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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사이비 교주가 되었다-53화 (53/221)

제53화 - 샤를 일행과 헤어진 메리가 가까스로 창고에 도착했을 때, 기이한 것을 볼 수 있었다.

창고 문이 열린 것이 아니었다. 완전히 박살 나 있었다. 외부의 침입에 의해서 부서졌냐면, 그것도 아니었다. 내부의 싸움으로 인해 안에서부터 문이 부서져 바깥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그 문틈 사이로 안을 볼 수 있었다. 메리는 깜짝 놀라면서 총을 들었다. 구울이 안에서 앨런과 치고받고 싸우고 있었다.

“어, 어째서.”

“음. 여자가 하나 더 들어왔군.”

화들짝 놀란 메리는 창고 안의 누군가가 자신을 바라본 것을 알았다. 그는 제프리였다. 평소의 인자한 모습과는 달리 냉혹한 눈동자를 띠고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부상을 입긴 했지만, 체력은 충분해 보이는군. 제품도 상등질이고.”

그 말투가, 마치 자신이 기르던 소의 품질을 품평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 이게 대체?”

“저 여자를 잡아라.”

대기하고 있던 구울 한 마리가 나타나 메리에게 다가갔다. 메리는 도망칠 수 없음을 직감하고 덜덜 떨리는 총을 발사했다. 구울의 목에 한 방, 빗나갔다. 손이 너무 떨린다.

두 방, 구울이 아니라 아주 크게 빗나가 옆에 있던 앨런이 총에 맞았다. 앨런은 움찔거렸을 뿐 여전히 축 늘어진 상태였다.

앨런에게 사과할 시간조차 없었다. 세 번째 탄환을 쏠 수도 없었으니까.

그 뒤, 메리는 구울의 주먹에 얻어맞고 기절했다. 구울들은 모든 인간을 제압했다. 제프리는 주변을 스윽 훑었다. 인간은 더 없다.

과연 이야기쟁이의 말대로, 모든 인간을 수확할 수 있었다. 피터 놈이 갑자기 발광해서 나머지 인간들을 사냥하고 다니지 않았더라면 제단에 바칠 제물이 더 풍부해졌을 텐데 아쉬울 따름이었다.

“남자 놈은 필요 없으니 버려라. 총에 맞았으니 얼마 안 가서 알아서 죽겠지.”

그리고 피를 흘리는 앨런을 내버려 두고는 다른 사람들을 짐짝 매듯이 짊어지고 창고 바닥에 뚫린 구멍을 통해 아래로 내렸다.

*

샤를은 자신이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솔로를 따라온 것이 정상적인 상황이라고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만약 유물의 능력 아래에 있지 않았다면 어떻게 했을까.’

볼 것도 없이, 샤를은 그 즉시 자신의 방을 완전 요새화하고 주문을 이용해서 보이는 구울을 족족 다 태워 죽였을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능력이 완전히 봉인되어 있다.

거기다 유물의 능력 때문에 수동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샤를은 스스로 주도적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어딘가 끌려다닌다는 생각을 감출 수 없었다.

이제 판단해야 할 것은 어디까지 끌려다닐 것인가다. 얌전히 함정으로 걸어 들어가느냐, 혹은 어느 순간에 뒤를 쳐야 하는가.

판단의 근거는 솔로였다. 샤를의 처음 목적은 사실 솔로였고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솔로에게는 여전히 주술 성흔이 남아 있다.

“…….”

“네겐 아마 많은 의문이 남아 있으리라 본다. 그 의문을 끝맺음하지 않는다면 나는 결코 원만한 종막을 볼 수 없겠지. 원하는 것이 있다면 물어보아라. 간단히 몇 가지만 가르쳐주지.”

솔로는 어리숙한 그 모습 대신, 어젯밤 수많은 사람 사이에서 이야기를 이끌었던 그 모습으로 샤를에게 말했다. 그의 말에 샤를의 표정이 이채를 띤다. 스스로 기회를 주는데 거절할 샤를이 아니었다.

“넌 뭐지?”

“나는 대리인이다. 음. 지금은 수몰왕의 대리인이지. 그와 거래해서 그의 계약을 주관하기로 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갑자기 4대 악신 중 하나인 수몰왕이 왜 나와? 점점 더 골치 아파지는 내용 때문에 샤를이 인상을 찡그렸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추가로, 그 전날에 소설은 왜 얘기했던 거지?”

“미리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유물의 사용 조건. 그래야 그 이야기를 미리 듣고 상대가 반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正)과 반(反), 그리고 합(合)이야말로 유물이 만들어내는 종막 그 자체다.”

그렇군. 샤를은 ‘봉인물’로 지정될 수 있을 정도로 굉장한 유물들에게는 조건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 이전 게임에서 했던 유물 중 하나는 사용자가 달걀을 먹어야지만 발동할 수 있었다.

솔로가 가진 만년필 유물……. 운명을 조작하는 유물의 경우, 어떤 사건의 편린을 미리 다른 사람에게 말해야만 발동할 수 있는 것이다.

‘놈의 유물은 만능의 예측도구가 아니야. 예언을 하는 물건도 아니고. 그럼 종막에 도달하기 전에 솔로를 죽일 수도 있겠어.’

어쨌든 이해했어도 이해하지 못한 척 연기해야 했기 때문에 샤를은 처음 듣는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야만 했다.

이제 질문은 하나 남았다.

“하필 왜 지금이지? 클럽의 모임은 몇 번이고 일어났었다고 들었다. 그런데 왜 하필 지금 이런 일이 일어났어야 하는 거냐.”

“흠. 마침 때가 되었을 뿐.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너희들은 모두 이 산장의 배역들이지. 그들이 일으킨 ‘위기’가 이 소설의 주요 갈등이고. 이 소설의 끝에, 가장 적합한 대상 2명이 남는다. 그리고 그 두 명이 수몰왕이 혈주찬상에게 보내는 우호 표시가 되지.”

게임플레이 도중 어부형제단의 교주나 헬파이어 클럽의 교주로 플레이할 때도 가만히 있기만 해도 두 교단의 사이에는 기본적인 우호도가 올라갔다.

샤를은 그게 왜 그런지 알 수 없었는데 메트로폴 밖에서 일어나는 이 사건 때문이라면 납득이 간다. 메트로폴 같은 위험한 장소에서 우호 거래할 수는 없으니 도시 밖에서 하는 거다.

‘결국, 마지막에가서 둘 다 주신(主神)의 자리를 놓고 치고받고 싸우기는 하지만 그 둘만 남기전에는 협력관계였단 말이지. 이유가 있었군.’

“때마침 혈주찬상이 예전에 잠깐 기거했었던 제단이 이 장소에 있기도 했고. 질문은 끝났다. 이제 네가 받아야 할 합당한 대가를 받았다.”

생각을 정리했다. 지하 끝에서 비밀스러운 의식이 진행되고 있고 종막에 도달하기 위해서 두 사람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솔로는 기본적으로 어부형제단과 관계가 있다. 어째서 천상, 작가인 솔로가 그런 어둡고 기괴한 교단과 연관이 되었나 쳐도 그 뒤에 한 일은 솔로의 의지였다. 그러니 그도 적이다.

그러니 샤를은 거리낌 없이, 솔로를 사냥하겠다는 마음가짐을 먹었다.

계단을 내려가자 구울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들은 더욱더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마침내 가장 어두운 곳에 켜져 있는 초를 발견할 수 있었다.

초는 간헐적으로 복도에 깔려 있었는데 초로 된 길을 끝까지 따라가니 거대한 제단이 나왔다. 제단 뒤에는 늑대의 머리가 올려져 있었고 제단 앞에 구울들이 서 있었다.

이곳은 소설 속에서 샤를 일행이 가보지 못한 장소였다. 헌 데 이렇게 많은 구울들이 지하에 있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구울은 말 잘 듣는 시종처럼 제프리의 앞에 나열해 있었다.

예상하던대로, 혈주찬상의 시종이 바로 제프리였다. 그가 헬파이어 클럽의 시종이다. 메트로폴 밖에 있으므로 아마 헬파이어 클럽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건 아닐 거다.

그리고 그 옆에는 메리와 리카, 로렌이 기절한 채 축 늘어져 있었다. 앨런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샤를이 맨 처음에 떠올린 건 의문이었다.

“……어느새?”

그때, 구울이 땅을 파는 능력을 떠올렸다. 지하 3층의 문은 일종의 봉인처럼 구울을 막아냈다. 그리고 샤를이 아래로 내려올 때 지하 3층의 문이 열려 있었던 것을 보았다.

봉인 풀린 구울들이 땅을 파고 창고로 올라갔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결국, 솔로와 제프리, 피터 이 셋이 한 편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게 패착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에 별로 의미를 갖지 않는다. 운명을 조종하는 솔로의 유물 때문에 어차피 샤를은 알 수 없었을 정보였기 때문이다.

위기. 이렇게 되도록 조정된 공간. 샤를은 턱을 괴고 생각했다.

샤를이 창고에 있는 동안에는 안전했었는데 그가 떠나자마자 일이 벌어지는 것을 보면 이 시나리오에서 주역은 샤를이 맞다.

보통 이런 기이한 사건의 주인공은 죽거나 미쳐버리게 되지만……. 샤를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솔로가 쓰러진 세 여자를 보면서 중얼거렸다.

“이번에는 오히려 꽤 많군. 둘이라며.”

“어서 오시구려. 여자는 뭘 골라야 할지 몰라서 다 데려왔지. 그대는 남자를 데려왔군.”

“그는 자발적으로 따라왔다. 그러니 우리가 무엇을 할지 설명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하하. 우리는 자발적으로 따라오지 않아서 강제로 데려왔어야 했지. 그래 설명이라.”

샤를은 팔짱을 꼈다.

“그래서, 여기서 뭘 하는데.”

제프리가 낄낄거리면서 웃었다.

“너흰 제물이다. 혈주찬상에게 바쳐질 제물.”

“음. 그래서, 인신공양이라도 하나? 구울한테 먹이기라도 해?”

샤를의 뻔뻔한 태도에 제프리는 황당하다는 듯이 샤를을 바라봤다. 그가 봤던 사람 중에 샤를 같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이런 미칠 것 같은 상황이 오게 되면 각자 정신줄을 하나씩 놓기 마련일진데.

“일단 그대에게 모든 것을 보여주겠다. 저걸 보아라.”

그가 늑대 머리 제단을 손으로 가리켰다. 늑대 머리 제단을 본 순간 샤를의 뇌리에 기이한 장면이 비쳤다.

그것은 아주 오래전의 과거였다. 그리고 그곳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보였다. 늑대 머리 제단의 아래에서 춤을 추고 있는 한 중년 여성의 모습이 보였다. 유려하고 아주 느릿느릿하게 추는 춤.

혈주찬상의 시종. 그녀가 바로 이전 대의 시종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앞에 한 젊은 남녀가 묶인 채 울부짖고 있었다.

그 주변에는 구울이 그들을 빙 둘러싸고 있었다. 중년 여성은 두 남녀에게 약을 먹이고 두 손을 풀어준다. 그리고 둘은 체념한 채 뒤엉키기 시작한다.

“내 어머니와 아버지도 검은 적자의 앞에서 광란의 교미를 했지. 그리고 태어난 것이 바로 나다.”

-우엑!

파기나레코르가 역겹다는 소리를 냈다. 샤를이 보던 환각도 파기나레코르에게 공유되었던 것. 그는 환각에서 벗어나서 앞을 바라보았다. 대충 무슨 일인지 알겠다.

헬파이어 클럽의 일원인 시종은, 이런 방식으로 오래전부터 자신의 신도를 유지시키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야말로 야만성 그 자체였다.

“너와 이 여자 중 하나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나의 대를 이어서 검은 적자를 모시는 신도가 될 것이다. 자, 원하는 여자를 골라라. 어느 여자건 하나같이 아름답구나. 너와 함께 온 여자, 여자를 좋아하는 성숙해 보이는 여자, 또 하나의 여자는 하얀색 새치가 염색한 것처럼 매력적이구나.”

희미한 웃음을 짓는 제프리는 악마의 화신 같았다. 자신의 탄생을 덤덤히 얘기한다.

“지랄.”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모양이군. 네가 가진 초라한 무기로 우리와 싸워서 이길 수 있을 거로 생각하는가?”

제프리가 손짓하자 구울 한 마리가 앞으로 나섰다. 앨런의 횃불 때문에 얼굴에 화상을 입은 그 구울이었다. 솔로가 제프리에게 말했다.

“이쯤에서 종막이 보인다. 샤를와 리카라는 여자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다음 대의 시종이 될 것이다.”

“오 그래? 그럼 나머지는 다 죽여도 되겠군. 내 구울들이 배고파하고 있어.”

-쭈인! 이 씹쌔끼들 다 죽여버려!

-아 이젠 욕해도 돼. 이놈들은 그래도 싸다.

마체테 하나를 들고 거대하고 잔혹하게 생긴 괴물과 대치하는 샤를은 매우 미약해 보였다. 구울에게 눈앞의 사냥감은 언제라도 죽일 수 있는 장난감이었다. 그러나 그 장난감은 오히려 조소했다.

“너희 사악한 것들이 하는 짓을 보니 아주 재미있구나.”

“뭐?”

이제 샤를의 진정한 모습. 무명교단의 교주 샤를 헥센으로 돌아갈 때였다.

샤를은 영성을 끌어올리면서 손을 들어 올렸다. 손 위에 광염이 모이면서 허공에 빛을 만든다. 그 무엇을 연료로 태우는지 알 수 없는 장엄한 빛의 조합체가 치솟아 올랐다.

그리고 그것은 한없이 어둡던 이 지하를 백색의 빛으로 밝혔다. 그 빛을 보자마자 구울들은 뒤로 물러나며 괴성을 질렀고 제프리와 솔로는 경악했다.

“그, 그건 주문?!”

“오, 오!? 시상이 떠오른다. 이야기가 새롭게 쓰여지고 있어!?”

샤를은 그대로 무존자의 창을 쏘아내서 제단의 늑대 머리에 쏴버렸다. 엄청난 불길과 함께 폭발이 일어나면서 늑대 제단이 그대로 파괴되었다.

“무, 무슨 짓이냐!? 대체 무슨 짓이야아아아아!”

절망에 빠진 제프리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무슨 짓이냐고? 다 된 밥에 재 뿌리기다!”

-아싸! 잘한다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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