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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사이비 교주가 되었다-55화 (55/221)

제55화 - 이 틈을 타서 샤를은 쓰러진 사람들을 깨웠다. 샤를이 옆을 지나가는데도 구울들은 불을 끄느라 바빴다. 하지만 불길은 쉬이 잡히지 않았다.

“리카, 일어나. 리카.”

“어, 어? 교수님?”

“어서 빨리 도망치자, 이곳을 떠나야 해.”

샤를은 리카가 정신을 차리는 동안 다른 사람들도 깨웠다. 로렌은 깨어났지만 메리는 쉽사리 깨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샤를이 결국 둘러업는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도망치려 하는 동안 불길은 더욱 거세게 타올라서 유독한 연기를 냈다. 제프리는 결국 불길을 잡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분노에 찬 눈으로 샤를을 바라보았다.

“놈들을 쫓아! 이렇게 된 이상 놈들을 없애라!”

구울들이 샤를 일행을 쫓아가려 하는 그때, 불길 사이에서 라쿤 가면을 쓴 남자 다섯이 나타났다. 그들의 등장은 너무나도 뜬금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갑자기 나타났던 것이었다.

“D-63발동. 결계를 파괴하고 내부로 점프 완료. 리더, 요구 조건으로 심호흡 다섯 번 부탁드립니다.”

“좋아.”

리더가 다섯 번의 심호흡을 하는 동안 옆에 있던 병사 중 하나가 헬멧 옆에 있는 조명을 켰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사람들은 샤를 일행과 구울 사이를 바라보면서 적대 대상을 파악해냈다.

“구출 대상 발견. 다수의 민간인과 함께 있음.”

“치명적 적대 대상 발견. 타입 언데드. 소거 개시한다.”

그들은 손에 하나씩 군용 기관단총을 들고 있었는데 달려드는 구울을 제압 사격으로 처리했다.

구울들은 총에 얻어맞자마자 맞은 부위에서 푸른색 불꽃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들이 보유한 탄이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는 뜻이다.

굉음 소리 때문에 샤를은 고개를 뒤로 돌리자 라쿤 가면을 쓴 병사들을 볼 수 있었다. 샤를은 그들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재단 집행부대잖아? 라쿤 팀이면 경호 담당일텐데 어째서 여길 찾아왔지?’

샤를은 그들이 VIP만을 전문 경호하는 요원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재단의 봉인물을 지키는 주요 전력이 바로 집행부대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매우 독한 연기가 나기 시작했고 탈출구는 연기가 빠져나가는 장소밖에 없었다. 그러니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만 했다.

그런 샤를의 옆으로 라쿤 팀원 한 명이 나타나 옆에 따라붙었다.

“탈출을 돕겠습니다. 제가 선두로 움직일 테니 따라오십시오.”

다른 라쿤 팀원 한 명은 리카 웹스의 곁에 딱 달라붙었다. 그러자 샤를은 왜 이 집행부대가 나타났는지 알 수 있었다.

‘리카 웹스의 개인 호위 인력이군.’

새삼 웹스 가문이 재단에서 얼마나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아무튼, 생각이 중요한 게 아니다. 앞으로 걸어가는 동안 구울이 재차 나타났다.

드르르르르르륵.

마치 타자기를 치는 것처럼 갈리는 소리와 함께 구울 하나가 벌집이 된다. 라쿤 팀원은 주변을 둘러보면서 길을 찾고 있었는데 샤를이 방향을 가르쳐주자 손쉽게 올라갈 수 있었다.

막 저택의 정문 앞에 도착하니 저택의 봉쇄는 해제되어 있었다. 정문 쪽에서 샤를은 죽었다고 생각했던 앨런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 나도 같이 가!”

“앨런?”

그는 자신의 왼쪽 엉덩이를 부여잡고 엉거주춤하게 뛰고 있었다. 구울에게 당한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총을 얻어맞은 모양새였다.

사실은 메리가 쏴버린 총이 앨런의 엉덩이에 맞았던 것이었는데 위치가 너무 절묘해서 적이었던 제프리나 총을 쏜 주체인 메리조차 그가 죽었다고 착각했다.

지금은 정신이 혼미한 메리를 제외하면 아무도 모르는 정보였다. 로렌이 손을 뻗어서 앨런을 부축하면서 움직였다. 그 사이, 라쿤 팀원들이 따라서 산장 정문으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산장이 지금은 악마의 소굴처럼 보였던 것은 착각이 아닐 것이었다. 여긴 악이 웅크리고 있는 개미지옥 그 자체였다.

팀원 중 한 명이 상황이 진정되었다 싶어 보이자, 리카에게 말을 걸었다.

“리카 웹스님. 저희는 당신을 호위하려고 왔습니다.”

“호……위요?”

“예. 자세한 것은 나중에 설명하죠. 이쪽으로.”

리카를 따로 데리고 가려는 듯한 행동을 하자 리카가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면서 샤를의 옆으로 달라붙었다. 라쿤 팀원 하나가 난처한 듯 머리를 긁적인다.

보통 이런 ‘광기어린’ 상황에 부닥치게 되면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죽거나 그것도 아니면 죽느니 못한 상태가 되어 있는데 다들 부상을 입은 것을 빼고는 이 일행은 멀쩡했다. 그래서 그냥 데려가기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걸림돌이 있다.

상황을 보아하니, 이 남자가 나머지 사람들을 이끄는 리더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어떻게 설득해야 하지?

아직 초보 딱지를 떼지 못한 그 라쿤 팀원이 머뭇거리고 있는 도중에 리더로 보이는 남자가 지하실에서 마지막으로 탈출하면서 외쳤다.

“아직 상황이 끝나지 않았다! 촉수를 조심해!”

그 순간 폭발적으로 성장한 무언가가 나타나 라쿤 팀원 하나의 왼쪽 팔뚝을 꿰뚫었다. 흐느적거리는 촉수에는 눈이 잔뜩 달려 있었다.

“!!”

비명을 지르지도 못할 정도의 충격을 입은 라쿤 팀원이 빨려 들어가려고 하자 리더가 순식간에 달려가서 그 어깨를 꿰뚫은 촉수를 잘라냈다.

그리고 남은 촉수를 손으로 잡아서 뜯었다. 촉수의 마디에는 하나같이 사람의 이빨을 닮은 부분이 빨판처럼 박혀 있었는데 하나같이 살점을 한 움큼 물어뜯은 상태였다.

“끄아아아아악.”

그제야 지독한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라쿤 팀원. 피가 분수처럼 쏟아져나온다. 옆의 동료가 그를 붙잡고 응급치료를 하는 동안 나머지 라쿤 팀원들이 총을 들고 촉수가 쏘아져 나왔던 곳을 겨눈다.

“기다려.”

리더의 명령 하에 팀원들은 극도로 긴장하면서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어둔 상태였다. 언제라도 나올 수 있는 상태.

그때 샤를이 넓게 퍼뜨려둔 영성에 무언가 닿았다.

“위!”

샤를이 외치자마자 리더가 고개를 위로 돌린다. 그 순간 여덟 개의 촉수가 2층 창문을 꿰뚫고 떨어져 내렸다.

촉수를 본 리더의 총이 불을 뿜었지만 몇 발 쏘지 못하고 리더는 촉수에 붙잡혀 2층으로 끌려갔다. 팀원들은 아군 오사의 문제 때문에 그를 향해 발사하지 못했다.

“누구 마음대로 나가겠다는 거지?”

리더가 사라지고 나서 몇 초 뒤에 제프리의 광기 어린 목소리가 정문 입구에서 들려왔다. 그는 인간의 형상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의 신체는 마치 구울처럼 흉물스럽게 일그러져 있었고 어깨에서는 수 가닥의 유연한 촉수들이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얼굴 부분만이 조금 남아 있어서 그가 제프리였던 것을 상기시키는 듯 했다.

그 괴물은 주변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제일 먼저 움직이는 놈은 죽인다.”

라쿤 팀원들이 제프리의 몸통에 재차 사격을 가했다. 푸른색 불꽃이 미친 듯이 피어오르면서 제프리의 촉수 여기저기가 구멍에 뚫렸으나, 유감스럽게도 그리 큰 피해를 주지는 못한 것 같다.

“그리고 공격하는 놈도 죽인다.”

촉수를 횡으로 휘두르자 라쿤 팀원들이 수 미터는 날아가 버린다. 몇몇은 촉수의 공격을 회피해냈지만 재정비할 충분한 시간이 없었다.

그때 어디선가 하얀색 나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나비들은 한때 제프리였던 것의 몸통에 잔뜩 들러붙기 시작했다.

“주문을 쓰는 놈도 죽이겠어.”

그리고는 샤를을 향해 손을 뻗었다. 손끝에서 촉수가 튀어나와서 창처럼 찔러왔다. 샤를은 뒤로 물러날까 하다가 가만히 있었다. 촉수는 아주 멀리 빗나갔다. 샤를의 환영이 어느 정도 먹힌다는 뜻.

-걍 처음부터 다 죽일 생각이었던 거잖아!

-저런 녀석에게 뭔가 기대하면 안 돼.

제프리는 솔로보다 악질이다. 저택 지하에서 구울을 사육하는 등 미친 짓거리를 해왔다. 솔로가 협력자라면 제프리는 실행범이라고 할까.

“수십 년이었다. 클럽의 중추에 들어가기 위해서 수십 년 동안 준비해온 의식이 한순간에 잿더미가 되었어! 너희를 용서하지 않는다. 너희는 모두 처참하게 살해당할 것이다.”

“지랄!”

그때 2층 창문에서 여기저기 상처를 입은 리더가 나타났다. 끌려갔을 때는 꼼짝없이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살아있었던 것.

제프리가 고개를 돌리면서 촉수를 뻗어서 리더의 배를 꿰뚫었다. 실린 힘 때문에 꼼짝없이 꿰뚫린 리더는 그대로 허공에 붕 떴다.

하지만 그는 손에 세열 수류탄을 들고 있었다. 그는 고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곧바로 그걸 집어던졌다.

멀리서 던져도 되었을 텐데 왜 그렇게 뛰어들었던 걸까? 답은 정밀함에 있었다. 리더는 제프리의 입안에 정확하게 수류탄을 던져 넣었던 것.

제프리의 입 안으로 들어간 수류탄이 폭발하자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그때가 샤를이 원하던 타이밍이었다.

허공에 떠오른 불꽃의 창이 너덜너덜해진 제프리의 몸통에 꽂힌다. 두 번째 폭발이 일어나면서 엄청난 섬광이 떠올랐다. 출력을 최대로 높여서 박아넣었으니 무사하진 못할 것이다.

아직도 어마어마한 광량과 피어오르는 불꽃 매캐한 연기 때문에 제대로 확인하기 어려웠다.

“교, 교수님 이건 뭐죠?”

리카가 깜짝 놀라면서 물었다. 샤를이 뒤를 돌아봤다.

“이 세상은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단순하지 않아. 숨겨진 세계가 존재하지.”

“숨겨진 세계라고요?”

“그래. 자세한 건 네 아버지에게 물어보도록 해라. 그도 이 비밀 세계에 한 발을 걸치고 있는 입장이니까.”

“교수님도요?”

“그래. 나는 영성자란다.”

어차피 샤를이 영성자라는 것은 알려질 수밖에 없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리카 웹스는 평범하게 살아왔겠지만, 이 일을 계기로 영성자의 길을 걷게 될 수밖에 없다.

샤를은 라쿤 가면을 쓰고 있는 경호 인원들을 가리켰다.

“아마도 저들은 네 아버지가 널 호위하라고 고용한 사람들일 거다.”

“……그게 대체…….”

“혹시 개인적으로 날 찾아오고 싶다면 내 교수 사무실이 아니라 내 집으로 찾아와도 좋다.”

그때, 멀리서 누군가 달려왔다. 리카의 마부였던 제인 오스틴이었다.

“아가씨!”

“제인?”

“어서 이곳을 떠나요.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해드릴게요.”

“그치만…….”

그때 불꽃 속에서 제프리가 일어섰다. 그의 얼굴을 비롯한 전신은 이제 형체를 완전히 잃어서 살점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가 없는 상태였다. 그런데도 움직이고 있다. 끝없는 증오를 발산하면서.

-아직도 일어나네?

-생각 이상으로 내구도가 높아. 뭘 처먹은 거지.

“어서 가.”

샤를이 말하자 리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제인과 함께 라쿤 팀원들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그들은 아까 촉수의 일격에 얻어맞았을 텐데도 멀쩡했다.

-쟤네 무슨 괴물 같은 거야? 왜 안 죽었어? 촉수 맞으면 죽을 텐데.

-저들은 그냥 평범한 인간이야. 좀 더 훈련되었지만. 저 가면 때문에 웬만한 부상에서는 회복될 수 있는 거지.

저 라쿤 가면은 양산형인 주제에 상당한 고성능을 갖춘 물건이었다. 유물을 만드는 유물에 의해 만들어진 음, 양산형 유물이라고 해야 할까.

“자, 잠깐 우리는요?”

라쿤 팀원들이 리카를 데리고 가버리자 다른 사람들이 당황해하면서 그들에게 물었다. 냉정하지만 그들은 고개를 저었다. 대신 말한 것은 제인이었다.

“도망가버린 댁네 마부들에게 연락해보시죠. 아니면 달려서 탈출하던가.”

그렇게 말하곤 냉정하게 사라졌다. 남은 일행들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런 무기로 무장한 사람들이 호위해준다는 리카에 대한 흥미가 치솟는 것과는 별개로, 그들의 마부가 도망쳤으며 마차도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이미 이쪽엔 상처 입은 자들이 둘이나 있었고 하나는 기식엄엄한 상태다.

그때 샤를이 말했다.

“제인 오스틴의 마차는 남아 있을 겁니다. 그녀는 저 자들과 함께 빠져나갈 것 같으니까요.”

“그렇군요.”

로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빛에서는 샤를에 대한 여러 생각들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것 같았다.

“영성자라는 게 뭐죠?”

“오늘 일은 그냥 잊고 사는 게 나을 겁니다. 누군가에게 말한다고 해도 그들이 믿어줄지는 모르겠지만요.”

샤를이 완곡하게 돌려말한 거절을 로렌은 곧바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자격이 안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쉬운 표정을 지으면서 마차로 향했다. 운이 좋다면 메리는 살릴 수 있을 것이었다.

그때 리더가 나타났다. 그는 조금 전에 배가 꿰뚫려서 내장이 밖으로 튀어나왔었는데 어느새 그 중상에서 회복된 상태였다.

-와, 벌써 회복 됐는데?

파기나레코르가 감탄했다. 분명히 촉수와 사투를 벌인 듯 전신에 상처투성이였고 배에 관통상까지 입어서 내장까지 딸려 나왔었는데 지금은 그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샤를에게 물었다.

“영성자. 다른 주문은 있나?”

“왜, 도와주려고?”

“나 하나쯤은 저걸 막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너에게는 볼일이 있고.”

그가 샤를의 상의 주머니에 꽂힌 만년필을 보면서 말했다. 하긴, 이건 봉인물 급의 유물이었다. ‘재단’에서 분명히 관심을 보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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