샤를은 눈을 깜빡거려야만 했다. 그가 상상한 것과는 전혀 다른 존재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응?’

그건 특이하게 생긴 사슴이었다. 일단 기린과 비슷한 형태처럼 보이긴 했지만, 사람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정확히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수인(獸人)와 가깝다고 해야 하나.

그 생물이 이 경계면에 나타나자마자 놈이 밟고 서 있는 부유석에서 식물이 자라기 시작했다. 발굽을 움직일 때마다 꽃이나 잡초가 피어올랐다.

특이하게도 목 아래의 어깨 쪽 등에는 하얀색 뿔이 자라 있었는데 두 개의 가닥에서 수백 갈래로 갈라져 있어서 천사의 날개처럼 보였다.

“뭘 해야 하는가?”

놈이 나타나자마자 내뱉은 말이었다. 샤를은 그 생물에게 말했다.

“내 제자와 계약을 주선하겠다.”

“그대와는 안 되는가?”

“아쉽게도.”

당연하게도 샤를은 이계의 생물과 계약할 생각이 없었다. 계약하는 것 만으로도 상대와 자신에게 제약이 걸리니까.

그리고 지금은 플로나와 계약을 주선해주려고 소환한 거다.

“저 아이와 계약을 원하지 않는다면 돌아가도 좋다.”

“아니, 하겠다.”

그 생물은 플로나에게 다가와 눈을 마주쳤다. 간만의 여흥이다. 쉽게 포기할 수는 없지.

그는 그 작은 소녀의 내면을 들여다보았다. 소유와 집착, 광기와 갈망이 뒤섞여 있지만, 그보다 더 거대한 것은 바로 헌신이었다.

인간이라면 어디 한 군데가 망가졌다고 표현하겠지만 아에라푸스에게 있어서 이 복잡한 생물의 정신세계는 아주 마음에 들었다. 이 생물의 숨결도 궁금하고.

“나 아에라푸스는 너와 계약을 맺기를 원한다.”

“저 플로나 레이튼은 아에라푸스와 계약을 맺기를 원합니다.”

“대가는……. 숨결 정도면 충분하다.”

플로나는 약간 당황한 듯이 아에라푸스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 얼굴에 크게 심호흡을 했다. 아에라푸스는 그 냄새를 맡더니 말했다. 인간의 숨결을 맡아본 것이 몇 백년 만이지?

“이 정도면 나쁘지 않군.”

“추가적인 대가는 없는 거겠지.”

“물론이지. 이제 저 아이는 내 힘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샤를은 플로나의 상태창을 열었다.

【무명 교단의 첫 번째 제자】

【플로나 레이튼】

[스탯]

[신체 10, 정신 6, 행운 3 계몽 4]

[특성]

[충성심, 양손 무기술, 강한 의지력, 광폭화, 재생력]

[보유 기술]

〔아공간 보유술〕 - 특정한 장비를 아공간에 넣어 보유할 수 있습니다. 이 아공간은 플로나가 어렸을 적 영성을 깨닫고 스스로 개발한 능력으로 그렇게 넓은 공간은 아닙니다.

〔괴중괴(怪中怪) 아에라푸스와의 계약〕 - 이계에 있는 존재와 계약해 대가를 받는 대가로 그 힘을 이어받을 수 있습니다. 플로나와 계약한 존재는 주기적으로 ‘숨결’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신체 스탯이 두 단계나 올랐다. 특성도 두 개 새로 생겨났다. 거기다 기존에 있었던 페널티도 없어졌다. 아에라푸스에게 숨결은 굉장히 중요한 것이겠지만 인간에게는 별로 가치가 없다.

동족화처럼 심각한 페널티를 요구하지 않는 데다가 더 강력한 존재와 계약을 주선했으니 이번 일은 성공적으로 끝난 것 같다.

일이 끝나자 샤를은 아에라푸스를 돌려보냈다. 그리고 남은 제자 둘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교단에 이제 시련이 닥칠 거다. 내가 다음 일까지 마무리를 짓는다면, 우리 무명 교단은 여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무시되지 않고 다른 교단의 주목을 받게 되겠지.”

지금도 샤를이 혼자 조각구원회를 박살 내버린 것 때문에 주목을 받고 있다. 여태까지의 대처가 너무 소홀했던 것. 앞으로 샤를이 할 일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플로나.”

“예.”

“예상되는 적의 공격에 대항할 대책을 마련해라.”

“알겠습니다.”

“에세나.”

“네.”

“너는 해줘야할 일이 있다. 교단 내에서 영성자의 숫자를 늘리는 거지.”

샤를은 그 뒤 무존자에게 기도하는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면서 그들 중에서 가능성이 있어 보일 법한 자들을 골라서 에세나에게 건네주었다. 에세나는 그 목록을 듣고는 단번에 외워버렸다.

“교단을 관리하는 일과 별개로 비밀리에 진행하는 것이 좋겠다.”

“알겠습니다.”

말을 마친 샤를은 다른 사람들을 모두 돌려보냈다. 그리고 심상 세계 밖으로 빠져 나와서 미리 적어뒀던 노트를 꺼냈다. 제자들이 바쁜만큼 샤를도 바빠질 것이다.

“음. 이제 칼튼 교수의 차원문 열기가 얼마 남지 않았군.”

샤를은 이 사건을 뒤틀 생각이었다. 칼튼 교수의 차원문 생성은 모든 시나리오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사건이었기 때문에 게임 속에서는 그 사건을 방해할 수는 있어도 실패하게 만들지는 못했다.

그러나 샤를은 석판 조각을 보유하고나서 운명을 비틀 수 있는 능력을 얻었다. 그건 강력한 유물인 괴테의 만년필의 대상자가 되었을 때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굉장한 능력이었다.

‘어쩌면 지금의 나는 칼튼 교수의 차원문 생성조차 막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 대체 앞으로의 사건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지금 고민하는 것은 그것이었다. 칼튼 교수의 차원문 생성을 막는다는 건에서 시작된 스노우볼이 어디까지 흘러갈지 혹은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지.

‘언제는 그런 걸 생각하면서 했었나?’

샤를은 피식 웃었다. 129번 동안 엔딩을 보면서 모두 배드엔딩을 보았었다. 지금 샤를이 고군분투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그 끔찍한 배드엔딩을 피하려고 하는 것이었고.

그렇다면 못할 게 없다. 샤를은 당장 준비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그는 배를 만졌다. 두 번째 석판이 조금씩 소화되고 있는 게 느껴졌다.

그러나 세 번째 석판 조각까지 꾸역꾸역 먹어둔 턱에 이 기묘한 소화불량 같은 느낌은 계속 이어질 것 같다.

샤를은 그간 얻었던 진귀한 물건들을 살펴보기로 했다. 그리고 자신의 능력을 한 번 더 점검할 필요가 있다. 교단의 성장과는 별개로 그는 항상 계속해서 강해져야만 했다.

여태까지 얻었던 물건을 쭉 나열해봤다.

먼저 파기나 레코르. 샤를에게 없어서는 안 될 머스트 해브 아이템.

아라네아의 서─이자 불완전한 암세천경. 튼튼한 실을 뽑아내는 아라크네의 심장, 금박 모노클, 사자소생의 서, 에메랄드 브로치, 성배 조각품, 괴테의 만년필.

유물과 마도서가 섞여 있었다. 그리고 샤를이 가진 주문은?

나비 소환술.

창.

화로.

등불.

네 가지 주문이 있다. 샤를은 이 주문 리스트가 꽤나 다채롭지만, 공격용이 하나뿐이라는 점에 대해서 여러 불만이 있었다.

그리고 유물과 마도구도 쓰는 것만 사용하지 나머지는 거의 없으나 다름이 없다. 새로운 카테고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파기나레코르를 불렀다.

-파기.

-쭈인? 나 불렀어?

요즘 잠잠하다 싶더니 파기나레코르의 옷차림이 좀 변해있었다. 기존의 드레스와는 다른 흰색 계통의 이브닝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너, 옷이 바뀌었네?

-무, 무슨 옷? 무슨 옷? 그리고 옷이 바뀌든 말든 쭈인이 무슨 상관이야!

뭐야, 이상한데서 센티하네? 대답대신 샤를은 달란트를 꺼냈다. 반짝이는 은 달란트였다.

-어어어어? 쭈인 이거 어디서 났어?

-프레데릭 웹스에게서 받았지.

정확히는 그와 거래 얘기를 할 때, 감사의 표시라면서 넘겨준 것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가치가 없는 골동품이지만 비밀 세계의 사람들에게는 상당한 값어치가 있는 물건이라면서.

리카는 떠날 때까지 프레데릭의 정체에 대해 몰랐지만, 프레데릭 웹스는 사적으로는 리카 웹스의 사촌이라고 했다. 일 얘기와는 별개로, 그녀를 지켜줘서 고맙다고 말했었다.

-아하. 그때 받은 거구나.

파기나레코르는 일어나서 은 달란트를 받았다.

-제발 좋은 주문이 나오도록 기대해본다.

간만에 쿠키로 만든 슬롯머신을 본 샤를이 기대감에 차서 슬롯을 돌렸다. 이때 샤를은 처음으로 그 지긋지긋한 광명자의 문양을 보지 않을 수가 있었다.

문양 세 개가 전부 처음보는 존재의 문양이었다. 뱀, 마녀, 눈. 세 개의 문양이 끝나자 슬롯머신이 주문서를 뱉었다.

[탄원자의 겨울.]

“음?”

샤를은 이 주문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탄원자가 누구인지도 안다. 그녀는 인간 사제였다. 본디 차가운 얼음 신전에 있었으나 어떤 위대한 일을 겪은 끝에 이계의 신이 되었다.

4대 악신 계통에 속하지 않는 별개의 신이므로 샤를이 그 신의 주문을 사용한다고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다만 샤를이 대가를 조금 내야 할 거다.

파기나레코르에 주문서가 수납되고 샤를은 그 주문에 대해서 알 수 있었다.

[탄원자의 겨울]

[손끝에서 뼛속까지 시린 냉기를 뿜어낼 수 있다. 이 냉기를 뿜으면 생물뿐만 아니라 영적인 존재조차도 단번에 얼려 버릴 수 있다. 또한 시전자를 중심으로 원형으로 냉기의 공간을 뿜어낼 수 있으며 얼음 조형물을 만들고 얼음을 조종할 수 있다. 탄원자에게 시네라리아 꽃을 바쳐야만 사용할 수 있다.]

“흐음. 이런 건가.”

탄원자의 주문이라……. 그때 파기나레코르의 일부가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어? 야, 파기 너 몸이?

-어라? 어라라라?

파기나레코르의 형상이 일그러졌다가 다시 되돌아왔다. 그러자 마도서에 적인 주문의 이름이 변경되어 있었다.

[무존자의 겨울]

[손끝에서 뼛속까지 시린 냉기를 뿜어낼 수 있다. 이 냉기를 뿜으면 생물 뿐만 아니라 영적인 존재조차도 단번에 얼려 버릴 수 있다. 또한 시전자를 중심으로 원형으로 냉기의 공간을 뿜어낼 수 있으며 얼음 조형물을 만들고 얼음을 조종할 수 있다. 무존자에게 시네라리아 꽃을 바쳐야만 사용할 수 있다.]

“무슨…….”

너무 놀라서 육성으로 발음해버렸다. 지금 다른 신에게서 주문을 빼앗아온 것인가? 샤를은 깜짝 놀라서 반송을 외쳤다.

-바, 반송! 반송 안 되냐!?

-쭈인. 먹은 건 이미 먹은 거야.

-망했네.

탄원자는 자신의 주문을 빼앗아간 무존자에게 적대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었다. 샤를은 파기나레코르가 단순한 마도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너, 어떻게 한 거야?

-몰라. 그냥 주문서를 수납했는데 엄청나게 배가 불러 졌어.

-나 탄원자랑 척을 진 것 같은데.

-원래 꺼억하고 나면 뒤도 안 보고 런 하는 거야. 당분간은 너무 배불러서 달란트 같은 거 못먹겠어.

그렇게 말하는 파기나레코르는 벌써 크기가 커져서 이제는 아이처럼 보일 정도로 자라 있었다.

배를 두들기면서 파기나레코르가 철면피로 말하자 샤를은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생각하려고 애를 썼다. 이계에 갔을 때 주문의 주인을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군.

-아 근데 쭈인.

-왜?

-나 추가적인 능력이 생겼어.

-은폐 능력 이후로?

흥미롭다는 듯 샤를이 묻자 파기나레코르가 대답했다.

-응. 이제 내가 마법을 쓸 수 있겠어. 마도서에 적혀 있는 것으로 한정해서 말이지

-네가?

샤를은 속으로 환호했다. 이 기능은 이전보다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그 뒤 탄환 박스를 꺼냈다. 경매장에서 구해온 물건들이다. 슬슬 총알이 떨어져 가니 어쩔 수 없지.

샤를은 화로 주문을 통해서 탄환에 주문을 부여할 생각이었다. 원래 광명자의 화로 주문은 대장장이를 위한 주문이었다. 암흑기에는 이 화로 주문을 통해서 명검이나 활촉 등을 벼려냈었다.

샤를이 공격용으로 사용한 적이 있지만 사실 공격용으로는 부적합하고 무형의 것들을 제련하는데 적합했다.

가령, 주문을 조형해서 어떤 물건에 삽입하는 일.

보통 이런 식의 인챈트 기술은 조각칼을 유용하게 사용하는 조각구원회에서 전문적으로 활용했지만, 샤를에게 화로 주문이 생긴 뒤로 여러 차례 탄환에 주문을 새기려고 노력해왔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실패하거나 혹은 급한 일이 생겨서 느긋하게 물건을 만들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샤를은 충분히 성공할 것 같다고 판단해서 비밀 서재에 내려와 탄환을 작업하기로 했다.

비밀 서재에 도착해서 샤를은 마도서를 펼쳐두고 주문서가 있는 페이지를 살폈다. 그곳에 적힌 주문을 한땀 한땀 탄환에 화로의 불길을 이용해서 적어넣어야 하는 일.

물총새 깃털과 황은 분말 가루를 섞어 만든 재료를 화로 주문으로 가공해서 리볼버용 탄환 6발에 주문을 새겨넣자 샤를은 기진맥진함을 느꼈다.

‘몸 쓰는 데는 자신 있지만 샤를 헥센은 제작에는 영 꽝이야.’

전투나 비밀을 파헤치는 것과는 달리 이런 고된 집중과 반복 작업은 샤를에게 어울리지 않는 일들이었다. 샤를은 늘 생각하는 것처럼 ‘장인’이 필요했다.

‘재단사, 무기장인, 조각가. 등등 여러 사람이 필요해.’

이번 사건이 끝난 뒤에는 인재를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샤를은 일단 만들어둔 탄환을 바라보았다. 조악하게 만들었지만 적어도 한 달 정도는 유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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