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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사이비 교주가 되었다-58화 (58/221)

제58화 - 샤를은 만년필에 대한 생각은 그만뒀다. 어차피 이 만년필을 어떻게 ‘처분’할지는 이미 계획이 있었다. 대신 노트를 꺼내고 펜을 들었다. 생각에 잠긴다.

여태까지 샤를은 자신의 능력만을 개발해왔다. 그래서 지금은 여러 주문을 손에 넣었고 강력한 유물들도 얻었다. 하지만 그 반대급부로 교단의 관리에 매우 소홀해졌다.

이건 반성해야했다. 강해지느라 교단의 관리를 소홀히 했으니까.

교단을 강하게 만드는 방법은 뭘까?

제일 중요한 것은 신도를 늘리는 것이다. 이 세계는 근대 지구와는 다르게 유일신앙이 그렇게까지 사상 전반을 지배하지 않는다.

광명교를 섬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바다 건너 다른 대륙에서 온 신앙을 가진 사람도 있다.

이런 느슨한 신앙에 대한 관념이 바로 샤를을 비롯한 5개의 사이비 교단이 메트로폴에서 활동할 수 있는 사상적 뒷받침이었다.

그러나 샤를이 체질 개선을 끝마친 무명교단을 빼고는 대부분 사이비 교단은 직, 간접적으로 벌여선 안 되는 일을 하므로 법적으로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땐? 경찰국의 추적을 받게 된다. 그러니 샤를은 합법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점에서 생각보다 많은 장점이 있다. 광명교단의 주시를 받고 있긴 하지만 빌미가 없으니 그들도 움직이지 않는다.

‘이제부터는 내가 드러나도록 움직이는 건 곤란해.’

샤를은 교주 직위를 유지하되, 겉으로 드러나는 다른 사람을 앞세울 셈이었다. 플로나는 샤를과 함께 돌아다녀야 하니 안 되고 당연하게도 그 대상은 에세나였다.

에세나는 스스로도 알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사람의 속마음을 간파하는 것 이상으로 이끄는 재주가 있다. 그녀를 구심점으로 삼아 기존 교단을 늘려나갈 생각이다.

대신 샤를이 관리하는 건 또 다른, 비밀스러운 교단의 인원들이었다. 심상 세계에 들어가서 아브카한 부장을 불렀다.

[아이고 부르셨습니까요.]

“여태까지의 관리 내역.”

[여깄습니다요.]

신앙심이 상당히 모여 있었다. 모이는 신앙심은 샤를의 심상 세계에 차곡차곡 쌓여서 권능을 사용하게 해준다.

기존에는 비활성화되어 있었던 권능 중에 몇 가지가 해금되어 있었다. 샤를은 그중에, 뒷동산 제자 모임을 클릭했다.

*

에세나는 방안에 앉아서 홀로 경전을 살피고 있었다. 경전은 그녀의 위대한 교주가 쓴 것인 만큼 상당히 심도높은 여러 교리가 적혀 있었다.

그중 어떻게 해석해야할 지 애매모호한 것들이 몇 문장 있었다. 이걸 어떻게 이용해서 신도들에게 적용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잠깐 빛이 번뜩이더니 어딘가 끌려가는 것 같은 감각이 에세나를 덮친다. 정신을 차려보니 에세나는 어느새 밤하늘을 날고 있었다.

너무 당황해서 손을 이리저리 휘젓고 있으니 누군가 다가왔다.

“언니?”

플로나가 하늘을 유영하듯이 날아와 그녀에게 다가온 것. 플로나의 손을 잡는다.

“좀 놀랐지? 나도 맨 처음에 왔을 때는 그랬어.”

“여긴, 어디에요?”

“이곳은 무존자께서 거하시는 장소야. 우리는 교주님의 부름에 응해서 이곳에 도착했고.”

“와아…….”

긴장감이 가시니 주변을 둘러볼 수 있게 되었다. 밤하늘의 별이 보이는 곳을 부유하고 있었는데 주변에는 거대한 바위들이 하늘을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그중 하나는 매우 커서 마치 섬처럼 보일 정도였다.

부유석들이 날아다니는 곳 중앙에는 삐죽 솟아오른 산이 있었다. 그 산꼭대기에는 오벨리스크가 있었는데 오벨리스크의 앞에는 거대한 왕좌가 놓여 있었다.

“저기서 교주님이 우리를 부르고 있어.”

“네.”

둘이 날아가는 동안 아래를 볼 수 있었는데 먹구름 사이로 얼핏 보이는 것이 폭풍이 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 끝없이 광활한 세계가 바로 무존자가 있는 세계인 것인가?

에세나는 무존자의 강력한 권능을 느꼈다. 이런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는 존재가 신이 아닐 리가 없었다. 그녀의 신앙심이 조금 더 깊어졌다.

“어서와라.”

샤를은 거대한 왕좌에 앉아 있었다. 그가 앉기 전에는 너무 커서 거인이라도 앉을 법했지만 가까이 가서 보니 그 왕좌는 큰 편이긴 했어도 사람이 앉기에는 충분해보였다.

멀어서 커다랗게 보였던 것인가? 에세나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무럭무럭 들기 시작했다.

“오늘 너희를 이 세계로 부른 이유는 하나다. 너희끼리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법한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어서지.”

에세나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플로나의 옆에 거대한 부유석 하나가 다가왔다. 그 부유석은 동그란 원형처럼 생겼는데 그 앞에 회의를 나눌 수 있을 법한 거대한 탁자가 있었다.

“앉아라.”

“네.”

플로나와 에세나가 그 좌석에 앉자 좌석에 빛이 들어왔다. 상상도 못 할 일이 둘의 앞에서 벌어지고 있으므로 둘 다 매우 놀란 상태였다.

샤를이 날아와서 얘기했다.

“여긴 이제부터 너희가 있을 곳이다. 필요하다면 거리의 제약을 넘어서 이곳에 들어와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될 거다.”

“네!”

“제자는 앞으로 점점 더 늘어날 거다.”

샤를은 상석에 앉아서 둘을 돌아보았다.

“여태까지는 플로나가 교단의 일 전반을 맡았지. 하지만 이제는 좀 일을 나눠야겠다.”

“네 교주님.”

플로나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에세나가 교단의 일 전반을 맡기로 한다. 대신 플로나는 다른 곳에서 할 일이 있다.”

“교주님의 뜻대로 하겠습니다.”

“교, 교단의 일 전부요?”

에세나가 좀 당황하자 샤를이 그녀를 돌아봤다.

“어, 저는 아직 전부 다 할 수 있을 만큼은 아닌 것 같아요.”

“아냐. 충분히 할 수 있다. 너는 너 스스로 가진 능력을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구나.”

샤를이 산장으로 떠나면서 자리를 비웠을 때 에세나가 교단을 관리했었는데 그간 큰 문제는 없었다.

“앞으로 좀 더 교세를 늘리도록 해라. 도시에 소문을 흩뿌려서 신도들을 모으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교단 전반에 대한 자율적 권리는 네게 넘기겠다.”

“아, 알겠습니다. 맡겨주신 대로 해보겠습니다.”

에세나가 바짝 긴장하면서 대답했다.

“좋아. 플로나는 이곳에서 새로 계약을 해야겠다.”

“계약이라뇨 교주님?”

플로나가 눈을 깜박거리자 샤를이 말했다.

“네가 계약한 존재에 대한 것이지.”

“……네.”

플로나가 가진 비정상적일 정도로 강한 힘은 이계의 존재와 계약했기 때문에 얻은 것이었다. 샤를은 그 상대가 누구인지 안다.

이계 하층에 있는 드라쿠니스라는 수생 생물이었다. 드라쿠니스들은 바다뱀신의 일족이었다. 바다뱀신이 4대 악신에게 처참하게 살해당한 이후로 그들은 생식능력을 잃었다.

그들은 이계와 접촉이 가능한 특별한 존재들에게 자신들의 힘과 비늘을 빌려주는 대신 그들에게서 영성을 흡수해간다.

그 결과 나중에 계약을 맺은 상대를 드라쿠니스화한다. 계약을 계속 맺고 있었으면 점차 바다뱀으로 변해갔을 것이다.

꽤나 사악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계약이지만 대부분의 이계 생물들과의 계약이 전부 이런 식이다. 먹이로 삼거나, 동족화하거나, 영혼을 빼앗거나, 기억을 앗아가거나 등등.

이계의 존재들은 철처하게 약육강식에 따른다. 몇몇 특이한 놈들을 제외하면 이 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인간이란 그들에게 하찮은 존재이므로 이런 식의 불공정 계약을 맺어버린다.

샤를은 손을 뻗어서 심상 세계 한쪽을 갈라버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거대한 바다뱀 인간이 튀어나왔다.

한참 물을 유영하고 있었다가 갑자기 빨려 나온 것에 당황한 그 바다뱀 인간은 켈록 대면서 해수를 바닥에 뱉어냈다.

“케헥. 케헤에엑.”

“너, 바다뱀 인간이여. 이름을 말해라.”

그 바다뱀 인간은 매우 당황하면서 샤를을 바라보았다. 겉으로 보이는 형상은 인간에 불과했지만 그 내면에 엄청난 영성을 느낄 수 있었다. 머리 뒤에서 후광이 비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존재는 이계에서도 손꼽히는 괴물 같은 존재들이었다.

“위, 위대한 존재시여. 제 이름은 아프─달각스─기드입니다.”

“너는 내 제자에게 불공정한 계약을 맺게 했다.”

그러면서 플로나를 가리켰다. 플로나는 담담한 눈으로 바다뱀 인간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일전에 그 괴물과 바다뱀 신상 아래에서 계약을 맺은 적이 있었다. 그것도 샤를의 주도하에.

“그, 그건 이미 합의된…….”

“누가 합의했대?”

“다, 당신께서…….”

샤를은 그 계약을 무효로 돌리려고 하고 있었다. 신비학 지식이 일천한 플로나였지만 그래도 그녀의 상식으로는 이런 식으로 계약을 무효로 만든다는 건 처음 들어보는 일이었으나 잠자코 있었다.

“이 계약은 신성한 바다뱀신의 신상 아래에서 맺었던 계약입니다. 그, 그럴 수는……”

“어리석구나 나는 지금 네게 자비를 베풀고 있었다.”

샤를은 아프 어쩌구 하는 바다뱀 인간에게 손을 뻗었다. 그 바다뱀 인간에게서 영혼이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영혼이 빠져나가는 감각이 기겁한 그가 소리질렀다.

“사, 살려주십시오. 계약을 취소하겠습니다.”

“진작에 그럴 것이지.”

샤를은 그 바다뱀 인간을 죽일까 하다가 말았다. 영락한 바다뱀신이라고 해도 굳이 적을 만들 필요가 없으니.

바다뱀 인간은 혼이 빠져나간 듯한 느낌으로 자신의 힘을 플로나에게서 거둬갔다. 샤를은 열린 공간으로 바다뱀 인간을 역소환시켰다.

“계약을 맺을 만한 다른 녀석을 주도해보마.”

“예, 교주님.”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에세나는 플로나보다 더 놀랐다. 샤를의 가공할 힘에 전율할 정도였다. 저런 신비적인 존재를 마음대로 협박하고 죽일 수 있다니.

“새로운 녀석은 음.”

샤를은 자신의 등급이 거의 신급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적어도 이 심상 세계 안에서는. 그러니 플로나와 새로 계약할 만한 녀석을 고르는 건 신중하게 해야 했다.

조건이 좀 까다롭다. 심상 세계에 들어오는 걸 거부하지 않고 강력한 존재이며 샤를의 권위에 굴복해서 까다롭거나 큰 공물을 요구하지 않는 이계의 생물이라.

샤를은 이전에 플레이했을 때 기린(麒麟)이라는 신수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 서양풍 세계에 동양식 신수가 웬 말이냐 했는데 이계는 너무 넓어서 그런 존재가 있어도 이상하진 않다고 납득 했었지.

‘그래, 기린을 불러볼까.’

샤를은 공간의 경계면을 가를 곳을 생각하고 눈을 감았다. 불특정 상대를 불러오는 건 꽤 어렵다.

바다뱀 인간은 계약을 맺은 당사자인 플로나가 있었으니 그렇게 어렵진 않았지만 이번에 소환하는 건 목표가 있어야 했다.

타겟은 신수(神獸). 그중에서도 까다롭거나 큰 공물을 요구하지 않는 생물.

*

천장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너무도 멀고 거대한 얼음 빙판 아래로 청록빛 광원이 내리쬔다. 그 아래에는 온갖 기화요초가 피어오른 화원이 있었다.

그 풀들 사이에 푹 파묻힌 아에라푸스는 졸음에 빠져 눈을 깜박거리고 있었다.

그 자신이 만들어낸 화원 안에서 가짜 낙원의 향기에 취해 끔뻑끔뻑 졸던 아에라푸스는 하품을 하면서 깨어난 뒤에 자신이 대체 얼마나 오래전 ‘숨결’을 섭취했는지 생각했다.

일주일? 1년? 그 생물에게는 시간의 흐름 따위는 그다지 의미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이 화원을 만들고 얼마 동안밖에 나가지 않았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다.

아에라푸스가 몸을 일으켰다. 이제 부지런히 움직여서 숨결을 섭취하지 않으면 몸 상태가 안 좋아질 테니까.

그들 종족은 아주 오랫동안 타 종족들의 숨결을 섭취해왔다. 숨결에는 영혼이 가진 흔적이 있다.

그들 종족은 상대가 가진 숨결을 통해서 힘을 얻는 생물이었다.

숨결이 음식이고 곧 힘이자 성장의 발판이었지만 이미 성장이 전부 끝나고 남은 영생을 즐기고 있는 아에라푸스에게는 귀찮은 일일 뿐이었다. 매끼니 먹어야 하는 밥처럼.

하품을 한바탕한 아에라푸스는 그 순간 그의 화원에 경계면이 생기는 것을 느꼈다. 화원의 공간 귀퉁이를 찢고 어디론가 이어져 있는 경계면.

수천 년 동안 이런 경우는 거의 없어서 호기심이 깊은 눈으로 경계면을 바라보았다.

경계면의 반대편에는 특이하게 생긴 공간이 있었다. 심상으로 이뤄진 세계. 굉장히 정밀한 그 공간에서 어떤 위대한 존재가 그를 부르고 있었다.

적어도 신이 되기 위한 첫발을 내디딘 무언가가 아에라푸스를 부른다. 느껴지는 냄새로는 그다지 위험할 것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아에라푸스는 그 밖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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